피스레터(PDF)2019. 11. 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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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새로운 터전에서 ‘제대로 된 평화혁명’으로 나아갑니다


정영철|희망의 근거 -정부와 시민사회의 연대-


박정배|국수, 농마국수, 함흥냉면, 밀면


박종호|분노를 넘어 희망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필요한 까닭


김영환|친일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으로 평화의 길을 열다


임요한|모래야 나는 얼마나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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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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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11. 18. 16:33

[평화를 담은 공간-1]

 

친일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으로 평화의 길을 열다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김영환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일본기업(일본제철)에 강제동원되어 강제노동 피해를 당한 원고들에게 역사적인 승소판결을 내렸습니다. 1997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싸워 온 피해자들이 20여년의 기나긴 투쟁 끝에 마침내 승리한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은 국제인권법의 성과를 반영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의 극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세계사적인 판결이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냉전과 분단체제 아래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강요한 ‘65년 체제’를 피해자들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하여 극복한 역사적인 성과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1년, 해방 70여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한 자신들의 인권회복과 정의의 실현을 고대해 온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고 사죄, 반성하기는커녕 ‘국제법 위반’을 운운하며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으며, 피고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여 판결의 이행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와 노골적인 배외주의를 선동하여 일본 사회 전체를 ‘혐한의 광풍’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혐한의 광풍’ 속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일상적으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문제에서 드러나듯 역사왜곡과 혐한발언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사회 전체가 ‘재특회’처럼 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후 지난 1년 동안 악화의 한 길을 걷고 있는 한일관계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한국사회의 현실은 역사왜곡과 친일청산의 과제가 비단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과제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의 극우세력과 뜻을 같이 하는 이러한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식민지 지배의 피해를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해 한 평생을 싸워 온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노력을 모욕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1965년의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분노한 고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제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1966년 『친일문학론』을 비롯하여 친일파 관련 저작을 발표했습니다. 선생은 친일파의 행적을 자신의 손으로 낱낱이 기록한 1만 3천 장의 인명카드를 남기고 1989년 작고했습니다. 1991년, 임종국 선생이 남긴 뜻을 이어받아 민족문제연구소가 탄생했습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2009년 선생의 인명카드는 친일파 청산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친일파 4,389명이 기록된 『친일인명사전』으로 태어났습니다.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시민의 참여를 통한 역사문제의 대중화에도 힘을 기울여 적극적으로 역사왜곡을 막기 위한 실천운동을 벌여왔습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반대, 김활란상 제정 반대, 박흥식 동상 철거, 친일문학인상 반대 등 일제 잔재와 친일청산을 위한 실천운동과 함께 그동안 조명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발굴,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강행된 뉴라이트 교과서 채택,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운동 등 역사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실천운동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과거사 문제의 해결을 위한 운동에도 앞장 서 왔습니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낸 강제동원 소송의 사무국을 맡고 있으며, 야스쿠니신사 합사취소 소송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의 법정에서 대일과거사 청산을 위해 일본의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소송투쟁을 벌이는 한편 강제동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연구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지 108년이 되는 2018년 8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의 문을 열었습니다. 식민지주의의 극복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활동의 거점으로 마련된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강제병합의 역사, 민중의 입장에서 본 식민지지배의 실상, 한 시대를 다르게 걸어 온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대조적인 삶,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의 목소리, 그리고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싸워 온 한일시민연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일제강점기 역사박물관입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입구
역사정의를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

특히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그동안 모아온 3만여 점의 역사자료와 4만여 점의 관련도서 외에도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 한국과 일본의 수많은 시민들이 보내준 기증 자료와 성금으로 마련되어 순수하게 시민들의 힘으로 세워졌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박물관의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역사정의를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3.1 독립선언서’ 초판본, 난징대학살에 가담한 일본군의 일장기, 남산에 세워진 조선신궁의 기록, 강제동원 피해자의 절절한 편지, 이광수, 최남선, 김성수, 김활란 등의 친일 행적, 친일인명사전 편찬의 역사, 한일시민연대의 기록 등을 보고 박물관을 나서면서 여러분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한국사회 곳곳에서는 분단과 냉전체제를 방패삼아 ‘반공’이라는 무기로 자신들의 친일행적을 숨기고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들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큰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2020년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그들이 친일의 과오를 반성하고 사죄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친일잔재의 청산과 역사정의의 실현은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길에서 우리가 내디뎌야 할 첫걸음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시민여러분과 함께 그 길을 열어가겠습니다.



김영환 ㅣ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동아시아공동워크숍, 평화자료관·쿠사노이에(草の家), 평화박물관에서 평화운동을 했다. 동아시아 시민들이 국가와 민족의 벽을 넘어 이곳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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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9. 2. 19. 23:34

[시선 | 평화의 마중물]


역사의 길에서 평화를 찾다

 

김영환

내가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은 것은 1997년 여름의 일이다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의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친구들과 함께 일본 최북단의 땅 홋카이도(北海道) 슈마리나이(朱掬内)를 찾았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에서 머나먼 혹한의 땅으로 강제연행되어 혹독한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간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하기 위해 열린 한일대학생공동워크숍’(현재 동아시아공동워크숍)에 참가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얼룩진 역사의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달려온 일본인, 재일조선인, 아이누1)친구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삽을 들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두 나라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 빽빽하게 얽힌 대나무 뿌리를 걷어내고, 조심스레 한 뼘 한 뼘 땅을 깎아 내려가자 쪼그린 자세로 유골이 되어 묻혀있는 이름 모를 강제동원 희생자와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교과서로만 배우고 말로만 들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처음으로 눈앞에 마주한 순간이었다.

 1)아이누: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열도 등지에 분포하는 선주(先住) 민족

 

이름도, 국적도 알 수 없는 희생자는 유골이 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고통과 암흑의 세월을 딛고 역사의 증인으로 모습을 드러내어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에게 수많은 물음을 던졌다.

 

이 사람은 식민지에서 끌려온 조선인인가 아니면 빚에 쫓겨 온 일본인 노동자인가? 이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끌려왔을까? 왜 이 사람은 1945년 해방이 되고 60여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찾지 않는 오지의 숲속에 묻혀 있을까? 고향에는 이 사람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있을까?’

 

60여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강제동원 희생자는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만남을 선사했다. 한국인, 재일조선인, 일본인, 아이누 등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진 존재들이 유골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함께 마주하고, 서로의 다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곳에서 분단의 현실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재일조선인 친구들을 처음으로 만났고, 70년대부터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밝히고 평화를 일구기 위해 애써온 일본의 시민들과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그곳에서 국가와 민족 벽을 넘어 손을 잡은 사람들은 참혹한 강제노동의 끝에 죽어간 희생자가 던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길에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켜 왔고 지금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나 역시 일본에서 5년 동안 평화운동을 배웠고, 지금도 역사의 길에서 평화를 찾는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다

 

20181030,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제철(신일철주금 주식회사’)에 동원되어 강제노동을 당한 원고 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이 입은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하여 피고 신일철주금이 원고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943년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한 19세의 청년 이춘식은 94세의 노인이 되어 법정에서 승소판결을 들었다. 그러나 2013년 고등법원에서 승소판결을 받고 함께 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나눴던 원고 여운택 할아버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1997년부터 21년 동안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함께 싸워 온 신천수 할아버지도, 2005년부터 13년 동안 한국의 법정에서 함께 싸워 온 김규수 할아버지의 모습도 이날 법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박근혜의 청와대와 외교부는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정치적 야합을 꾀하면서 한일관계의 악화를 빌미로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미루도록 지시했다. 양승태의 사법부와 피고 일본 기업의 대리인 김앤장은 한통속이 되어 온갖 꼼수를 동원하는 재판거래를 통해 확정판결을 고의로 지연시켰다. 국가권력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추악한 재판거래를 벌이는 동안 이 날을 평생 기다려왔을 세 분의 피해자는 끝내 승소판결의 기쁨을 맞지 못하고 이미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누구를 위한 국가이고, 누구를 위한 정부이며,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가?

 

1997년부터 일본 법정에서 시작된 재판투쟁을 지원해 온 일본 시민들도 이 날 법정에서 승소판결의 기쁨을 함께 했다.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나카타 미쓰노부(中田光信). 40대의 공무원 신분으로 재판지원 활동을 시작해 온 두 사람은 여운택 할아버지가 재판을 위해 처음으로 일본을 찾은 날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오라며 자신들에게 돈을 주었는데, 처음에는 일본 사람은 못 믿겠다며 할아버지가 돈을 맡기기를 주저했다는 것이었다. 그 뒤 2003년까지 일본에서 진행된 재판을 위해 할아버지가 일본을 찾을 때마다 지원자들은 할아버지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부자지간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었고, 한국에서의 재판투쟁도 지원하며 할아버지의 곁을 지켜왔다. 할아버지가 끝내 승소판결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매년 성묘를 거르지 않는 정성을 쏟아왔다. 할아버지를 회상하며 두 사람은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훔쳤다.

 


왼쪽부터 우에다 게이시(上田慶司) , 여운택 할아버지, 나카타 미쓰노부(中田光信)

 

강제동원 판결을 둘러싸고 한일관계의 악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1965한일협정을 졸속으로 맺어 일제 피해자들의 권리를 짓밟았다. 2015년 박근혜는 외교참사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합의를 발표하여,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 온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다.

 

2018년 대법원의 승소판결이 있기까지 역사 정의와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은 필요할 때만 국익을 말해온 권력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외로운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 온 피해자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아 온 수많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다. 국익을 들먹이며 한일관계의 악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피해자의 곁에서 손잡아 온 이들에게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내일이 있다.

 


김영환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동아시아공동워크숍, 평화자료관·쿠사노이에(), 평화박물관에서 평화운동을 했다. 동아시아 시민들이 국가와 민족의 벽을 넘어 이곳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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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PDF)2019. 2. 19. 11:02

통권17호_웹_최종_추가수정.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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