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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5_1 김성경_전쟁을 살아가는 것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8. 17.

[한반도 이슈] 

전쟁을 살아가는 것

김성경(어린이어깨동무 이사・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평화는 상투적’

“놀러 온 김에 숙모 책 좀 읽어 봐줄래?”
출판사에 단행본 최종 교정지를 넘기기 직전, 소설가를 꿈꾸는 조카에게 슬쩍 원고를 내민다. 똑똑하고 예술적 감수성이 충만한데다 예술가들이 모여든다는 예술학교에서 서사 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조카에게 마지막 점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북한 여자들이 이렇게 살았다니 놀라운 데요! 지금까지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몰랐는데 신기해요.”
구성이나 가독성과 같은 글쓰기 전반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던 나에게 조카는 의외의 반응을 내비친다.
“숙모가 북한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했을 때 도대체 뭘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나도 제 또래 친구들도 북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한국전쟁, 분단 이런 주제는 나이든 소설가들 주제이지 우리들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 너희들은 뭐가 관심이 있는데?”
“뭐 우리에게는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니까. 쓸 이야기는 도처에 널렸어요.”
“평화는 어때? 예전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평화로 소설도 쓰고 음악도 만들고 그랬는데.”
“평화 이런 이야기는 너무 커서 상투적이잖아요. 물론 소소하게 내 삶이 좀 행복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은 있죠.”
순간 조카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얼마 전 조카의 친한 언니가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OECD 자살률 1위라는 숫자는 단순히 통계에 머물지 않고 바로 우리 주변에서 현실로 나타난다. 무심한 표정으로 내뱉는 ‘평화는 상투적’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일지 그제야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하루하루 일상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한반도 분단과 평화는 너무나 먼 이야기가 분명했다. 매순간 폭력과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이란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지, 전장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분단이라는 비정상성

남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 이면에는 분명 분단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까닭에 현재 남한 사회 내부의 역사적 맥락을 꿰뚫어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분단이라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마치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분단효과가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7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70년이 된 날이었다. 말 그대로 정전(停戰)이란 ‘교전을 중지’한 상태이다. 협정문에는 정전의 목적을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로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재 한반도에서는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되지 못한 채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음을 뜻한다. 지난 70년 동안 교전은 멈췄지만 전쟁은 남북 모두의 일상 속에 깊게 내재되어 있다. 남한이 이뤄낸 ‘압축적 성장’은 북한과의 체제 경쟁이 주요동인 중에 하나였으며, 북한의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3대 세습도 역시 남한이라는 타자를 적대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남북한의 기형적인 사회가 바로 ‘교전이 잠시 중지’된 상태인 정전과 분단으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남한을 ‘기형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 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으며 정치적으로도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이다. 한국전쟁 직후의 남한과 북한의 상황은 누가 더 나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온통 상흔이 가득했지만 남한은 냉전 구도 아래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체결하였고 경제적 지원도 받았다. 게다가 1965년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와 전후 보상 문제를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일단락하고 베트남 전쟁을 발판으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뤄냈다.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 발전모델은 사회경제적 정의나 노동자의 권리 등은 등한시 한 채 속도와 효율성만을 강조한다. 빠른 시간 내 경제 성장이 중요했던 남한은 소수의 재벌이 이끄는 독특한 형태의 경제 구조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 남한의 재벌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가 존재하지 않아 ‘chabol’으로 음역한 신조어가 나왔을까. 그만큼 남한 경제 성장의 핵심에 재벌을 중심으로 한 불공정한 부와 권력의 집중이 존재하고 있다.

한 때 아시아의 4마리의 용으로 불릴 정도로 빠른 경제 성장에 매진한 남한은 1987년을 기점으로 민주화까지 이뤄내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경제 전반에 커다란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노동유연화 등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받아들임으로써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여러 부침이 있기는 했지만 87년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는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점차 안정화되었으며, 지난 촛불혁명에서 확인한 것처럼 시민들이 권력자들의 부정행위에 대해 직접 나서 단죄하는 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K-컬쳐라고 불리는 대중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면서 남한이라는 국가에 대한 호감도는 급속하게 상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남한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은 행복하지 않다. 경제적 양극화는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급속하게 악화되었으며, 사회의 공공성에 대한 합의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OECD 자살율 1위와 합계출산율 세계 최하위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한국적인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은 이미 모두의 문제가 되어버렸지만 남한의 경우에는 경제적 발전 모델과 정치적 민주주의 기저에 분단이라는 것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6~70년대 ‘압축적 성장’ 모델에서 북한의 위협이 내부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기제였다면,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인 현재 남한에서도 여전히 북한이라는 타자가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적극 활용된다. 최근 정부에서 노조나 시민단체에 종북반국가세력이 개입되어 있다는 억측을 늘어놓는 것만 보더라도 사회경제적 요구가 분단과 어떻게 연동되는지 확인 가능하다.

그것만이 아니다. 기득권 정치 세력 사이에는 성장주의나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차이가 존재하지 않지만, 오직 각자의 이념적 차이를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내는 경향도 감지된다. 경제 민주화와 기후위기 대응 등은 진보정권이건 보수정권이건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지만 오직 북한과의 관계 설정의 차이를 통해서 이념적 선명성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냉전적 이데올로기가 소환되기를 반복하고, 정치권은 이권과 권력을 두고 서로 물고 뜯는 정쟁을 계속한다. 정치권으로부터 시민들이 경험하는 현실이 지속적으로 외면당하자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고 절망에 빠져 들게 되었다. 남한 사회가 그토록 역동적인 민주화의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분단이 계속되는 한 냉전이데올로기는 지속될 것이고 그 자장 아래 남남 갈등은 점점 심해지면서 남한 사회의 근본적 문제 해결은 끊임없이 유예되기 때문이다.

 


갈라진 마음들

결국 비정상적인 남한 사회의 질적 전환을 위해서는 분단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되어야만 한다. 정전체제가 종전선언으로 해체되고, 남북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가 구축되지 않는 한 남한 내 갈등과 정쟁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형해화된 냉전 이데올로기는 더욱 극단화될 것이고 발달된 기술 매체 환경은 민주적 소통이 아닌 적대적 이념전쟁의 플랫폼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줄어들게 되면서 사회는 불안정해지며 모두가 불안 속에 고통 받을 확률도 농후하다. 시민들의 삶이 분단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만큼 분단을 해체하고 한반도 평화를 안착시키는 일은 전쟁을 반대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기형적 남한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70년 동안 계속된 정전상태를 바꿔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남한 사회의 내성과 남북이 서로를 적으로 삼으며 만들어 낸 두려움이 평화를 만드는 길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지금 같은 사회가 아닌 ‘다른’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 문제는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더 이상의 무고한 죽음을 막아 세우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 세대가 다시금 희망을 꿈꾸기 위해서 남한 사회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그 지난한 길에서 분단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이다.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대회 '지금, 평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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