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2.19 14:28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좌충우돌 민이 녀석 이야기


심은보



어떤 경우

 

이문재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지난 이야기에 등장했던 민이 녀석은 여전히 좌충우돌이다. 그 날 나는 아이들 수업을 마치고 회의 중이었다. 오징어 녀석이 나를 다급하게 찾았다. “큰 일 났어요. 민이 형이랑 우리 반 연이랑 싸워요날도 추운데 겉옷도 챙겨 입지 못하고 나는 밖으로 뛰어 나갔 다. 학교 밖 마을 한 켠에서 싸움이 난 모양이다. 민이 녀석의 입에서는 차마 듣고 있기 민망한 욕이 마구 난사되고 있었다. 내가 달려가니 녀석은 또 욕을 하며 달아난다. 쫓아갈까 하다 그냥 두었다. 녀석 안엔 어떤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두려 움? 사실 나는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불렀는데 녀석은 선생님이 쫓아오니 도망을 간 모양이다.

 

연이, 오징어, 강이까지 녀석들을 모두 교실로 데리고 들어와 어떻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찬찬히 들었다. 요사이 민이 녀석은 강이 녀석이랑 곧잘 어울려 놀았다. 드디어 민이 녀석에 게도 함께 놀 수 있는 한 학년 아랫니긴 하지만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30분짜리 중간놀이 시간에도 강이 녀석과 학교 안팎을 뛰어다니며 아지트를 만들기도 하며 뛰어 놀았다. 또 학교를 마치고 나면 학교 밖을 넘어 마을을 뛰어다 니며 놀기도 했다. 하지만 요 며칠 강이 녀석이 다른 친구들과 뛰어노는 모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날도 민이 녀석이 강이 에게 다가가니 친구들이랑 친구 집을 가기로 했다면서 달아난 모양이다. 민이에게는 어떤 마음이 솟아났을까. 녀석은 친구가 생겼다고 참 좋아했는데 또 다시 친구가 멀어지게 되었다는 좌절감, 배신감이 있지 않았을까.

 

결국 쫓고 쫓기는 상황이 펼쳐지다 마을 한 공터에서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아마 일방적으로 맞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다행히 누구도 다치지 않고 상황이 마무리 되었기에 다음 날 민이 녀석을 만나면 이야기를 좀 나눠 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잠시 교무실엘 다녀왔다. 교실로 다시 돌아오는데 녀석이 우리 교실 둘레를 맴돌고 있길 래 불렀더니 또 다시 쫓아오지 말라면서 뒤로 물러난다. 선생님은 안 쫓아 갈테니 민이가 선생님 쪽으로 오라고 했더니 그래도 또 뛰기 시작한다. ~ 내가 녀석을 잡아서 잡아먹기라도 하겠는 가. 무엇이 두려워 왜 자꾸 도망가는 걸까. 이 안에 스며있는 녀석의 익숙함은 무엇일까. 쫓아간다고 해결될 수는 없을 터, 어쩔 수 없이 그냥 두었다. 그리고 교실에서 업무를 처리했다. 그사이 교무실에선 일이 심각하게 일어난 모양이다. 민이 녀석이 창고에 있던 석유통을 가지고 교무실에 들어와서 뿌리려고 하고 그러면서 몇 가지 해프닝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드디어 녀석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버린 것인가? 만약 불이라도 났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내 안 어떤 마음이 하나 일렁이기 시작했다. 운명처럼 느껴지는 의무감이랄까



이 상황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자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다. 녀석의 아버지가 전학을 시켜달라고 한 모양이다. 아버지의 마음에는 자꾸만 여러 상황이 생기는 것에 대한 불편함, 학교가 그 상황들을 안고 가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던 모양 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이런 문제해결 방식이 참 불편했 다. 그 상황을 벗어나고, 그 공간에서 배제시켜버리는 방식은 참으로 편한 방식 아닌가. 아이는 그 사이 무엇을 배워왔고, 무엇에 익숙해져왔는가

사실 이 안을 잘 들여다보면 녀석의 익숙한 두려움, 억울함, 그리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분노와 화가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녀석은 늘 자기 책임이 되었고, 그러면서 또 배제되는 상황들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본인이 그 상황을 크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본인을 보아주었을 것이고, 또 이야기나마 들어주는 척 했을 것이 다. 전학을 와서 녀석이 간간히 하곤 하던 전학가면 될 것 아니에요라는 말이 떠올라 참으로 아프게 다가왔다.

 

어떤 면에선 녀석에게 치료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약도 챙겨 먹고 있다고 한다. 치료와 함께 되어야 할 것은 어쩌면 치유일지도 모르겠다. 녀석 마음 안에 어쩌면 참으로 익숙한 상처들이 곪고 곪아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화로 자리잡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일시적으론 치료가 그 아픈 것들을 어찌할 수 있겠지만 긴 호흡으로 보았을 땐 따스한 치유가 필요할 것이다.

 

다음날 누군가가 교실 밖을 기웃기웃 거리기에 확인해보니 민 이 녀석이다. 우리 교실로 불러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어제 그런 상황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런 상황이라면 너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나서 문제를 함께 풀어가겠노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올해 나와 함께 생활했던 통통이(첫 이야기에서 꺼내 놓았던) 의 경우도 역시 그러했다. 커다란 덩치에 몇 가지 행동 특성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많은 갈등 상황 속에서 모든 책임은 통통이 녀석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녀석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당장의 문제들을 잘 풀어갔겠지만 녀석에겐 학교라는 공간은 사실 참으로 괴로운 공간이었을 게다. 그러는 가운데 녀석의 행동패턴은 강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올 한 해 녀석의 억울함을 들어주면서도 행동의 경계를 함께 찾아가고자 함께 노력했다. 학기 초 문제 상황이 되면 큰 소리를 지르거나 울부짖던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교실 안은 나름 편안한 공간이 되었고 녀석은 그 안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워나가고 있다. 종업식을 앞두고 녀석을 조용히 불러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선생님과 함께 새롭게 공부하면서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면 좋을까 하는 이야기를 한참 나눴다. 통통이 녀석이 5학년이 되어서도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잘 생활했으면 좋겠다.

 

전날 그 일렁이던 마음 하나는 결국 오늘 민이 녀석을 보며 확고하게 내 마음 안에 자리를 잡았다. 며칠 뒤 선생님들과 새학년을 결정하며 내 마음 안에 담아두었던 그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민이 녀석이 있는 6학년 그 반을 맡겠노라고 말이다. 녀석도, 나도 참으로 좌충우돌 할 게다. 녀석의 이야기를 참많이 들어줄게다. 듣고 나선 나도 내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 줄게다. 어떤 선은 넘지 말아야 하는지, 화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구들과 친해지고자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풀어나갈 생각이다. 우리 함께 마주 앉아 마음 나누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통해서 오늘 안 되면, 내일 또 이어나갈게다. 그게 안 되면 또 그 다음, 다음.... 끊임없이 그리 하는 게 우리 살아가는 일 아니겠나 싶다. 녀석이 우리 함께 하는 한 해를 통해 살아 나가는 일을 배워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2018년 새롭게 만날 우리 반 녀석들의 행운을 빈다. 아울러 나의 새로운 한 해에도.


심은보 ㅣ 일곱 해 된 경기도 혁신학교 평택 죽백초등학교에 여섯 해 째 행복한 배움터 만들기에 애쓰고 있다. 학교에서 맡은 일은 희망을 일궈가는 우리 선생님 한 분 한 분 응원하며 함께 가고자 뜻과 마음 모아가는 죽백초 희망부장이다. 아이들 속에선 심슨으로 살고 있으며 좌충우돌 모두에게 의미있는 나날 가꿔가기 위해 4학년 아이들과 끊임없이 이야기 나누며 길을 찾아가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02.1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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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7.08.01 15:56

[시선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나 그리고 친구


이영근


나 색연필이 필요한데.”

내 건 안 돼.”

둘이 주고받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내 건 안 돼.’ 하는 말이 아쉽다. 하루 종일 함께 앉은 짝에게 색연필 하나 안 빌려주려니.

일부러 크게 말했다.

○○, 색연필 필요하니?”

.”

여러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요?”

짝과 같이 쓰면 돼요.”

그래? 그럼 ○○, 그럴 수 있니?”

.” 하고 선뜻 빌려준다. 그러면 웃으며 함께 한다.

 

우리 참사랑땀 반에는 스물여덟의 아이들이 있다. 일곱 모둠이 있고, 모둠은 둘씩 짝을 지어 앉는다. 7주에 전체 모둠을 바꾸고 모둠 안에서 주마다 짝이 바뀐다. 모둠으로 함께 앉는 짝과는 3, 4주는 함께 앉는다나와 함께 앉는 친구와 관계를 맺게 해야겠다.’

 

도덕 시간을 한 시간 냈다. 칠판에 아이들 이름이 써 있는 자석을 이곳저곳에 붙인다. 아이들은 뭐 할 건데요?” 하며 궁금해 한다. 칠판에 이름이 다 붙었다. “여기 여러분 이름이 다 있어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한 명씩 뽑을게요. 그럼 뽑힌 학생은 나와서 나와 관계있는 친구에게 선을 긋도록 하세요. 그리고 선 옆에는 낱말로 선 그은 관계를 써요.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으면, ‘3학년하고 써요. 그리고는 자리로 돌아가서는 글똥누기 수첩에 그 친구와 어떤 관계인지 문장으로 써 보세요. 그럼 한 명씩 뽑을게요.”


그러며 서너 명을 차례대로 뽑는다. 한꺼번에 한다. 자석에 작은 글씨로 이름이 써 있는데도 자기 자석이 어느 것인지 안다. 그러며 친구가 자기 이름으로 선을 그어오면 씩 웃는다. 쓴 아이는 자리로 들어가서 글똥누기에 그 친구 이름을 쓰고, 쓴 까닭을 쓴다.


 

한 번씩 모두가 돌아가며 썼다.

, 한 번 더 할게요. 다른 친구를 찾아가세요.”

!”

아이들에게 이 활동은 벌써 놀이가 되었다. , 하는 대답이 그렇고, 친구 이름을 찾아가는 선이 그렇다. 바로 가서 만날 수 있는데도 아이들은 일부러 비뚤배뚤 돌아 돌아 친구 이름으로 간다. 두 번째 선도 모두 그었다. 세 번째까지 한다.

 

지호

소연 : 지우개 파기로 더욱 친해진 관계이다 .

시은 : 2학년 때 자주 같이 놀던 친구

예린 : 어제 예린이네 집에서 놀았다.

 

나연

시언 : 나랑 교회를 같이 다닌다 .

지호 :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주혁 :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현지

주아 : 3학년 때 나누리반에 데려다줬다.

소연 : 4학년 때 그림을 3번 같이 그렸다 .

지호 : 미술 지우개 판화를 같이 했다.

 

도형

서준 : 같이 야구를 한다 .

두언 :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윤우 : 술래잡기를 같이 했다.

 

희성

원준 : 3학년 때 같이 맨날 놀았다.

문현 : 게임하면서 같이 놀았다.

민준 : 축구를 같이 했다.

 

승재

태건 : 3학년 같은 반이었고 친하게 놀았다 .

시언 : 나와 같은 교회를 다닌다 .

나연 :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다.

 

칠판 가득 선으로 연결이 되었다.

, 복잡해. 저기 내 꺼 있다.”

더 신비로운 건 자기가 그은 선이 자기 눈에는 띄나보다.

그게 보이네.”

!” 모두 한 목소리다.

이렇게 나와 친구가 선으로 연결되었다.

그럼 우리 느낀 점 말해볼게요.”

모두가 느낀 점을 발표한다.

 

아이들의 느낌 중 일부

- 복잡하다.

- 친구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 친구끼리 우정을 확인해서 좋았다.

- 칠판에 산과 강 모양 같아서 신기하였고

  친구랑 좋았던 점을 이야기해서 친구랑 사이가 더 좋 아진 것 같다. 또 재미있었다.

-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생각났다. 좋았다.

- 친구들과의 추억을 알 수 있어 좋았다.

- 재미있고 원준, 문현, 민준이와 더 많이 친해진 느낌이 들고 다음에 또 하면 좋겠다.

- 친구에게 선을 그으니 친구와 이어지는 것 같다.


둘이 서로 그은 아이도 확인한다. 서로 눈을 보며 좋아한다. 아이들 느낌에도 이런 말은 있다.

- 친구들이 나한테도 가니까 좋다.

- 친구와 노는 걸 해서 기분이 좋고, 친구들이 나를 많이 해주어서 좋았다.

 

나는 그었는데 친구가 나에게 안 그은 사람도 있죠?”

.” 하며 웃기도 하지만 이런 학생은 말이 없다.

너무 실망하지 마요.”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하며 선을 그었는데, 친구가 나에게 오지 않으면 실망하기 나름이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도닥거리고 싶은 마음이다.

 

혹시 이런 말 또는 노래 들어봤나요?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거라는 말. 사랑은 받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해요.”

재미있었다는 느낌도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어때요?”

. 재밌어요.” “다음에 또 해요.” “. 또 해요.”

그럼 달에 한 번씩 할까요?”

.”

다음에 할 때는 오늘 그은 친구를 그대로 가는 게 좋을까요? 다른 친구와 선을 그을까요?”

다른 친구로 해요.”

그래요. 그럼 다음에도 하는데, 다른 친구 셋에게 가는 걸로.”

 

이 활동은 5월 중순에 했다. 6월에 했어야 하는데, 내가 놓쳤다. 곧 방학인데, 방학 전에 아이들과 꼭 해야겠다. 한 시간 친구 생각하며 관계를 연결하려 한다. 2학기 때도 달에 한 번씩은 할 테다. 그러면 4학년을 마칠 때면 스물이 넘는 친구들에게 선을 연결하게 되겠다.

난 혼자가 아니에요. 이렇게 함께 있어요. 우린.”

사실 이 말도 필요 없을 것 같다.




이영근 | ‘아이들이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경기도 군포양정초등학교 참사랑땀 반(4-6)에서 어린이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둘러쌓여 있지만 자연에서 놀고, 자기생각으로 당당하게 토론하며, 설렘으로 학교에 와서는 행복한 웃음으로 사는 교실을 꿈꿉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7.08.01 12:04


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피스레터> 합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2016년 7월 창간 시기부터 2017년 6월까지 발간한 통권1호~통권7호의 내용을 묶어 발간한 이번 합본호를 통해, 깊이 있는내용과 쉬운 글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글을 주제와 필자별로 보다 쉽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합본호의 용량이 커서 분할하여 업로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1.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2.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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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7.06.19 14:34

[시선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글로 끝까지 싸우기


이영근


국어시간, 모둠이 책상을 돌려서 이야기 나누도록 했다. 앞뒤로 앉은 남학생 희문이와 여학생 수민이가 옥신각신 말다툼하는 모습이 보인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스스로 풀길 바라며.


선생 자리에 있으면 아이들 모습이 한 눈에 보일 때가 많다. 둘이 말다툼할 때 그렇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말다툼이 있기 전 모습으로 돌아가면, 앞자리에 앉은 희문이가 모둠 활동을 하기 위해 책상을 돌리려고 일어선다. 일어서는데 뒷자리 책상 위에 올려둔 수민이 물통을 건드려 넘어뜨렸다. 물통이 넘어졌으니 수민이는 화가 나서 한 마디 한다. 희문이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며 맞받아친다. 둘 모두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희문이가 미안해.” 하고 말하거나, 수민이가 그럴 수 있다며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길 바라며 보고 있었다.


그런데 쉽게 끝나지 않는다. ‘아이고야, 오래 가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희문이와 수민이, 둘 모두 자기 고집이 있는 아이들이다모둠으로 함께 활동해야 할 아이 둘도 난처한 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다.


"너희 둘은 둘이서 이야기 좀 나눌래.”

그리고는 둘에게 희문이와 수민이는 글똥누기에 다투는 까닭을 글로 써 오세요.” 했다. 있었던 일을 자기 처지에서 썼다.


 

수민 희문이가 돌면서 제 물병을 치고 제가 화를 내어서 수업시간에 말다툼을 하였습니다.

희문 뒤돌아서 회의하려는데, 물병을 실수로 넘어뜨리니 화부터 내고 짜증내서 화가 나서 싸웠다.

 

, 둘이 바꿔서 보세요. 그리고 아래에 있었던 일과 다르거나, 다른 할 이야기가 있으면 또 쓰세요.”

 

희문 답글 실수로 쳤는데 다짜고짜 화부터 내잖아.

수민 답글 근데 왜 사과를 안 하냐. 니가 사과했으면 나도 사과 받아주는데.

 

답글을 써 왔다. [물통이 있었으니] [넘겼으니 사과해야]로 생각이 여전히 맞선다.

또 보고 쓰세요.”

 

수민 화가 나는데 화를 안 내냐!

희문 어차피 사과해도 그럼 내가 자존심 상하잖아.

 

희문이와 수민이는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이제는 둘이 풀릴 때까지 서로 주고받으세요.

국어 시간 남았던 10분이 다 지났는데도 계속 서로 주고받더니 쉬는 시간에도 주고받는다. 다음 사회 시간이 되었는데도 둘은 역시나 글을 주고받고 있다.

선생님, 이제 다 됐어요.”

그래? 글똥누기 가져와볼래?”



[같이 동시에 미안하다고 말하자]로 결정이 났다. 알고 보니 둘은 유치원 때부터 올해 4학년까지 계속 같은 반(올해 4학년은 여섯 반)을 하고 있다고 한다. 둘이 참 많이 싸웠으면서도 친하다고 서로 말한다. 그래도 다음에 또 싸우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빨리 양보하면 좋겠다. 서로 잘 알고 있으니.


마침 사회 수업은 [도시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짝과 함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짝을 지어 하고 있었으니 둘이 함께 해야 한다.

, 그럼 이 종이 가져가서 둘이 함께 해라.”


짝 활동을 같이 하게끔 종이를 줬다. 둘이 함께 앉더니, “우리 이거 할까?” 하면서 함께 한다. 언제 싸웠냐는 듯 머리를 맞대고서 함께 한다. 함께 하는 활동이 재밌는지 웃으면서도 한다. 그 웃는 모습에 보는 나도 웃고 만다.


웃는 아이들 모습에 1학년을 가르치던 때가 생각난다. 1학년 남학생과 여학생이 콧물까지 흘리며 울며 다툰다. 내 옆 바닥에 앉은 채 싸운 까닭을 쓰게 했다. 다 쓴 글을 둘에게 주며 읽고 밑에 글을 쓰라고 했다.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이 글자 뭐야?” 하고 물으니, 무슨 글자인지 말해준다. 이어지는 말, “고마워.” 한다. 그 말 듣고는 둘에게 들어가라고 했다. 물론 그날 둘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른 우리 아이들이 한 곳에서 지내니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우리 반 아이들은 싸웠을 때 그 정도를 따져 이렇게 글로 쓸 때가 많다. 쓴 글을 서너 번 만 주고받으면 대부분 풀리곤 한다. 싸우며 흥분했던 마음이 글로 싸우며 풀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경험으로 봤을 때, 첫 번째는 시간이 흐르며 화났던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억울한 이야기를 글로 다 풀어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친구가 쓴 글을 보며, 친구 처지에서도 생각해 봤기 때문이다.


작은 다툼은 또 일어난다. 그럼 나는 또 , 둘은 왜 싸웠는지 써 보자.” 한다.

 


이영근 | ‘아이들이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경기도 군포양정초등학교 참사랑땀 반(4-6)에서 어린이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둘러쌓여 있지만 자연에서 놀고, 자기생각으로 당당하게 토론하며, 설렘으로 학교에 와서는 행복한 웃음으로 사는 교실을 꿈꿉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5.09 04:57

[시선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7:93


이영근


우리 반은 경기도 공립학교로 일반학교이다. 우리 반은 4학년으로 참사랑땀 반이라 한다. 올해가 열여덟 번째 제자들로, 참사랑땀-18기이다



▲ 참사랑땀-18기 교실 모습


아이들과 지내다보면, “밥은 질서를 지켜 차례대로 받아야 해요.” 하며 말은 다 맞는데, 밥 받을 때면 차례를 안 지키는 아이들이 있다. “군포는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 “우리나라 어딘가에는 있겠죠.” 하며 말로 장난하기를 즐기는 아이가 있다. 자기 요구를 말하고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면, “제 말이 맞잖아요?” 하며 자기 요구만 내세우는 아이가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픈 마음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지난 토론 때 다른 사람 마음을 얻는 것을 뭐라고 했죠?” 하며 칠판에 이라 쓴다.

설득이요.”

맞아요. 설득. 그리고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면 그 사람 마음을 얻을 수 있어요.” 하며 칠판에 설득감동을 쓴다.

 

 

7: 말이 가진 힘

 

설득하기 위해서 우리는 말을 해요.” 하며 동그라미를 크게 그린다.

여러분은 친구가 하는 을 다 들어주나요?”

아니요.”

그럼 이 다른 사람 마음을 얻는 데에는 얼마나 힘이 있을까요?”

대답이 없다.

설득되는 걸, 100으로 나타낸다면 은 어느 정도 차지할까요? 그리고 말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흔들까요?”

아이들은 여러 숫자를 말한다.

, 예를 들어 볼게요. 작년에 선배가 학급회의 시간에 이런 말을 했어요. ‘이번 주에 우리 반의 아쉬운 점으로, ‘복도에서 뛰는 사람이 많아 아쉽습니다.’ 하고 말했어요. 내가 봐도 복도에서 뛰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그러면 이 선배가 한 말은 맞나요? 맞지 않나요?”

맞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 선배의 말이 맞는데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어요.”

왜요?”

왜냐면 그 선배가 말을 마치자 옆에 있던 다른 선배가, ‘네가 더 뛰어.’ 했거든요.”

하하하.”

학생들이 웃는다.

그 선배가 한 은 맞는데, 왜 다른 친구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까요?”

말한 선배가 뛰었으니까요.”

동그라미에 조금 그리고, ‘7’을 썼다.

사람이 하는 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힘은 ‘7’이라고 해요.”


▲ "사람이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힘은 '7'이라고 해요. 

그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나머지 '93'은 뭘까요?" 아이들이 갸웃한다.

 

 

93: 사람이 가진 힘

 

그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나머지 ‘93’은 뭘까요?”

아이들이 갸웃한다.

, 여러분, 이런 경우가 있나요? 주말에 집에 있다가 점심 때 텔레비전을 보며 거실에 드러누워서는 청소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해요. ‘엄마, 짜장면 시켜 먹어요.’ 그랬더니 엄마가, ‘안 돼. 엄마는 청소하는데 네 방 청소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서 하는 말이라고는.’ 하고 짜장면을 시키기는커녕 꾸중만 들었어요. 그럼 이때 여러분 같으면, 짜장면을 시켜먹기 위해 어떻게 하겠어요?”

엄마와 함께 청소를 해요.”

맞아요. 엄마와 함께 청소를 하며, 엄마 마음을 움직여야 해요. 그러며 내 방 청소도 미리 해 둬요. 엄마가 내 방 청소하러 왔다가 깜짝 놀라기도 하죠. 이럴 때 엄마~ 청소한다고 힘든데, 우리 짜장면 시켜먹는 거 어때요.’ 하고 말하는 거죠. 그러면 엄마가, ‘아유, 잘했다. 그러자.’ 하며 짜장면을 먹을 확률이 커지는 거죠.”

저도 그런 적 있어요.

우리 반의 예를 든다.

오늘 아침에 노래할 때, 함께 따라 부르지도 않던 친구가 노래 끝날 때, ‘선생님, 노래 한 곡만 해 줘요.’ 하면 선생님이 노래를 더 불러줄까요?”

아뇨.”

그럼 다른 예를 들어봐요. 어제 ○○는 수학익힘책 문제를 풀 때 여러 번 틀려도 친구들 답을 보지 않고, 계속 도전해서 칭찬을 받았어요. 알죠? (.) 만일 ○○가 그 다음 시간 수업을 시작할 때, ‘선생님, 노래 한 곡만 하고 수업해요.’ 하고 예의를 지켜 말해요. 그러면 선생님은 아마도 마음이 흔들렸을 것 같아요. 노래를 한 곡 더 했을 것 같아요.”

동그라미 나머지 부분에 자세‘93’을 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데 ‘7’이지만, 그 사람이 몸으로 보여주는 것‘93’이라는 거예요.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나도 보여주려 한다

 

선생님도 그래요. 여러분에게 책 읽자고 하니까, 책을 함께 봐요.”

내 책상에 놓여 있는 책받침에 책을 보인다.

맞아. 선생님 책 많이 봐.”

그리고 여러분에게 날마다 일기 쓰라고 하니, 나도 써요.”

내 기록지를 보여준다.

날마다 쓰세요?”

날마다 쓰려고 하는데, 못 쓸 때도 있지만 거의 날마다 써요. 어제도 썼고요.”

청소도 그래서 같이 하려고 해요.”

맞아. 선생님은 여기 둘레 자주 쓸어.”

 

 

말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우리가 토론하는 건, 말을 제대로 하기 위함이에요. 듣기의 4단계에서도 대답하고 질문하는 게 제일 좋다고 했어요. 오늘 이야기는 여러분에게 말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말도 중요한데, 말과 함께 행동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말한 거예요.”


▲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기타 치며 노래하는 참사랑땀 반

 

 

이영근 | ‘아이들이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경기도 군포양정초등학교 참사랑땀 반(4-6)에서 어린이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둘러쌓여 있지만 자연에서 놀고, 자기생각으로 당당하게 토론하며, 설렘으로 학교에 와서는 행복한 웃음으로 사는 교실을 꿈꿉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5.09 03:23

[시선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아이 정강이를 걷어찬 나


최관의


종오! 이리 와라.”

1학년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점심시간. 미경이 배를 걷어차면서 거친 욕을 해대는 종오 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어요.

얼른 이리 오란 말이다.”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고 우리 종오 눈빛에 날이 섰어요.

왜요?”

뭘 잘못했다고 그런 말투로 날 부르냐는 거지요. 사춘기 6학년 아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몸짓을 1학년 녀석에게서 보게 되다니. 자존심이 확 상하면서 화가 치고 올라왔어요. 순간 자존심 상한다는 느낌이 올라오는 걸 우아하게 억누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솟아나는 화만은 어쩌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종오! 너 이리 안 올래!”

왜요? 뭘 잘못 했다고 그래요. 미경이가 먼저 욕했단 말이에요.”

세상에, 녀석은 오라는데도 꼼짝 안 한 채 한쪽 다리를 옆으로 삐딱하게 하고는 짜증과 화와 원망이 가득 찬 얼굴로 이렇게 투덜대며 발을 굴렀어요.

! 짜증나.”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도 거친 혼잣말이 튀어나왔어요.

저 자식이, 저게 뭐 하자는 거야.”


그럼과 동시에 당장 종오에게 달려가 발로 걷어차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온몸을 뜨겁게 휘감았습니다. 순간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심호흡을 했지요. 그러고는 잠깐 그 자리를 떠나 다른 반 아이들이 밥 먹고 있는 곳을 한 바퀴 돌아보며 감정을 다스렸습니다.

아이들과 살아오는 동안 이처럼 화를 치밀게 하는 일을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지요. 그럴 때 감정을 자제하지 못 해 후회할 일을 저지른 게 적지 않았어요. 또 그런 일을 저지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 자리를 피한 겁니다. 이렇게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지난 해 제가 저지른 잘못이 떠올랐어요.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고 부끄러워집니다.


그 때도 점심시간이었지요. 6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는데요, 아이들이 밥 먹는 걸 어느 정도 살핀 뒤 옆 반 담임과 함께 밥을 받아 한두 숟가락 떴을 때였어요. 좀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6학년 남자 아이가 의자를 발로 차며 자극적이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겁니다. 그 소리가 아주 귀에 거슬리고 지나가는 아이가 다칠 위험도 있어 녀석과 눈을 마주치고는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더 이상 그러지 말라는 눈빛을 줬어요.

멈출 거라고 믿고 밥을 먹는데 또 그 소리가 들려요. 밥 먹다 말고 다시 녀석과 눈이 마주쳤어요. 이번에는 손을 들어 엑스 자를 그렸지요. 녀석도 알았다는 표정을 짓기에 그야말로 이번에는 멈추리라 생각하며 막 숟가락을 드는 데 또 그 자극적인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녀석에게 달려갔어요. 그러고는 발로 녀석 정강이를 걷어찼지요. 그것도 두 번이나.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녀석은 밥 먹다 말고 놀라서 나를 쳐다보고 옆에 있던 아이들마저 놀랐어요. 녀석 눈에서는 눈물이 솟아오르고 내 머리에는 아차! 내가 잘못을 저질렀구나. 꼭지가 돌고 말았어. 교사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 폭력을 휘두른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솟구치던 화는 후회와 자괴감과 나 스스로에 대한 미움과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어요. ‘이 녀석 마음에 상처가 클 텐데, 주변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 텐데.’, ‘그 동안 내 몸과 마음에 배인 나쁜 습관 고치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내가 이게 무슨 꼴이야.’하는 뼈저린 후회와 뉘우침이 올라왔어요.


이런 생각은 순식간에 내 머리와 가슴과 몸을 스치고 지나갔고 이 엄청난 사태를 수습해야 했지요. 놀라서 울고 있는 녀석을 안아주며 말했어요.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많이 놀랐지.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아이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고, 손도 떨리고 있었어요.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 한 거예요.”


차라리 대들기라도 하면 마음이 덜 힘들 텐데 괜찮다는 거예요. 자기가 잘못 한 거라고 하니 더 마음이 무겁고 힘들더라고요. 녀석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는 자리에 돌아와 밥을 먹는데 밥맛을 모르겠더군요. 옆 반 담임이 굳어진 제 표정을 보면서 위로해줬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내가 능력이 부족하고 몰라서 아이들에게 못 하는 것은 그나마 봐줄 만하다. 하지만 이게 뭐냐? 속에서 올라오는 화와 충동을 억제하지 못 해 아이에게 상처를 줘? 아이고 그러면서 교육이 어떻고 아이들이 어떻고 입으로 말은 잘 한다.’


밥 몇 숟가락 떠 넣다 고개 들어 보니 녀석은 함께 먹던 아이들과 식판을 정리하고 교실로 올라갔더군요. 저도 서둘러 식판을 정리하고 교실로 뛰어 올라갔어요. 아무래도 안 되겠더라고요. 이 녀석을 만나 한 번 더 사과하고 마음을 달래줘야지. 아이를 찾아 교실, 복도, 화장실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못 만났어요. 결국 그 다음 날 다시 만나 어제 내가 한 짓에 대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며 마음의 상처를 덜어주려 했지만 엎어진 물이요 시위 떠난 화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지요. 그 뒤로 졸업하는 날까지 녀석에게 마음을 쓰고 농담도 하고 하면서 아이 가슴에 뿌린 어둠을 걷어내려 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날의 아픈 기억이 자꾸 올라옵니다.


그런데 한 해가 지난 지금 이 순간 또다시 종오 정강이를 걷어차고 싶다는 충동이 또 솟아오르다니! 섬뜩했어요. 등골이 오싹하더군요. ‘아이를 발로 차려는 이 충동은 도대체 어디서 오고 왜 되풀이하는 걸까?’하는 안타까운 물음이 떠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에서 치고 올라오는 그 무서운 충동에 휘말리지 않은 게 고마웠어요. 치솟는 화와 충동을 마주 바라보고 조절하는 힘이 조금이라도 생긴 게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며 종오에게 하던 잔소리를 멈췄어요. 이런 감정으로 종오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느낌이 들었거든요.


종오야! 들어가 밥 먹을 준비하거라. 지금 미경이랑 부딪치는 거는 멈추고 더 이상 하지 마라. 미경이가 욕한 건 따로 말 하마.”

그렇게 들여보내고 나니 빠르게 마음이 가라앉더군요. 담임 가슴에서 한바탕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오와 미경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장난치며 밥을 먹네요. 그 모습을 보며 솟구치는 화와 충동을 잘 추스른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실로 올라와 종오를 무릎에 앉혀 놓고 이야기했어요.

종오야! 아까 그러고 들어가서는 미경이랑 웃으며 밥 먹더라.”

미경이랑 서로 사과했어요.”

그래. 잘 했고 큰 공부했다. 멋지다.”


솔직히 이 날 큰 공부한 사람은 종오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인권, 평화교육 어쩌고 하면서도 그 동안 몸과 마음에 배어들어와 있는 틀과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날이니까요. 그게 얼마나 어렵고 큰 공부인지도.

 

 

최관의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학교를 꿈꾸며 서울세명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과 살고 있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를 썼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5.02 12:29

[이슈]


2017, 한국사회와 어린이 평화


이주영


작년 연말부터 토요일이면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섭니다.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손바닥 헌법책을 홍보하고 보급하기 위해서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저지르는 헌정파괴와 국정농단을 보면서 온 국민이 헌법을 읽고, 헌법을 알고, 헌법대로 운영하는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저지르는 헌정파괴가 한두가지가 아닌데, 그 첫걸음이 바로 건국절 논란이지요. 19488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주장은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거니까요.


헌법 전문 첫줄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곧 헌법으로 대한민국 시작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에 두고 있습니다. 19194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임시헌장 선서문 첫줄 역시 대한민국 원년 31일 우리 대한민족이 독립을 선언했다고 명시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3·1독립선언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군주제에서 민주제로 바꾼 출발점입니다. 대한제국이라는 군주국가를 버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3·1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3·1혁명 시작은 어른들이 했지만 실제 그 진행 주체는 젊은 학생들이었고, 유관순처럼 15세 전후 어린이들이 나섰습니다그런데 3·1혁명으로 건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헌장 제3조를 보면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으며, 일체 평등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린이 평등권에 대한 개념이 빠져 있습니다. 남녀남녀노소가 되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현행 헌법에도 어린이 평등권에 대한 개념은 없습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들은 불평등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불평등은 평화를 가로막은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우리 사회가 평화롭게 살 수 있으려면 어린이들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100년 전 3·1혁명에 자극 받아 어린이운동을 전 사회 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시작한 1923년 제1회 어린이날선언문을 보면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밝혀 놓았습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19615.16군사반란 이후 독재정권에 의해 어린이에 대한 억압과 압박이 점점 더 광범위하고 교묘하게 꾸준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윤리적 억압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교육제도와 교육과정을 통해서 모든 어린이에게 강요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유치원으로, 유치원에서 누리과정 어린이집으로, 이제는 갓난아기 때부터 아예 부모로부터 격리시켜서 국가에서 통제하려고 합니다. 마치 랑랑별 때때롱(권정생)에 나오는 보털이네 별을 보는 것 같아 소름이 돋습니다. 어린이들은 최소한 세 살까지는 부모 품에서 평화롭게 자랄 수 있어야 합니다. 10살까지는 학교가 끝나고 또래들하고 마음껏 놀아야하고, 저녁은 집에서 부모와 같이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 현실은 어린이에 대한 경제적 억압과도 얽혀 있습니다. 가정의 자녀에 대한 지출비율은 너무 높고, 국가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예산비율은 너무 적습니다. 이 때문에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고, 정유라 사건같은 온갖 권력형 비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국민으로서 평등하게 국가경제를 분배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린이 교육, 문화, 예술, 고요하고 즐겁게 놀고 공부할 수 있는 각양의 사회 시설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법률로는 18세 미만을 아동이라고 했고, 17세면 주민등록증을 주면서도 겨우 18세까지 선거권이 있어야 한다는 것조차 논란이 많은 어처구니없는 사회입니다. 민주국가에서 정치는 모든 국민이 참여해야 합니다. 어린이도 국민입니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면서 국민인 어린이들은 정치에 대한 이야기나 참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자체가 억압입니다. 어린이들을 보호 대상이 아니라 권리 주체로 보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2017, 촛불혁명에서 요구하는 참된 민주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이 윤리적, 경제적, 정치적 억압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해방은 평등을, 평등은 평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어린이가 평화로운 사회가 되어야 모든 어른들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고, 늙은이들도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주영 | 경민대학교 독서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어린이어깨동무 운영위원. 서울마포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퇴임했고, <책 사랑하는 아이 부모가 만든다>, <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한다>와 어린 시절 이야기 <삐삐야 미안해>, <아이코 살았네> 같은 책을 썼다. 계간 <어린이문학> 발행인이기도 하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5 12:32

[시선 | 좌충우돌 교실이야기]


놀고 삐지고 놀고


최관의


남자 애들이 놀려요.”

그래? 뭐라고 그러디?”

바보래요. 자꾸만 그래요. 그러고는 도망가요.”

지원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요. 지원이를 아이들이 자주 놀리는 터라 이번에는 마음먹고 끼어들었지요.

지원이 울린 사람들 이리 와 보거라.”

순간 몇몇 남자 아이들 눈이 담임에게 확 쏠리는 게 보이네요. 저 녀석들이 이 일과 상관있겠지요. 머뭇거리면서 눈치를 보는가 하면 성큼성큼 다가오는 아이도 있고 슬그머니 자기 자리에 가 앉아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표정으로 시치미 뚝 떼고 수업 준비하는 녀석도 있네요. 아무리 1학년이라고는 하지만 성질이 확 올라와요. 눈에 힘을 주고 목소리가 커졌어요.

일단 이리 나오란 말이다! 지원이가 우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 다 나와! 얼른.”

여기저기 궁시렁댑니다.

난 그냥 옆에서 구경만 했어요.”

준석이가 하라고 해서 했는데.”

웃기만 했어요.”

몇 명이 일어서 나오는 동안 지원이를 힘들게 한 게 확실해 담임 앞에 나와 있던 준석이가 의기양양해서 큰 목소리를 내요.

선생님! 민재도 그래 놓고 안 나와요. 민재 너 나와라.”

자리에 앉아 힐끔힐끔 눈치 보던 민재가 소리를 지르네요.

내가 뭘? 난 안 했다고.”

눈치를 보니 불안해하는 게 보여요. ‘자식, 내가 선생 생활 몇 년인데 눈빛만 봐도 안다고.’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화가 나네요.

민재 너도 나와. 나와서 이야기하라고!”


지원이가 울면서 담임에게 하소연한 뒤로 즐겁던 교실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지원아! 다 나왔지? 이 아이들 맞아?”

그새 눈물 그친 지원이가 생기 도는 목소리로 말하네요.

성욱이는 아닌데요. 그냥 보기만 했고 아이들 보고 그러지 말라 했어요.”

나도 아무 말 안 했잖아?”

아냐. 너는 나 놀렸잖아?”

이제 지원이는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에서 아이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 목소리와 눈에 힘이 들어가고 자꾸 목소리가 높아져요.

이제 시작하자. 누가 먼저 이야기해볼까? 이야기하기 전에 몇 가지 원칙을 이야기하마. 아무리 내 생각이 달라도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끼어들지 않기, 할 말 있으면 이야기 다 듣고 말하기. 그리고 되도록 자기 처지에서 내가 잘 한 이야기만 하지 말고 상대방 생각도 하면서 이야기해보자. 지원이부터 이야기해볼까?”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게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이지요. 지금 상황은 한 명의 아이를 여럿이 힘들게 하는 경우인데요, 이럴 때는 담임이 안 끼어들 수가 없어요. 까닭이 어찌 되었든 한 쪽이 너무 약해 담임이 끼어들지 않으면 자칫 한 아이가 너무 힘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지만 대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주면 대부분 풀려요. 잘못도 잘 인정하고 사과도 금방 받아주지요.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즐겁게 어울립니다. 그야말로 다투면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공부를 하지요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 다툼에 교사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학부모님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집에서 지낼 때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부모나 어른들하고 지낼 때보면 문제행동이 보이질 않아요. 그런데 왜 학교에만 오면 아이가 거칠어지고 욕하고 싸우고 그럴까요?”


아이가 놓인 여러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아이가 어른과 함께 있을 때는 어른의 논리가 지배합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맞춰주지요. 부모는 아이가 옳지 못 한 행동을 하거나 자기 생각을 강요하더라도 기다리면서 아이의 처지를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하고 그럽니다. 그러나 또래끼리 어울릴 때는 상황이 달라져요. 또래는 어떤 한 아이에게 맞춰 놀아주지 않는데요, 이 말은 그 아이의 처지를 생각해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른들이 대해주는 방법과는 달리 또래들은 각자 자기 생각과 처지에 따라서 날것 그대로 반응을 보이고 행동해요. 물론 서로의 처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공부를 하지만 또래들끼리 어울릴 때는 부모나 어른의 논리와는 다른 아이들만의 논리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하던 방식으로 자기 욕구나 뜻을 이루려 하면 부닥치고 깨지기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자주 다투고 갈등을 일으키는 아이들은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를 아주 힘들고 어렵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스스로도 고달프지만 곁에서 보는 부모도 안쓰럽고 그렇지요. 여러 가지 까닭 때문에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 속도가 늦은 아이에게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지식 공부가 부족하면 난리를 펴지만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가 늦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들을 안 써요. 말로는 사회성, 사회성 하지만 실제로는 지식 공부에 들이는 노력에 견주면 비교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을 정도지요. 그러다 심각한 폭력이나 따돌림이 일어나고 아이가 눈에 띄게 힘들어하면 그 제서야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사람과 어울려 사는 힘, 사회성을 키우는 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이에 맞게 배워가지 않으면 나중에 억만금을 주고도 배울 길이 없어요. 부족한 지식 공부는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지만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만은 그 나이 그 공간에서 하지 못 하면 나중에 인공으로 만들어 할 수 있는 그런 공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바로 이렇게 중요한 공부를 하는 도중에 어른들이 끼어들어 어른의 논리를 강요하는 일이 교육현장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어요. 다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성장할 기회를 빼앗고 있단 말입니다.


저는 교실에서 다툼이 벌어지면 가능한 아이들 힘으로 풀어가도록 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이들 다툼에서 손을 떼지는 않아요. 과제를 줄 때 적절하게 난이도를 조절하듯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를 할 때도 아이의 능력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합니다. 다툼과 갈등을 아이들 스스로 풀어갈 만한 상황인지 관련된 아이들의 특성과 앞뒤 사정을 살피고 결정하는 데요, 바로 이 때 교사의 교육적 경험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상황처럼 한 쪽의 힘이 너무 강하거나 한 아이와 여럿 사이의 문제, 기가 약한 아이와 강한 아이, 어느 한 쪽이 주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거나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힘이 너무 부족할 때는 끼어들어 아이들 사이의 흐름에 변화를 줍니다. 흐름에 변화는 주지만 그렇게 끼어드는 가장 큰 까닭은 다툼을 풀어가는 과제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다툼을 멈추게 해서 학부모 민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다툼이라고 하는 골치 아픈 배움의 기회에서 깨달음을 얻도록 도와주는 게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공부는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이기 때문이지요.

 

  

최관의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학교를 꿈꾸며 서울세명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과 살고 있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를 썼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