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10.19 00:13

[이슈]


오늘의 청소년, 내일의 한반도 평화를 상상하다

 

임수연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선언을 시작으로 분단 70여 년 간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의 반목과 화해가 재조명되고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가 푸른 가을 하늘 위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처럼 높아만 간다. 종전이 선언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정착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뉴스에서 반복되어 다루어지고 친구들과의 점심식탁 위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그런데, ‘~되어진다? 이야기 속의 주어를 찾으려니, 고개를 가우뚱하게 된다. 남북 두 정상의 악수와 포옹의 이미지가 강렬한 나머지 대화를 나누는 는 큰 야구장의 외야석 뒤에 앉은 관중처럼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듯 느껴지기도 한다.

 

당장 내일이라도 닥칠 것만 같은 한반도 평화 시대를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야할 주인공인 청소년들은 어떤 느낌일까? 칠십삼 년 전에는 하나의 나라였고 지리적으로도 가깝지만 마음속에서는 너무도 먼 나라. 지난 10년간 학교 안과 밖에서 남과 북의 소통에 대해서 특별히 고민할 기회 없이 자라온 청소년들에게 의 존재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티브이에서 연일 보도되는 장면들은 유명인들의 결혼발표처럼 나와 상관없는 갑작스러운 이벤트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서울청소년창의서밋

<오늘 시민, 오늘 민주주의 NOW HERE>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안착에 대한 기대가 시시각각 고조되는 오늘, 미래시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자리들이 많이 마련되고 있는 가운데, 하자센터1)에서 지난 9월 초에 열린 제10회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 시민, 오늘 민주주의 NOW HERE>라는 부제로 열린 이 행사는 5월초부터 청소년기획단에 의해 준비되었다. 시민으로 '오늘''한국'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미래를 생각할 때 외면할 수 없는 네 가지 주제는 다르지만 괜찮은 삶에 대한 상상’, ‘행복한 페미니즘에 대한 상상’, ‘한반도 평화 시대에 대한 상상’,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상상인데, 이 중 반갑지만 갑작스러운 한반도의 평화에 어떻게 말 걸기를 시도하였는지 궁금하다.

 

1)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는 청소년의 자기주도성과 창의성 기반을 둔 창의적 공공지대(creative commons)’1999년 겨울에 문을 열어 영등포에서 열아홉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웹사이트 www.haja.net

 

문재인 정권 때 남북관계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일 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저에게 큰 충격이었어요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불안을 접하면서, 어쩌면 우리는 탈분단에 대해 너무 일차원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북 사이에 총을 든 군인들이 사라지고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닐텐데 말이죠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이 지극히 적다고 생각해요. 사실상 북한에 대한 정보는 금기시 되었을 뿐더러 북한의 폭력적인 부분들과 도움이 필요한 모습만 강조 되어 왔잖아요.”

 

다음 세대의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탈분단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온 지금 시점에 남한의 청소년들은 탈분단, 통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 지 이야기 나눠봤으면 좋겠어요.”

 

우선 다른 청소년들도 이렇게 막연한 지 혹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지 알아보기 위해 온라인으로 설문을 진행하였다. 기획단 각자가 가진 편견과 막연한 기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고 활동가의 자문을 받으며 설문 응답지를 만들고 수정했다. 여는 행사<오늘 시민, 청소년 일상의 민주주의를 말하다>의 세 번째 이야기로 <한반도에 대한 상상> 세션에서 객석의 200여명의 청소년들과 <한반도 평화 시대 상상하기> 설문 결과를 공유하고, 이후 서밋 기간 동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문장으로 만들어 소통해보는 공동 작업을 제안하였다.

 

더불어, 블라디보스토크부터 베를린까지 24일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돌아온 여행학교 주말 로드스꼴라 청소년들의 <서울역을 국제역으로!>라는 퍼포먼스가 개막식과 이튿날 플래시몹으로 선보였고, 프로젝트 공유회 <사뿐사뿐 대륙을 횡단하다>도 진행되었다. 한반도 평화의 시대에 경의선을 타고 서울부터 열차로 유라시아횡단을 하게 될 상상을 키워가는 흥겨운 여정이었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시대 상상하기> 온라인 설문결과


한반도 평화의 시대, 종전 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체제로 하나의 국가로 통일한다는 응답은 단 19.9%로 나타났다. ‘국가는 나누어져있지만 자유롭게 교류한다50.6%가 응답하였고, ‘하나의 국가가 되지만 각각 독립적인 체제를 유지한다에 응답한 경우도 20.6%에 달하였으며, ‘전쟁의 위협은 사라졌으면 하되, 그 밖의 변화는 원하지 않는다에 응답한 5%까지 포함하면, 76.2%가 무리한 통일보다 체제유지 하에서의 평화적 공생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답한 이유로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전쟁위기 해소’, ‘국력강화와 국제경쟁력 상승’, ‘북측과의 문화교류라는 응답이 있었고,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두 집단 간의 편견과 차별’, ‘급격한 변화로 인한 사회혼란’, ‘북한 난개발과 부동산 투기등의 의견에 답한 비율이 높았다.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고 남북 간의 관계개선이 이루어지면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북한 도시 방문하기부터 친구 사귀기살아보기까지 처음 가는 해외여행지에서 기대하는 바와 유사한 것들도 있었다. 한편, ‘북한 문화공연 관람이나 남북 청소년 교류에 대한 희망과 개마고원 락페스티벌’, ‘평양 퀴어 퍼레이드등 다양한 문화교류의 상상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모두의 식탁에 둘러앉을 주인공들을 상상하며


2004615일 어깨동무의 스태프로 어린이들과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그날 역시 천지는 백 여명의 어깨동무 방북단에게 큰 품을 열어주었다. 웅장한 정상의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내려오는 길 중턱의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연을 날리던 찰나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삶의 터전을 떠나 도망가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멋진 하모니로 노래를 부르던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처럼, 그 순간만은 어떠한 머뭇거림 없이 평화로웠다.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의 피날레는 마당에 너른 식탁을 펼치고 참여 청소년들과 이들을 응원하는 비청소년들이 소박한 저녁식사를 나누는 <모두의 식탁>으로 마무리 된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던, 어떤 원치 않는 두려움을 겪어왔던 관계없이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진 청소년들이 어느 볕 좋은 날 풍성한 식탁에 둘러앉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아무런 긴장감 없이 각자의 꿈과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눌 수 있는 하나의 점 같은 순간들이 반복되어 선이 되고 면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머지않아 우리에게 깃들기를 소망해본다.



 

임수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교육기획팀장.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팀 간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후, 아시아의 평화환경을 키워드로 다음세대인 청소년들이 여러 꼴의 갈등을 포착하고 조정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에 손을 보태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8 21:34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평양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평화

 

전현준

 



920일 역사적인 평양정상회담이 많은 파격을 남기고 성공적으로 끝났다. 금번 평양정상회담은 북미관계가 답보상태인 상황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그러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진전은 물론 수많은 사변들을 남기고 종료되었다. 한반도 문제의 주요 당사자 중 한 사람인 트럼프 대통령도 대만족을 표시하였다. 평양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문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9월 평양선언 중 한반도 평화유지와 관련하여 군사적 부문만 요약하면 관련국 참관 하에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 영구 폐기 미국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조속히 가동 등이다.

 

한반도 평화문제는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에 의해 규정된다. 그 동안 남북 간 적대관계와 북미 간 대결구조 때문에 한반도 평화는 늘 살얼음판을 걸어왔다. 두 가지의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는 한반도 평화유지가 불가능한데 금번 9월 평양선언을 통해 남북 간 적대관계는 거의 해소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북미대결구조이다.

 

북미 간 대결구조는 19537월 정전 협정 체결 이후 미국의 대북 공격 가능성 때문에 지속되는 면이 있었다. 북한 김일성 수상(주석)1953년 정전협정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시적인 봉합일 뿐 언제 미제가 보복침략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는 미제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방어병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재래식 무력증강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1989년부터 시작된 세계사적인 국제환경 변화는 북한이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였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소련 및 중국의 배신(?)은 북한으로 하여금 극심한 안보불안을 느끼도록 했고 핵무기라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추동하였다. 1993년부터 본격화된 북핵문제해결을 위해 미국이 19946월 고려한 미국의 북침계획은 북한을 결정적으로 불안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기밀 해제된 미국 문건에 의하면 1994년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전쟁을 계획했지만 인명 피해를 우려해 선제공격을 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2017128일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당시 미 국방부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3개월간 주한미군 52000, 한국군 49만 명이 숨지거나 다칠 것으로 예상해 대북 공격 계획을 접은 것으로 드러났다.

 

19946월 당시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의 핵심 엘리트들은 미국의 대북 공격 저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김일성 주석은 카터 전 대통령의 극적인 주선으로 실시 예정이었던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20여일 앞두고 78일 갑자기 사망하였지만 북한관료들은 19941021북미 제네바 합의를 도출하였다.

 

그러나 북미합의는 예정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북한은 미국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몰래 핵무기 개발에 나섰고 200210월 그것이 들통 나기도 했다. 북한은 안보유지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직접 담판이 필수라는 것을 1974년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해왔고 그러한 논리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았다.

 

북한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을 지속했고 20059‘9.19 공동성명을 발표했지만 미국이 곧바로 북한 해외자금을 묶는 ‘BDA사건을 일으키자 또 한 번 미국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핵개발에 가속 페달을 밟아 20061091차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이후 북한은 핵실험을 지속하였는데 특히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4회에 걸친 핵실험이 이루어졌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실험과 미국도착 가능한 ICBM 개발에 박차를 가한 이유는 신속한 안보유지 및 미국과의 협상카드 마련 때문이었다. 20123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로선을 천명한 김정은은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유지 없이는 국가체제 유지는 물론 경제발전도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까지 공격할 수 있는 ICBM을 개발한 이유는 미국의 협상 참여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이러한 전략적 판단이 반드시 성공했느냐의 여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의 전략무기 개발에 대해 UN을 동원한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여 북한경제를 곤경에 빠지게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UN안보리 제재를 피해 최대한 북한을 돕고 있으나 미국의 현미경 같은 감시로 인해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체제유지와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예전에는 미국의 대북 공격을 두려워한 북한만이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선호했지만 현재는 미국도 북한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북한과의 직접 담판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미국이 북한 핵무기는 물론 ICBM, SRBM 폐기에 큰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북한과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둘러싸고 건곤일척 일합을 겨루고 있다.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김정은과 트럼프의 리더십 운명이 결정될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이번 기회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달성하려하고 북한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체제보장(CVIG)’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 양국은 서로 상대방이 먼저 양보하기를 원하고 있다. 미국은 선 핵 폐기 후 체제보장, 북한은 선 체제보장 후 핵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중간단계로서 북한의 핵관련 리스트 신고를, 북한은 미국의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여의치가 않다. 북한은 최소한 종전선언을 통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핵무기 수, 핵시설, 핵물질, ICBM 등에 대한 신고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이 대북 선제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 없이 모든 것을 신고할 경우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정확히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성실한 핵 신고 없이 종전선언을 해줄 경우 북한은 핵무기를 성실히 신고하지 않고 마냥 시간을 끌거나 속임수를 쓸 것이라는 의심을 갖고 있다. 양국의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다는 증거이다.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북한은 미국의 체제안전보장 없이는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은 선제적인 핵무기 포기 없이는 거의 절대로 체제안정보장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 간 불신으로 인해 단기간 내에 북핵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북핵문제로 인해 한반도에서 26.25 전쟁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북핵문제가 아무리 중차대하다 할지라도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빈대잡기위해 초가삼간을 불태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북핵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한반도에는 평화공존이 유지되어야 한다. 남북한이, 북한과 미국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면서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쟁과 평화는 똑 같은 두 글자이다. 그러나 그 의미는 극과 극이다.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반면 평화는 인간성을 극대화시킨다. 전쟁과 평화의 의미는 양극단에 있기 때문에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로 매우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 인간의 마음속에 전쟁과 평화가 동시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전쟁을 선택할 수도 있고 평화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인간은 전쟁을 할 만큼 잔인하지만 평화를 만들만큼 선하다.

 

4세기경 로마의 학자였던 베게티우스는 그의 군사학 논고에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그보다 약 1천 년 전에 살았던 중국의 손자는 실질적인 전쟁을 벌이지 않고 정치, 외교 차원에서 적을 이기거나 적 군사력을 와해시킴으로써 승리하는 것을 최상으로 보았다.” 전쟁을 하지 않고도 문제해결방법이 있는데 굳이 전쟁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만들어야 한다.” 성경도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전현준우석대 초빙교수(),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 북한연구학회 회장(), 통일연구원 기조실장()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10.18 20:32

[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그중 담임이 가장 예민할 때 생기는 일들에 관하여.

너의 눈, ,

 

주예지

 

조회에 들어가면 마치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을 인식하듯 아이들 얼굴이 들어 있는 작은 네모 상자 스물아홉 개가 교실에 둥둥 떠다닌다. 10분간 분석을 시작한다.

 

오늘 정현이가 엎드려 있군. 컨디션이 별로인가 보네. 건들지 말아야지. 지우는 오늘 왜 저렇게 들떴지. 서영이는 얼굴이 어두워 보이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 준희는 인상을 엄청 찌푸리고 있네. 예서는 졸려 보이네. 어제 늦게 잤나. 재우는 왜 내 눈치를 보지. 뭐 잘못했나. 지서는 멍 때리기 대회 나가면 1등 하겠다.……

 

보통 중2 아이들의 아침 표정은 각자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짜증스러움과 피곤함, 귀찮음이 잔뜩 묻어 있다. 아직 2년 차 새내기 교사에게 비교 대상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유독 우리 반 아이들의 표정이 매섭게 느껴진다. 짜증스러움이 가득 담겨서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예민한 눈, , 입을 보고 있노라면 얼른 교실 문을 나서고 싶어 종이 치기를 간절히 기다리다가 후다닥 나간다.

 

그나마 다수를 상대하는 교실 상황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견딜만하다. 잠시나마 아이들의 얼굴을 피하고 싶을 때 아이와 아이 사이의 허공을 보면 좀 낫다는 것을 터득했다. 일대일로 마주하면 속에서 열불이 올라오곤 한다. 학기 초부터 표정이 계속 신경 쓰이는-좀 더 솔직해지자면 거슬리는- 남자아이가 있다. 대들거나 대놓고 삐딱선을 타는 건 아닌데 건들거리는 태도와 항상 불만이 가득한 뚱한 표정이 신경을 묘하게 긁는다. 이 아이의 눈, , 입은 혼낼 때 진면모가 드러난다. 한문 시간이 끝난 이후였다. 한문 선생님이 이 아이가 수업 시간에 지나치게 방해를 해 벌점을 주셨다고 한다. 1학기에도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불러서 차분히 이야기한다. 물론 잔소리를 들을 때도 표정이 안 좋았지만, 한문 선생님께 찾아가서 사과드리고 앞으로 수업 시간에 어떻게 할 것인지 말씀드리라고 하니 똥 씹은 표정이 된다. 옆으로 돌리는 고개, 찌푸려지는 미간, ‘-’하면서 한숨 쉬는 입, 꾹 참는 듯한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 나중에 한문 선생님께 확인할 거라고 하니 억지로 알겠다고 하며 교무실로 내려간다.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에 내려가 보니 한문 선생님이 안 계신지 계속 기다리고 있다. 확인해보니 오늘 한문 선생님이 일찍 가시는 날이다. 내일은 방학식이라서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아이에게 편지지를 건네며 여기에 한문 선생님께 편지를 쓰라고 하니 이제는 거의 한 대 칠 것 같은, 날 것의 표정이 그대로 나타난다. 순간 속에서 더운 김이 확 올라온다. 침을 한 번 꾹 삼키고 말을 꺼낸다.

 

혹시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불만이 있니?”

아니요.”

 

표정은 아닌 것 같은데. 선생님도 너랑 웃으며 좋은 이야기만 하고 싶어. 너 남겨서 이런 이야기하는 거 결코 마음 편하고 쉬운 일 아니야. 그런데 지금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면 선생님 기분이 어떨까?”

 

기분 나쁠 것 같아요

 

맞아. 안 그래도 내 새끼가 다른 선생님께 혼나서 속상해 죽겠는데 너까지 그런 표정으로 보면 더 속상해. 앞으로 한문 시간에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표정 풀고 다니자. 알겠지?”

 

.”(여전히 똥 씹은 표정이다.)

 

2 아이들의 예민함은 표정에서 극명히 드러나는 듯하다. 반항적인 말과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에게서도 순간 돌변하는 눈빛이나 구겨지는 표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표정은 정말이지……-말줄임표로 대신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표정이 선생님에게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표정은 빈번하게 공격이 되어 날아간다.

 

우리 반의 자리 바꾸기 규칙은 2주에 한 번, 제비뽑기로 정해 남녀 무작위 짝으로 앉는 것이다. 2주에 한 번 자리를 바꾸는 것은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바꾸는 다른 반에 비해 자주 바꾸는 편에 속한다. 다양한 친구들과 고루고루 짝을 해보면서 얼른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런데 두어 번 정도 자리를 바꾸고 난 뒤 4월 즈음에 분위기가 이상하다. 제비뽑기하고 자리를 바꾸는데 남자아이들이 주고받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유독 한 아이가 탄식을 내지르고 다른 아이들이 웃으면서 눈빛을 주고받는다. 저번에도 웅성웅성 하길래 그냥 눈빛만 쏘아주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안 되겠다. 쉬는 시간에 탄식을 내지른 아이를 불러 내려서 이야기해본다. 우리 반에 겉도는 여자아이 세 명이 있는데 자기가 계속 그 아이들과 번갈아 가며 짝이 되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싫어하는 티를 꼭 내야만 하는 걸까. 그 뾰족함에 기어코 생채기가 난다.

 

다음 번 자리 바꿀 때는 우리 반이 너무 시끄럽다는 핑계로 앞으로는 제비뽑기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할 거라며 한 줄씩 떼어 놓고 임의로 자리를 배치한다. 자리를 배치할 때 우선 겉도는 세 아이들의 자리를 먼저 정한다. 세 아이들의 출석 번호가 연달아 있어서 다른 아이들이 셋을 묶어서 뒤에서 별칭을 만들어 놀린 전력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같이 안 앉힌다. 그리고 그 주위에 그나마 괜찮은아이들을 배치한다. 괜찮은 아이들이란 주위에 세 아이들이 있어도 대놓고 표정을 구기지 않는 아이들, 싫은 티를 온몸으로 내지 않는 아이들, 좀 순한 아이들을 일컫는다. 두세 번은 그래도 자리를 정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시끄러운 아이들도 떼어 놓으니까 수업 분위기도 좀 괜찮아졌고, 세 아이들에게도 전보다는 불편한 상황이 줄어든 것 같아서 만족했다. 친한 친구를 만들어주는 마법은 못 부려도 교실에서 그나마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의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대로 계속 짝을 바꾸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잘하고 있는 건가? 이게 진짜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가? 그 아이들이 내년, 내후년에도 이런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오히려 안전이라는 핑계로 다른 아이들과 소통할 기회를 빼앗아버리는 건 아닐까? 항상 그 아이들 주변에 앉는 아이들은? 내가 세 아이들을 보호해준다는 걸 다른 아이들이 모를까?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 아이들 주변에 배치할 수 있는 아이들이 제한적이어서 자리를 바꾸어도 비슷한 느낌이다. 아이들이 눈치 못 챌 리가. 그렇게 2학기가 시작되었다. 자리를 바꾸려고 이리저리 배치해 보는 일요일 저녁 시간. 계속 이어지는 의문과 갈등 속에서 결국 작업하던 창을 닫고 아침에 한동안 쓰지 않았던 제비뽑기 숟가락을 꺼내 교실에 들어간다. 제비뽑기가 끝난 후 초조한 마음으로 두 아이를-한 아이는 1학기가 끝나고 난 후 전학을 갔다.- 확인한다. 세상에. 앞뒤는

괜찮지만 옆이 문제다. 옆 분단에 쭈루룩 1학기 때 갈등이 있었던 남자아이들이 앉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수업 시간에 종종 열심히 자기들끼리 눈짓을 주고받느라 바쁜 눈동자가 보였지만 그래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 2주가 지나고 다시 제비뽑기를 했다. 이번엔 다행히 자리를 잘 뽑았다. 주변에 갈등이 있는 아이도 없고 괜찮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롤러코스터를 앞으로 몇 번이고 더 타야 한다니 벌써 속이 울렁거린다.

 

우스갯소리로 중2 애들 너무 예민하다고, 근데 그중에 담임인 내가 제일 예민하다고 친구한테 하소연하며 떠들던 게 생각난다. 여고, 여대에서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하며 살아남아 학습한 덕분일까. 아이들 간의 관계가 민감하게 다가오고, 서로 주고받는 미묘한 눈짓, 몸짓, 무언가 꾹 눌러 참는 입술 하나하나가 걸린다. 경력이 많은 노련한 옆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그냥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너무 깊게 알려고 하지 말라고.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다고. 늘 선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

 

내일은 월요일이다. 아이들의 눈, , 입이 가장 굳어 있는 시간. 심지어 내일은 자리도 바꾸는 날이다. 아이들의 표정을 떠올리는 와중에 문득 궁금하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나의 표정은 어떨까. 학기 초에는 그래도 웃으면서 아이들을 반기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이들과 여러 모난 일들을 겪으면서 어느 샌가 교실 문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아마 나의 눈, , 입도 날카로운 선이 되어 때로는 아이들의 마음을 벨 때도 있겠지. 신경이 곤두서는 월요일이 지나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금요일에는 서로의 눈, , 입이 둥근 곡선으로 맞닿을 수 있게 얼굴 근육을 풀어 놓아야겠다.

모두 개구리-------!

 


주예지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국어교사입니다. 작년에 목동중학교에 교사로서 첫발을 디디고 2년 동안 중2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내년에는 중2를 맡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10.18 20:17

피스레터_통권_15호_웹.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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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8.10.17 17:28


* 11월 12일 심포지엄

-스토리텔링, 예술, 평화교육(포드릭 오투마) 

-분쟁지역 청소년의 평화교육과 사회통합(알란 화이트)

-어깨동무 평화덕목과 평화교육 교안 만들기(박종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교육(정영철) 


*11월 13일 워크숍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활동가와 함께하는 평화교육 워크숍’ 


※ 오시는 길을 누르시면 약도와 교통수단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심포지엄 오시는 길

- 워크숍 오시는 길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평화총서2018.09.13 15:59


"사람이 만난다, 남북이 웃는다"

이기범 교수가 북에 콩우유공장, 연필공장, 어린이병원을 만들며 겪은 방북이야기. 

스무해 넘게 천 명 넘는 사람들과 북녘을 방문하면서 땅의 경계와 마음의 경계를 뛰어넘은

생생한 기록을 만나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8.20 00:05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한반도 평화체제와 군축


정욱식


대전환의 한반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가 그야말로 대전환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그 문이 활짝 열릴지, 반만 열린 상태로 남을지, 아니면 또다시 닫힐지는 예단키 어렵다. 전환의 양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의 ‘선군’ 정치에서 ‘선경’ 정치로의 전환이다. 이는 길게는 2013년 3월 31일에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병진 노선은 김정은식의 ‘변증법적 국가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미완성 상태로 물려준 ‘앙탄일성’을 서둘러 추진해 “국가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것이 ‘정(正’)이었다면,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국면 전환이라는 ‘반(反)’을 만들어내고, 한미와의 적대 관계 청산 및 안보적 우려 해소, 그리고 경제발전을 향한 ‘합(合)’을 도모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북한은 2018년 4월 20일에 노동당 결정서를 통해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하면서 “당과 국가의 전반사업을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지향시키고 모든 힘을 총집중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또한 이러한 전략적 목표가 순조롭게 이행된다면 내년이나 후년에 “조미 대결에서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국가 핵무력의 역사적 소임은 끝났다. 이제 국가 핵무력의 완전한 폐기를 엄숙히 선언한다”고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는 한반도 핵 시대의 종언이다. 한반도 핵문제는 네 가지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의 핵 시대’는 1945년 한반도 해방 및 분단부터 1990년대 초 미국의 전술핵무기 철수 및 한반도 비핵화 선언 채택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 독점 시대였다. ‘핵 시대 1.5’는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1992년부터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던 2008년까지를 의미한다. ‘반전 드라마’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역동적인 시기였다. ‘제2의 핵 시대’는 협상이 단절된 2009년부터 2017년 북한이 ‘국가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시기까지를 의미한다. 끝으로는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시기로 2018년부터 그 끝을 알 수 없는 미래까지이다. 한반도에서 핵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핵 없는 한반도”가 도래할 것인가의 여부가 판가름나는 시기이다.


셋째는 한반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다. ‘평화체제 없는 비핵화는 맹목이고 비핵화 없는 평화체제는 공허하다’고 할 때, 한반도의 핵시대의 종식은 평화체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일단 남북미 3자는 평화체제 입구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의 수준에 발맞춰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의회 상원의 비준을 거치는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는 북미 간의 70년 적대관계의 청산이다. 미국과의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 정상화는 북한의 오랜 열망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은 북한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트럼프의 개인기와 북한을 적으로 남겨두고 싶어 하는 상당수 미국 주류 사이의 ‘갈등의 변주곡’을 품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적인 현상 변경은 현상 유지를 통해 추구해왔던 미국의 굴절된 이익체계도 건드릴 수밖에 없다. 무기 수출 위축이라는 ‘기대이익의 감소’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중국을 염두에 둔 미사일방어체제(MD) 및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구해왔던 ‘전략의 차질’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정치적 급변사태, 즉 트럼프의 탄핵 여부가 한반도 문제의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의 탄핵 시 대북 강경파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섯째는 남북관계의 전환이다. 분단 이후 남북관계는 부정과 절멸의 대상에서 체제 경쟁의 시대로, 체제 경쟁의 종식과 한국의 대북 포용과 흡수통일 시도가 오락가락한 시대를 거쳐왔다. 그런데 2018년부터는 남북연합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2국가 2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유럽연합과 흡사한 모델이 나올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평화체제와 군축


한반도 문제 해결의 성패는 군사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군비통제와 군축 논의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북한은 냉전 시대에는 이른바 ‘4대 군사노선’을 통해, 그리고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선군 정치’를 통해 체제 생존을 도모했고 이 사이에 북한은 거대한 병영 국가처럼 되고 말았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군사력도 비약적으로 성장했음은 물론이다. 보수정권은 군비통제 및 군축 자체에 부정적이었고, 개혁진보 정권은 때때로 보수 정권보다 더 강력한 군비증강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평화, 새로운 시작’의 관건은 70년 가까이 누적되어온 군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그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4.27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 문제 해결의 포괄적인 내용이 담겼다. 전문 첫머리에 담긴 ‘부전(不戰)의 약속’에서부터, 2조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에 담긴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 및 “비무장지대의 실직적인 평화지대”와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의 평화수역” 만들기, 그리고 3조에 담긴 “불가침 합의” 및 “단계적 군축 실현”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합의 내용만 놓고 볼 때에는 ‘남북 평화협정’에 근접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단계적 군축”이 눈에 띈다. 그런데 “단계적 군축”은 문재인 정부가 준비해온 국방개혁 2.0과 정면으로 충돌할 소지가 크다. 국방개혁 2.0의 요체는 국방비를 대폭 늘려 대규모의 전력 증강을 꾀하겠다는 것이 핵심적인 요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국방부는 대규모 국방비 증액 계획을 거의 그대로 유지키로 했다. 국방부는 2019년 국방예산으로 올해 대비 8.6% 증가된 46조 9천억 원을 요구하는 등 5년간 국방개혁에 필요한 예산을 약 270조 7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별다른 변동 없이 이러한 계획이 추진되면 2023년 한국의 국방비는 60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고, 일본의 국방비마저 추월하게 될 것이다.


대규모 국방비 증액은 새롭게 시작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스스로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군비증강과 한반도 평화체제·비핵화 실현 노력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천문학적인 국방비 증액은 민생과 복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상기한 국방부의 국방비 증액 계획과 국방비 동결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가령 향후 5년간 올해 수준(43조 4000억원)으로 국방비를 동결하면 약 60조원의 누적액의 차이가 발생한다. 누적액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게 됨은 물론이다.


이렇게 절약한 국방 예산을 복지, 교육, 일자리 창출, 자영업 지원책,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 대책에 사용한다면, 국가안보의 내실을 기하면서도 인간안보도 튼튼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아쉽게도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표방한 ‘포괄 안보’의 정신이 정작 국방개혁에서는 실종되고 만 것이다.


하여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하나는 국방개혁 2.0이 과연 판문점 선언에 부합하느냐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는 우를 스스로 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외부의 위협 대비에 치중한 나머지 내부의 모순을 완화·해결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정욱식ㅣ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과 북한학을 공부하고, 현재 평화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의사소통의 활성화와 올바른 여론형성을 도모하여, 물리적인 냉전구조 못지않게 고착화된 냉전적 의식구조를 극복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평화공동체 실현에 기여하고자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8.19 23:23

[시선 |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보내는 평화의 편지]


안녕, 친구야!


정진헌


"안녕, 친구야~!“


어깨동무의 오랜 전통으로, 베를린 윤이상하우스에서 첫 인사를 드립니다.


윤이상하우스는 베를린의 클라도우 지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세계 현대음악의 5대 거장 중 한 분으로 추앙받는 윤이상 선생님께서 1974년 완공된 때부터 1995년 돌아가실 때까지 사시던 자택인 윤이상하우스. 이 집에서 윤 선생님은 120여곡이라는 대부분의 작품을 탄생시키셨지요.


얼마 전, 괴팅엔대학교 러시아학 은퇴교수께 윤이상이란 분을 아시냐라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안다고 한 그 분의 대답에 어떻게 아시냐 되물었더니, 매우 황당해 하시면서, "모차르트를 어떻게 아냐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거기에 어떻게 답하냐? 너무 유명한 분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냐?"라고 답하시더군요. 독일에서는 이렇게 음악의 거장 윤이상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고급문화(hochkultur)의 권위와 가치를 인정하는 오래된 제도와 문화적 전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거장이 사셨던 집에서 저는 제 직장인 베를린 자유대학교로 출퇴근합니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윤이상평화재단의 베를린 지부장으로 윤이상하우스의 관리 및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물론 생업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긴 합니다. 이 집은 오랜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빈 집이었으니까요. 올 1월 초, 저는 정말 가구도 없었던 이 빈집에 혼자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안 그래도 적막한 동네, 을씨년스럽고 오래 비어있던 거택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첫 며칠 동안은 솔직히 무섭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분명 출근하면서 모든 불을 껐다고 여겼는데, 돌아와 보면 연주홀이 있는 아래층에 늘 불이 켜져 있곤 했지요. 그렇게 며칠 몇 주를 지내며 익숙해지고,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는 동안, 고장 났던 난방도 고치고, 빈 방들에 가구를 들이고, 레지던스 펠로우들도 선발하여 식구를 늘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에는 윤이상의 후예와 신진 음악인들로 성대한 개관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적지 않은 음악인들, 그리고 윤이상 선생님들의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그 분의 삶과 음악에 대해 배우고 논하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의 삶을 재구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이 집이 말해주는 윤이상선생님의 감성과 마음을 더 많이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편지에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윤하우스가 제게 가장 먼저 들려주었던 윤이상 선생님의 그리움과 열망이라는 두 화두를 공유할까 합니다.


윤하우스에 방문객이 오시면, 저는 먼저 발코니로 모십니다. 그리고는 동남쪽으로 시선을 멀리 올려 크게 자란 나무들 사이에 펼쳐진 커다란 호수를 보시라 합니다. 베를린 사람들이 흔히들 반제(Wansee)라 부르는 호수지만, 이쪽 편은 하펠강(Havel)입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바다가 보이는 고향 통영을 늘 그리워하셨답니다. 그래서 통영의 풍광과 그나마 비슷해 보이는, 커다란 호숫가의 이 집터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윤이상 선생께서는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1967년 독일에서 불법 납치되셨다가, 세계 유명한 음악인들과 독일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 힘입어 1969년 풀려나신 후 독일 정부의 권유로 독일 시민권을 취득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그리고 스스로도 돌아가지 않으셨던 망명객으로 사셨지요. 통영에서의 유년기 추억은 윤 선생님 작품의 가장 소중한 자양분이었기에, 우리는 그분의 창작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감성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윤이상하우스 전경


그렇게 저 멀리 고향의 그리움을 강물에 실어 두셨다면, 발코니 아래 정원에는 그 분의 미래지향적 열망이 선명하게 놓여 있습니다. 바로 한반도 모양을 본 딴 연못이 그것입니다. 남북으로 나뉜 현재의 한반도가 아니라 금붕어들이 남북으로 헤엄쳐 다니는 통일된 한반도. 그것은 고인이 추구하신 민족적 정체성이자 미래에 놓인 진정한 고향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디아스포라, 즉 고국을 등지고 타지에서 삶을 영위하는 민족 공동체나 개인들에 대한 연구에서 고국(homeland)의 이미지는 늘 과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 이후 적지 않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그 후세들에게 있어 고국은, 현재의 분단된 남이나 북 중 하나에만 국한될 수 없기도 합니다. 제도적으로는 한 국가만 선택해야 하지만, 국제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일상의 열망 또한 존재합니다. 그래서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니는 재일동포 청소년들도 자신들의 조국은 현재에 있지 않고, 분단이 해소된 미래의 통일된 한반도라 주장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개인들에게 있어 그들이 진정으로 돌아갈 고국은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에 위치한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는 사회문화적 노력, 즉 미래지향적 문화 만들기의 과정을 인도계 미국 사회문화인류학자인 아준 아파두라이의 제안을 빌려, 열망이라 부릅니다.


한반도 모양을 본 딴 연못


윤이상 선생님께 고향 통영에 대한 향수는 과거, 고인의 유년기 추억에 기인합니다. 반면에 그 분이 추구하신 민족적 정체성은 분단선이 거둬진 통일된 한반도라는 미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인의 향수(과거)와 열망(미래)은, 하펠강가에 자리 잡은 집터, 그리고 한반도 모양의 연못으로 각각 재현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윤이상 선생님에게 있어 현재라는 시간은, 어떠한 공간적 유형으로 구체화되었을까요? 이를 위해 우리는 윤이상하우스가 이역만리 독일, 그것도 분단과 탈분단을 경험한 베를린에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 봐야 합니다. 윤이상 선생님 살아생전 납치와 고문을 자행했던 남한의 군부독재 정권,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군사정권들이 지배하는 현재적 고국은 윤이상하우스 공간에서는 철저히 무시된 듯 보입니다. 한 마디로 그 정통성을 상실한 것이죠. 반면에, 윤이상 선생님은 유년기 추억과 분단이 해소된 미래를, 서양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작품들에 녹여 내셨던 것입니다.


본인의 철학과 이념, 고통과 애도의 감정 등을 음악적 언어로 승화시키셨던 역사적 장소로서의 윤이상하우스. 저는 이 하우스에서 지난 봄 남북 정상회담을 인터넷으로나마 목격했습니다. 동트는 새벽, 창밖에서 지저귀는 온갖 새들의 합창은 마치, 고인의 기쁨을 노래하듯,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처럼 들렸습니다. 고인의 역사 의식과 미래지향적 열망이 고스란히 담긴 대작의 향연처럼, 새벽녘 윤이상하우스는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진 역사적 순간을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와 민족사의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의 체취가 남겨진 윤하우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감동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끝까지 읽으신 독자 여러분, 여러분들도 뜨거운 폭염으로 지치고 힘들지만, 고 윤이상 선생님이 꿈 꾸셨던 미래의 조국을 열망하는 마음으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를 꼭 감상하시기를 권하며, 오늘은 이만 인사에 가름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진헌ㅣ어린이어깨동무 간사 출신으로,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독일 괴팅엔 소재 막스플랑크 종교와 민족다양성 연구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후,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교 역사와 문화학부 한국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윤이상하우스 운영을 맡고 있다. 저서 및 공저로는, Migration and Religion in East Asia (2015), Building Noah's Ark (2015), 무엇이 학교 혁신을 지속가능하게 하는가 (2015), 한국의 다문화주의 현실과 쟁점(2007), 북한에서 온 내친구(2002)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6.19 23:52

[이슈]


한반도 평화의 봄,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윤철기

 

한반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6개월은 오랜만에 가슴 설레는 시간이었다. 냉전과 분단의 역사가 종착역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남과 북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오가며 악수하는 순간,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었다. 판문점은 더 이상 분단의 상징이 아니다. 도보다리는 남과 북의 정상이 함께 거니는 순간, 지난 70년간 분단의 모순과 상처를 치유할 오작교가 되었다.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남북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할 때 다시 판문점에서 만났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612일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대통령이 손을 맞잡았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평화는 약속으로 시작되지만 실천으로 완성된다. 남북 모두는 한국전쟁의 경험을 통해서 대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쟁의 역설이다. 그래서 남북한은 대화를 포기 하지 않았고, 지난 70년 동안 여러 차례 중요한 합의들을 했다.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때마다 남북한 간의 긴장은 고조되고, 서로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경제적 손해도 컸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이 갑자기 폐쇄되면서 그 손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분단비용을 실감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시간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속세의 필부들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억겁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포기 하지 않았다.

 

분단이 남긴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처는 평화의 실천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약속의 이행이 중요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한 정상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했던가. , , 미 정상은 지난 6개월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예술이 아니라 마술과도 같은 시간이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하지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권력의 손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남, , 미 정상들에게도 큰 부담이다. 지금 이 순간 남, , 미 정상의 정치적 의지를 의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권력의 의도가 곧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분단구조를 끝장 낼 평화의 정치는 최고지도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분단의 역사에서 권력은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분단구조에서 끝임 없이 권력은 적을 만들어 냈다. 남북한 관계에서 권력은 어렵게 합의한 내용들을 명확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깨뜨리고는 했다. 국가안보와 이데올로기는 합의 파기와 불이행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었다. 한반도 평화의 문제를 전적으로 정치에 맡길 수 없는 이유이다. 경제와 사회문화 영역에서의 인도적 지원과 교류와 협력은 안보의 위기가 도래하면 한 순간에 중단되었다. ‘창구단일화의 논리가 당연시 받아들여졌다.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지키고자 어렵게 쌓아올린 공든 탑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적을 만드는 정치가 부활하였다.

 

분단구조의 정치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적을 만든다. 적을 만드는 정치는 그 정당성을 스스로 찾지 않는다. 적의 문제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적을 만드는 정치는 위험한 정치이다. 평화를 위협하는 정치이다. 평화는 적과의 공존을 요구하는 일이기에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분단구조 하에서 적을 만드는 정치는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어렵게 찾아온 한반도의 봄을 정치에만 모두 맡길 수 없는 이유이다. 적을 만드는 정치는 탈분단과 평화를 실현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분단의 정치를 끝장 낼 수 있는 것은 위정자(爲政者)들이 아니다. 분단구조 하에서 권력이 평화를 통해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시민이다. 정치가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했지만, 그 평화를 지키는 일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시민사회는 때로는 지지와 직접적 행동을 통해서, 때로는 비판과 견제를 통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나갈 주체이다.

 

본래 정치는 사회와의 대화를 즐거워하지 않는다. 정치권력은 연극무대에서 배우의 방백(傍白)처럼 혼자 떠들어대면 사회가 알아서 자신에게 충성하고 복종하기를 원할 뿐이다. 그래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적 공론장을 제도화했다. 바로 의회이다. 의회는 시민의 대표들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제도적 공론장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는 남북한 관계의 문제에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조율하는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제도화된 공론장도 안보위기가 발생하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게다가 국제정치 무대에는 제도화된 공론장이 부재하다. 국제여론이 있지만 그 영향력은 취약하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투영될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국내외에서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권력에 요구할 수 있는 수단을 거의 가지지 못했다. 특히 정치가 안보위기라고 규정하면 시민사회의 발언권은 사라졌다. 분단구조 하에서 안보위기는 언제나 실재한다. 따라서 안보위기의 양상과 수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했다. 지난 시기 개성공단이 문을 닫을 정도의 안보위기의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안보위기의 수준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권력의 판단에 맡겨졌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을 때 입주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속가능한경제협력 모델이 추진되어야 한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경제협력의 상징이다.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열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남북한 정부가 필요에 따라 쉽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경제협력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남북한의 대화와 협력의 공간이 지속되는 것은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경제협력을 통해서 남북한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 증대될 때,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협력의 외연을 확대하고 참여자들을 확대함으로써 남북한 경제와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이 자의적 판단으로 경제협력을 중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경제협력은 북한이 노동력과 토지와 같은 생산요소를 제공하고 남한이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는 기능적인 모델이었다. 그리고 생산품은 남한 기업들에 의해서 남한경제나 수출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북한경제 보다는 남한경제와 연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통일부가 개성공단의 문을 닫는다고 할 때, 북한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평화를 지키기에는 상호의존성이 낮았다. 그래서 외연을 확대하고 북한의 공장과 기업소들이 경제협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남북한 사람들이 참여할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당장에는 한국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할 것이다.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경제협력에 참여함으로써 조합원 자격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권력은 시민들의 참여가 확대되었기에 자의적으로 경제협력을 중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남북한의 상호의존성이 증가하고 경제협력이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오래되고 낡은 창구단일화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에서 정부의 허락 없이 시민사회의 대북 교류와 지원은 불가능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지속되면서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대북제재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정부는 대북지원과 교류를 중단할 것을 기업과 시민단체에 요구했다. 또 다시 남북한 관계에서 정부만이 유일한 행위자가 되었다. 창구단일화의 논리는 남북한 관계의 긴장이 고조될 때, 출구를 찾기 쉽지 않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대화 채널이 막혔을 때 남북한 간 교류·협력 사업을 하는 기업과 시민단체는 공식적·비공식적 대화채널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안보 위기 국면에서 시민사회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능력을 가지기 어렵다. 안보위기는 민주적인 정책결정을 중단시키는 이유가 되며 시민사회는 하향식(top-down)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복종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성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하고 창구를 다원화해야 한다. 이는 남북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왕래를 비롯해서 다양한 사회문화 교류가 자유롭게 진행됨으로써 평화가 남북한 사람들 모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시나브로 깨닫게 해줄 것이다. 이는 적대적 인식에서 호혜적이고 평화적인 인식으로의 대전환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가로막는 세력들이 등장하는 것을 견제함으로써 평화를 지킬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평화체제와 같이 남과 북의 정치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도에 의해서만 공고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항구적으로 지키려는 남북한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비판과 견제, 그리고 교류와 협력과 같은 직접적인 소통과 참여에 의해서 사회적으로구성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북미정상회담도 끝났다. 한반도의 평화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분단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평화를 완성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완전히 핵이 사라지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시민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민들의 눈을 가리고 적대적인 분단구조를 이용해서 권력을 가지려는 세력이 언제 어느 때이고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은 평화를 위협하는 정치세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며 민주적인 과정과 방식으로 평화를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다. 평화는 누군가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시민들이 나설 차례이다.

 

윤철기사회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학 공부를 시작했다. 북한 정치경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평화와 정의에 대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6.19 23:42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2018, 평화의 시대를 맞는 한반도의 오늘과 내일


장용훈


5월 26일 통일각에서 다시 만난 남북 정상 [공공누리에 따라 청와대의 공공저작물 이용]


612일 싱가포르에서 첫 만남을 가지는 북미 정상 [사진제공-싱가포르 정보통신부]

 

#장면1. 문재인 정부 첫 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채 안된 5 26일 오후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만나 두 번 째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정상회담 등에 대해 논의한다. 문 대통령은 회담 다음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은) 지난 4월의 역사적인 판문점회담 못지않게,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장면2. 612일 오전 9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김정은 위원장과 처음으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대화가 있을 것이다. 북한과 매우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북미관계수립이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호상 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한반도에서 믿음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 불안정성의 근본 원인은 불신에서 비롯됐다. 6·25전쟁을 통해 서로가 상대방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남북한과 미국의 사이에서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 중인 정세 변화는 신뢰와 믿음을 쌓아가는 작업으로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6·25 전쟁에서 서로가 총을 겨눴던 적대적 관계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만남이어서 눈길을 끈다. 더군다나 작년 북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드라마틱하다. 작년 11월까지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이어가며 미국령인 괌에 대한 직접적인 포위 사격을 하겠다고 공갈을 했고, 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거론하면서 강력 대응 의지를 밝혀 북미 대립이 절정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급반전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적대관계에 있는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만나 상대방의 생각과 의중을 직접 들음으로써 신뢰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최 자체에 적잖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동성명을 통해 앞으로 양국관계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 만들기의 이정표를 세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등 북한과 미국의 대결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대북 체제안전보장의 하나로 "조만간 실제로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심지어 미군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따른 과도한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한미연합군사 훈련의 중단 가능성까지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와 이를 위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당장 시작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상회담 후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정말로 (북한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어떤 대통령도 이걸 하지 못했다. 나는 가서 그(김 위원장)에게 신뢰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정은이 우리에게 많은 걸 줬다""7개월간 미사일 실험과 발사가 없었고, 8개월 반 동안 핵실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위대한 영웅들의 유해도 돌려줬다. 매우 많은 사람들, 아버지, 어머니, 딸과 아들들이 나에게 (유해송환을) 간청했었다. 아무도 그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지난 427일 오전 930분 군사분계선(MDL) 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찰나였지만 그 맞잡은 두 정상의 손은 한반도에 겹겹이 쌓인 분단과 대결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뗐다. 이날 판문점에서 이뤄진 모든 순간은 분단 이후 최초로 기록됐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MD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도, 국군 의장대 사열도 처음이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관리할 남북한의 통일·외교업무 수장 뿐 아니라 국방장관과 야전군 사령관까지 총출동해 남북 양 정상을 수행함으로써 평화 구축 의지를 뒷받침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날 서로 오간 군사분계선은 무의미해졌고 판문점에는 대결 대신 대화가 자리 잡았다.

 

두 정상은 오전 1015분부터 각각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만 배석시킨 채 100분간의 회담을 한데 이어 오후에는 친교를 위해 도보다리를 산책하면서 배석자 없는 사실상의 '단독 회담'30분간 가졌다.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개 장 13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여기엔 남북관계와 군사적 충돌방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비핵화 등 불안정한 평화를 종식하고 항구적 평화를 싹 틔우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선언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된 것이 골자였다. 남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합의한 것은 19921월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후 26년 만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당국회담 개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방안, 8·15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을 담았다.

 

사실 남북 간에 유의미한 내용을 담은 합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7·4남북공동성명, 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다양한 합의가 있었지만 이행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는 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따라서 합의를 이행해 달라진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앞으로 남북간에 남겨진 과제가 됐다.

 

전망은 긍정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적인 이런 자리에서 기대하는 분도 많고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발표돼도, 그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런 만남을 갖고도 좋은 결과에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더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며, 회담 합의 이행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로 수시로 논의 하겠다"고 말해 앞으로 판문점 선언의 이행상황을 남북정상이 직접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반도 분단의 주요 당사국인 남한과 북한, 미국의 최고 지도자 사이에서 믿음과 신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갓 태어난 아기 다루듯 해야만 하는 이유다. 신뢰 만들기의 출발이기 때문에 아직도 서로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판단이 남아 있고 이를 새로운 언어로 바꾸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첫 걸음을 떼었기에 다음 발걸음을 떼면서 한걸음씩 신뢰가 쌓이면 한반도에서는 대결보다 대화와 화해를 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걸음이 중요한 이유다.

 

장용훈연합뉴스 통일외교부 기자로 2011년 제42회 한국기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총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