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6.19 23:52

[이슈]


한반도 평화의 봄,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윤철기

 

한반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6개월은 오랜만에 가슴 설레는 시간이었다. 냉전과 분단의 역사가 종착역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남과 북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오가며 악수하는 순간,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었다. 판문점은 더 이상 분단의 상징이 아니다. 도보다리는 남과 북의 정상이 함께 거니는 순간, 지난 70년간 분단의 모순과 상처를 치유할 오작교가 되었다.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남북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할 때 다시 판문점에서 만났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612일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대통령이 손을 맞잡았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평화는 약속으로 시작되지만 실천으로 완성된다. 남북 모두는 한국전쟁의 경험을 통해서 대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전쟁의 역설이다. 그래서 남북한은 대화를 포기 하지 않았고, 지난 70년 동안 여러 차례 중요한 합의들을 했다.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 6·15공동선언과 10·4공동선언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때마다 남북한 간의 긴장은 고조되고, 서로에 대한 불신은 깊어졌다. 경제적 손해도 컸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이 갑자기 폐쇄되면서 그 손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분단비용을 실감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시간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속세의 필부들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억겁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포기 하지 않았다.

 

분단이 남긴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처는 평화의 실천으로만 치유될 수 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약속의 이행이 중요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한 정상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했던가. , , 미 정상은 지난 6개월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예술이 아니라 마술과도 같은 시간이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하지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권력의 손에만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결국 남, , 미 정상들에게도 큰 부담이다. 지금 이 순간 남, , 미 정상의 정치적 의지를 의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권력의 의도가 곧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분단구조를 끝장 낼 평화의 정치는 최고지도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지만,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사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분단의 역사에서 권력은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분단구조에서 끝임 없이 권력은 적을 만들어 냈다. 남북한 관계에서 권력은 어렵게 합의한 내용들을 명확한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깨뜨리고는 했다. 국가안보와 이데올로기는 합의 파기와 불이행의 가장 중요한 명분이었다. 한반도 평화의 문제를 전적으로 정치에 맡길 수 없는 이유이다. 경제와 사회문화 영역에서의 인도적 지원과 교류와 협력은 안보의 위기가 도래하면 한 순간에 중단되었다. ‘창구단일화의 논리가 당연시 받아들여졌다.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지키고자 어렵게 쌓아올린 공든 탑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적을 만드는 정치가 부활하였다.

 

분단구조의 정치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적을 만든다. 적을 만드는 정치는 그 정당성을 스스로 찾지 않는다. 적의 문제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적을 만드는 정치는 위험한 정치이다. 평화를 위협하는 정치이다. 평화는 적과의 공존을 요구하는 일이기에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분단구조 하에서 적을 만드는 정치는 언제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어렵게 찾아온 한반도의 봄을 정치에만 모두 맡길 수 없는 이유이다. 적을 만드는 정치는 탈분단과 평화를 실현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분단의 정치를 끝장 낼 수 있는 것은 위정자(爲政者)들이 아니다. 분단구조 하에서 권력이 평화를 통해서 정당성을 입증하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시민이다. 정치가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했지만, 그 평화를 지키는 일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시민사회는 때로는 지지와 직접적 행동을 통해서, 때로는 비판과 견제를 통해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나갈 주체이다.

 

본래 정치는 사회와의 대화를 즐거워하지 않는다. 정치권력은 연극무대에서 배우의 방백(傍白)처럼 혼자 떠들어대면 사회가 알아서 자신에게 충성하고 복종하기를 원할 뿐이다. 그래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적 공론장을 제도화했다. 바로 의회이다. 의회는 시민의 대표들이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제도적 공론장이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는 남북한 관계의 문제에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조율하는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제도화된 공론장도 안보위기가 발생하면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게다가 국제정치 무대에는 제도화된 공론장이 부재하다. 국제여론이 있지만 그 영향력은 취약하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투영될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국내외에서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권력에 요구할 수 있는 수단을 거의 가지지 못했다. 특히 정치가 안보위기라고 규정하면 시민사회의 발언권은 사라졌다. 분단구조 하에서 안보위기는 언제나 실재한다. 따라서 안보위기의 양상과 수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했다. 지난 시기 개성공단이 문을 닫을 정도의 안보위기의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안보위기의 수준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권력의 판단에 맡겨졌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을 때 입주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지속가능한경제협력 모델이 추진되어야 한다. 개성공단은 남북한 경제협력의 상징이다. 개성공단이 다시 문을 열 수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남북한 정부가 필요에 따라 쉽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경제협력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남북한의 대화와 협력의 공간이 지속되는 것은 평화체제로의 이행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경제협력을 통해서 남북한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 증대될 때,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협력의 외연을 확대하고 참여자들을 확대함으로써 남북한 경제와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권력이 자의적 판단으로 경제협력을 중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남북한 경제협력은 북한이 노동력과 토지와 같은 생산요소를 제공하고 남한이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는 기능적인 모델이었다. 그리고 생산품은 남한 기업들에 의해서 남한경제나 수출을 통해서 유통되었다. 북한경제 보다는 남한경제와 연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통일부가 개성공단의 문을 닫는다고 할 때, 북한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평화를 지키기에는 상호의존성이 낮았다. 그래서 외연을 확대하고 북한의 공장과 기업소들이 경제협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남북한 사람들이 참여할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당장에는 한국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할 것이다.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경제협력에 참여함으로써 조합원 자격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권력은 시민들의 참여가 확대되었기에 자의적으로 경제협력을 중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남북한의 상호의존성이 증가하고 경제협력이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오래되고 낡은 창구단일화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에서 정부의 허락 없이 시민사회의 대북 교류와 지원은 불가능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지속되면서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대북제재를 결정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정부는 대북지원과 교류를 중단할 것을 기업과 시민단체에 요구했다. 또 다시 남북한 관계에서 정부만이 유일한 행위자가 되었다. 창구단일화의 논리는 남북한 관계의 긴장이 고조될 때, 출구를 찾기 쉽지 않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대화 채널이 막혔을 때 남북한 간 교류·협력 사업을 하는 기업과 시민단체는 공식적·비공식적 대화채널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안보 위기 국면에서 시민사회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능력을 가지기 어렵다. 안보위기는 민주적인 정책결정을 중단시키는 이유가 되며 시민사회는 하향식(top-down)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복종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성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민사회의 참여를 확대하고 창구를 다원화해야 한다. 이는 남북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왕래를 비롯해서 다양한 사회문화 교류가 자유롭게 진행됨으로써 평화가 남북한 사람들 모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시나브로 깨닫게 해줄 것이다. 이는 적대적 인식에서 호혜적이고 평화적인 인식으로의 대전환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가로막는 세력들이 등장하는 것을 견제함으로써 평화를 지킬 수 있게 해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평화체제와 같이 남과 북의 정치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도에 의해서만 공고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항구적으로 지키려는 남북한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비판과 견제, 그리고 교류와 협력과 같은 직접적인 소통과 참여에 의해서 사회적으로구성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북미정상회담도 끝났다. 한반도의 평화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분단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평화를 완성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완전히 핵이 사라지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시민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민들의 눈을 가리고 적대적인 분단구조를 이용해서 권력을 가지려는 세력이 언제 어느 때이고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은 평화를 위협하는 정치세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며 민주적인 과정과 방식으로 평화를 지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다. 평화는 누군가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제는 시민들이 나설 차례이다.

 

윤철기사회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정치학 공부를 시작했다. 북한 정치경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평화와 정의에 대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6.19 23:42

[시선-한반도 평화읽기]


2018, 평화의 시대를 맞는 한반도의 오늘과 내일


장용훈


5월 26일 통일각에서 다시 만난 남북 정상 [공공누리에 따라 청와대의 공공저작물 이용]


612일 싱가포르에서 첫 만남을 가지는 북미 정상 [사진제공-싱가포르 정보통신부]

 

#장면1. 문재인 정부 첫 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채 안된 5 26일 오후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만나 두 번 째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정상회담 등에 대해 논의한다. 문 대통령은 회담 다음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은) 지난 4월의 역사적인 판문점회담 못지않게,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장면2. 612일 오전 9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김정은 위원장과 처음으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대화가 있을 것이다. 북한과 매우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북미관계수립이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호상 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한반도에서 믿음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 불안정성의 근본 원인은 불신에서 비롯됐다. 6·25전쟁을 통해 서로가 상대방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남북한과 미국의 사이에서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 중인 정세 변화는 신뢰와 믿음을 쌓아가는 작업으로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6·25 전쟁에서 서로가 총을 겨눴던 적대적 관계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만남이어서 눈길을 끈다. 더군다나 작년 북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드라마틱하다. 작년 11월까지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이어가며 미국령인 괌에 대한 직접적인 포위 사격을 하겠다고 공갈을 했고, 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거론하면서 강력 대응 의지를 밝혀 북미 대립이 절정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급반전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적대관계에 있는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만나 상대방의 생각과 의중을 직접 들음으로써 신뢰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최 자체에 적잖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동성명을 통해 앞으로 양국관계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 만들기의 이정표를 세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등 북한과 미국의 대결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대북 체제안전보장의 하나로 "조만간 실제로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심지어 미군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따른 과도한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한미연합군사 훈련의 중단 가능성까지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와 이를 위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당장 시작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상회담 후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정말로 (북한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어떤 대통령도 이걸 하지 못했다. 나는 가서 그(김 위원장)에게 신뢰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정은이 우리에게 많은 걸 줬다""7개월간 미사일 실험과 발사가 없었고, 8개월 반 동안 핵실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위대한 영웅들의 유해도 돌려줬다. 매우 많은 사람들, 아버지, 어머니, 딸과 아들들이 나에게 (유해송환을) 간청했었다. 아무도 그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지난 427일 오전 930분 군사분계선(MDL) 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찰나였지만 그 맞잡은 두 정상의 손은 한반도에 겹겹이 쌓인 분단과 대결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뗐다. 이날 판문점에서 이뤄진 모든 순간은 분단 이후 최초로 기록됐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MD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도, 국군 의장대 사열도 처음이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관리할 남북한의 통일·외교업무 수장 뿐 아니라 국방장관과 야전군 사령관까지 총출동해 남북 양 정상을 수행함으로써 평화 구축 의지를 뒷받침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날 서로 오간 군사분계선은 무의미해졌고 판문점에는 대결 대신 대화가 자리 잡았다.

 

두 정상은 오전 1015분부터 각각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만 배석시킨 채 100분간의 회담을 한데 이어 오후에는 친교를 위해 도보다리를 산책하면서 배석자 없는 사실상의 '단독 회담'30분간 가졌다.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개 장 13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여기엔 남북관계와 군사적 충돌방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비핵화 등 불안정한 평화를 종식하고 항구적 평화를 싹 틔우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선언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된 것이 골자였다. 남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합의한 것은 19921월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후 26년 만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당국회담 개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방안, 8·15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을 담았다.

 

사실 남북 간에 유의미한 내용을 담은 합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7·4남북공동성명, 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다양한 합의가 있었지만 이행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는 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따라서 합의를 이행해 달라진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앞으로 남북간에 남겨진 과제가 됐다.

 

전망은 긍정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적인 이런 자리에서 기대하는 분도 많고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발표돼도, 그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런 만남을 갖고도 좋은 결과에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더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며, 회담 합의 이행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로 수시로 논의 하겠다"고 말해 앞으로 판문점 선언의 이행상황을 남북정상이 직접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반도 분단의 주요 당사국인 남한과 북한, 미국의 최고 지도자 사이에서 믿음과 신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갓 태어난 아기 다루듯 해야만 하는 이유다. 신뢰 만들기의 출발이기 때문에 아직도 서로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판단이 남아 있고 이를 새로운 언어로 바꾸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첫 걸음을 떼었기에 다음 발걸음을 떼면서 한걸음씩 신뢰가 쌓이면 한반도에서는 대결보다 대화와 화해를 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걸음이 중요한 이유다.

 

장용훈연합뉴스 통일외교부 기자로 2011년 제42회 한국기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총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6.19 23:09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원마루


안녕하세요? 어깨동무 친구 여러분!

여름의 길목에서 인사드립니다. 어쩌면 벌써 봄을 건너뛰고 여름으로 향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네요.

 

먼저 드리는 소식은 박새가 알을 깐 소식입니다. 지난 3월 중순 막내 창호의 여섯 살 생일을 맞아 새가 알을 낳을 수 있는 상자를 함께 만들어서 숲속의 나무 위에 달았습니다. 나무상자에 지름 2.5센티미터 정도의 구멍을 뚫어 나무에 달면 푸른 박새가 둥지를 틀수도 있다고 해서 한 번 만들어 봤습니다. 아이와 함께 작은 나무판자들을 나사못으로 조여서 숲으로 들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자기가 쉽게 볼 수 있는 나지막한 곳을 고집하는 거예요. 새 보호 단체의 안내문에는 최소한 2미터 높은 곳에 달아야 박새가 안심하고 둥지를 튼다고 했지만, 아이 생각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지나서 막내가 아빠, 박새가 조그만 알을 일곱 개나 낳았어요!”라고 했을 때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달 반이 지나니까 아빠, 아기 새들이 엄마 부르는 소리가 나요.”라고 하는 겁니다.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작은 생명이 엄마 새의 정성스런 돌봄으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도 즐거운데, 그걸 가까이 보게 된다니까 왠지 모를 경외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우리네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변에 노는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됐고, 그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오랜 세월 갈등과 반목, 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는 한반도의 아이들이 평화로운 미래를 살 수 있는 대화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숲속 나무 위에 단 새 상자

 

새 상자 안에 어린 푸른 박새들이 불청객의 방문에 몸을 웅크리고 있다.

 

물론 평화를 이루는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지요. 야생의 박새에게는 알을 호시탐탐 노리는 뱀이 늘 무서운 존재이고, 때로는 저같이 자연의 순리는 모른 채 호기심만 많은 아빠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박새 새끼를 관찰하려고 하는 위험도 존재합니다! 모처럼 시작된 북한과 미국의 대화도 숱한 고비를 만나고 있지요. 그런 뉴스를 BBC 아침 뉴스 머리기사로 접하는 저희 같은 사람은 말 그대로 애간장이 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소극적으로 상황을 대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겁만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집어든 것이 이억배 화백의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이라는 그림책입니다. 이 책은 저희 아이들이 하도 좋아해서 모서리가 닳았고, 이미 한 번의 수선을 거친 책입니다. ··일 세 나라가 공동으로 기획한 평화 그림책 시리즈의 하나인 이 책은 북한에 고향을 둔 어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는 물범과 고라니, 수달과 연어, 산양 등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먼 고향땅을 바라봐야만 합니다. 아내와 저는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해서 마을 식구들에게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일요일 아침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서 책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책 표지

 

5월초 일요일 아침, 마을 식구들이 식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커튼을 치고 앞 무대에 슬라이드를 보여줄 준비를 해 놓았기 때문에 모두 뭘 보게 될까 궁금해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모임이 시작되고 비무장지대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한 후에 바로 그림책을 봤습니다. 아내가 영어로 이야기를 읽어주었고요. 아이들은 처음 보는 비무장지대의 모습이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익살스러운 물범 가족, 엄마 오리를 따라 줄지어 헤엄치는 오리 새끼들, 물속에서 재주를 넘는 수달을 보면서는 신이 났습니다. 아마 어떤 아이들은 행군하는 군인 아저씨들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빨간 세모 표지판에 쓰여 있는 지뢰(mine) 표시를 보고는 조금 겁이 났겠지요.

 

이야기는 계속됐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왔고, 그곳에 사는 군인들의 일상은 계속되었으며, 전망대에도 관광객이 계속 찾아왔지만 이제 할아버지는 더는 전망대에 오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 대신 굳게 닫힌 철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양지바른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 장면을 읽어주면서 책 양쪽 면의 종이로 접힌 통일문을 열어 보이는 순간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그 앞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비무장지대의 자연에 탄성을 질렀고, 할아버지가 북녘의 형제를 만나 얼싸안는 장면에는 모두 흐뭇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모임이 끝나자 많은 분이 찾아와 고맙다고, 한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준다고 말씀해 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은 단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할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곁에 있는 사람과 마음과 힘을 모으면 어려울 때가 와도 이기기 마련이고, 끝내는 진정한 마음이 승리하는 때를 보게 되겠지요. 사실 저는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회담을 취소하는 발언을 했을 때 많이 걱정했습니다. 모처럼 얻은 대화의 기회가 맥없이 끝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때 아는 분 소개로 듣게 된 어울림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전에 보내 드린 편지에 소개한 밝은 누리라는, 생명 평화를 삶으로 살아내려는 분들이 순례를 다니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진도아리랑에 노랫말을 붙인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모두 용기를 내시면 좋겠습니다. 이분들이 지은 노랫말을 따라 부를 수도 있고, 나름대로 노랫말을 부쳐서 흥겹게 부르며 신나는 하루, 평화로운 여름이 되시길 바래요.

 

<어울림 아리랑>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헤에헤

아리랑 음음음 생명평화로구나

 

(후렴, 일부)

남북 하늘에 원통을 풀고 우리네 가슴속에 해원을 담자

안산 제주에 눈물을 닦고 동북아 흩어진 겨레를 품자

한라 백두를 넘어 가보자 차별없는 사랑으로 어질게 살자

이땅 원통함 모두 풀어지고 모든 아픔상처가 사라진다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고 온생명 곱게곱게 어울리는구나

 

 노래듣기


2018530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 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희망이 보이는 자리> 등을 번역했다. Bruderhof.com/ko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06.1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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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8.04.19 10:38

[한반도 평화읽기]



담대한 구상과 유리그릇 :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있다


정창현


연속적인 정상회담에 합의

 

조만간 남쪽 예술단이 방북해 공연한다. 공연 제목은 봄이 온다이다. 제목처럼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지나가고 평화의 봄이 찾아오고 있다.


남과 북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의 정세를 대화·협상 국면으로 반전시켰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방한한 김여정 특사(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는 청와대를 예방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한 달쯤 뒤인 35일 남쪽의 대북특사단이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1시간의 짧은 회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남과 북은 4월 말 판문점 우리 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주제로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점을 밝히고 남측을 향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남북 정상 간의 핫라인 설치도 합의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속적인 노력과 북측의 호응으로 남북 화해와 협력,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기회의 창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대북특사단을 통해 북미정상회담도 제안했다. 대북특사단의 북한 방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정의용 실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전례 없는 북미정상회담에 함께하면 두 정상이 역사적인 돌파구(historic breakthrough)를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전했고, 공개되지 않은 특별메시지에는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신뢰구축의 일환으로, 매우 포괄적인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스크(위험)가 있다는 참모들의 우려를 무시하고 즉석에서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다고도 했다. 북한이 제시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 비핵화 회담 의지 표명에 일단 신뢰를 보낸 것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간 접촉뿐만 아니라 북미 간에도 상당한 물밑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제한적 대북 예방공격 검토 등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나돌던 지난해 말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흐름이다. 신년사에서 99(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의 대규모 행사를 위한 평화적 환경조성을 언급한 북한이 예상보다 전향적으로, 속전속결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임기 1년 안에 남북대화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교성과가 필요한 트럼프 행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정전협정 65년 만에 종전선언나오나

 

남북, 북미정상회담 합의로 한반도 정세는 엄청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4월과 5월 한반도에서는 한반도 운전자론에 입각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구상’,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의 압박과 개입을 골자로 하는 대북정책, 전략국가론에 입각한 북한의 포괄적 세계전략이 부딪히는 정상외교의 장이 펼쳐진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켜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미국, 중국, 일본과 정상회담을 통해 공조다지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롭게 외교라인을 구축하고 있다북한도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상무조(태스크포스팀)를 조직해 남북, 북미정상회담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326일 마침내 김정은 위원장이 첫 정상외교에 나서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회담했다.

 

평창올림픽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출처 : 청와대(2018년 작성)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사진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남측의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접견하고 있다

출처 : 청와대(2018년 작성)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사진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번 남북, 북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는 한반도비핵화와 평화체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구체적인 성과로는 종전선언이 거론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진전 상황에 따라서는 남··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문제를 놓고 역사적 담판을 짓는 데 필요하다면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과 셋이서 직접 머리를 맞대자는 얘기다. 성사가 된다면 한반도 문제의 결정적 돌파구를 마련하는 자리가 될 수 있고, 종전선언에도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담대한 구상이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남북정상회담에서 의견 조율 후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도록 한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2+2회담방식이다. 남북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미정상회담···중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정상외교를 통해 종전선언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를 논의를 위한 6자회담과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남···중의 4자회담을 병행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과 평양에 남북연락사무소가 개설되고, 뒤이어 평양과 워싱턴에도 북미연락사무소가 개설될 수 있다. 세부적인 사안으로 한미연합훈련의 유연성 확보, 동북아 군사적 균형자 역할로의 주한미군의 지위 변화 등이 모색되고, 남북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포괄적인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북미정상회담은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선순환 구도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의 정책시험대이자 실현과정이다. 단계별로 회담결과를 예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상황을 돌파하면서 평화만들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도 언급한 것처럼 지금의 대화국면은 과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쉽게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과도 같다. 현재로선 전초전 격인 4월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고 5월 북미정상회담으로 순조롭게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최종적인 한반도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와 국면을 거쳐 최대 난제인 검증과 체제보장문제가 타결되어야 한다. 정상회담에서 큰 틀의 합의가 있더라도 실무회담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예상되지만 남이나 북이나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이고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본 원고는 2018327일에 작성되었습니다.

 


정창현현대사연구소 소장. 중앙일보 현대사전문기자와 <민족21> 편집주간을 역임했으며, 국가기록원과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04.1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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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8.02.19 14:29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영국에서 아리랑을 불러봅니다


원마루


안녕하세요, 어깨동무 식구 여러분,


이제 며칠 후면 설날을 맞을 준비를 하시겠군요.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살게 된 지 이제 10년이 되어 가는데 여전히 저는 음력 설을 지내야 새해가 온 것 같고, 김치 만두를 빚어 떡만두국을 끓여 이웃을 초대해 아이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세배도 하고 윷놀이를 노는 시간을 기대합니다. 저희 아이들에게 한국에서는 나이만큼 만두를 먹는다고 말해주었는데 올해는 만두를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어깨동무 가족 모두 풍성한 설날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이렇게 명절이 오고 한국이 그리워질 때면 저는 아내, 아이들과 노래를 불러보는데 요즘 떠 오르는 노래는 개똥벌레와 아리랑입니다. 개똥벌레는 예전에 한 번 마을의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공동체 축제 때 불렀는데 친숙한 곤충이 등장해서 그런지, 아니면 개똥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소재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입에 착착 붙는 노랫가락 때문인지 마을 사람 모두가 무척 좋아했습니다. 한 친구는 이 노래를 영어로 번역해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 말아라 아니면 돈 고워에이(Don't go away) 돈 고 워에이 돈 고워에라고 흥얼거리는 친구를 간혹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슬프면서도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울다 잠이 든다로 마무리합니다. 아무튼 한국의 사람들 노래(folk song)인 포크송 개똥벌레 덕에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두 번째 노래 아리랑은 이곳 영국 식구들이 가장 잘 아는 한국 민요(folk song)입니다. 한국 손님이 오셨을 때 청하면 곧잘 부르는 노래가 이 노래이고, 런던에서 한국문화 행사가 열리면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저희 마을의 음반 도서관에 가면 미국의 포크송 가수 피트 시거가 세계 여러 나라의 민요를 모아 부른 음반이 있는데 거기에는 한국의 아리랑도 담겨 있습니다. 피트 시거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노래를 부르기 전에 관객들에게 아리랑의 배경을 제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아리랑을 당시 고통당하던 사람들의 애환을 부른 노래인 동시에 남과 북의 사람들이 두루 아는 노래이기때문에 남북의 일치를 상징하는 노래라고 합니다.


피트 시거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네 사람들은 정든 터전을 떠나야 했던 여행길에 아리랑을 부르며 슬픔을 달랬고, 서로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방마다 특유의 가락과 노랫말의 아리랑이 불리고 있지요. 그리고 아리랑은 소련 때문에 강제로 고국을 등져야 했던 고려인들에게도 불렸습니다. 저는 예전에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1917년 러시아군에 징집되어 독일과 전투를 치르다가 포로로 잡인 고려인들이 수용소에 부른 아리랑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프로이센 수용소에 갇혔던 김그리고리(김홍준)과 안 스테판(한국 이름 미상)이 불렀던 아리랑 노래가 100년이 지나서 공개된 겁니다.


두 사람이 부르는 애달픈 아리랑 곡조를 듣고 있자니 고향을 그리워하고, 어서 평화가 와서 정든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곳 영국에서 제가 찾던 형제애의 삶을 기쁘게 살고 있지만, 고국의사람들을 그리워하고 그곳의 상황을 염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어쩌다가 저도 모르게 아리랑을 콧노래로 부르게 되는데 그때는 한국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보고, 동시에 한국의 평화를 기원하게 됩니다.


고려인 전쟁 포로가 부른 아리랑 듣기


마을 식구들이 저녁에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 부르는 모습. 사진: bruderhof.com/ko에서


곧 열릴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의 노래로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피트 시거의 말대로 이 노래는 남북 평화의 상징인 게 틀림없습니다. 자신이 속한 나라의 정치적 입장을 잊은 채 손을 맞잡고 노래를 함께 부르다 보면 모두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 같습니다. 아직 북한과 미국의 오래된 적대 관계를 풀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고개가 많지만 아무쪼록 이번 기회를 통해 평화의 아리랑을 부르며 교류의 문을 열어나가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어깨동무가 다시 북녘의 어린이병원과 콩우유 공장, 학용품 공장을 찾아가 지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설에는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우리 가족, 마을 식구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민요는 모름지기 우리의 삶을 담고 마음을 담아 함께 만들어 부르는 노래라고 하니 저희 나름대로 노랫말을 붙여 부를 수 있겠지요. 그렇게 우리가 지어 부르는 노래는 영국 아리랑 또는 저희 마을 이름을 따서 너도밤나무 아리랑이 되겠군요. 벌써 입에서 노랫말이 흘러나와 한 번 적어봅니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1. 봄이 왔네 새봄이 왔어 평화의 봄을 열어나 보세

(후렴)


2. 총을 버리고 손 맞잡고서 화해의 세상을 만들어봐요

(후렴)


3. 잠긴 문을 열어젖히고 기쁨의 잔치를 열어나 보세

(후렴)


영국 학교에 다니는 저희 아이들에게 한국 노래 부르기는 한국말을 배우면서 우리네 문화를 배우고, 아픔과 희망을 나눌 기회입니다. 멀리서지만 어깨동무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하며 마음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소식 전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2018년 2월 3일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  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등을 번역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7.12.14 14:33
피스레터(글)2017.08.01 14:02

[시선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


서울과 평양의 환호, 세계의 부러움: 2000년 정상회담


정영철


한 사람은 비행기 트랩 위에서, 또 한 사람은 트랩 아래에서 서로를 마주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곧 두 사람은 트랩 아래에서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서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2000613일 오전 1037, 역사의 한 장면은 이런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벌써 1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이 되었지만, 바로 그날 2000613일은 한반도 분단사에 새로운 역사가 쓰인 날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그동안 전쟁과 적대, 갈등, 그리고 서로에 대한 소멸을 주장했던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평양의 하늘 아래에서 두 손을 맞잡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차던 희망이었다. 그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바로 2000년 정상회담이었다.

 

우리처럼 오랜 세월 분단을 경험했던 동-서독도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정상회담을 통해 동-서독의 화해와 협력을 이루었으며, 지금은 비록 불행의 땅으로 변했지만 예멘 역시 남북 예멘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쟁의 방지와 통일을 위한 숱한 회담을 전개했었다. 지금도 지중해의 조그만 섬나라인 분단된 키프로스에서 남북 키프로스의 정상회담을 통해 통일을 위한 여러 가지 중요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정상회담은 상호 필요에 의해 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변국들의 중재와 압력에 의해 열리기도 한다. 예멘의 경우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중재가 중요한 뒷받침이 되었으며, 키프로스는 그리스와 터키, 그리고 유럽의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00년 정상회담은 어찌 보면 1970년대부터 남다르게 한반도 문제를 고민해온 김대중의 필생의 역점 사업이었을 것이다. 1971년 대통령 선거전에 나선 김대중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예비군제 폐지와 대체, 4대국교차승인론 등 굵직한 한반도 관련 공약을 내세우며 박정희를 압박했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김대중은 정계를 은퇴하면서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통일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이런 그에게 정상회담은 아마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고, 최대의 목표였을 것이다.

 

1998년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그는 199811월부터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준비에 돌입하게 된다. 이로부터 약 17개월간에 걸친 막후접촉과 상호 밀사 및 특사 파견 등을 통해 마침내 2000410일 정상회담을 발표하게 된다. 이 당시 남북한의 막후 라인은 임동원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후일 국정원장)과 북한의 김용순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물론 이들만이 아니라 당시 국정원 고위 간부였던 김보현과 북의 전금진(우리에겐 전금철로 잘 알려져 있는 북의 아태부위원장) 라인도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었다.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도 다양한 시그널을 보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003월의 베를린 선언이었다. 베를린 선언은 경협의 확대’, ‘남북의 화해·협력’,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당국자 대화를 핵심 골자로 하는 대북 제안이었다. 이 베를린 선언이 나오기 이전, 북은 이미 우리에게 경협에 대한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북의 신호를 감지하고, 이를 공식화시킨 것이 베를린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 남북정상회담

본 저작물은 '국정홍보처'에서 '2000'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김대중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기록원, http://www.archive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정상회담은 여러 가지 면에서 파격이었다. 남북의 정상이 최초로 만났다는 것도 그러하지만, 평양에서의 모습은 파격 그 이상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김정일위원장의 공항 영접, 북의 군인들이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던 모습, 두 정상이 같은 승용차를 타고 환호하던 평양 시민들을 만나면서 퍼레이드를 벌인 점 등등.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직접 나와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는 광경에서는 서울에서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까지 눈물을 보일 정도의 감격이었고, 모든 기자들이 박수를 치며 이에 환호하기도 하였다. 외신 기자들 역시 박수를 보내며 환호하였고, 이 순간만큼은 우리를 가장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것들이 변화하였다. 그간 북을 싸워 없애야 할 적으로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대화와 협상이 가능한 상대임을 인정하였고, 남북이 더 많은 만남과 교류를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실제 정상회담 이후로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그다지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경유하여 멀리 에돌아 평양을 가야하는 현실을 비판하였고, 결국 서울과 평양 간에 직항로가 개설되기도 하였다. 개성공단 건설에 합의함으로써 남북의 군인들이 총을 들고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비무장 지대의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협력하기도 하였다. 또 일부이긴 하지만, 김정일위원장 팬클럽까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정상회담이 가져다 준 남북 일상의 변화였다.

 

역시 가장 큰 변화는 국민들의 북에 대한 인식이었다. 적이 아니라 동포로, 협력을 통해 같이 공존하고 같이 발전해야 할 통일의 다른 한 주체로 북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평양에서 약 30만 명의 군중이 두 정상의 만남에 길거리 환영을 보여주었다면,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귀환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도 자발적으로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따뜻하게 환대하였다.

 

정상회담 이후,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주변국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2000년은 서울과 평양이 세계 주요 외교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국무장관이 급박하게 서울을 찾았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평양과 서울을 동시에 방문하기도 하였다. 일본은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두 번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여 북일 평양선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중국 역시 엄청난 관심을 보였고,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베이징을 찾아 중국지도자들과 만나기도 하였다.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라면 북과 미국이 상호 특사를 주고받으면서 수교 협상의 일보 직전까지 갔다는 점이다. 그해 10월 조명록 특사가 미국을 방문하여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고,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역시 방북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북과 미국은 -미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하여 수교까지 염두에 둔 합의를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200010월 미국을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는 조명록 특사 (출처:통일뉴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20001023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집단체조공연을 관람하던 중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출처:통일뉴스)

 

장 중요하게는 지금까지 남북이 서로를 향해 적대와 갈등의 패러다임으로 보던 것을 뒤집어서 화해와 협력의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만들어내었다는 점이다. ‘안보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가 아닌 공존과 평화화해와 협력이 더 인기 있는 구호가 되었고정치인들은 서로 앞다투어 남북의 화해와 협력에 대한 자신들의 정치 청사진을 발표하였다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 당국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남북의 교류와 협력에 나서게 되었다제주도에서는 감귤을 북에 보냈고경기도에서는 휴전선 인근의 방역 사업에 북을 지원하기도 하였다경상남도는 통일 딸기사업을 통해 지자체간의 새로운 협력모델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기업들은 개성공단을 넘어 북과의 더 넓은 경제 합작을 위한 진지한 모색을 하였고시민단체는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기찬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2000년 정상회담이 있은 후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그 사이에 남북은 그야말로 많은 일들을 벌렸고때로는 웃고때로는 울고때로는 싸우면서 서로를 이해하였다초기에는 참으로 많은 실랑이가 있었다호칭 때문에 얼굴을 붉혀야 했고남에 내려온 북의 응원단은 구겨진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에 분노하였다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그렇게 서로를 배워 가는 시간이었다이런 점에서 보자면정상회담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움이 아닐까통일은 아주 거창하게 보자면막막한 미래의 일이지만우리의 주변에서부터 만남을 이어간다면 소소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이해하고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일상의 평화와 일상의 통일을 꿈꾸게 해준 것이 바로 정상회담이었던 것이다.

 

-미 공동코뮤니케: 코뮤니케는 일명 공식발표 혹은 공동성명서로 해석된다. 2000 -미 공동코뮤니케는 역사적으로 북미관계의 일대전환을 의미하는 공식발표였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북은 조명록 당시 총정치국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였다. 조명록 특사는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북미관계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그 결과 양국은 2000 10 12 -미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하게 된다.  -미 공동코뮤니케의 핵심 내용은 두 나라의 적대관계 청산과 정치, 경제, 군사 분야에서의 협력, 양국 관계의 정상화였다. 또한, 더욱 주목되는 것은 북이 클리턴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하고, 이를 위해 당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이를 준비하기 위해 방북하기로 한 점이다. 실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10 19일 북한을 방문하였다. ‘-미 공동코뮤니케는 북미관계의 근본적인 전환의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합의로서 의미를 갖지만, 이후 미국의 정치정세가 급변하면서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 2000년 말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에게 패하면서 북미 관계는 이후 새로운 위기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정창현, 남북정상회담 600(서울: 김영사, 2000)

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 2(서울: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5)

임동원, 피스메이커(서울: 중앙북스, 2008)

임채완, 전형권, “6.15 남북정상회담이 남북한 및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한국동북아논총17(2000)

2000년 한·러 공동성명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

 

정영철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서울로 상경해 공학을 전공하다 진로를 바꿔 사회학을 공부하였다북한통일평화에 대한 연구가 관심사이며지금은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한반도 평화가 곧 어린이의 미래라는 생각에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 발을 들여놓고 일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8.01 13:49

[이슈]


2017년 여름 평화의 편지: 증오의 다리를 건너면 무엇을 만날까


이산(이이화) 연구공간 파랗게날 대표연구원 


8, 우리 현대사를 회고하는 것은 깊은 상심을 동반한다. 극악한 35년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났으나 잘못 낀 첫 단추는 대가가 처참하다. 반민족 과거 청산에 실패하고 단일 민족정부 수립에 실패한 과오는 두 세대가 흘렀어도 현존 문제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빼앗긴 나라에서 시달리던 민족혼이 되찾은 나라에서도 부대끼는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서 오는가? 하얼삔역의 총탄이자 아오내장터의 태극기이듯 그릇된 흐름에 맞서는 불굴의 혼마저 죽은 것은 아니어서 19604.19혁명, 1980서울의 봄’, 1987‘6월 항쟁으로 생명력은 분출했으나, 이내 5.16 군사정변, 5.18 광주학살, 민주세력의 분열로 억눌렸다. 이 땅에 두 세대가 지나갔어도 나와 다른 생각엔 여전히 증오의 화살을 주저하지 않는 광장에 서 있다. 우리는 그 증오의 다리 어디쯤 있는가?


이념에 휘둘린 해방’(역사가 바로 서고 상처를 보듬어 시나브로 어우러지는 해맑은 광복의 날을 고대한다)정국을 살아낸다는 것은 칼날 위 묘기여야 했다. 낮밤으로 뒤바뀌는 세상을 단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던 이 땅 구석구석 덮친 피비린내는 인간본성을 회의하게 한다. 제주, 여수순천, 문경, 보도연맹, 노근리, 함평, 산청함양, 거창……. 얼떨결에 맞이한 해방으로 쥐구멍을 찾던 친일세력의 야수성을 도구로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잠재적인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데 양민학살을 활용하였고, 여순사건을 제압하고 만들어낸 국가보안법은 뒤이은 아류 독재정권들에게도 요긴한 올가미였다. 시커멓게 탄 민의는 깊이 묻어야 하는 엄혹한 시대가 참 길었다.

 

2009년 귀향한 나를 찾아와 조용히 글이나 쓸까 하던 성유보 선생께 한 말씀 주십사 2012526, 동호서당에서 마련한 다섯 번째 강좌는 이후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의 향방에 영감을 제시했다. 일생 정론직필의 언론인으로 살아온 선생은 관용을 주제로 삼으면서 우리 사회의 관용할 수 없는 것들을 분명히 짚었다. 남북분단으로 몰아간 김일성·이승만의 정치야욕, 반민특위 해체의 반민족 행위, 국가보안법의 폐해 등. 일생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던 지역 어른 몇몇의 입에서 곧 빨갱이란 증오의 말이 튀어나왔다. 나와 같지 않은 생각을 경청하지 않는 경직된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야겠다는 역사학도로서의 존재이유를 일깨운 자리였으니, 선생은 물론 그 어른들과의 해후가 얼마나 고마운지. 억지 죄목으로 갇혀 망가진 몸으로도 굳건하던 선생은 그 1년 뒤(2014. 10. 8.) 살아온 삶을 다 연재하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홀연 떠났다. ‘통일레일의 해맑은 포부를 말하던 그 모습 선한데, 다시 여쭤들을 수 없으니 가슴 아프다. 선생이 떠난 한 달 뒤 고등법원에서, 이듬해 봄 대법원에서, 선생을 옭아맸던 국가보안법 위반재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고고하고자 하던 심신을 망가뜨린 동시대인의 행위가 왜 살아서는 화해를 구하지 못했을까? 애초 무죄였던 선생은 마석모란공원 묘역에 누였으나 편히 잠들 수나 있을까? 선생의 원고에 이런 말이 있었다.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절대왕정과 공존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군국주의자를 관용할 수 있겠는가? ‘관용사회의 모델이라고 할 만한 프랑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 문제에 부닥쳤다. 나치 협력자 숙청 문제였다. 카뮈는 반 나치 저항신문 <콩바combat전투>지에, ‘누가 감히 용서를 말할 수 있는가? [···]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이다.’라고 기고했다.”

 

현대사의 원혼을 달래는 길은 옥죄는 금기를 하나씩 풀어헤치는 것이다. 하나둘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나와 너를 가르는 경계선을 허물 때,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기약하는 유연한 묘안들이 나타날 것이다. 사방이 트인 공간, 고택 누마루에 앉아 술렁술렁 바람을 맞으며 절감한다. ‘대화라는 꼭지로 이질의 가치관들이 만나 어떻게 부대끼고 깎여지는지 지켜보는 일은 절절하다. 2015년 해방 70년의 과제를 생각하며 빨치산과 토벌대의 만남도 그 선상에 놓였다. 한국 현대사의 상처가 깊은 지리산 벽송사 선방에 이제 팔순 구순에 접어든 어르신 여러 분이 마주 앉았다. 혈기방장하던 청년일 때 서로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들. 우리 동지를 죽인 자들과 한 자리에 앉을 수 없다며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했고 덕담 한마디 오가지 못했으나, 헤어지면서는 그동안 참 애썼소. 건강하게 오래 사시오.”라고 말 건넸으니, 그 깊은 주름에 증오도 좀 묻히는 것인가. 그 자리를 알리는 말에 이렇게 적었다.

 

저 들에 나가 밭갈이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라.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과연 제대로 답할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지리산 싸움에서 죽은 수많은 군인과 경찰과 빨치산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쳤냐고 물어보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고 말할 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 이 싸움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에 끼어 벌어진 부질없는 동족상잔이었다고.”

 

자유롭고자 하던 영혼들에게도 현대사의 칼바람은 비켜가지 않았다. “8·15해방은 그의 모순을 극단적인 비극의 형식으로 연출하였다. 그가 태어나고 사랑했던 도시 서울은 그가 들었던 민주주의 민족문학의 깃발에 불법의 낙인을 찍었고, 그가 선택했던 도시 평양은 그의 치열했던 삶을 반역의 죄명으로 모욕하지 않았던가. 날짜도 모르게 처형된 그의 쇠약한 심신은 반세기가 넘는 오늘까지 하늘 아래 어느 한 곳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기 힘든 안타까움을 선사한다. 그의 삶은 식민지시대의 위험한 지뢰밭을 횡단하고 있고, 그의 죽음은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가장 아픈 상처에 직결되어 있다.”라고 한 임화(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47_염무웅, <임화의 해방전후>, 2015. 11. 28.(), 둔산재)가 그랬고, 정치 문인으로 갈아타기 힘든 한결같은 문학주의자 백석(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 48_박태일, <백석, 어디 있는가?>, 2015. 12. 26.(), 영승서원)이 그랬다.

 

분단 한반도는 통일 독일을 자꾸 쳐다보게 된다. 연착륙 통독에 이르게 된 씨앗이 바로 신뢰에 기초한 소통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독의 동방정책Ostpolitik은 빌리 브란트라는 진보적 지도자가 대화로 평화공존을 강화하면서 화해를 통한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이런 기조는 이후 헬무트 콜 등 보수 정권으로 바뀌고도 그대로 유지되어 결국 억누를 수 없는 동독인의 통일 열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이 모든 것을 뒤집어엎어 증오로 원점 회귀하는 우리에겐 뼈아프다. 더욱이 지정학적 요지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을 녹록하게 할 국제관계의 역량을 고심하게 한다. 해방 70년의 과제를 짚은 일환으로 고택을 찾으신 노교수의 말씀 몇 대목은 지금도 되뇌고 있다.

 

해양세력을 겨누는 또는 대륙으로 침략해 들어가는 다리’.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었다. 한말 제국세력들은 동강난 다리나 부러진 로 만들어 한반도를 나눠 갖고자 하였으니, 일제의 독식이 마감하면서 결국 그리 되었다. 침략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고

자 한반도 중립지대 안이 개화파 지식인들에게서 나왔으나, 미력했다. 지난 세기의 제국주의와 냉전주의 잔존물을 극복하여 불행한 이며 다리가 되어버린 남북분단을 허물고 세계 평화로 나아갈 해양과 대륙을 잇는 진정한 평화가교는 어느 즈음인가?”(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 45_강만길, <분단시대의 역사를 위하여>, 2015. 9. 26.(), 침류정) 신념의 인간은 향기롭다. 좌에 섰건 우에 섰건, 적이었건 동지였건, ‘보다 우리를 앞세웠던 그 삶은 숙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방법은 달랐지만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공로는 한결같았습니다. 서럽고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정권을 한번 가져보고 싶었다. 만주벌판을 달리던 독립군의 말발굽처럼 민적을 찢고 스스로 목을 친 이주환의 자귀처럼 생명력 넘치는 불굴의 혼은 2017년으로 넘어오면서 광장의 촛불에서 그런 꿈을 꾸었었다.

 

8월의 상심은 전쟁 없는 평화를 간절히 꿈꾼다. 인간의 것이 아닌, 짐승의 것인 전쟁에 좋은 전쟁이 어디 있고 나쁜 전쟁이 어디 있는가. 그 본질은 증오이다. 이 증오의 다리를 건너 따뜻한 인간애를 만나고 싶다. 힘이 아닌 오로지 이해로 이루어지는 평화 아닌가.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새벽 4시에 맛보는 8월의 대기는 쌉싸름하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파랗게 날 돋는 바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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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