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2018.10.17 17:28


* 11월 12일 심포지엄

-스토리텔링, 예술, 평화교육(포드릭 오투마) 

-분쟁지역 청소년의 평화교육과 사회통합(알란 화이트)

-어깨동무 평화덕목과 평화교육 교안 만들기(박종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평화교육(정영철) 


*11월 13일 워크숍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활동가와 함께하는 평화교육 워크숍’ 


※ 오시는 길을 누르시면 약도와 교통수단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심포지엄 오시는 길

- 워크숍 오시는 길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데릭 윌슨 초청강연 '회복적 사회를 위한 평화교육'에 초대합니다!!




- 강연 : 데릭 윌슨(북아일랜드 얼스터대학교 교육학과 명예교수 / 코리밀라 대표 역임, 현 프로그램개발 공동위워장)

- 사회 : 김동진(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IRC 마리퀴리 펠로우)

- 토론 :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 윤철기(서울교육대학교 교수)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12.20 02:48

[이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본 네일러


지난 9월 어린이어깨동무와 김동진 교수님으로부터 한국에 와서 인형극을 활용한 저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영광스럽고 기뻤습니다. 제가 한국분들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배울 점이 더 많다고 느꼈기 때문에 영광스러웠습니다. 또한 지난 2월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평화학 대학원에서 만난 한국 분들의 우정과 따뜻함, 코리밀라 공동체의 활동에 대한 관심을 느끼며 즐거웠던 기억이 있어 기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11월에 콜린 크랙 씨와 저는 김동진 교수님과 함께 서울로 향했습니다. 한국에서 어린이어깨동무와 서울교육대학교 통일교육연구소의 환대를 받으며 꼬박 나흘간 바쁜 일정을 보냈고, ‘평화교육은 우리를 바꿀 것인가’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 참여했습니다.


평화교육 심포지엄에서는 인형극을 활용한 평화교육과 좋은 관계 맺기의 여섯 가지 사례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또한 어린이집에 방문해 인형극을 하고, 정체성과 소속감에 영향을 주는 몇 가지 게임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약 40명의 교사 및 지도자들이 함께하는 워크숍을 열어 인형을 만들고 활용하며 갈등을 극복하는 서로 다른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행사에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 주최 측도 기뻐했고, 전반적인 운영도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원활한 통역 덕분에 오랜 시간 머물면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고, 중간에 대접받은 음식도 훌륭했습니다. 금속 젓가락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려 음식들을 입에 넣기가 어려웠지만 새롭고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멋진 찻집에서의 시간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심포지엄과 어린이집 방문 및 워크숍 일정 사이에 시간이 나서 비무장지대, 한국DMZ평화생명동산과 민간인통제구역 내의 전망대를 방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비무장지대는 폭이 평균 4km이고, 248km 길이의 군사분계선이 한반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남과 북을 나누고 있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 1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민간인 구역이 있는데 저희가 방문한 평화생명동산도 그런 지역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무와 덤불 사이에 놓인 두 대의 남한 탱크를 발견했는데 지금은 쓰이지 않는 그 탱크들은 흰색과 무지개 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포신에는 뿜어져 나온 듯한 꽃 장식이 있었습니다. 


평화생명동산은 어린이어깨동무 관계자들이 여름 캠프를 위해 찾았던 곳이기도 한데 그곳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코끼리의 피부처럼 독특하게 주름진 산이 있는 이 지역은 생태적으로 풍요롭고 야생 동식물이 매우 다양해서 한국의 멸종 위기 동식물 중 38퍼센트가 살고 있는 장소이기에 그 자체로 희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성헌 이사장님과 콜린 씨와 저는 평화생명동산과 코리밀라 공동체의 프로그램과 비전에 대해 발표했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평화생명동산의 정성헌 이사장님은 저희를 안내해주시며 지역의 그린에너지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다양한 풀과 나무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습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촬영팀이 민간인통제구역과 가칠봉 전망대까지 우리와 동행했습니다. 가칠봉은 남한과 북한 경계초소 간의 거리가 780m밖에 되지 않는 곳입니다. 한국의 비극과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곳이자 현재까지 대립과 분단이 실존하는 장소이기에 그곳에서 겸허함과 경각심이 일깨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망대에 도착하기까지 수 킬로미터의 철조망과 여러 경계초소를 지났고 출입 인원을 확인하는 검문도 거쳐야 했습니다. ‘펀치볼 마을’이라고 불리는 해안분지도 방문했는데 그곳은 한국전쟁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은 장소였습니다. 


한국에 온 이유를 묻는 촬영팀의 질문에 저는 북아일랜드 분쟁 당시 잉글랜드 친구들이 방문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아일랜드에 오기를 두려워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친구들의 방문은 저에게 희망과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어린이어깨동무의 용기 있는 활동을 지지하고 평화교육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을 만한 도구와 자원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제가 가져온 여덟 세트의 인형들도 그런 도구들 중 하나입니다. 촬영팀은 통제구역으로 가는 길에 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가슴 깊이 간직한 희망의 상징물과 코리밀라에서 매일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그렸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희망의 상징물은 켈트 십자가와 기도서, 그리고 켈트족의 축복이 담긴 천으로 감싼 초와 촛대입니다. 저는 이것을 정성헌 이사장님께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방문 내내 주최자와 파트너이자 친구인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우리의 활동에 대한 관심을 느끼며 행복했습니다. 너그럽게도 우리에게 감사를 표하셨지만 이런 자리에 초대되어 오히려 영광이었습니다. 남북관계의 역사와 외부세력의 개입에 의한 관계의 복잡성에 대해 제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생각해보면 평화를 위한 동반자인 어린이어깨동무가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용기와 희망에 더욱 찬사를 표하게 됩니다. 그들을 보면 오랜 시간 동안 신랑을 기다리며 등불에 필요한 기름을 준비하는 우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현명한 아가씨들이 떠오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평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어린이어깨동무의 활동에 감동과 영감을 받았고 너그러운 감사의 표현과 환대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 제 마음에 시편 23장의 한 구절이 떠올랐는데 지금도 그분들의 너그러움을 기억하며 그 구절을 생각합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본 네일러(Yvonne Naylor) ㅣ 북아일랜드에서 25년간 중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코리밀라 등 민간단체와 함께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평화교육 활동가를 훈련시켰다. 교사직 은퇴 후에도 퍼펫 우먼(Puppet Woman)을 설립하여 인형극을 활용한 평화교육 프로그램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 편집자주

본 글은 필자가 어린이어깨동무의 초청으로 11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보낸 4일 간의 일정에서 느낀 점을 정리한 글입니다. 평화교육 심포지엄 ‘평화교육은 우리를 바꿀 것인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어린이어깨동무 홈페이지(www.okfriend.org) 및 어깨동무평화교육센터 블로그(peacecenter.tistory.com)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7.12.14 16:30

어린이어깨동무_평화교육심포지엄_내지편집v4.compressed.pdf


-폭풍 이후의 잔잔함 : 분쟁 이후 평화구축의 과제 (콜린 크랙)

-북아일랜드의 평화교육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강순원)

-평화교육과 좋은 관계 맺기 : 인형극을 활용한 사례 연구 (이본 네일러)

-평화지향적 통일교육 콘텐츠 개발 (양은석)

-피구놀이에서 배우는 평화 (최관의)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7.08.01 12:04


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피스레터> 합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2016년 7월 창간 시기부터 2017년 6월까지 발간한 통권1호~통권7호의 내용을 묶어 발간한 이번 합본호를 통해, 깊이 있는내용과 쉬운 글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글을 주제와 필자별로 보다 쉽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합본호의 용량이 커서 분할하여 업로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1.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2.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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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7.07.26 16:30

피스레터 no1 창간준비1호-final-재수정.pdf

 

 

 

 

 

● 함께 만드는 평화|최혜경

●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기원하는 곳, 판문점|정영철

● 플라톤이 말하는 전쟁의 기원|정경화

● 평화학 공부와 실천|김동진

● 욕 대장 종오 이야기|최관의

● 또 하나의 휴전선, 북한식당|강주원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평화를 원하는 땅, Ireland

평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아일랜드 평화연수 마지막 이야기는 Glencree에서의 소중한 인연과 경험으로 엮어보겠습니다! Glencree는 남쪽 아일랜드 지역의 대표적인 평화운동단체 중 하나입니다.  이 곳은 북아일랜드 지역의 격화되는 폭력사태에 대해 남쪽 아일랜드 시민사회가 폭력 외의 해결방법을 고민하며 활동을 시작했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그럼 Glencree안으로 들어가볼까요?

  

▲ Glencree 평화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표현한 '평화'


#. 7 Glencree

1974년에 설립된 Glencree는 깊은 산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깊은 산속에 자리잡게된 사연부터 옛 이야기를 하듯 Glencree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Eamon Rafter였습니다. 깊은 산 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멀리서도 보인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그 이유가 조금은 슬프게 다가옵니다. 이 또한 우리 역사와 닮아서 그렇겠지요? 현재 Glencree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영국군의 주둔 시설 지어졌다고 합니다. 영국군이 아일랜드 주민들을 더 잘 감시하고, 위압감을 주기 위해 멀리서도 건물이 보이도록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영국군이 떠나며 버려졌던 곳이 청소년 계도시설, 난민들의 위한 피난시설 거쳐 1974년 비로소 Glencree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것 처럼 Glencree는  북아일앤드에서 '피의 일요일'에 대한 대응으로  IRA가 ‘피의 금요일'사건을 벌이는 등 폭력사태가 격화되는 것을 보고 폭력 외의 해결방법을 고민하던 남쪽 아일랜드 시민사회의 대응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남쪽 아일랜드 시민사회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천주교, 개신교를 총망라해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테러로 북쪽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일로 활동을 시작했고, 북아일랜드에서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었을 때는 갈등 당사자들에게 협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정치인, 종교지도자의 모임을 주관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마련했습니다.

이와 함께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이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하거나, 서로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부족한 남북의 아일랜드 청소년들에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지금도 Glencree는 누구나 보호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환대하는 대화의 공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Glencree에서 만난 또 하나의 아일랜드 경험은 바로 아일랜드 아리랑 몰리 말론(Molly Malone)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일랜드의 척박한 환경에서 엄마로 살아야했던 한 여성의 구슬픈 노래가 지금도 아일랜드에서 우리의 아리랑과 같은 노래로 불리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식민지 시절의 한과 가난을 상징하는 민요 '몰리 말론'을 Glencree 활동가 Kieran Allen의 목소리로 들어보실까요?

 


In Dublin's fair city, where the girls are so pretty

I first set my eyes on sweet Molly Malone

As she wheeled her wheelbarrow through streets broad and narrow

Crying cockles and mussels alive a-live O!

A-live a-live O! A-live a-live O!
Crying cockles and mussels alive a-live O!

She was a fishmonger and sure it was no wonder
For so were her father and mother before
And they both wheeled their barrows through streets broad and narrow
Crying cockles and mussels alive a-live O!

A-live a-live O! A-live a-live O!
Crying cockles and mussels alive a-live O!

She died of a fever and no one could save her
And that was the end of sweet Molly Malone
Now her ghost wheels her barrow through streets broad and narrow
Crying cockles and mussels alive a-live O!

A-live a-live O! A-live a-live O!
Crying cockles and mussels alive a-live O!
A-live a-live O! A-live a-live O!
Crying cockles and mussels alive a-live O!


오늘까지 총 네번에 걸쳐 아일랜드 평화연수의 내용을 정리해보있습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아일랜드에서 평화와 평화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느껴보시고 싶으신 분은 참고하실만 했겠지요? ㅎㅎㅎ

앞으로도 어린이어깨동무는 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국내와 해외 곳곳의 평화현장을 시민, 청소년과 공유하고, 그곳에서의 배움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 


※ 본 평화연수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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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평화를 원하는 땅, Ireland

평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오늘은 아일랜드 평화연수 세번째 이야기.  Derry & Junction 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지나번 포스팅에서 미리 말씀드렸던것 처럼 Derry는 영화 Bloody sunday(피의 일요일)의 실제 현장으로 아일랜드의 역사와 평화프로세스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80년 5월 광주를 기억하는 우리들에게는 닮은 역사의 현장이어서 더욱 마음에 많이 남는 곳이었습니다. 

 


#. 5  Derry


Derry는 도시 전체가 역사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1972년 1월 31일 일요일, 시민권을 주장하며 평화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향해 영국군 공수부대가 발표를 해서 열 세명이 숨졌던 그 날의 사건을 도시 곳곳에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도시 곳곳에서 이와 같은 안내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해당 현장의 위치, 발생했던 사건의 내용 등을 당시의 사진자료와 함께 볼 수 있도록 곳곳에 준비해두고 있었습니다. 이같은 안내판이 아니더라도 Derry시내에서는 '피의 일요일'에 관한 많은 역사적인 장면을 벽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벽화는 '피의 일요일'의 상징과도 같은 사진을 그대로 옮겨놓은 그림입니다.  공수부대의 총탄에 쓰러진 시민의 모습은 우리의 5월 광주, 혹은 6월 항쟁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아 Derry의 아픔에 더욱 공감이 되었습니다.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향해있는 장갑차, 무고한 어린이의 죽음은 우리의 역사와 참으로 많이 닮아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박물관이 아닌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한 Derry 시민들의 평화를 향한 깊은 바람이 느껴지는 동시에 이러한 역사를 매일 마주해야하는 깊은 슬픔도 함께 느낄 수 있었습니다.

 

 

 

Derry 시민들의 평화와 자유를 향한 열망도 벽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위에서 보는 두 개의 벽화는 많은 사람들이 데리를 방문한 기념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곳이자  Free Derry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우리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현재의 고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으로 다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자유로운 왕래가 제한되고 평화프로세스가 위협을 받을까 걱정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벽화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Derry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만날 수 있었고,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고민과 닮아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 아일랜드를 조금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6  Junction


Derry에서 우리가 방문한 곳은 Junction이었습니다.  Junction은 공동체의 연대와 평화만들기 활동을 오랜 기간 해 온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있는 상호이해교육, 또래중재, 역사교육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Junction은 지역에 활동하는 단체들이 모여있는 공간인 Holy Well에 입주해 있었습니다.  이 곳의 1층에서는 여기 모여있는 단체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활동하는지 보여주는 바닥화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만난  두 명의 관록있는 활동가들은 비평화적이었던 공간에서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난 시간동안 해왔던,.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다양한 활동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하나 전해보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요즘 많은 관심 속에서 진행 중인 '또래중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또래중재는 의견을 조율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하고, 미리 판단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는 것과 같은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평화롭게 해결할 것인가에 자신감을 가지게 하는 교육이 진짜 또재중재교육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이야기는 사실 이 교육 프로젝트가 실이 아닌 교무실에 하는 프로젝트, 학교 안의 전체적인 관계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프로젝트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학교에는 학생과 선생님 말고도 교육을 위해 일하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고 선생님과 그 외 분들  사이에 차별이 있다면 학생들도 그것을 느끼기때문에 단지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전체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평화교육 활동을 하며 쌓아온 경험을 더 많이 전달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던

Johnston McMaster와 Seamus Farrell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지난 역사의 아픔을 평화를 위한 노력으로 극복하는 Derry에서의 어깨동무 평화교육 연수는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음번에 이어지는 4탄에서는 아일랜드의 아리랑을 만나보실 수 있는  Glencree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커밍쑨~~~~~~~~~~~~~



※ 본 평화연수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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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6.19 14:34

[시선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아일랜드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평화 2


김동진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후, 세계 많은 분쟁 지역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아일랜드 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필자가 피스레터를 쓰고 있는 오늘, 518, 스리랑카의 타밀과 싱할라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과 함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와 데리에 모여, 2009년 스리랑카 타밀 지역 물리바이칼 대학살을 기리는 벽화 제막식을 거행했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대한 한국 신문 기사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 필자는, 거의 30년 뒤 같은 날 타밀 민족에게 발생한 학살과 아픔을 기억하는 행사 가운데, 국가 폭력으로 희생당한 분들의 얼굴이 인종과 국경을 넘어 하나로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1972년 블러디 선데이를 경험한 아일랜드 사람들이, 타밀 대학살에 대한 행사를 후원하고 조직한 것도 단순한 공감을 넘어, 타민족의 고통 속에 자기민족의 아픔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제막식 내내 눈물을 흘리던 타밀 여성 한 분은 마치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아일랜드 행사 준비 관계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유엔, 유럽연합 의회, 영국, 미국 등 세계 여러 곳을 돌며, 타밀 대학살을 증언해 온 이 여성은 그동안 자신의 증언을 들어 준 사람들도 매우 고마웠지만, 아일랜드에서는 동정을 넘어 진정으로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고, 같이 연대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된 오늘, 타밀 지역 물리바이칼에서는 희생자를 기리는 마음으로 작은 조약돌에 이름을 써넣는 행사마저도 금지되어 있다. 고향에서 금지된 행사를 타국의 환대 속에 진행한 타밀 사람들의 아픔은 어떤 한 민족만의 아픔이 아닐 것이다.


▲ 5월 18일, 스리랑카의 타밀과 싱할라 사람들이 아일랜드 사람들과 함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와 데리에 모여, 2009년 스리랑카 타밀 지역 물리바이칼 대학살을 기리는 벽화 제막식을 거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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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한창이던 2000년대 중후반 한반도와 스리랑카의 평화 프로세스는 위기를 거듭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결국 중단되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시 전쟁이 재발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위기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스리랑카의 경우는 이보다 한 발 더 나아가 결국 싱할라 정부의 타밀 지역 폭격으로 전쟁이 시작되고 수십만 타밀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물론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도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IRA 등 무장단체의 무장 해제 문제, 과거사 청산 문제, 권력 공유 문제 등 평화 프로세스의 걸림돌로 인해 의회가 붕괴되는 등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는 2000년대 중반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 무장단체들은 결국 무장 해제를 선언했다. 강경파인 신페인당과 민주연합당이 평화 프로세스에 참여하여 권력 공유를 이끌어 냈다. 아일랜드와 영국 정부, 유럽연합은 지속적으로 시민사회의 평화교류협력 사업을 독려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낸 걸까? 북아일랜드 시민사회 평화단체들을 방문한 타밀과 싱할라 사람들은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타밀과 싱할라 시민사회의 평화 활동과 화해작업이 아일랜드보다 덜 역동적이었기 때문일까. 아일랜드 단체의 사람들은 그 때문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며, 자신들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가에 대해 역설했다. 물론 자신들의 평화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정학적 환경이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지속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영국, 유럽연합 모두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하기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유럽연합의 성공을 위해 아일랜드의 평화정착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스리랑카의 평화 프로세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르던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프로세스였다. 타밀 반군이 둘러싸고 있던 트링코말리 항구는 세계 수준의 자연항으로 중동에서의 임무를 수행하는 미군 핵잠수함이 정박하기에 최적의 전략항구였다. 미국은 스리랑카 싱할라 정부와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는 타밀과 싱할라 사이의 군사적 균형을 무너뜨려, 싱할라 정부가 대 타밀 전쟁과 학살을 기획하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결국 타밀과 싱할라 시민사회 사이의 협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 이후 타밀 지역은 싱할라 정부의 군사 통치 지역이 되었다.


한반도에서도 지정학적 악조건은 평화 프로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발언으로 촉발된 북미 관계 악화, 북한의 계속된 핵개발, 미사일 실험은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계속 증가시켰다. 민간의 교류협력 사업은 결국 전면 중단되었다. 새로운 한국 정부가 평화 프로세스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이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이다.


한편 안타깝게도,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와 함께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지정학적 환경도 점차 부정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은 브렉시트 찬성을 추진했고, 신페인당은 다시 통일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결국 올 해 초 북아일랜드 의회가 붕괴되었고, 아직까지 정부가 구성되지 못한 채로 불안정한 상황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남북 아일랜드 사이에 군사분계선이 설치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도 커져가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한반도와 스리랑카를 함께 바라보는 오늘, 필자는 갈등의 핵심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한, 평화 프로세스는 지정학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항상 위기에 봉착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어렵게 시작한 평화 프로세스가 너무나도 어이없게 무너져 내리는 이유이다. 결국 지정학적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지역 갈등 집단의 지도자가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을 최우선 전략으로 삼을 수 있는가가 평화 프로세스의 지속가능성에 가장 중요한 열쇠로 보인다. 하지만 갈등 집단의 정치 군사지도자들에게 이런 평화에의 헌신을 기대하는 것이 현실적인 일일까? 갈등과 외부위협을 활용해 자기 집단의 충성도와 자기 권력을 강화하고 싶은 유혹은 어느 지도자에게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좌절하기는 이르다. 아일랜드에서 열린 타밀 5.18 행사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한목소리로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느꼈다고 말한다. 타밀 대학살만을 바라볼 때, 타밀 사람들은 세계가 자신들을 버렸고, 이는 타밀만의 고통이라고 느꼈지만, 아일랜드 사람들과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눌 때, 이들은 전 세계에서 전쟁과 갈등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꿈꾸기 시작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꿈꾸는 우리가 다른 민족의 아픔과 평화 프로세스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 국가의 시민사회가 가진 힘만으로 한 지역의 평화 프로세스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바꾸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서로의 상황을 널리 알릴 때, 이는 갈등과 전쟁을 활용해 권력을 유지하는 매력적인 정치 전략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가장 강력한 평화적 수단이 될 수 있다.

 


김동진 한신대에서 신학을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평화를 원하는 땅, Ireland

평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오늘은 아일랜드 평화연수 두번째 이야기.  Corrymeela이야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은 들어보셨을 법한 곳이 바로 Corrymeela(코리밀라)입니다. 



#. 3  Corrymeela


코리밀라는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북아일랜드 Ballycastle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코리밀라는 스스로 일종의 항구와 같은 역할을 자처합니다.  배(사람)가 다시 항해를 위해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회복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이지요. 이러한 회복과 치유의 역할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자연환경 속에 위치한 코리밀라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 시작해보겠습니다. 




코리밀라가 현재와 같이 유명해진 이유는 북아일랜드의 신교와 구교의 심각한 갈등과 폭력사태 속에서 피난처로서의 역할과 함께 ,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공존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리밀라가 처음부터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Colin Craig의 이야기는 조금은 의외였습니다.  처음 이 공간을 만든 Ray Davey 목사는 '열린공동체'를 지향해서 누구나 들어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코리밀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구교와 신교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70년대를 거치며 사람들의 '피난처'서의 역할을 보다 잘 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시설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활동은 한 발 더 나아가 80년대에는 학교, youth club 등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peace building 활동으로 확대되었습니다.  peace building 활동은 신교와 구교의 접촉을 증가시키는 활동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긍정적인 작용은 하지만, 접촉 자체가 평화의 충분조건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90년대 들어 협상의 중간지대 역할을 했던 코리밀라 등의 노력으로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평화 프로세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첫번째 포스팅에서 확인한것 처럼, 평화 프로세스의 결과물 중 하나인 peace wall은 단지 서로의 지역을 나누는 역할만을 하고 있지만, 더이상의 무력충돌은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은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길을 만들고, 걸어온 코리밀라는 현재 더 폭넓은 평화를 위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세계의 평화현장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리밀라의 활동가들을 만난 어린이어깨동무는 자신의 역할을 미리 규정하기 보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활동의 내용을 만들어가는 평화활동가들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 4  Giant's causeway


이번에 소개할 곳은 기관이나 활동가가 아니라, 여러분이 아일랜드를 방문하신다면 여행객으로 꼭 방문해보시기를 추천하는 절경, Giant's causeway입니다. 


Giant's causeway는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앤트림 고원가의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는 현무암 절벽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만큼 풍경도 아름답지만, 과학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약 40,000여개의 원주(Column)가 바다로부터 튀어나와 늘어서 있는데요. 사진으로 만나보실까요?


 


여행을 위해 아일랜드를 방문하시는 분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연을 만끽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혹.. 저희처럼 연수 등의 일정으로 아일랜드를 방문하시더라도 잠시 들러 산책하시는 것을 권하고싶습니다~


오늘 2탄은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을까합니다!


3탄을 기다리시는 분을 위해 예고편을 말씀드리면, 

3탄에서는 영화 Bloody sunday(피의 일요일)의 실제 현장인 Derry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커밍쑨~~~~~~~~~~~~~



※ 본 평화연수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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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