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8.20 00:23

[이슈]


'적군 묘지' 앞에서 생각하는 평화

 

박종호


지난 6월 29일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 콜로키움 ‘회복적 사회를 위한 평화교육’에 참석한 아일랜드 평화교육 실천가 데릭 윌슨(Derick Wilson)과 김동진 박사(트리니티 칼리지)를 2년 만에 반갑게 다시 만났다. 2017년 2월 아일랜드 평화교육 현장답사에서 만나고 이번에 서울에서 다시 만났으니 그 반가움은 컸다. 데릭 윌슨은 콜로키움에서 평화교육과 회복적인 사회, 이를 위한 교육자들의 실천에 대한 발표를 하였는데, 그야말로 아일랜드의 남북대립과 갈등의 한복판에서 회복적 실천을 위해 달려 온 자신의 평생에 걸친 노력의 알맹이를 풀어놓았다.


‘회복적 실천은 삶의 방식이자 일하는 방식이다.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삼거나 비난하기보다 책임을 지는 것이다. 상대를 정당하게 대하고, 타인과 차이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그 차이를 축복하는 것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시간, 상상, 창조적인 에너지와 희망이 새로운 현실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받아 적은 말이다.


나와 너, 우리 학교, 사회, 그리고 이웃하고 있는 나라에 대해서도 같이 적용되고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다. 평화교육이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고, 또 먼 걸음을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폭력에 대해서도 상대의 폭력은 부당하지만 자기 진영의 폭력에 대해서는 변명하는 데서 벗어나서, 모든 폭력에 대해 거부하고, 비폭력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다. 우리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말인줄 알면서도 또 얼마나 절박한 말인가.


다음 날인 6월 30일 이른 아침, 데릭 윌슨과 김동진 박사, 그리고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교육과정연구모임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초등·중고등학교 교사, 대학생, 어깨동무 활동가 20여명은 파주 ‘적군 묘지’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회복적 평화’를 떠올려 보기에 적절한 곳이라 여겨서 고른 곳이다. 자유로를 지나 문산 방향으로 37번 국도를 달리다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부근에서 큰길가에 차를 세우고 일행은 모두 내렸다. 얼핏 지나치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세워진 간판은 '북한군 중국군 묘지 안내도'이다. 적군 곧 한국전쟁에서 남쪽과 서로 적으로 맞선 상대, 북한군과 중국군의 무덤이다. 제1묘역, 제2묘역으로 표시된 입간판이 함께 서 있었다. '적군 묘지'로 알려져 있고, 군부대가 관리하는 곳인데, 직접 지키는 사람은 없다. 두 묘역 사이에는 농사를 짓는 밭이 있어서 실제로 일하는 분들이 무심하게 우리를 건너다보고 일을 하고 있기도 한다. "이곳은 6.25전쟁(1950.6.25.-1953.7.27.)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묘지입니다. 대한민국은 제네바 협약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1996년 6월 묘역을 구성하였으며, 묘역은 6,099㎡로 1묘역과 2묘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잠깐 입간판의 내용을 읽은 뒤에 오른편 2묘역으로 먼저 가서 우리는 무덤 가운데 서서 작은 꽃다발을 놓고 묵념을 올렸다. 무덤마다 놓인 비석에는 누구의 무덤인지, 어디에서 전사했는지 등의 기록이 적혀 있다. 한국 전쟁 때 치열한 전투에서 죽은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가 함께 안장되어 있다가, 중국군 유해는 2014년 무렵에 송환되었다. 더러 ‘무명인’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도 없이 스러져 간 젊은 넋이 여기에 누워 있는 것이다.



다시 걸음을 돌려 처음 들어선 쪽으로 가서 1묘역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조금 더 잘 단장되어 있는 곳이다. 역시 함께 모여서 묵념을 하고, 준비해 간 구상 시인의 시 ‘적군 묘지 앞에서’를 정지영 선생님이 낭독하고, 또 다른 시 ‘휴전선’을 대학생이 낭독하고, 데릭 윌슨의 말씀도 들었다. 이런 고통스런 아픔의 현장을 찾아서 나누는 모습이 회복적 사회로 나아가는 걸음이 될 것을 확신한다는 말을 하셨다.



1묘역의 말끔히 단장된 무덤을 돌아보다, 문득 무덤이 모두 북쪽을 향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휴전선까지 불과 몇 십리, 비록 육신은 땅에 묻혔지만 영혼이라도 고향을 바라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배려한 것이리라. 누구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위아래를 설득하고 그렇게 북쪽으로 배치하려고 애쓴 사람이 새삼 고맙다.


여기 이곳에 묻혀 있는 저 무덤 속 젊은이들이 자기 고향 땅으로 돌아 갈 날은 언제일까? 남과 북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 북한과 미국이 북쪽에 안장되어 있던 미국 군의 유해를 발굴하고 송환하는 뉴스를 보면서 더욱 우리 남과 북 모두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화해와 평화, 회복의 실천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거꾸로 확인하는 셈이다.


자신이 남에서 태어나, 북의 원산에서 자라고, 남쪽으로 내려 온 뒤, 한국 전쟁 때는 종군 기자로 참여하고, 이곳을 지나다가 시를 남긴,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남과 북 모두에 대해서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며 아파한 시인 구상(1919-2004)이 쓴 ‘적군 묘지 앞에서’를 다시 읽어 보면서 답사의 소감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드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삽십(三十) 리면

가루 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박종호ㅣ십여 년 전 어린이어깨동무 후원회원으로 인연을 맺었다. 현재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 신도림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으며, 학생들과 손잡고 금강산, 백두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꿈을 꾸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08.19 20:26

통권14호_웹 게시용.pdf





박종호  |  '적군묘지' 앞에서 생각하는 평화


정욱식  |  한반도 평화체제와 군축


송강호  |  검은 바다


정진헌  |  안녕, 친구야!


김소울  |  끔찍한 현실을 추상적으로, 파울 클레


심은보  |  빈틈을 잘 살피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피스레터(PDF)'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스레터 13호(통권15호)  (0) 2018.10.18
피스레터 12호(통권14호)  (0) 2018.08.19
피스레터 11호(통권13호)  (0) 2018.06.19
피스레터 10호(통권12호)  (0) 2018.04.19
피스레터 9호(통권11호)  (0) 2018.02.19
피스레터 8호(통권10호)  (0) 2017.12.20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7.12.15 18:36



#. 2017년 11월 15일 오전 10시


분주한 마음으로 도착한 창비50주년홀. 분명히 일주일전에 평화교육 심포지엄 '평화교육은 우리를 바꿀 것인가' 준비를 위한 모든 체크를 마쳤으나.. 준비하는 손길이 바쁘기만 한 그 때!


올해 초, 아일랜드에서 만났던 콜린 크랙과 이본 네일러가 도착했다. 기자 간담회를 위해 행사시간보다 한참 먼저 도착은 두 명은 긴~ 비행의 여독이 여전히 풀리지 않은듯 피곤해보였으나 특유의 밝은 표정과 미소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커피 한 모금의 여유도 잊은 채 열정적으로 기자 간담회에 임하는 먼 길 오신 손님들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자세히 만나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819269.html



#. 한반도의 멀리있는 쌍둥이, 아일랜드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오기 시작하는데 느낌이 심상치 않다. 흥행성공! 심지어 너무나 열심히 공부를 한다. 우리사회가 평화와 평화교육에 목말라하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한반도와 같은 분단과 분쟁의 지역 북아일랜드에서 평생 평화운동을 해온 콜린 크랙의 진심어린 경험과 인형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열도록 돕는 이본 네일러의 이야기는 참석자들의 눈과 귀를 모으기에 충분했다.


또한 아일랜드 활동가들의 발표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적 배경과 활동내용, 거기에서 나타난 성과와 한계,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까지 정리해주신 강순원교수님의 발표에 청중들은 엄지척!! 이렇다보니 참가자들의 집중도는 입시생을 방불케 했을 정도!! 


 





#. 이 땅에서의 노력, 교실에서 일구는 평화  


아일랜드의 경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현장 선생님들의 발표 또한 많은 참가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최관의 선생님의 '피구놀이에서 배우는 평화'는 어린이들과 더 깊게 호흡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었고, 양은석 선생님의 다양한 평화교육 콘텐츠에 대한 발표는 참가자들의 손을 바쁘게 했다. 열심히 받아 적고, 응용하고자 하는 열정 만발! 


이 시간은 아일랜드와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만나는 시간인 동시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콘텐츠가 만나 희망을 일구는 시간이기도 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7.12.14 16:30

어린이어깨동무_평화교육심포지엄_내지편집v4.compressed.pdf


-폭풍 이후의 잔잔함 : 분쟁 이후 평화구축의 과제 (콜린 크랙)

-북아일랜드의 평화교육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강순원)

-평화교육과 좋은 관계 맺기 : 인형극을 활용한 사례 연구 (이본 네일러)

-평화지향적 통일교육 콘텐츠 개발 (양은석)

-피구놀이에서 배우는 평화 (최관의)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심포지엄2017.12.14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