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2.19 14:30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어린 왕자와 영화인들


송태효


시네아스트 생텍스 
평화주의를 실천한 행동주의 소설가 생텍스의 시네아 스트로서의 삶은 영화사에도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 소설가로 성공한 생텍스는 프랑스 유명 감독 레몽 베르 나르 (Raymond Bernard)가 연출한 「안느 -마리 (Anne–Marie)」 (1935) 의 시나리오를 쓰고 피에르 비용 (Poerre Billon) 의 『남방 우편기 (Courrier du Sud)』 (1936) 를 각색 하고 헌팅도 도왔다 .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1940 년 드 골의 런던 망명 정부와 페탱의 비시 프랑스 자치 정부의 위선에 항의하며 조국을 떠나던 생텍스는 피에르 비용에 게 「이고르 (Igor)」 시놉시스를 맡기며 귀국 후 공동 제작 을 제안한다 . 하지만 1944 년 7 월 31 일 동료들의 만류에 도 불구하고 아직 길들지 않는 신종 비행기로 자원 출정 한 마흔네 살의 전투 조종사 생텍스가 지중해에 추락하 며 이 제안도 물거품이 되었다 . 

뉴욕 망명 생활 중에도 생텍스는 모국어 감각 상실을 우려하여 영어 사용을 자제하며 세계의 프랑스인들에게 위 안과 용기를 주는 프랑스의 목소리를 전했다 . 생텍스는 1941 년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 장 르누아르의 초청으로 할리우드를 방문한다 . 그는 기성 화단의 구태 성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새롭게 영화의 길을 선택하여 『게임의 규칙 (Règle du Jeu)을 발표하나 영화의 풍자 대 상인 부르주아 관객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 하 지만 정작 망명지로 택한 미국에서 상영된 그의 작품들 은 관객을 열광시켰다 . 이방인 감독으로 추앙받던 르누 아르가 생텍스의 영화적 재능을 인정하고 『어린 왕자』의 전편인 『사람들의 땅』을 영화화하고자 원작자를 영화의 메카로 모신 것이다 . 

원작의 정신을 이미지로 재탄생시키는 르누아르의 천재적인 발상에 탄복한 생텍스는 자신의 기획안을 녹음한 레코드를 제작하여 르누아르에게 선물하며 서로의 우 정을 나눈다 . 갈리마르 출판사는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우정어린 편지와 레코드 내용을 정리한 글을 한데 모아 1999년 『친애하는 르누아르에게 (Cher Renoir)』를 출간하였다. 당시 조종사들의 고난과 동지애를 통해 꺼져가는 양심의 불꽃들을 살리고 서로 소통시키려는 영화적 시도로서 르누아르가 자기 생애 최대의 걸작으로 여긴 이 영화의 제작은 아쉽게도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만다 . 하지만 다행히도 데이비드 셀즈닉 제작, 클라렌스 브라운 감독, 클라크 게이블 주연의 「야간 비행 (Vol de Nuit)」 (1933, MGM) 은 오늘날 유튜브에서 시청 가능하다. 야간비행 시청하기



『어린 왕자 』의 영화화 역사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 으로 프랑스 최고의 거장 르누아르와 함께 영화사를 풍미한 미국 명감독 오슨 웰스는 위대한 독일 소설가 카프카의 원작을 각색한 「소송(Procès)」을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전신인 오르세 역에서 촬영할 정도로 유럽 문화에 정통한 시네아스트였다 . 그 역시 『사람들의 땅 』을 각색하며 그 희열을 친구들에게 쏟아냈고 이어서 『어린 왕자 』의 영화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어린 왕자 』를 영화화하려는 그의 제안은 월트 디즈 니사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나 『시민 케인 』에서 오슨 웰스는 이미 어린 왕자의 모험기 형식의 선례를 보여주고 있 다. 그 유명한 ‘로즈버드 ’ 수수께끼를 따라 케인의 어린 시절을 추적해가는 과정은 마치 『어린 왕자 』의 비행사가 어린 왕자의 기원을 풀기 위해 계속 질문을 던지며 그의 죽음을 맞는 것과 유사한 구성을 보인다 . 


노골적으로 자신이 어린 왕자임을 천명한 배우도 출현하였으니 할리우드 신화 속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우상으로 남은 영화배우 겸 카레이서 제임스 딘이다 . 제임 스 딘은 열 살 무렵 생텍스를 직접 만났다고 친구에게 자랑한 적도 있다. 『어린 왕자 』의 영화화라는 위대한 꿈을 지닌 제임스 딘이었지만 그 꿈은 자신의 애마 포르셰(Porsche 550 Spyder)를 몰고 가던 1955년 10월 8일 SR 46 도로에서 처참히 부서져 버렸다. 동료 윌리엄 베 스트 (William Bast)가 제임스 딘의 무덤에 새긴 어린 왕자의 한 마디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라는 묘비명이 그의 어린 왕자 사랑을 전한다 . 제임스 딘이 생전에 가장 아끼던 『어린 왕자』 구절이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셜램(Cholame)의 제임스 딘 메모리얼 파크 소재 묘비명. 윗부분에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라고 에칭으로 새긴 구절이 보인다.


드디어 1967년 『어린 왕자 』가 장편 영화로 탄생하게 되니 파라마운트가 제작한 리투아니아 출신 아루나 스 제브리누아스(Arūnas Žebriūnas)감독의 「어린 왕자 (Malenki Prints)」가 그것이다. 이 작품은 독특한 분장의 캐릭터들 대화로 구성된 판타지로 오늘날 창작물의 수준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 무대 연출과 구성으로 높 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시청하기


리투아니아 출신 아루나스 제브리누아스 감독의 『어린 왕자』 


『어린 왕자』를 영화로 옮기려는 시도 가운데 길들임의 주제를 이미지와 사운드로 잘 살려낸 작품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감독 스탠리 도넌 (Stanley Donen)의 「어린 왕자 (The Little Prince)」(1974) 이다 . 올드 무비 팬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사랑은 비를 타고로 한국 시네필들에게 잘 알려진 스텐리 도넌의 「어린 왕자」는 생동감 넘치는 현대적 애니메이션 , 시대를 앞서는 안무와 음악 , 뱀 역의 발레 댄서 가수 밥 포시(Robert Louis Bob Fosse), 조종사 역의 리처드 컬리(Richard Kelly), 어린 왕자 역의 스티븐 워너(Steven Warner), 여우 역의 진 와일더 (Gene Wilder) 등의 명배우 캐스팅으로 세상의 찬사를 크게 받았다. 특히 원작의 주요 대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어린 왕자와 뱀 그리고 여우의 우정에 근거한 스토리텔링은 원작자 생텍쥐페리 자신도 흡족해했으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과 뮤지컬 실사를 합성하여 성인과 아동이 함께 보며 자신의 상상력에 따라 즐길 수 있게 편집된 명작이다. 특히 여우와 뱀을 연기하는 두 명배우의 노래와 춤이 인상적인데 뱀 역을 맡은 밥 포시의 문 워크를 마이클 잭슨이 그대로 복원하여 크게 성공하기도 하였다 . 

스탠리 도넌의 「어린 왕자」(1974)의 오프닝 크레딧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원조 밥 포시의 안무. 스탠리 도넌의 「어린 왕자」(1974) 



현대적 감수성으로 부활한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 」 
『어린 왕자』의 감동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부활시키려는 시도도 계속되어 왔다. 이 가운데 『어린 왕자』를 읽고 크게 감동한 드림웍스의 「쿵푸 팬더 」감독 마크 오스본 이 원작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8년간의 노력 끝에 장편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를 재탄생시켰다. 2015년 제68회 칸 국제영화제는 이 작품을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하여 개막작으로 상영하기도 하였다 . 

어린 왕자와 여우와 소녀, 

마크 오스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le Petit Prince)」(2015) 


비행사와 어린왕자, 마크 오스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le Petit Prince)」(2015)


생텍스는 일찍이 글과 영상을 통해 세계 시민들 모두에게 전쟁의 공포를 알리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진정한 평화를 염원하는 작가로서 미국의 참전을 요구하였다. 그의 요구대로 미국이 유럽 전선에 일찍 참전하였다면 독일의 항복도 그만큼 빨랐을 것이고 생텍스는 일찍 조국으로 돌아가 시네아스트로서의 꿈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주의 공군과 해군의 공격을 받고서야 참전하게 된다. 우리의 광복도 그만큼 지연된 것이다 . 프랑스 공화국 법령에 의거 하여 1963년 파리의 국립묘지 팡테옹에 안장된 어린 왕자 생텍스 그리고 그를 사랑한 인디애나의 어린 왕자 제임스 딘의 영혼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 


* '아트인라이프 ' 출간 < 월간 태백 > 에 12 회 연재한 동일한 제목의 기사 내용을 반으로 줄이고 <피스레터 > 의 기획 의도에 맞게 수정한 것입니다. 


송태효  불문학 박사로 현재 '어린왕자인문학당' 대표와 제주불교문화대학 불교인문학 교수,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 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 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생텍쥐베리 사람들의 땅, 어린 왕자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8.02.1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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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7.12.20 03:51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어린 왕자의 미술 세계


송태효



화가로서의 꿈의 결실 『어린 왕자』


생텍스(생텍쥐페리의 애칭)는 『어린 왕자』에서 자신이 여섯 살에 화가의 꿈을 접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그의 화가에 대한 열정은 나날이 심화해 갔다. 청년기 시와 편지, 저술 원고의 데생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는 글과 이미지의 조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과감히 폐기해버렸다. 마지막 작품 『어린 왕자』는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하던 화가로서의 꿈의 결실이었다. 언어의 한계성을 그림으로 보완하려는 화가 생텍스의 열정이 그림 동화 『어린 왕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열아홉 살의 생텍스는 파리의 명문 생루이 고등학교(Lycée Saint Louis) 졸업반 재학 중 해군사관학교 입시에 지원한다. 생텍스는 과학 분야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고도 문학 출제 문항에 모순을 제기하고 백지 답안을 제출하여 낙방한다. 이후 파리의 국립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에 입학하여 십오 개월 간 화가들과 교류를 통해 회화와 건축에 대한 열정을 키워간다.


1920년대 군 복무 시절이나 트럭 외판원 시절에도 생텍스는 끊임없이 그림으로 자신의 일상을 표현했다. 1930년대 이후에는 마치 화가 이중섭이 구겨진 담배 은박지를 펼쳐 가난한 가족의 복작거림을 새기듯 식당 메뉴, 책과 편지지 여백에 인생 잡사의 고달픔, 나부의 아름다움, 친구들의 풍자적 초상을 열심히 그렸다. 이렇게 글과 데생이 어우러진 화가로서의 재능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콘수엘로 순신(Consuelo Suncin)과 결혼하면서 한층 성숙해졌다.



초현실주의자들과 생텍스 부부


생텍스의 부인 콘수엘로 순신은 엘살바도르 출신 화가이자 조각가였다. 생텍스와 순신은 동시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빈번한 교류를 가졌다. 특히 21세의 나이에 화단과 결별한 천재 화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과 각별한 사이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중산모자(derby hat) 이미지를 이방인 시각으로 풀어낸 「중산모자를 쓴 남자(Homme chapeau melon)」에서 그녀의 무의식 세계를 교감할 수 있다. 『어린 왕자』의 장미를 연상하면 그녀의 그림이 한층 친밀하게 다가온다.



생텍스는 천재 작가 뒤샹의 체스 상대로 잘 알려져 있다. 생텍스가 어린 왕자와 장미 이야기를 신뢰, 의심, 분석, 추론 혹은 종합, 열거, 형식적 귀납법 같은 데카르트의 정신지도규칙에 따라 논리적으로 풀듯, 데카르트의 방법론에 매료된 뒤샹은 수학 법칙이 적용된 체스를 통해 예술의 진정성을 추구하였다. 데카르트의 수학과 철학을 통해 두 예술가의 우정이 돈독해진 것이다. 생텍스의 부인은 1941년 프랑스에서 미국 롱아일랜드로 이주하여 대저택을 구입한다. 생텍스가 『어린 왕자』를 집필하게 되어 순신이 진정한 ‘어린 왕자 집’이라 부르게 될 이곳에 입주하면서 순신은 인테리어 벽지 색상을 선택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뒤샹은 당시 순신의 내면 세계를 위로하는 색상들을 제시해줄 정도로 순신과 친밀한 사이였다. 프랑스어, 영어와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순신은 미국에 귀화한 뒤샹과 르누아르 이외에도 당시 미국에 머물던 망명 예술가들 특히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같은 초현실주의자들 그리고 잉그리드 버그만(Ingrid Bergman), 장 가뱅(Jean Gabin),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마를렌 디트리히(Marlène Dietrich) 같은 유명 배우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편의를 제공하며 우정을 나누던 화단의 중심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보아뱀과 마그리트의 중산모자


생텍스 역시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았다. 이들의 동인지 「거울(Miroir)」에 생텍스의 핸드 트레이싱(hand tracing)이 실렸을 정도로 초현실주의자들과 생텍스는 서로 교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생텍스의 속이 들여다보이는 보아뱀 그림을 어른들이 모자라고 우기듯, 고정 관념을 지닌 어른들은 일반적 경험에 근거하여 개인의 특수한 경험을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극단을 피해 개별과 보편의 접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초현실주의자들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보아뱀 그림에서 자신들이 꿈꾸던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이상적 이미지를 발견하였다. 특히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그린 중산모자(derby hat)와 생텍스가 그린 코끼리를 통째로 삼키는 보아뱀이 이들의 가교 구실을 하였다. 마그리트는 “그림의 제목은 해설이 아니며 그림은 그 제목의 설명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생텍스가 『어린 왕자』에서 하고 싶은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말은 오해의 근원이며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자는 것이다.



앞서간 평화주의 예술가 생텍스


보들레르 시의 상징성, 프로이트의 무의식, 마르크스의 계급 투쟁을 토대로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던 초현실주의 그룹은 부르주아 문화 타파를 국시로 삼았다. 이들과 달리 이미 러시아 혁명과 스페인 내란에서 과도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희생을 경험한 생텍스는 계급투쟁 너머의 인간성 유대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문학을 추구하였다. 브르통을 위시한 초현실주의자들은 일촉즉발의 긴박한 현실 갈등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생텍스를 비판하다 전쟁이라는 물리적 현실을 겪고 나서야 생텍스를 이해하게 된다. 생텍스는 이미 대륙의 전쟁을 예견하고 그 공포와 폐해를 경고하는 평화주의 메시지를 언론과 문예지에 호소해온 선각자였다. 생텍스는 정신적 장애나 다름없는 편파적 이데올로기 미술 교육에도 일침을 가하고 있다.   


새로운 그림이라는 것이 눈으로 교육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현실에서, 민중에게 화가를 고르게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역설이란 말인가. 모든 요인을 거부할 것.

생텍스, 『수첩(Carnets)』, 갈리마르, 1953, p.201,


생텍스가 마음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평화는 전쟁의 공포를 인식시키고 평화의 기능을 일상에서 누리게 하는 심미적 실천적 평화이다. 이러한 평화는 관습적 이데올로기와 사유의 틀을 벗어나 평화에 관한 새로운 의식 전환을 요구한다. 갈등과 대립의 원인인 증오의 바오밥나무를 제거하는 예술적 교육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어쩌면 평화는 빈센트의 그림 한 작품을 통해서도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진정한 평화는 각자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마음을 길들여야 가능한 평화이다. 『어린 왕자』에서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 생텍스가 유명한 화가들 명단에 올라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생텍스가 그린 고독한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피카소가 그린 카사헤마스(Casagemas)의 죽음을 추모하는 청색 시대 작품들, 그리고 빈센트의 말년 초상화들이 떠오른다. 그 인물들의 눈은 마음의 눈이다. 그리고 빛나는 별이다. 그리고 생텍스도 별이 되어 세상에 평화의 빛을 밝히고 있다.



송태효  불문학 박사로 현재 '어린왕자인문학당' 대표와 제주불교문화대학 불교인문학 교수,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 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 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생텍쥐베리 사람들의 땅, 어린 왕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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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PDF)2017.12.20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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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2017.10.30 14:38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어린왕자가 전하는 길들임의 구도 여행기

 

송태효


▲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와 만난 어린 왕자.

스탠리 도넌의 「어린왕자(The Little Prince)」 (1974)


『어린 왕자』는 어린이와 어른 두 사람의 예기치 않은 만남과 이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행기이다. 이 이야기는 이중의 여행 구조를 지닌다. 길들임과 책임이라는 인간관계의 진실을 찾아낸 어린 왕자의 구도 여행이 그 하나요, 또 하나는 자신 속에서 잠들어버린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찾아가는 비행사의 추억 여행이다. 


비행사의 잊힌 분신이기도 한 어린 왕자는 사랑의 멘토 여우와의 낯선 만남을 통해 길들임이라는 보석 같은 지혜를 깨닫고 소행성 B612로 돌아간다. 화자인 비행사는 하늘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자신의 자가용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륙하였으나 사막에 불시착하여 어린 왕자를 만나 그의 여행담을 들으며 그 기원과 신비를 풀고 일상으로 귀환하게 된다.



사실 어린 왕자는 누구나 그러하듯 순수하기만 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을 사랑하기에 까탈스럽게 구는 장미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새로운 친구를 찾아 이웃 별을 유람한다. 우스꽝스러운 왕, 허영장이, 술 아저씨, 사업가, 지리학자를 만나 실망하나 다행히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로등지기에게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과 정직한 대화를 나눌 수 없어 “어른들은 정말 희한해”라는 말을 반복하며 헤어지고 만다.



지리학자의 추천으로 방문한 지구 사막에 떨어져 처음 만난 것은 징그럽고 다리도 없는 흉측한 뱀이었다. 하지만 뱀은 곧 어린 왕자의 순수함을 알아보고 그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며 다시 찾아오라고 충고한다. 사막의 꽃은 어린 왕자에게 사람들은 뿌리가 없어 제자리를 맴돌며 고통스러워한다고 일러주기도 한다. 모래와 바위와 눈길을 헤치고 마주한 정원에는 무려 오천 송이의 장미가 만발해 있었다. 이 세상에 단 한 송이뿐인 꽃을 갖고 있어 자부심이 대단했던 어린 왕자는 그만 자신이 남겨두고 온 장미 한 송이와 세 개의 화산으로는 위대한 왕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풀밭에 누워 눈물을 흘리고 만다.



▲ 오천송이 장미꽃을 보고 풀밭에 엎드려 우는 초라한 어린 왕자



길들임과 우정



거창하고 심오한 것을 찾아내어 위대한 왕자(grand prince)가 되고자 했던 어린 왕자(little prince)가 여우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관계 맺음으로 하나의 사건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장미에 바친 시간 때문에 그 장미가 그토록 소중하고, 한 송이 장미나 물 한 모금에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구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친구도 사귀고 싶고 알아볼 것도 많다며 떠나가려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위대한 진실을 알려준다. 자신을 길들여야만 친구가 될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길들인 것뿐이라고. 



여우: “제발…날 길들여 줘!”


어린 왕자: “그래, 나도 그러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 찾아볼 친구도 많고 알아볼 것도 많아.”


여우: “길들이는 것들만 알 수 있다니까. 사람들은 이제 뭘 알려고 시간을 들이지 않아. 가게에서 완제품을 사거든. 그런데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 이제 친구도 없는 거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여!” 


어린 왕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여우 : “정말 참을 줄 알아야 해.”



▲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환해질거야"




원래 ‘길들이다’는 ‘어떤 일에 익숙해지다.’ 혹은 ‘행동하는 방법이나 생활 습관을 지도하여 올바르게 나가도록 하다.’라는 뜻을 의미하는데, 이 말은 예전부터 우리도 일상적으로 사용해 온 말이다. 세조의 불경 언해본에 “부처는 길들이는 사람이오.”, “그 마음을 질드려 큰 지혜를 가르치시니” 등 그 용례가 자주 나온다.



이렇듯 ‘길들이다’라는 말은―오늘날 순응적인 인간의 태도를 의미하는 야유의 이미지도 지니게 되었지만―원래 우리말에서는 자연 상태의 이기적인 인간의 마음을 순화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지도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프랑스어 ‘길들이다 apprivoiser’(to tame)는 어원적으로는 친해짐(familiariser)을 말하며 동물을 ‘길들이다’ 혹은 ‘서로 친구가 되다’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생텍쥐페리 역시 길들임을 마음속 순수한 심성을 찾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사용하여 우리의 ‘질드리다’와 유사하게 사용하고 있다.  



『어린 왕자』의 화두로 우뚝 선 길들임이란 사실 관계 맺음으로서의 우정의 또 다른 표현이다. 어린 왕자는 여우가 깨우쳐준 사랑과 우정이라는 길들임의 의미를 깨닫고 비로소 순수한 아이가 되어 과거의 몸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났던 것이다. 이기적이고 호기심 많은 아이가 자신을 기다리는 장미를 찾아 B612로 떠나는 순수한 아이로 돌아간 것이다. 



▲ 300번째 언어인 아랍어 방언 하사냐어(Hassanya)로 번역된 『어린 왕자』





길들임, 진정한 평화의 길



『어린 왕자』는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서 3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2억 부 이상 출간된 세계 시민의 교과서이다. 그뿐 아니라 만화와 소설, 아동문학, TV, 영화, 애니메이션, 연극, 오페라, 뮤지컬, 이미지 패러디, 마리오네트, 샹송, 창작 연주, 퍼포먼스, 패션, 광고, 인문 치유 등 거의 모든 장르에서 『어린 왕자』의 길들임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프랑스 알자스의 어린 왕자 공원, 브라질 파라나의 ‘페투에노 프린시페’(어린 왕자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병원, 일본 하코네의 ‘어린 왕자 박물관’, 경기도 가평의 ‘쁘띠프랑스’ 등 세계 곳곳에서 어린 왕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 어떤 문화 콘텐츠가 이토록 세계의 시민들을 하나의 마음으로 함께하게 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국경 없는 공연 예술 문화의 공간을 창조해냄으로써 어린아이와 어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전하는 『어린 왕자』. 국가 간 평화를 의례적인 조약과 제도 확립으로 담보할 수 없듯이 제도와 공공질서 확립만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할 수 없다. 평화의 뿌리는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고,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길들임에 있다. 어린 왕자가 뱀과 여우 그리고 비행사와 길들여저 친구가 되듯이 말이다. 어린 왕자의 길들임은 우정과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관계 맺음이며, 관계 맺음은 책임 질 줄 아는 것이며, 책임지는 것은 진정 인내를 조건으로 한다. 숫자와 타이틀 경쟁에 멍든 어른들이여 인내심을 갖고 어린 시절의 나에 길들어보자.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평화주의자 레옹 베르트의 어린 시절에 헌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도에만 길들어가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할 뿐이다.





송태효 ㅣ 불문학 박사로 현재 '어린왕자인문학당대표와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등이 있고역서로는 생텍쥐베리 사람들의 땅어린 왕자』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8.01 14:21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어린 왕자가 전하는 평화 연대의 메시지


송태효


경험상 우리는 사랑한다는 것이 우리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생텍쥐페리, 사람들의 땅

 

생텍쥐페리는 1935파리 수아르(Paris Soir)지 리포터로 모스크바를 취재하고, 에어프랑스 후원으로 구입한 자가용 비행기 시문(Simoun)을 타고 지중해 연안을 탐사하였다. 그해 1230일 파리-사이공 비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신의 시문을 타고 이집트로 향하던 생텍쥐페리는 현지 시각 445분 카이로에서 200지점,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하여 사경을 헤매다 닷새 만에 베두인족에게 구조되었다.

 

그 처절한 기아와 갈증의 고통, 고독과의 사투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이방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텍쥐페리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사람들의 땅(Terre des Hommes)(1935)*의 제7사막 한가운데에서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생텍쥐페리는 구조대를 기다리는 긴장되고 간절한 상황에서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의 자신인 어린 왕자를 만났던 것이다. 이후 독일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여 망명한 뉴욕에서 그는 이 어린 왕자를 동화로 창작하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어른들에게 실천적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인간의 대지로 번역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전편인 사람들의 땅은 인질협상가, 우편비행사, 항공노선 탐사가, 특파원, 전쟁리포터로서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기록한 자전적 소설로서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mie Française)의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해 바람, 모래 그리고 별(Wind, Sand and Stars)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같이 미국으로 망명한 위대한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아들 장 르누아르(Jean Renoir)는 전쟁의 공포를 각성시키고 평화적 연대감을 호소하기 위해 사람들의 땅을 영화로 완성하려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쉽게도 그 과정의 기록만 남아 있다.


생텍쥐페리,사람들의 땅(Terre des Hommes), Gallimard, 1939


생텍쥐페리,친애하는 장 르누아르 (Cher Jean Renoir), Gallimard, 1999

 

어린 왕자의 기원은 사람들의 땅마지막 부분인 제8사람들이다. 홀로 해변으로 향하는 야간 기차에 탑승한 생텍쥐페리는 새벽 1시경 열차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텅텅 빈 침대칸과 일등칸과는 달리 외국인으로 꽉 차 있는 삼등칸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프랑스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폴란드 해고 노동자 수백 명이 잠들어 있었다. 경제적인 추세에 떠밀려 유럽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흔들거리며 끌려가고 있는 이방인들이었다.


우연히 어떤 부부 앞에 앉은 생텍쥐페리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끼어 그럭저럭 자리를 만들어 잠자는 어린애 하나를 발견하였다. 빛나는 이마에 삐죽 입술을 내밀고 있는 아이를 보자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떠올랐다. 그는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평화의 아름다운 약속을 발견한다. 그것은 성장하면 깨어져 사라질 동화 속 평화의 어린왕자 모습이었다. 보호해주고, 보살피고, 교육하면 아이들은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왕자는 전쟁의 공포를 무시하는 어른들 속에 잠들어 버린 평화로운 어린 시절의 나의 이미지이다. 예전에 우리 모두는 어린 왕자였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어린왕자가 우리 안에 살고 있었다. 이제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모차르트의 부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생텍쥐페리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 남부에 인질로 남아 있는 그 시대의 어린 왕자유대인 반군국주의 평화주의 시인레옹 베르트(1878~1955)에게 자신의 어린 왕자를 헌정하였다.

 

생텍쥐페리는 평화를 논리로 풀려하지 않는다. 나아가 논리로 설명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의 인생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정치가들이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거창한 말의 진정성과 논리성을 따지려 들지도 않는다. 그들의 말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말이 자신의 요구에 상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이다. 평화를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동료들과의 진정한 연대감이기 때문이다.

 

너는 관계의 매듭이고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너의 관계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너의 관계는 너에 의존하여 존재하지.

사원이 돌 하나하나로 존재하듯.

네가 돌 하나를 빼내면 사원은 붕괴하고 말지.

-생텍쥐페리, 성채(Citadelle) , Gallimard, 1948

 

연대를 이루는 나 자신이 사회 자체이며 하나의 국가라는 것이다. 사회와 국가가 나로 인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역할일지라도 그것을 존중하는 사회는 평화의 선물로서 보편적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평화롭게 살다 평화롭게 죽을 것이다. 평화는 논리적 설득의 산물이 아니라 차라리 논리를 단순명료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이데올로기의 효율성이 증명된다 해도 이데올로기들끼리는 여전히 서로 대립할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바오밥나무의 자양분인 위선과의 싸움 아닐까.


생텍쥐페리, 성채(Citadelle)Gallimard, 1948


조세희, 시간여행문학과 지성사, 1983

 

한국 전쟁으로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은 작가 조세희의 작품 가운데 어린 왕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 세 편이나 된다. 시간 여행(문학과지성사, 1983)에 실린 사막에서, 나무 한 그루 서 있거라, 어린 왕자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어린 왕자에서 주인공인 작가는 이치에 안 닿는 일이라고 말하며 어린 왕자에게 감옥에 갇힌 자기 친구를 만나 위로해줄 것을 부탁하며 바오밥나무의 위험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비행사의 책은 이 세상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바오밥나무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오밥나무는 일종의 약속 언어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만 번 말해도 많은 것이 아니다.

 

평화는 바오밥나무들의 제거를 전제로 한다. 평화의 길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바오밥나무, 평화를 위장한 바오밥나무들이 진정한 연대감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무지와 탐욕의 바오밥나무 씨가 이룬 평화 협정을 지킬 필요도 없다. 270여 개 이상의 언어로 읽히는 어린 왕자는 종교와 민족, 계층과 세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의 바오밥나무들과 싸우는 평화지킴이들의 연결 고리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반전주의 문학으로서의 실천적 평화 메시지가 이 땅의 평화 운동을 위한 하나의 디딤돌로 작용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땅의 바오밥나무는 아닌지 자문하며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송태효 불문학 박사로 현재 '어린왕자인문학당' 대표와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 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 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생텍쥐베리 사람들의 땅, 어린 왕자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7.08.01 12:04


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피스레터> 합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2016년 7월 창간 시기부터 2017년 6월까지 발간한 통권1호~통권7호의 내용을 묶어 발간한 이번 합본호를 통해, 깊이 있는내용과 쉬운 글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글을 주제와 필자별로 보다 쉽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합본호의 용량이 커서 분할하여 업로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1.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2.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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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6.19 14:31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평화주의자에게 바친『어린 왕자』


송태효



어린 왕자의 고향 뉴욕


생텍쥐페리의 소설들은 우편비행사 혹은 전투조종사로서의 비행일지의 산물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생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로서 전쟁에서 체험한 비인간적 참혹함 속에서도 인간의 진실에 기초한 연대감을 상기시키는 글을 쓰는 데 주력하였다.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1943년 당시 미국으로 이주한 그의 부인 콘수엘로 순신이 구입한 롱아일랜드의 저택에서 집필되어 1943년 뉴욕의 레이날 앤 히치콕(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동치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의 고향이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말이다. 프랑스에서 어린 왕자(Le Petit Prince)가 초판과 동일한 문장과 그림으로 출판되기까지는 거의 4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뱀과 코끼리


어린 왕자는 그림 동화다. 이야기는 작가가 여섯 살 시절 읽은 원시림 이야기책에 관한 단상으로 시작한다. 비행사는 씹지도 않고 삼킨 맹수를 소화하느라 여섯 달 동안 잠만 자는 보아뱀 이야기를 읽고 그 책에 그려진 그림을 모사해보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 그림은 맹수를 삼키는 노랗고 독성 강한 뱀을 그린 그림이었다. 어린 왕자 삽화 가운데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크고 선명한 오브제는 아이들의 두려움의 대상인 뱀이다. 물론 이 뱀은 이집트 코브라와 케이프 코브라를 합성한 생텍쥐페리의 상상의 뱀이다.

▲ 뱀과 맹수의 먹고 먹히는 싸움이 인간의 현실임을 보여주는 그림 


이 그림을 토대로 뱀과 맹수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본 어린 아이는 무엇인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뱀에 관해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자신만의 첫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그 걸작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며 무섭지 않은지 물었다. 그러나 모자가 뭐가 무서운데?”라는 비웃음과 야유만 들려올 뿐이었다.


▲ 어른들이 모자라고 우긴 뱀 그림. 오른쪽 끝에 눈이 달려 있다.
 

그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었다. 모자처럼 보이는 그림이지만 좌우가 비대칭이고 그림 오른쪽 끝에 눈이 달려 있다. 거대한 코끼리를 삼키고 소화하는 보아 뱀 그림이었다.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 뱀 속을 그렸다. 생텍쥐페리는 어른들은 설명 없으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푸념한다. 어른들에게는 언제나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 코끼리와 뱀에 관한 인식의 틀을 깨는 생텍쥐페리의 그림


일반적으로 코끼리는 선한 초식 동물이요 뱀은 사악한 맹수로 인식된다. 순한 코끼리와 위험한 뱀의 이미지가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모든 뱀 그림에 이러한 일반적 경험을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전시 중에 그려낸 생텍쥐페리의 뱀은 보편적 이미지로서의 뱀이 아니라 그만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코끼리 이미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거대한 코끼리들이 이룬 위험한 위태로운 별의 모습을 보라. 코끼리는 순한 이미지로 대변되지만 어린 왕자의 경우는 이와 다르게 거대한 위험을 상징하기도 한다.


▲ 덩치가 커서 거추장스런 코끼리를 보여주는 그림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수고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메모들을 남기며 글을 써갔다. 이 메모는 아무 생각 없이 이 글과 그림을 읽어갈 독자들을 위한 배려이자 출간인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2012년 파리의 아트큐리얼(Artcurial) 경매에 나왔던 어린 왕자 자필 원고에 적힌 메모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뱀이 평화를, 코끼리가 전쟁을 암시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결론적으로 코끼리는 거대한 나치의 폭력이요 뱀은 그 폭력을 무너뜨리는 작은 진실로서의 프랑스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레옹 베르트에게 헌정한 이유


이러한 뱀과 코끼리의 상징에 관한 논의는 어린 왕자저술의 동기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레옹 베르트에게 바쳤다. 이 어른이야말로 세상에서 그와 가장 친한 친구로서, 아동 도서를 이해하는 어른인데, 프랑스에서 굶주린 채 추위에 떨며 살고 있어 그 어른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 레옹 베르트(1914)와 생텍쥐페리(1920)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서문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소개한 유대인 레옹 베르트(1878~1955)는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 무용가, 수영선수, 여행가, 기자, 반군국주의 평화주의자였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자 쥐라 지방으로 피신하여, 그러한 상황을 자초한 프랑스 정부를 매트리스 왕국(Royaume du Matelas)’으로 비유한 단편집 33을 썼다. 생텍쥐페리의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1친구에게 보내는 편지33의 서문으로 쓴 글이다. 드골 망명 정부의 노선과 대립하던 생텍쥐페리는 조국을 떠나기를 주저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주전파로서 미국의 참전을 호소하기 위해 망명길에 올랐다. 친구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미국에 머물던 생텍쥐페리는 조국에서 추위와 기아에 시달리며 평화를 고대하던 친구를 위안하려 붓과 펜을 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어린 왕자(훌륭한 예술작품이 대부분 그러하듯) 진실한 평화주의자의 우정의 산물이다.


레옹 베르트에게 어린 왕자를 헌정한 생텍쥐페리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설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그들을 야만인 취급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평화주의를 간직하였다, 전쟁을 불사하는 이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설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텍쥐페리는 그들을 야만인 취급해서는 안 되며, 그들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를 이해하고 노력하려 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살려내겠다고 우기는 그것을 전쟁 스스로가 파괴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분단의 현실에서 전쟁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서로 미워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의 땅에 발을 디딘, 같은 조상을 둔 민족으로서 서로 굳게 맺어진 사이 아닌가? 그리고 새로운 통합을 이루기 위하여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서로 대립하는 것이야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이데올로기가 서로를 잡아먹는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텍쥐페리의 말대로 전쟁의 두려움을 서로 인식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 보자. 어린 왕자속에 진정한 평화주의자의 형이상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



송태효 | 불문학 박사로 현재는 어린왕자인문학당대표와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 <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생텍쥐페리 <사람들의 땅> <어린 왕자> 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