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20. 2. 20. 11:25

[한반도 이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긴 호흡과 용기

 

정영철

 

 

2020년 새해도 벌써 두 달이 넘는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많은 경우, 가는 해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는 해의 희망과 소망을 말하고 기대를 품는 것이 새해를 맞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새해를 맞는 분위기가 예년과는 크게 달라졌다. 2019년 소위 ‘하노이 교착’이후, 연말 시한과 함께 ‘새로운 길’을 경고한 북, 그것을 마치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지난 해 연말 이례적으로 4일에 걸친 전원회의, 그리고 신년사를 대신하여 전원회의 보도문을 <노동신문>에 크게 싣는 모습을 보면서, 올 신년은 기대감보다는 우려감이, 그리고 2020년은 과연 어떠한 대격변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 긴장감을 가지고 맞이하게 되었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북이 제시했던 연말 시한은 이미 지나갔고, 그에 맞춰 북은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내부적으로는 자력갱생에 기초한 자립경제를, 외부적으로는 외교적인 다변화와 함께, 강력한 군사적 구축’을 공언하고 나섰다. ‘정면돌파’를 선언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예측했던 것과 달리 훨씬 더 부드러운 표현, 그리고 오히려 외부를 향한 공격적인 모습보다는 자신들 내부를 추스르고, 내부의 자원을 총동원하여 경제를 건설하겠다는 것에서 여전히 북은 대화와 협상을 바라고 있고, 파국보다는 대타협을 통한 자신들의 경제건설을 위한 여건을 마련하길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원회의 보도문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섬뜩함, 예를 들자면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든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무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계속 강화해 나가는 것은 우리 당의 드팀없는 국방건설목표”라고 하면서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긴장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올 3-4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의 향방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따라 한반도의 심각한 위기 상황이 조성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북의 전원회의를 통한 ‘새로운 길’이 선언되고 나서부터, 우리 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북과 대화에 열려 있으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엔 제재에 해당되지 않는 개별관광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그 동안 남북이 미국에 너무 많이 의존했다고 하면서, 이제는 남북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뒷북’이지만, 안하는 것보다 낫다는 위안은 될 수 있겠다. 또한, 이 과정에서 미국 대사의 오만방자한 내정간섭의 발언이 나오는 등, 미국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남북관계에 간섭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했으니, 그 성과가 작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우리 국민들이 북을 개별여행 할 수 있는 채널이 과연 존재하며, 북이 이에 대해 비자나 여행허가증을 발급해 줄 것인지, 금강산-개성을 방치한 채로 ‘제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꼼수’를 부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미 유럽 및 중국의 많은 관광객들은 북에 개별 관광을 즐기고 있으며, 인터넷 공간을 조금만 뒤져보면 이들의 관광 모습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정부 발표는 이제야 그 대열에 끼겠다고 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눈치 속에 아무것도 못하다가, 북의 ‘새로운 길’ 앞에 기껏해야 내놓은 것이 남들이 이미 다 하고 있는 개별 관광이나 하자는 것은 ‘뒷북’일뿐만 아니라, 미국의 제재에 충실한 동의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남북관계’를 독자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창조적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남북관계라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공간이 있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문제가 우리‘만’의 문제이며, 그렇기에 독불장군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사실은, 갈수록 남북관계의 문제가 ‘보편화되고, 세계화되고’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이해관계가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하고, 또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앞세워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무언가 창조적이고, 용기있는 행동을 기대했던 것에 한 참 미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우리에게 그러한 용기가 없는 것인지, 당당하게 정도를 걷고자 하는 의지와 확신이 없는 것인지....

 

남북관계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님은 이미 오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될 듯 될 듯 하다 중도에 다시금 후퇴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긴 호흡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보고, 뚜벅뚜벅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정도란 남북관계를 우리의 희망과 의지에 맞게 풀어나가는 것을 의미하며,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의 종속이 금강산 관광의 파국을 가져왔고, 판문점과 평양에서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을 향한 약속이 결국 실망과 배신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만’이 아니라, 그런 의지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남과 북 모두 방역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의도치 않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북에 부족한 보건 의료 관련 지원을 더 과감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제재에 눈치보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우리의 ‘용기’가 없이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못한 상황이다. 긴 호흡으로, 정도를 걷되, 용기있는 행동으로 나설 때다.

 

2006년 어린이어깨동무 설립 10돌을 맞아 경의선 도라역에서 열린 평화대행진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철책선에 평화를 기원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정영철ㅣ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로 상경해 공학을 전공하다 진로를 바꿔 사회학을 공부하였다. 북한, 통일, 평화에 대한 연구가 관심사이며, 지금은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곧 어린이의 미래라는 생각에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 발을 들여놓고 일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 웹진 구독하기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