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 음식으로 만나는 남과 북]
대한민국의 대표 생선이 된 함경도의 생선과 음식 문화
명태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명태는 북한을 대표하는 생선이자 한민족 특유의 음식이었다. 러시아어 민타이(минтай), 중국어 밍타이(明太), 일본어 멘타이(明太)는 모두 명태에서 유래한 말이다. 명태에 관해 가장 오래된 기록은 함경도 회령에서 근무했던 무관(武官) 부자(父子)의 일기인 부북일기(赴北日記) 1645년 4월 20일자에 “판관이 생대구 2마리, 생명태(生明太) 5마리를 보내주었다”로 나온다.
함경도의 생선 명태와 명태매운탕
명태라는 이름이 ‘명천’의 ‘태’씨에서 왔다는 임하필기(林下筆記, 1871)의 전설 같은 이야기도 함경북도 명천이 무대다. 북한에서는 칠보산 근처 명천읍 보천마을에 명태란 이름을 만든 주인공인 태씨가 사는 '명태집'이 있다는 이야기가 잡지나 책에 자주 등장한다. 명태는 함경도의 특산물로 빠지지 않는다. 특히 신포의 명태와 명란젓이 유명하다. 북한의 천리마(2009년 10호) 잡지에는 명태에 관한 과장이 섞인 기사가 나온다. '명태 생선국은 입맛을 잃고 죽음의 문어구에서 헤매던 사람들에게도 생기와 활력을 주는 특효 있는 명약이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한겨울에 뜨뜻한 아래 구들에서 얼벌벌하게(얼얼하게) 한 그릇만 먹어도 10년 묵은 고뿔이 뚝 떨어진다는 명태 생선국이며 명태의 내장은 다 꺼내고 대신 갖은 양념을 한 순대 감을 다져 넣어 처마 끝에 주렁주렁 매달았다가 설명절 날 아침에 센 불에 푹 쪄내는 명태 통 순대, 대소한의 강추위에 얼대로 얼고 마를대로 말라 잘 타갠 솜 같이 부풀어 난 북어(마른 명태)를 쭉쭉 찢어 먹는 맛이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지경이다.' 재료 그대로의 맛에 얼큰한 고춧가루를 섞어 먹는 함경도식 조리법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명태매운탕은 2017년에 북한의 국가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명태매운탕은 줄여서 명태국으로도 부른다. 조리법은 기본적으로 명태 대가리 국물에 명태와 알, 고지(명태 수컷 정소), 두부를 넣고 고추장으로 간을 한 음식이다. 여기에 게살을 넣어 맛을 돋구기도 하고 소고기 맑은 장국을 국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용대리 황태덕장
북한 명태 사정과 남북한 명태 방류 사업
북한에서는 음력 11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를 ‘명태철(명태잡이철)’이라고 한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명태는 북한의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김일성은 ‘우리나라에서는 인민들의 부식물 문제를 푸는 데서 물고기 생산을 늘이는 것이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로동신문 1975년 11월 25일자)라고 했다. 당시 명태 어로를 '명태폭포 쏟아지네' (조선문학 1974년 3월)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최근 들어 남한과 마찬가지로 명태 수확량이 줄어들면서 2017년부터 함경북도 련진수산사업소의 주도 하에 ‘명태 인공알 받이’와 ‘새끼명태 기르기’를 시도해 2017년 4월말부터 5월 상순까지 수십만 마리의 새끼명태를 여러 차례에 걸쳐 동해에 놓아주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남한의 명태는 거의 사라졌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고성 앞바다에 명태 122만6000마리를 방류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재포획된 방류 개체는 총 4마리가 전부다. 해양수산부는 2019년부터 수산자원관리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명태의 포획금지기간을 연중으로 신설함에 따라 앞으로는 대한민국 산 명태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완전이 없어졌다. 조선시대부터 함경도, 강원도 앞 바다에서 잡힌 명태의 주 소비처는 서울과 경상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전체였다. 겨울에는 얼린 동태로, 봄 여름 가을에는 북어나 황태로 남쪽 사람들의 밥상과 제사상에 명태는 빠지지 않던 생선이었다.
고성 해양심층 고성태
명태를 부르는 다양한 이름들
명태는 크게 생태와 마른 명태로 나누어 이름이 구분된다. ‘선태’鮮太는 생선명태生鮮明太의 약자인데, ‘태어’太魚와 함께 생태를 지칭한다. ‘동태’凍太는 동해안 일대와 서울에서 부르던 명칭으로 몽둥이처럼 딱딱하게 자연상태에서 얼은 생태를 말한다. 망태網太는 일반적으로 그물로 잡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함경남도의 방언으로 그물로 잡는 것 중에서도 가장 크면서 비싼 명태를 지칭한다. 크기에 따른 구분으로는 ‘왜태’와 ‘애태’가 있는데, 왜태는 함경남도의 방언으로 특대特大의 명태를 말한다. 왜태와 반대되는 의미의 애태 역시 함경남도 방언으로 ‘막물태’로도 불린다. ‘애’ 또는 ‘아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아주 작은 명태를 말한다. 잡히는 지역으로 명태를 구분하기도 한다. ‘강태’江太는 강에서 잡히는 명태가 아니라 강원도에서 잡히는 명태를 말한다. 서울 지역에서는 색이 검고 가벼워 품질이 나쁜 건명태를 부르는 말이었다. ‘간태’杆太는 강원도 간성군 연안의 명태를 일컫던 말이다. 원산에서도 강원도산 명태를 강태 또는 간태라 불렀다. 그밖에 반 건조한 ‘코다리’와 어린 명태인 ‘노가리’도 있다. 현재 북한에서 많이 먹는 마른 명태로는 ‘짝태’가 있다.
북한의 노랑태 대한민국에서 황태가 되다
원산 이북의 추운 땅에서 만들어진 북어를 사람들은 노랑태 또는 더덕북어라 불렀다. 지금 우리가 먹는 황태다. 속이 노랗고 포실하게 살이 오른 황태는 분단 이전에는 남한 땅에서 만들 수 있는 먹거리가 아니었다. 부드러운 황태가 1950년대 말 실향민들에 의해 횡계의 용대리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남한 사람들은 황태를 비로소 소비하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황태나 북어는 러시아산 명태를 인제군 용대리와 평창군 횡계리에서 주로 가공한다. 북한의 음식 문화가 남한에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한 예다. 1973년 3월 12일 『동아일보』 기사는 남한에서의 황태 역사를 선명히 증언해주고 있다. “휴전 3년 뒤인 1956년이었지요. 그해 봄부터 노랑태를 만들 수 있음직한 곳을 찾아 헤매던 중 대관령에 들렀을 때 손뼉을 쳤지요. 대관령 원주민들이 가을에 동해안에 내려가 명태를 사다가 일부는 먹고 나머지는 다음해에 먹으려고 새끼로 꿰어 처마 밑에 걸어두곤 하는데 이것이 봄이 되면 껍질이 노랗게 되고 고깃살도 폭신폭신해지는 게 훌륭한 노랑태가 아니겠어요.”
우리 명태는 없지만 황태와 북어 문화는 남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명태가 사라지면서 생태 문화도 대한민국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북이건 남이건 명태가 풍성한 동해 바다를 기대한다. 점심에는 횡계에서 북어 해장국을 먹고, 저녁에는 함경도의 명태 매운탕을 먹을 날을 꿈꾼다.
고성 거진항 황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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