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극도로 예민한 중2 스물아홉이 모였다.
그중 담임이 가장 예민할 때 생기는 일들에 관하여.
마지막 이야기. 다정한 작별
주예지
대학 시절, 부산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새내기 오티에서 처음 얼굴을 보고 대학 다니던 내내 강의도 같이 듣고 졸업해서 임용 공부도 같이 했던, 마음을 같이한 단짝친구였다. 친구가 서울에서의 짐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가던 날, KTX를 타기 전 친구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청춘 드라마에 나오는 아름다운 이별 장면은 아니었다. 추운 겨울날에 눈물, 콧물 찔찔 흘리면서 가지 말라고 한 번 더 질척이는 완벽한 ‘진상’이었다.-심지어 연인도 아닌 친구이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서 서로 웃곤 한다. 그 때는 이제 다시 지난 6년간의 세월처럼 같이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생각을 나누고 하루 종일 붙어 지내는 시간이 없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울지 말라는 이야기는 없지 않은가. 한참을 울고 난 이후에야 친구를 놓아줄 수 있었다.
◎
겨울 방학이 지났다. 봄방학까지 남은 일주일 동안 학교에 나와 마무리 정리를 한다. 교실 사물함과 책상 속도 비우고, 청소도 하고,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새해가 된지 한 달 정도가 지났지만 보던 얼굴들이 익숙해서 그런지 여전히 2018년인 듯하다. 참 애매한 일주일이다. 생활기록부 점검 등 업무는 많지만 수업을 하기에는 곤란하다. 방방 뜨는 분위기에 집중해서 수업을 듣는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뭐를 할까 고민하다가 자습이나 독서를 시키고 심심한 아이들은 국어 관련 퀴즈를 준비해가서 학습지를 채우면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다 보니 마지막 수업 날이 왔다. 사실 교과 수업에 들어가는 반은 딱히 이별 멘트를 준비하지 않았다. 물론 국어가 일주일에 네 시간이나 들어서 정이 든 아이들도 많지만 기본적으로 담임이 아니어서 내 새끼(?)라는 생각이 덜하기 때문일까. 이별이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마지막을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고개 숙인 정수리만 보고 헤어지기는 아쉬워 고민하다가 종치기 2분 전에 잠깐 얼굴 보면서 인사하고 헤어지자고 슬쩍 말을 건네 본다. 자다가 일어나라는 소리에 귀찮아서 눈을 반쯤 뜨는 아이, 문제집 풀다가 슬쩍 눈길을 주는 아이, 종 치기만을 기다리면서 시계에서 눈을 못 떼는 아이, 무슨 말을 할까 궁금증이 묻어 있는 아이. 가지각색의 얼굴들이 교실에 차오른다. 그냥 잘 지내라고 인사나 하려고 했는데 날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에 잠시 후회한다. 뭔 말이라도 준비해 올 걸. 준비 안 된 상투적인 아무 말이 입 밖으로 나온다.
1년 동안 고생했어요. 2반 덕분에 즐겁게 수업할 수 있었어요. 음, 올해 3학년은 안 할 것 같기는 한데 마주치면 인사 정도는 해 줄 거죠? 방학 잘 보내세요.
글로 보니까 더 멋없다. 그래도 1년 동안 얼굴을 맞댄 아이들인데. 스스로의 멋없음에 탄식하면서 문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박수 소리가 들린다. 충동적인 마지막 인사에 예상치 못한 박수여서 더 놀랐다. 이런 멋없는 마지막 멘트에도 박수를 쳐 주는 아이들이 참 고맙다. 1년 동안 수업할 때 가장 애 먹은 반도 예외 없이 박수를 보내 주었다. 박수를 친 건 아이들이었지만 정작 받는 사람이 더 고맙고 참 기분 좋은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교과 수업 아이들과 마지막을 보내고 이제 우리 반 아이들이 남았다. 교사가 되기 전에 마지막 헤어짐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꽤나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을 꿈꿔 왔기 때문에 나중에 학교에 가면 아이들과 하고 싶은 이것저것 목록이 있었는데 그 중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바로 마지막 헤어짐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헤어질 때 감동적인 장면, 눈물과 함께하는 뭐 그런. 작년에는 신규인 것을 고백했었다. 아이들이 몇 살이냐, 선생님 처음이냐, 어디 학교에서 왔느냐… 끈질기게 물어도 “중학교는 처음이야^^”라면서 철벽 방어를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너희들이 첫 제자였다고 털어 놓았다. 그동안 서툴렀던 것들이 많았을 텐데 이해해주고 잘 따라와 줘서 고맙다고 나름 혼자만의 감동을 받았었다. 서른 명이 다 모인 교실에서 아이들을 이렇게 마주하는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참 아쉬웠다. 이제 다시는 아이들을 이렇게 볼 수 없다는 것이 퍽 섭섭했다. 이별의 공허함은 다시는 이 순간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아쉬움에서 온다. 아이가 먼 곳으로 전학을 가거나 해외로 유학을 갈 때 어쩌면 이 아이와 평생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괜히 울컥한다. 아이들을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낼 때도 이제 각자 다른 반으로 뿔뿔이 흩어져 다시는 이렇게 서른 쌍의 눈동자를 마주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괜히 울컥한다.
첫 해에 비해 아이들과의 관계가 어려웠던 이번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어려웠다.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보통 시원섭섭함인데, 이 중 시원함과 섭섭함이 차지하는 비율이 문제이다. 다 끝난 마당에 솔직해지자면 이번 아이들은 '시원'섭섭하다. 더 이상 아이들 간의 관계 문제로 골머리 앓지 않아도 되는 구나. 더 이상 학부모들과의 전화로 긴장할 일이 없겠구나. 물론 또 다른 아이들, 또 다른 학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이 반을 벗어난다는 것이 해방감을 주었다. 그래도 막상 마지막으로 본다고 하니 마음이 또 싱숭생숭하다. 마지막 종례를 하러 들어가는데 교실 불이 꺼져있다. 들어서는데 칠판에 정성스럽게 쓰인 ‘주예지 선생님, 사랑합니다.’ 글씨와 꽃다발과 편지를 건네주는 작은 손이 보인다. 남자 아이들은 서로 안아드리라고 장난을 치고 있다.-물론 아무도 안아주지 않았다.- 나도 머쓱하게 괜한 말을 해본다. “우리 이런 거 하는 사이 아니잖아, 왜 이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놀라우면서도 민망하다. 깜짝 파티가 한 세심한 여자 아이의 주도 아래 진행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내심 기특하고 고맙다.
방송으로 종업식이 끝나고 마지막 종례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돌이켜 보면 미안한 것도 많았고, 고마운 것도 참 많았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차고도 넘쳤다. 그런데 얼른 가고 싶어 가방을 매고 친구들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런 아이들이다. 끝나고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갈 피씨방과 맛있게 먹을 떡볶이가 눈에 아른거려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이다. 결국 1년 동안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만 전한 채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고 아이들을 보냈다. 아무리 시원함이 컸다고 해도 조금 남아 있는 섭섭함이 고개를 들어 존재감을 알린다. 다정한 말 한 마디 못하고 보낸 것이 못내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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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친구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사실 대학 초부터 그 친구는 졸업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별을 두려워하던 ‘쫄보’였던 나는 언젠가 그 친구에게 큰 마음을 먹고 통보했었다. 어차피 너 부산 가야 하니까 너무 친해지지 말자고. 지금부터 정 떼자고. 그런 바보 같은 모진 소리에도 대학 내내 곁을 지켜주었던 친구가 참 고맙다. 부산으로 떠날 때 친구는 참 다정했다. 또 보면 된다고, 부산에 친구가 있으면 놀러 오기 얼마나 좋은 줄 아냐고, 자주 보자고.-친구 말대로 부산에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매 여름마다 부산에 놀러 간다.- 또 보자고 안아주던 친구의 다정한 작별처럼 아이들도 다음을 기약하며 이제 놓아주어야겠다. 5년 뒤 스무 살의 나에게 쓴 편지를 인질로 강제 소환할 그 때까지.
다정하게, 안녕.
주예지 ㅣ 국어가 어렵다는 아이들의 투정 어린 원성에 나도 어렵다며 유치한 설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는 국어교사입니다. 2017년에 목동중학교에 교사로서 첫발을 디디고 2년 동안 중2 아이들과 함께 지냈고 2019년에는 중2를 맡지 않겠다며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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