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만나는 남과 북]
녹두지짐과 빈대떡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녹두를 재료로 사용한 녹두지짐은 북한, 특히 평양의 특산 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같은 음식을 대한민국에서는 빈대떡으로 부른다. 조선료리협회 공식 기관잡지인 ‘조선료리’ 2011년 2호에 실린 '조선의 특산 음식, 녹두지짐'이란 글에는'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녹두 지짐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민족 음식으로서 맛이 아주 좋습니다.》지짐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민족 음식의 하나이다.'라고 적고 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직접 언급했을 정도로 녹두지짐은 북한을 대표하는 민족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평양에서 발간된 '우리 민족료리’(2008, 근로단체출판사)에는 녹두 지짐을 김치, 불고기와 함께 조선의 3대 기호음식으로 꼽을 정도다. 거기에다 평양 4대 음식으로 꼽히는 평양온반, 평양냉면, 녹두지짐, 대동강 숭어국에도 들어 갈 만큼 녹두지짐은 평안도와 평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북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낟알 가루를 물이나 우유, 과일 즙에 개서 지져 먹는 것은 서남아시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도 있지만 그곳에서는 물기가 거의 없이 동글 납작한 지진 빵 비슷하게 만들고 중국에서는 과자처럼 만들고 있다.'(조선료리 2011년 2호)라고 '지짐'이 한민족 특유의 음식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같은 기사에서는 '녹두가 세나라시기(삼국시대) 이전부터 재배되었고 녹두지짐 가공법이 단순한 것으로 보아 우리 인민들이 음식을 분명히 고대나 세나라시기에도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기록상으로는 1670년대에 쓰여 진 《음식지미방》에 처음 나온다. 당시의 녹두 지짐은 녹두 반죽을 지짐판에 조금 떠놓고 우에 삶은 밤을 으깨여 꿀에 버무린 것을 놓은 다음 다시 녹두 간 것을 씌워 지지고 그 우에 잣과 대추를 박은 것이었다. 그런데 18-19 세기 이후부터 지짐은 소를 넣지 않고 그냥 지진 것만을 가리키게 되였고 소를 넣고 지진 지짐은 평안도, 함경도를 비롯한 여러 지방에서 《부꾸미》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지난날 결혼식이나 환갑과 같은 경사로울 때의 큰상은 물론 제상에도 녹두 지짐을 놓는 것이 풍습으로 되여 있었는데 기름기가 많은 고기를 높이 괼 때 밑받침 용으로 널리 쓰이였다. 우리 인민들은 녹두 지짐을 대사(큰일)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특식으로 지져 먹군 하였다. 콩류는 북쪽 지방에서 먼저 재배 되여 남쪽 지방에 보급 되였으므로 녹두지짐도 북쪽 지방 주민들이 먼저 만들어 발전시킨 음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발전 상황을 전하고 있다.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 지방의 지짐은 녹두를 간 것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버무려두고 지져는데 서울의 빈대떡보다 그 크기가 3배나 되고 두께도 2배나 된다. '이것은 평안도 지방 사람들의 소박하면서도 호방하고 담대한 성격에 어울리게 먹음직스럽게 가공 된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전한다. 1948년 대한민국에서 발간된 '조선상식'이란 책에는 빈대떡이 나오는데 '평안도에서는 배추나 김치는 물론 돼지고기를 반드시 넣어 먹었다.'다고 나와 지금의 평양식 녹두지짐이 그때와 비슷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료리 1992년 4호에는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녹두지짐을 맛있게 만들었다'란 기사가 등장한다. 조리법은 '평남면옥' 의 최지홍 요리사다. 그가 소개 하는 녹두지짐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
녹두지짐 한그릇 분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음식감들로는 녹두 200g, 돼지고기(비게가 붙은 것) 40g, 배추김치 50g, 고추 2g, 소금 1g, 마늘 5g, 과 40g이다. 녹두는 먼저 타개여 물에 3시 간 가량 불구었다가 껍질을 벗기고 망에 보드랍게 갈아 놓는다. 녹두 지짐의 닉닉한(기름진) 맛을 없애는 역할을 하는 배추김치는 주로 섬유질이 적은 잎부분을 쓰는 것이 좋다. 김치는 물에 헹구어 잘게 채 치며 마늘과 파는 다져 놓는다. 붉은 통고추 (마른 것)를 물에 불 군 다음 잘게 채치거나 다져서 이용하면 보기도 좋고 입맛도 돋구어 준다. 비계는 얇게 편을 떠서 끓는 물에 살짝 삶아 놓으며 나머지 고기도 끓는 물에 삶은 다음 다져 놓는다. 그것은 돼지고기가 녹두보다 익는 속도가 뜨므로(늦으므로) 지짐을 지질 때 돼지고기를 완전히 익히는 사이에 지짐이 타기 때문이다. 갈아 놓은 녹두에 잘게 채친 배추와 돼지고기, 다진 마늘과 파, 고추를 넣은 다음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데 이때 기름을 약간 넣으면 지짐을 지질 때 잘 부풀어 나지 않고 맛도 좋아진다. 섞을 때 보조 음식 감과 녹두의 비율을 잘 선정하여야 한다. 경험에 의하면 보조 음식감을 녹두의 50% 정도로 하였을 때 입맛도 좋고 색과 모양에도 손상을 주지 않았다.
지짐을 잘 지지는 것은 녹두 지짐을 맛있게 만들기 위한 중요한 조건의 하나이다. 지짐은 여러 가지 기름으로 지질 수 있지만 녹두의 비리고 탑탑한(시원하지 못한) 맛을 없애고 고소한 맛을 내게 하는 데는 돼지기름이 좋다. 우리 식당에서는 국수 국물을 만들 때 나오는 돼지기름과 닭기름을 걷어 정제하여 물기가 없이 잘 졸여 섞어 쓰는데, 이것은 잘 굳지 않으며 지짐의 입맛을 좋게 하고 색을 곱게 내는 데서도 돼지기름에 못지않다. 지짐을 지질 때 온도를 잘 조절하여야 한다. 온도가 지내 낮으면 색이 잘 붙지 않고 맛도 잘 나지 않으며 온도가 너무 높으면 지짐이 갈라 터지고 속이 채 익지 않은 상태에서 겉이 탈수 있다. 경험에 의하면 단 지짐판에 돼지기름을 두르고 물을 떨구었을 때 쏴 소리가 나는 정도의 온도에서 지짐감을 두고 120~130℃의 온도에서 지졌을 때 고소하고 노릿노릿해져 먹음직스럽게 되였다. 녹두지짐은 가운데 부분이 약간 설었다 할 정도까지 지진 다음 뒤집어 지지는 것이 좋다. 그래야 뒤집을 때 지짐감이 흩어지지 않는다. 지지는 과정에 타지 않게 기름을 자주 발라주고 지짐 술로 꼭꼭 눌러 가면서 잡아 주어야한다. 녹두 지짐이 다되면 접시에 두 점씩 담아 식기 전에 초간장과 함께 낸다.’
대한민국에 빈대떡이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해방 후 평안도·황해도 사람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들면서 돼지기름으로 지져낸 빈대떡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빈대떡은 해방 전에는 서울에서만 사용한 말이었다. 서울의 빈대떡이 '도야지(돼지) 고기 넌(넣은) 것은 없어 그냥 녹두 가루에다가 우거지나 파만 섞어가지고'(1934년 4월호 신동아 '인텔리와 빈대떡') 만든 것이었다. 크기나 양, 질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 음식이었다.
빈대떡 원류는 평안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서북부 지역이었다. 황해도에서는 '막부치'라 부르고 평안도에서는 '지짐이'로 불렀다. 황해도 사리원과 그 주변은 녹두의 주산지였고, 평안도는 중국의 영향으로 돼지고기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어 돼지기름으로 지진 빈대떡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들이 대거 서울로 내려오면서 서울의 빈대떡 집은 '거리나 골목은 말할 것 없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이 많은 빈자떡 집이 손님으로 터질 지경이었다.'(1947년 6월 28일자 경향신문) 빈대떡은 해방 전에는 서울에서만 사용한 말이었다. 이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貧者)이란 속칭이 붙을 만큼 빈대떡은 일제강점기까지 가난한 사람들의 흔한 외식이었다. 하지만 빈대떡의 어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貧者)가 아니라 '지져 먹는 떡'이란 의미의 '빙져'에서 온 말이다. 1517년에 쓰인 중국어 학습서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 빙져는 녹두와 찹쌀을 갈아서 부친 전(煎)으로 한문 설명이 붙어 있다. 1690년에 쓴 '역어유해(譯語類解)'에는 '빙쟈'가 나온다. 17세기에 쓰인 '음식디미방'에는 빙쟈가 '빈쟈'로 바뀌어 나오고, 19세기 '광재물보(廣才物譜)'에는 '빙자떡'이 등장한다. 20세기 들어 빈자떡은 빈대떡과 함께 쓰인다. 대한민국에서는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을 정도로 서민들의 간식이자 술안주이자 냉면집의 음식으로 빠지지 않는 대중 음식이 되었고 북한에서도 잔치 때는 물론이고 일상적으로 즐겨 먹는 외식으로 자리 잡은 민족의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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