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20. 2. 18. 12:19

[사람 사는 이야기, 연극]

 

무말랭이 연극 만들기

 

평범한 동네 주민들의 연극배우 도전기 

 

 

남동훈

 

동네주민들이 연극을 한다고?

 

2008년 5월 중순경. 대학 연극반 동기 민규가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다짜고짜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주민들이 연극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 자기 밖에 없어서 총대를 메고 연출을 구하고 있다, 해줄 수 있겠냐고 한다. 숨이 가쁘다. 차근차근 물어보니 2007년에 창단, 희곡을 몇 편 낭독 했고, 올해 마을축제에서 처음으로 공연을 했는데, 연극이 아닌 시낭송과 노래 공연이었다고 한다. 명색이 극단인데 다음번에는 꼭 연극을 올려야 한다며 한마디 한마디가 절절하다. “그건 그렇고 극단 이름은 뭔데?” “어, 무말랭이라고...” “무말랭이? ㅍㅎ” 일단 한 번 만나는 보자하고 전화를 끊었다. ‘참 재밌는 사람들일세. 그런데 무슨 마을이라고 했더라?’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린다고?

 

다음 주 토요일, 약속 장소인 성미산학교 앞에 도착했다. 건물 전면에 학교 이름과 함께 교훈처럼 보이는 문구가 떡하니 붙어 있다.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성미산학교’

깜짝 놀랐다. 무대연기에 대한 내 생각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생각과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해볼 만 하다 싶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5층 음악연습실로 올라갔다. 대여섯 명의 무말랭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 민규의 진행으로 친근한 인사와 소개를 마쳤다. 그리고 연출과의 첫 대화.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봤다.

 

도대체 왜 연극을 하고 싶으세요?

 

그냥 재미있을 것 같다, 한 번쯤은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대학 시절 풍물패 활동할 때 느꼈던 희열을 다시 느끼고 싶다 등 개인적이고 평범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어라, 성미산마을이 무슨 공동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뭔가 공통의 지향점이 있을 법도 한데...’ 어째, 스스로 설 것 같지도, 서로를 살릴 것 같지도 않았다. 그때 한 분의 얘기에 귀가 열렸다. 대학 1학년 첫 학기 첫날. 하루 종일 캠퍼스 벤치에 앉아서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느냐 마느냐 고민을 했다,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 학업에 방해가 될까봐. 이제는 꼭 해보고 싶다고 한다.  '20년을 넘게 기다린 간절함이라니.' 마음이 살짝 움직였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집에 돌아와 얼마 전 마을축제 때 했다는 「시낭송과 노래」 공연 영상을 봤다.

 

2008년 5월 성미산마을축제에 참가한 무말랭이 「시낭송과 노래」 공연 .

 

무말랭이들의 말과 행동, 동작과 표정 하나하나에 미묘한 떨림과 어설픔, 어떤 간절함과 비장함이 동시에 묻어났다. 보고 있자니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났다. 내가 꼭 맡아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달부터 약 10개월 간 매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무말랭이와 함께 연습장에서 지지고 볶았다. 그게 10년이 될 줄은 그땐 정말 몰랐다.

 

도대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공연이 다가올수록 배우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도대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하고 많은 것들 중에 하필이면 연극을 한다고 했을까. 이제 와서 못한다 할 수도 없고, 이를 우얄꼬...’ 대략 이런 상황이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던가. 공연을 일주일 정도 앞둔 상황부터 급격하게 조증과 울증 사이를 오간다. 갑자기 머리에 꽃을 꽂는다든가 한 번 잠들면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다는 태도 등이 그것인데 비교적 가벼운 증상에 속한다. 폭우, 폭설, 지진 등 천재지변으로 공연을 못하는 되는 상황을 학수고대하는 일종의 망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다리나 팔 하나 정도 부러지는 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자해성 회피증상도 보인다. 이 정도도 치유는 가능하다. 갑자기 캭! 하고 죽어 버리고 싶다는 매우 심각한 증상도 간혹 보고되었다.

하지만 공연날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10분 뒤 관객입장입니다” 연출의 한 마디가 사형선고 같다. 이제부터 온전히 ‘배우의 시간’이다. 말 그대로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려야한다. 빙 둘러서서 손에 손을 맞잡고 목청껏 파이팅을 외친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

 

오, 신이시여! 이게 과연 제가 만든 작품입니까?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 제1회 정기공연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의 막이 올랐다. 2009년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에 걸친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첫날부터 관객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2층 사이드 좌석까지 꽉 채우고도 모자라 급하게 극장 바닥에 보조석을 마련해야 했다. 공연은? 대박이었다. 실수 하나 없었다.

 

 

 

배우들은 열연을 펼치고 있고 관객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

 

공연이 끝난 지 30분이 넘도록 관객들이 배우들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9명의 배우들 모두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헐리우드 스타들 같았다. 간신히 극장을 정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뒤풀이를 갔다. 살다 살다 그런 뒤풀이는 처음이었다. 2시간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양반들이 이 무슨 광기란 말인가. 내일도 공연인데 안중에도 없었다. 1차부터 시작해서 4차 노래방까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때보다 더 신났다. 아니 신들렸다. 연극의 수호신이자 술의 신인 디오니서스께서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이 땅 마포에 제대로 강림하셨다. ‘이 사람들 참, 연극도 자발적으로 하더니 신들리는 것도 자발적으로 하는구나.’ 그렇게 미친 듯이 놀다가 동이 트고 나서야 겨우 헤어졌다. 부축당하거나 들것에 실려나간 사람 한 명 없이 전원 ‘스스로 서서’ 말이다. 그렇게 첫 공연은 완벽하게 끝났다. 뒤풀이 사진이 궁금하다고? 무말랭이들의 프라이버시와 필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과감히 생략한다.

 

그나저나 다음 날 공연은 과연 무사히 올렸을까?

 

예상대로였다. 약속한 시간 보다 대략 1시간가량 늦게 모였다. 그런데 전혀 미안해하거나 당황하거나 또는 늦었다고 뭐라고 하기는커녕 희죽희죽 웃고들 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모두가 그러고 있다. 심지어 대사 까먹을까봐 불안하다고, 너도 그러냐, 나도 그렇다며 배시시 실실, 하하호호 껄껄껄 각양각색으로 웃고들 있다. 그렇다. 중독 중에 제일이라는 공연중독에 빠진 것이다. 그 패거리들을 나 홀로 어떻게 이길 수 있으랴. 일부러 더 크게 웃을 수밖에!

 

이 동네 사람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윽고 둘째 날 공연. 배우들은 실수연발이었고, 객석은 어제 보다 더 난리가 났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웃고,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더 크게 웃어댔다. 이 동네 사람들, 공동체 맞긴 맞구나 싶었고, 이런 공동체인 줄은 그제야 알았다. 그렇게 공연은 배우와 관객들을 함께 태우고 함께 키득거리며 마지막 공연까지 신나게 내달렸다. 며칠 뒤. 문득 궁금해졌다. 20년 넘게 기다려온 그 간절함은 이제 어떻게 됐을까?

 

 

남동훈 ㅣ 연출가. 공연 창작과 더불어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 상임연출, 성미산동네연극축제 예술감독, 전국생활문화축제 총감독 등 시민문화예술활동도 함께 해왔다. 지금은 극단 고릴라 Go-LeeLa 대표로 활동하며 참여연대 아카데미 시민연극워크숍을 4년째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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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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