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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5_6 최보이_2년의 시간, 2번의 만남... 그리고 언제쯤?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3. 12.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2] 

2년의 시간, 2번의 만남... 그리고 언제쯤?

최보이

[2008년의 경주]
경주 시내에서 1시간마다 있는 버스를 탄다. 1시간을 꼬박 달려 종점에 내린다. 다시 개인 이동 수단으로 30분 이상 간다. 12명 학생이 전부인 분교가 나타난다. 처음 교단에 선 곳이다. 그곳에서 5학년 일곱 학생의 담임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는데, 그 중 유독 ‘허세(?)'스런 자세의 검정 비니를 쓴 창백할 정도로 뽀얀 얼굴의 남학생이 눈에 띄었다. 주.윤.석! 

[2021년의 지금]
“선생님, 반가워요. 윤석이 엄마입니다.” 

휴대폰의 번호가 바뀌었던 나를 13년 전의 학부모께서 페이스북으로 찾으신 것이다. 당시에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밥을 해 먹이고 학습지도를 하며 열악한 교육환경의 분교생에게 야간 학습장을 만들어 주었던 분. 그래서 이제 막 교육의 길에 들어선 내게 깊은 감화를 주었던 윤석이 어머니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오셨다. 

“윤석이가 독일에서 돌아왔고, 지금은 공군이 되었어요!”

[2011년의 서울]
윤석이의 담임으로서 2년의 시간을 보낸 뒤 나는 서울로 파견을 갔다. 그 해 겨울, 어린이인줄만 알았던 시골 소년이 옛 담임을 만나기위해 홀로 서울에 왔다. 동료 선생님 두 분이 그런 학생이 누군지 궁금했던지 나를 따라나섰다. 체게바라 사진전도 함께 관람하며 헤어질 때쯤엔 나보다 더 아쉬워하며 이제 곧 중2가 될 학생의 옷을 사주었다.

[2014년의 대전]
졸업한 뒤 처음 서울에서 본 이후 두 번째 만남은 대전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내가 여름방학 중 연수를 KAIST에서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윤석이는 3일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고 했다. 외고에서 영어를 전공하고 중국어가 부전공이었던 학생이라 의외였다. 연수에 바쁜 쌤 때문에 소외된 1박 2일을 보냈을 옛 제자와 헤어지는 날, 전날의 맑은 날씨는 거짓말인 양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잘 가, 용길아!” (윤석에게 붙여준 애칭) 

다시 연락이 닿기까지 7년이 흐를 줄 모른 체, 마치 내일이라도 볼 것 같은 짧은 인사를 나눴다.

[2021년의 지금]
• 쌤의 구조주의 학습법을 완벽히 소화하고 
• 힐러리의 <여성인권선언문>을 영어로 암기하고
• 원더걸스의 노래 <nobody> 춤을 멋들어지게 추고
• <쥘리앵> 데생을 가르쳤더니 그럴듯하게 따라 그려내고 
• 쌤의 식사를 걱정하며 아침부터 부담백배 닭발요리를 내밀고
• 스탕달의 <적과 흑>을 정확하고도 센스 있는 만화로 변환시키고
• 쌤이 좋아하는 <Over the rainbow>를 배워 클라리넷으로  연주하고
• 집에 공부하러 온 어린 분교 동생들에게 다정다감하게 책을  읽어주고 
• 초급을 갓 벗어난 스키 실력인데도 쌤을 따라와서 중상코스를  완주하고
• 시골 학생이 대구•경북 아마추어 골프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순위 밖에 들고
• <청소년 토지> 책을 읽고 마침내 완결된 구조를 갖춘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인 <토나오냥>을 탄생시켜 복사본도 없이 쌤에게 바치곤 했던, 그 많은 사건 속에서 지금 내게 가장 기억되는 것은, 사랑했던 첫 학생, 윤석의 ‘미소’이다. 

원래 중등 국어교사를 하고 싶었던 내게, 초등 교사로서의 가르치는 희열을 맛보게 함으로써 결국 딴 생각(?) 않도록 만든 용길아! 며칠 전 아버지께서 직접 채취하신 고로쇠수액을 보내오셨다. 아까워 뚜껑조차 못 열겠어. 코로나로 외출이 어렵다고 하니, 이거 가지고 쌤이 한번 가봐야 하니? ㅋㅋㅋ 언제쯤 3번째 만남을 하려나...! 연락해~이!!

최보이 | 성환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비록 초등생에게 『청소년 토지』를 읽히는 무자비한 쌤이지만, 그들에게 ‘선생’이자 동시에 ‘친구’로 기억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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