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6_2 이정필_기후정의 활동은 평화운동이다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11. 17.

[평화 이슈] 

기후정의 활동은 평화운동이다

이정필


* 이 글은 어린이어깨동무가 주최한 <2023년 한반도 평화교육 국제포럼> 토론문을 보완한 것임을 밝힌다.

 

 

우리는 이미 바뀐 기후에, 그리고 앞으로 바뀔,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다. 기후재난은 생태·환경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복합적 시스템 위기이며, 이것은 지구 행성에서 국제-국가-지방의 다중 스케일로 나타난다. 이런 맥락에서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이 이론적으 로, 실천적으로 화두가 됐다. 그러나 파리협정이나 그린뉴딜 등 전환계획과 정책들은 현상 유지 추세를 바꾸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기후분쟁이나 기후전쟁이 확산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일찍이 2009, 유엔은 기후변화가 안보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면서, 기후변화로 인해 국내적, 국제적 갈등을 증가시키고, 기존의 다양한 문제들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6차 영향, 적응, 취약성 보고서는 기후변화와 갈등 사이의 인과적 관계를 단언할 수 없지만, 기후 변수와 함께 다른 사회경제적, 정치적 요인에 의해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근거가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다. 신중하게 포장된 이 표현을 달리 말하면, 기후변화는 국가 간, 국지적 분쟁을 심화시키고, 반대로 폭력적 분쟁은 기후변화의 취약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분쟁지역 기후변화 대응은 가능한가?” 어린이어깨동무가 <2023년 한반도 평화교육 국제포럼>에서 던진 질문이다. 여기에 질문을 하나 더 추가하면, “한반도에서 가능한가?” 토론자로 참가한 필자의 답변은 이렇다. “가능하지만 어렵다. 어렵더라도, 원칙과 방향, 전략과 프로그램의 기획과 실행을 통해서 가능하게 해야 한다.”

 

군사 배출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 협상에서 줄곧 제외되어 왔는데, 화석연료에 기반하는 군사 활동이 전 세계 배출량의 5.5% 이상을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이런 예외 조치는 매우 불합리하다. 국가 안보의 비밀주의로 인해 대부분 국가의 국방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탓에 추정치로 짐작할 수밖에 없지만, 군사주의는 사회적 파괴와 함께 생태적 파괴를 초래한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로써 우리는 화석연료 기반의 성장주의는 물론이고, 군사주의에 주목해야 기후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전쟁과 분쟁은 많은 경우, 화석연료를 비롯한 천연자원을 확보하려는 쟁탈전의 성격을 띤다. 이 지점에서 화석연료-군사주의-기후위기라는 삼각복합체의 실체가 드러난다. 따라서 1.5도 온도 상승 제한이라는 지구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부문, 산업 부문, 수송 부문, 건물 부문, 농축산 부문처럼 국방 부문에도 배출량 측정·보고·검증은 물론 감축량 목표도 설정해야 한다.

 

20229, 전쟁없는세상과 피스모모 활동가들을 포함한 8명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전 2022> 전시장의 K808 장갑차와 K2 전차 위에 올라가 바이올린과 기타를 연주하고, “방위산업체의 이윤=누군가의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펼친 채 구호를 외쳤다. 이런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해 사법당국은 전시 업무가 방해됐다며 활동가들에게 총 1,7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재생에너지 기반의 녹색 국방이나 저탄소 전쟁으로 색깔만 바꿔 탄소발자국 일부를 줄인다고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2021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군사력을 유지한 채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군사력을 통제하고 축소하며 긴장과 갈등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평화운동과 평화협상이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최근 국내외에서 평화운동과 기후운동이 만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기후정의 활동이 주로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의 교차 지점을 통해 그 저변이 확장되었다면, 이제는 평화운동이 합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기후위기 해결은 국제주의와 평화-반군사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후정의운동의 관점과 입장이 정립되어 있고(기후정의포럼, 기후정의선언 2021, 한티재, 2021), 관련 담론과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다. 2021,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에서 개최된 유엔 기후변화기본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맞춰 전 세계 많은 단체들이 군사 활동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국방 부문의 배출 감축을 각 국가의 재량에 맡기는 파리협정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감축 원칙과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국제질서가 여전히 현실주의와 군사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군사화와 요새화 경향이 심화될 수 있기 때문에, 미래를 낙관할 수는 없다. 기후-분쟁 연결고리에 대한 자각은 선순환(기후평화)보다 악순환(기후전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환 기술·광물·제품 확보 및 통제 경쟁은 이런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는 한반도 역시 이런 기후평화 또는 기후안보의 실험공간이 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기후위기와 갈등·분쟁과의 관계를 분석하여 기후위기대응에 적합한 평화구축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2023년 한반도 평화교육 국제포럼>에서 프란시스 플래너리(BioEarth 공동대표, 미국 제임스매디슨대학교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생태공간적, 기후교육적 프로그램 등을 다양하게 구상하고 지역 맥락을 반영하여 실제 적용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개입 활동과 활성화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기후 부정의와 탄소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문제의식, 자연의 권리와 생태학살 범죄 수용, 그리고 기후시민이나 녹색계급이라는 새로운 정체성과 주체 역량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아가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제시되는 생태적 평화군축을 위한 연구와 운동은 기존 평화·군축 진영과 기후·생태 진영이 더 적극적으로 상호 교차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대응의 필요성에 따라 국내에서도 몇몇 법제화와 정책화가 추진되고 있다. 한반도로 확장하여 장기전망, 영향평가, 사례조사, 그리고 기후대응, 생태평화 관점에서의 대안구상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북한도 온실가스 감축, 기후위기 적응, 재생에너지 확대 등의 계획과 정책을 마련했고, 국제사회에 관련 내용을 제출한 바 있다. 기후비상사태에 필요한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에 기후정의를 주장하는 빈국과 개도국의 입장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손실·피해 등)을 인정하고, 빈국과 개도국에 대한 재정과 기술 지원의 책임을 다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치적 개입, 즉 내정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한다.

 

다른 한편, 북한의 기후위기 취약성과 대응역량, 그에 따른 사회붕괴에 대해서, 반대로 국제협력이나 남북협력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북한을 둘러싼 교착국면에서 기후위기·재난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매우 복잡한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식량위기, 홍수, 해수면 상승, 기후난민 등 기후위기 및 그 영향은 북한에 일련의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정치체제과 사회기반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으며, 동북아와 국제 정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 출처: 케이트 레이워스, 『도넛 경제학』, 학고재, 2018

 

우리에게는 기후위기와 한반도 냉전체제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응의 대안적 패러다임 중 하나로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학모델을 참고할 수 있다. 도넛의 외부 경계인 생태적 한계내에서, 그리고 내부 경계인 사회적 기초위에서 균형으로 찾아가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세계가 바람직할 뿐 아니라 가능하다는 제안이다. 기후변화, 해양 산성화, 화학적 오염, 질소와 인 축적, 담수 고갈, 토지 개간, 생물 다양성 손실, 대기 오염, 오존층 파괴와 같은 생태적 한계를 초과하지 않고, 이와 함께 에너지, , 식량, 보건, 교육, 소득과 일자리, 평화와 정의, 정치적 발언권, 사회적 공평함, 성 평등, 주거, 각종 네트워크의 사회적 기초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경제성 장에 대한 맹신을 보류하고, 그 대신 재생적·분배적 경제를 설계하는 필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모델을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한반도에 적용하려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찾는 것은 함께 갈 사람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이정필   15년 넘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적색과 녹색의 매듭을 묶고 풀면서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개념에 매달려 살고 있다. 현재는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