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시선으로 보는 북녘]
북녘 농촌 마을의 변화
이경수
몇 년 전 답사 차 북중 접경지역을 찾았을 때 중국 지린성 십삼도구촌¹ 작은 식당에서 식사할 일이 있었다. 10위안 내외의 음식 2-3가지만 파는 식당이었으니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하는 곳이었을 게다. 주변에는 페인트칠하지 않은 단층집 사이로 차 한 대보다 조금 넓은 폭의 비포장도로, 한 사람이 지날 만한 집 사이의 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1)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구 십삼도구촌을 포함한 3개 행정촌을 둔 십삼도구향 전체 인구는 4,500명, 농촌 인구는 1,500명 내외다. http://baike. baidu.com/十三道沟乡
함께 동행한 북한이탈주민 출신 연구자는 중국과 북의 마을 모습이 거의 비슷한데, 북쪽 거리가 훨씬 깔끔하다고 전했다. 거리를 쓸고 닦고, 눈에 보이는 쓰레기와 잡초를 치우는 등의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 했다. 위성사진으로 확인하면 중국과 북의 접경지역 마을 규모는 크게 차이가 나지만 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이 줄 맞춰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점은 공통적이다. 마을이 만들어지는 시기, 규격화된 건물을 짓는 ‘사회주의 계획’에 따라 배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녘 농촌은 사회주의 건설기에 건설되었으나, 향후 보다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2020년 이후 북한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 군을 비롯한 농촌 마을 재건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생산과 생활의 공동체, 리 단위 협동농장
북녘 농촌의 기본 단위는 군이다. 농촌의 군(郡) 내에 몇 개의 리(里)가 있고 리 하나에 협동농장이 하나 있다. 군 협동농장경영위원회는 산하에 농기계공장, 농기계작업소 등을 운영해 협동농장에 자재를 공급하는 한편 리 단위로 조직된 협동농장 사업을 지도한다. 리 협동농장관리위원회가 협동농장 운영을 책임지며, 리 인민위원장을 겸하는 협동농장관리위원장은 1년에 한 차례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적’으로 선출한다. 협동농장관리위원회에는 농업생산을 담당하는 부위원장과 농촌생활을 담당하는 부위원장이 있다. 협동농장이 생산 단위인 동시에 마을공동체 성격을 띠고 있어 문화센터와 탁아소, 진료소, 상점 등을 두어 리 단위로 운영한다. 협동농장 순수입 중 20~30%를 공동기금으로 적립해 건설과 보건위생, 문화체육, 보육・교육 사업 등에 사용한다. 마을의 공동 자산을 관리하고 도로 청소 및 정비 등의 활동도 협동농장
단위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리 단위 협동농장의 생산을 살펴보면 산하에 작업반 10~20개를 두고 다시 그 아래에 분조를 둔다. 10~20명 규모의 분조 규모는 농장책임관리제 실시 이후 5명 규모로 변경되고 가장 작은 경우 2~3명으로도 분조가 구성되어 사실상 가족농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반면 생활의 경우 ‘삼지연시 농촌마을’을 모델로 삼아 2022년부터 북한 전 지역 농촌마을이 개건되기 시작했다. 삼지연시 경우 생산구획과 생활구역을 구분해 들쭉음료・장・고려약공장 등 일용품을 생산하는 지방공장을 건설하고 주민 편의를 위한 학교, 병원, 도서관, 체육관, 문화회관 등을 신규 건설했다.
북, 대대적 농촌 개발 시작
삼지연시 건설은 국가적 투자를 통해 진행되었으나 이를 모델로 한 지방 건설은 국가가 보장하는 자재를 보장하고 지방이 이를 활용해 건설을 맡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북한은 2021년 「시,군 발전법」을 제정한 데 이어 이듬해인 2022년 「시,군건설시멘트보장법」을 채택해 200여개 시, 군에 연 1만톤씩 시멘트를 공급할 것을 밝혔다. 2022년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새시대 농촌혁명강령’ 실현을 과제로 채택해 농민 개조, 농업생산 증대, 농촌 생활환경 개선을 주요 과제로 내세우며 평양과 지방, 도시와 농촌 간 차이를 줄이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상당 기간 방치되어 왔던 지방 문제 해결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북의 지방이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강팍하다. 중앙의 지원이 일부 제도화되었으나 건설 자재 외에는 스스로 자원을 찾아 동원하고 각종 사회서비스 제공을 해야 한다. 각 시, 군인민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매우 방대하다. 「시,군발전법」에 따르면 각 시, 군은 스스로 발전 목표를 세우고 공업을 비롯한 지방경제, 농업 발전과 산림 조성, 도로 및 철길 관리, 환경 보호, 도시 미화 등 도시 환경 개선, 대중교통 운행, 상업 및 편의봉사 확충, 보건・의료・교육 등 사회복지 제공 등이 지방에서 이루어진다. 그만큼 지방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여러 측면에서 주민들이 일상적인 변화를 크게 느낄 수 있기도 하다. 북이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지금은 남의 마을 단위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변화의 폭과 범위를 넓히는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시기다. ‘평창의 봄’ 이후 잠시 남북협력이 가능했던 시기 북 또한 남북 공동의 커뮤니티 개발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다. 기회의 창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는 남북대화 중단이 더욱 아쉬워지는 시점이다.
이경수 | 2000년대 남북간 교류와 협력 실험이 활발하던 시기를 <민족21> 기자로 남북관계 현장에서 보냈다. 2010년대 이후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이제 기자가 아닌 연구자로 평양에 갈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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