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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6_4 김경민_분단된 대한민국에 출몰하는 좀비

by 어린이어깨동무 2023. 11. 17.

[문학으로 읽는 나의 평화감수성] 

분단된 대한민국에 출몰하는 좀비

 

김경민



K-좀비의 원조, 빨갱이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의 정체성과 독립투사로서의 예우를 동시에 고려해 육사 외 독립운동 업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이 전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황당한 뉴스가 밀려들어 어지간한 뉴스에는 놀라지도 않는 요즘이지만, 이 뉴스를 듣는 순간만큼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는 역사 시간 내내 졸았던 학생들조차 다 아는 것인데, 이 상식 밖의 결정을 내린 이들은 설마 이 사건들을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이들은 왜 갑자기 홍범도 장군을 소환해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그가 빨갱이였기 때문이다. 휴전선 너머의 사람들 또는 그들의 정치체제와 조금이라도 관계되어 있다면 모두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다. 그렇게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이 한순간에 제거 대상이 되었다, ‘빨갱이라는 이름과 함께. 남한 대통령이 북한 국무위원장의 소개를 받아 15만 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던 모습과 그 연설에 화답하는 평양 시민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불과 5년만에 그들은 피를 나눈 동포에서 빨갱이라는 이름의 적이 되었다.

 

홍범도 장군을 우리의 기억에서 지우려는 이유가 빨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그리 놀라지 않았던 것은, 슬프게도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른바 K-좀비가 인기라던데, K-좀비의 원조를 꼽자면 아마 빨갱이가 아닐까 싶다. 분명한 실체도 없는 유령 같은 이 존재는 좀비처럼 쉽게 죽지도 않고 잊을만하면 나타나 우리를 괴롭힌다. 유독 대한민국에서 빨갱이 담론이 오랫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 상황에서 북한==공산주의라는 공식이 어떤 이들에게는 굳건한 신념이 되었고, 그 신념에 따라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적으로 간주해 공산주의자를 가리키던 빨갱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 좀비 같은 존재가 이 땅에 처음 출현한 것은 꽤 오래 전이다. ‘빨갱이는 공산주의자를 지칭할 때 사용하던 일본어 아카(あか/)’에서 유래했는데, 우리 사회에서 이 표현이 눈에 많이 띄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집권의 정당성이 부족한 권력자가 정통성을 구축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정적을 만들어 제거해 나가는 일종의 정치적 쇼를 펼치는 것인데, 이때 그 정적에게 붙였던 가장 상투적인 이름이 바로 빨갱이였던 것이다. 자신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세력을 없애는 것만이 부실한 권력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라 믿었던 이승만은 많은 사람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보도연맹사건은 이렇게 탄생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승만 정권이 자신들의 정치적 반대 세력만 견제한 것이 아니라 떳떳하지 못한 자신들의 과거, 즉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이들까지 제거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김동춘은 대한민국 잔혹사에서 이승만 정권의 빨갱이 색출 작업의 기저에는 그들의 친일 콤플렉스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승만 정권이나 미군정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독립운동에 앞장섰거나 진심으로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는 애국지사들까지도 빨갱이라는 오명을 씌워 제거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광기의 폭력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절정에 이른다.

 

“내사 무슨 주의가 뭐 하는 주의인지 알기나 합미까. 인민공화국 세상이 되자 죽은 큰성님 대신에 분주소 일이나 봐달라 해서 심부름을 쪼매 하다가, 안 피하면 죽는다길래 부랴부랴 산으로 올라온 게 이래 됐지요. (…) 김동무는 선생님을 하셨응께 공산주의 사상을 잘 알겠네요. 내사 저녁마다 교육받아도 자부럽기만 하지 무슨 소린공 통 모르겠습니다.”

(김원일, 『겨울 골짜기』中)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소재로 한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의 주인공 문한득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열여덟 살의 시골 소년이다. 그의 큰 형은 해방 직후 잠깐 남로당 일을 맡았으나 이후 완전히 손을 뗐기에 떳떳하게 보도연맹에 가입하지만, 그런 이들을 향해 대한민국 정부는 아량의 손길 대신 대량학살이라는 잔인한 복수를 한다. 이후 죽은 큰 형을 대신해 일을 하던 문한득은 형과 같은 비극을 피하기 위해 무작정 산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그는 빨갱이가 된 것이다. 인공기와 태극기가 수시로 바뀌어 내걸리는 시대에 어쩌다빨갱이가 된 경우는 비단 문한득만이 아니었다. 지리적 요건 때문에 한동안 빨치산들의 점령지구가 되었던 거창군 신원면의 경우, 국군이 재진주하게 되자 그 마을 사람들은 적과 내통한 혐의로 한순간에 대한민국 국민에서 소탕해야 할 대상인 빨갱이가 되었다.

 

 

죽여도 되는 존재, 죽여야만 하는 존재

 

빨갱이를 향한 국가폭력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목은 그것이 연좌제적 성격을 갖는다는 데 있다. 작가 박완서는 한국전쟁 당시 오빠의 의용군 이력 때문에 가족 모두가 빨갱이로 내몰려 고초를 당했던 야만의 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무슨 짓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사회불안의 요소였다. 제거당해야 마땅했다. (…) 그들은 나를 빨갱이 년이라고 불렀다. 빨갱이고 빨갱이 년이고 간에 그 물만 들었다 하면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영장이고 나발이고 인권을 주장할 수도 없었다. (…) 그들은 나를 마치 짐승이나 벌레처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돼 주었다. 벌레처럼 기었다. (…) 나는 밤마다 벌레가 됐던 시간들을 내 기억 속에서 지우려고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몸부림쳤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들이 나를 벌레로 기억하는데 나만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그야말로 정말 벌레가 되는 일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 때문에 어떡하든지 망각을 물리쳐야 한다는 정신이 들곤 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中)

 

 

 

빨갱이로 낙인찍히는 순간,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까지 국민으로서의 자격,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철저히 박탈되고 그저 짐승이나 벌레로만 취급된다. 박완서는 그들의 야만성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하고 그 고통의 시간을 잊지 않으려 애썼고, 그 덕분에 우리는 자국민을 상대로 한 국가의 폭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치욕의 시간을 기억하고 또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여전히 빨갱이라는 유령이 심심찮게 출몰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 세상에, 작가 정지아 또한 빨갱이의 딸이라는 낙인을 세상에 당당하게 드러내 놓았다.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 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中)

 

 

 

 

빨치산의 딸이라는 혐오와 배제의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던 삶의 중압감은 그것을 겪어보지 못한 이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무거울 것이다. 그래서 그 또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빨갱이 아버지가 아닌 한없이 다정했던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 이처럼 빨갱이라는 세 글자가 가져다주는 고통은 한 사람에게서 그치지 않고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이된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는 실체도 없는 빨갱이유령과 함께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이 유령과 결별하지 않는 한 70여 년 전의 보도연맹사건과 같은 잔인한 빨갱이 사냥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설마라고 답하고 싶지만, ‘어쩌면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저 나만의 기우이길 간절히 바라본다.

 

김경민  국문학과 정치학 중 진로를 고민하다 문학으로는 사회의 모든 이야기를 살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국문학을 선택해, 지금까지 한 발은 문 학에 다른 한 발은 문학 바깥의 세상에 두고 있다. 한국 소설의 인권의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계속 인권과 법, 국가폭력과 시민 등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경상국립대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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