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민간 남북협력사업의 현 주소와 나아갈 방향
강영식
20여 년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우리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을 비롯한 다양한 남북협력사업은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북한 동포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여 인간 존엄성 보장을 돕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민간의 협력사업은 대결과 반목으로 얼룩진 분단사에서 보기 드문 민족화해의 큰 물줄기를 만들어 왔다고 할 수 있으며, 민간의 다양한 교류 활동을 통해 형성된 남북간 신뢰 기반은 남북한의 긴장 속에서도 의사소통 통로로 기능함으로써 한반도 평화형성에 기여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대북지원운동은 ‘모금’이라는 행동을 통해 다수의 국민들이 참여하는 대중운동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정치적 논쟁을 넘어선 ‘일상에서의 통일운동’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민간의 활동은 남북 간 교류협력의 확대와 미래의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기에 남북간 정치적 상황과 구분하여 독립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했음에도 그간 정치상황에 의해 좌우되어 왔으며 근간인 인도주의 원칙 또한 지속적으로 훼손되어 왔다. 특히 우리 정권의 변화에 따라 민간의 사업이 좌지우지되어 지속성과 예측성을 담보할 수 없음으로써 북한은 예전과 같이 남측 민간을 중요한 협력파트너로서 대우하지 않고 있다. 결국 민간 차원의 협력활동이 다시 힘을 받으려면 민간차원의 활동은 남북간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속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지원과 교류협력에 있어서 민ㆍ관 분리접근을 통한 민간분야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통일부와 남북교류협력법에서 사라지는 ‘교류협력’
지난 9월 8일 통일부 조직이 새로이 개편되었다. 7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의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이제는 달라질 때가 됐다"는 지시 이후 두 달만에 이루어진 조치이다. 이번 조직 개편의 핵심은 교류협력 관련 부서의 축소·통폐합과 소위 대북·대국민 심리전(심리전이라는 표현은 윤 대통령의 표현임)과 북한 인권을 담당하는 부서의 신설·확충이다. 이러한 통일부의 조직개편 방향은 내년도 통일부 예산안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당국간 사업을 비롯한 각종 남북협력사업 추진의 물적 토대인 남북협력기금은 올해보다 27.9% 삭감되었다. 남북협력기금은 그간 남북관계 부침과 집행률에 따라 오르내렸지만 2008년 이후로 1조원을 상회하거나 육박한 수준으로 편성되었으니 16년 만에 남북 당국간 관계에서 우리 정부의 이니셔티브를 뒷받침했던 남북협력기금이 8천억원대로 떨어지는 시대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일반 회계에서는 북한인권센터 건립 사업과 새로운 접근법으로 북한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겠다는 ‘통일인식·북한이해 제고사업’, ‘북한인권 국제대회’ 등에 140억원 정도의 예산을 신규 편성하였다. 초당적 통일 논의를 위한 사회적 대화 사업을 비롯한 '통일정책 플랫폼' 사업과 교류협력 민간단체를 지원하는 '민간통일운동 활성화' 사업은 전액 삭감하였다. 대신 5억원 규모의 ‘북한인권증진 및 자유민주평화 공론화사업’을 신규 편성하였다고 한다.
결국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 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통일부의 본연의 업무에서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은 사라지고 남북관계의 하나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 또한 잊혀지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더욱 분명해졌다. 이어달리기를 통해 보수의 포용정책을 추진하고자 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현 정부의 담대한 구상이 안보와 교류협력의 균형을 맞춰줄 거라는 기대 또한 통일부 교류협력부서와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 교류협력의 활성화와 자율성 보장을 위해 그간 절차를 간소화하여 신고제로 운영하였던 북한주민접촉신청을 건건별 허가제로 전환하고 단서조항을 내세워 북한주민접촉신청을 끝내 불허(수리거부)하는 초유의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가 사전신고는 수리거부하고 사후신고는 사전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함으로써 민간의 교류협력 활동을 허용하지 않고 원천 차단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그냥 우려에 그치지 않고 현 정부 내내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질 수 있을 거라는 민간의 우려에 정부는 책임있게 답해야 한다.
민간 남북협력사업의 새로운 방향성
2019년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현재까지의 기간은 민간의 협력사업 역사에서 활동이 가장 저조하고 대외적 신뢰도가 현격히 저하된 기간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민간의 활동이 위기 상황이라고 인식될 만큼 꼬인 이유는 코로나 19로 인한 북한의 국경봉쇄와 대북제재의 영향이 지대하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북한의 부정적 태도로 인해 북한이 교류협력의 문턱을 높게 잡아놓고 최소한의 민간 대화채널도 단절하였다는 데에 우선 기인한다. 그렇지만 현 상황은 남북간 교류협력 추진여건이 매우 열악한 상황임에도 응당 추진했어야 할 민간 대북지원 활동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화와 노력들을 그간 매우 경시하였다는 점, 그리고 현 정부들어 민간의 교류협력활동에 부정적 인식과 제약으로 인해 민간부문의 활동력이 현격히 저하되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하튼 지난 20년간 남북관계의 하나의 상징이었던 ‘인도적 대북지원’이란 패러다임은 이제 역사적 사명을 다하고 종언을 고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핵심은 대북지원의 방향성이다. 즉 그간의 대북지원이 인도주의와 동포애의 원칙에 따라 추진되었다면 앞으로의 대북지원 활동은 남북한의 격차 해소와 균형 발전, 이를 통해 평화공존을 증대시키는 포괄적 평화 측면에서 계획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 협력사업의 또 하나의 방향성은 ‘지속가능한 개발협력의 본격적 추진’과 ‘국제사회와의 공동협력’이다. 대북지원은 이제는 단기적이고 구호적 성격을 넘어서 경제개발과 함께 인도적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북한 스스로의 개발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흔들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다시 지켜내는 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현재 남·북·미 모두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지향과 관심을 접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우리 민간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기를 수습하고 평화프로세스를 실현하기 위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촉구하면서 ‘한반도 평화선언(Korea Peace Appeal)’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민간의 주장이 대다수 국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획득하고 남·북·미 당국의 정책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기에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군사협력 추진을 통해 힘의 우위를 확보하여 북한 비핵화를 강제하려는 방안과는 달리하면서도 당사국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인 평화프로세스의 대안을 새로이 제시하기에는 남북관계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남북이 서로 합의한 이후 30여년 넘게 조심스럽게 지키고 가다듬어온 남북간의 ‘관계’가 곧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변화는 우리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미국의 정책변화나 북한의 전략변화에 의해서 가능할 것이며, 민간 차원의 관여도 사실상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 민간은 남북관계 배제와 대북억제 위주의 현 정부의 정책 수정과 북한과의 대화 모색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하며 국민적 지지를 확대해 나가기 위한 보다 실천적이고 창의적인 캠페인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민간의 교류협력은 한반도 평화구축의 핵심이다
민간차원의 다양한 활동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정권의 교체나 정세의 변화에 상관없이 실질적인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태도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접촉과 물자반출 및 방북 제도의 개선, 남북협력기금 지원 원칙과 방식의 재정립, 남북간 물류시스템과 3통(통행,통신,통관)의 안정화, 공적 지원기관의 설립, 주요 영역별 민관협업 플랫폼 구축, 남북 공동의 협력기구 설립·운영, 국제협력과 유엔제재 면제 등 각 분야에서 지원플랫폼을 새롭게 개선·정비해야 하고 관련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이와함께 협력사업 재개에 대비하여 북한의 수용성이 높은 중장기적인 개발협력사업들을 관련 주체들간의 공동 컨소시엄 방식으로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 컨소시엄들은 북한 당국이 천명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나 ‘자발적국가보고서’와 융합할 수 있는 개발사업의 모델을 단체 간 공동의 연구를 통해 프로젝트화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북한과 협의해 나가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기후위기 협력’과 ‘식량안보와 농업개발’, ‘사회개발과 인적역량 강화’ 등의 분야에서 이러한 노력이 우선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 상당기간 남북관계 개선이나 각종 협력사업들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득세하고 있다. 그럼에도 남북간 합의사항을 준수하고 교류협력을 재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성과와 신뢰를 쌓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정부와 민간의 몫이다. 또한 우리 민간은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꾸준히 준비하고 동시에 북한의 태도변화를 전방위적으로 설득해 나가야 한다. 특히 정치·군사적 근본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주장하면서 교류협력을 비본질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있는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반도의 평화는 두개의 축으로 달성 가능하며, 정치·군사적인 신뢰구축이 그 하나라면 각 분야의 다양한 남북 교류협력이 또 하나의 축이다.
25여 년 전 민간차원의 교류협력 활동이 남북관계의 새 지평을 여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듯이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다시 우리 민간단체들의 힘으로 돌파해 낼 수 있도록 ‘낙관적 의지’를 가지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평화는 교류협력의 지속적 상태에 다름아니다. 교류와 협력만이 한반도에 궁극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열쇠이며, 교류와 협력은 압박과 제재보다는 대화와 외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의 확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강영식 |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창립부터 활동가로 참여하였고 2008년부터 11년간 사무총장으로 활동하였다. 2019년부터 2년 8개월간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공동대표, 민화협 공동의장, 정전70년 한반도 평화행동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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