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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7_4 이경수_북녘 농민 이야기

by 어린이어깨동무 2024. 2. 19.

[평화의 시선으로 보는 북녘] 

북녘 농민 이야기

 

이경수

 

현재 북에는 4,000여 개의 농장이 있다. 이제 북에 협동농장은 없다. 모든 협동농장은 농장으로 개칭되었으며, 농장의 과거 역사를 설명할 때도 (당시)협동농장으로 지칭한다. 북의 대표적인 본보기농장인 황해북도 사리원 미곡협동농장 이름이 미곡농장으로 지칭되는 것이다. 농장 일을 총괄해 온 협동농장관리위원장은 농장 경리로 이름이 바뀌었다. 농장관리위원회-작업반-분조로 이어지는 농업관리체계는 동일하다. 북에는 200여 개 군이 있으며, 매 군마다 군농업경영위원장을 두고 있다. 군 산하 리에 농장이 자리하며, 리인민위원장이 협동농장관리위원장을 맡아 왔다.

 

협동농장은 없다?

 

북의 소유체계는 전인민적 소유, 협동적 소유, 개인 소유로 나뉘어 왔다. 협동적 소유는 협동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소유한 형태로 개인소유에서 전인민적 소유로 발전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소유형태로 정의되어 왔다. 그러나 현재 협동농장의 농장 개편은 소유 형태보다는 농장의 기업화측면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진행된 농장법수정보충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핵심은 농장 또한 기업과 마찬가지의 경영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2021농장법개정 시 농장은 실제적인 경영권을 가진 사회주의농업기업체로 정의되었으며 기업과 마찬가지로 계획권, 생산조직권, 관리기구 및 노력조절권, 생산물처리권, 자금이용권 등 실제적 경영권을 가진 경제단위로 기능하게 되었다. 농장에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상대적 자율성을 부여한 것이다. 국가계획을 완수한다는 전제 하에 별도로 수익성 높은 작물을 생산하거나 부업 생산을 조직할 수 있다. 농장 단위의 구상과 실천에 따라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각 농장의 농지(포전) 규모는 350~450정보(100~135만평). 각 농장 산하에 10~20개 작업반을, 그 아래에 분조를 두는데, 남새(채소), 축산, 공예, 잠업 등은 작업반 조직으로 묶인다. 농산 작업반은 분조로 다시 나뉜다. 김정은 집권 이후 10~20명 수준의 분조 규모를 4~6명 수준으로 줄이면서 영농 구조가 개별화되었다. 한 가구가 한 분조를 이룰 수도 있어 사실상 가족농이라 볼 수 있다. 농장원마다 담당하는 포전이 정해지기도 한다.

 

평안남도 평원군 원화농장의 모내기(사진 : 통일뉴스 갈무리)

 

1년 농사 결속하는 ‘결산분배’

 

한해 농사에 필요한 초기 비용은 국가가 빌려주며, 생산물은 국가와 농장이 일정 비율로 나눈다. 토지이용료와 전력, 물 등 인프라 사용료, 농기계와 농자재, 비료 등 비용을 곡물로 지불한 이후 생산한 곡물의 일정부분은 국가 수매계획에 따라 수매하며, 남은 것을 자체적으로 농민들에게 분배한다. 농사를 잘 지어 초과 생산한 것도 포전담당자에게 분배된다. 분배받은 몫은 자유롭게 처분 가능하다. 1)

1)「양정법」 2021.03.11 수정보충제11조(양곡 수매와 교류판매방법… 양곡생산기관기업소단체와 공민이 국가양곡수매계획을 수행하고 남은 양곡과 비경지 또는 텃밭에서 생산하였거나 수입한 양곡은 영농물자교류소를 통하여 필요한 영농물자와 교환하거나 판매할 수 있다. 2022.12.08 추가적인 수정보충이 시행되었으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분배몫은 농장원총회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된다. 이때 각자의 노력일을 평가해 일한 만큼, 번 만큼분배한다. 정기적으로 영농 작업을 노력일 점수로 환산한 데 기초한 것이다. 농장 일의 등급을 나누고 더 힘든 일에 노력일을 더 많이 주는 등의 평가 기준을 적용한다. 농장원총회는 이외에도 분기별로 한 번씩 농장 규약 채택, 토지 및 영농자재 관리, 작업반과 분조 조직, 결산분배 등 중요 문제를 토의, 결정한다.

 

평양시 강남군의 수확 모습(사진 : 통일뉴스 갈무리)

 

 

해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농장에서는 결산분배 모임이 열린다. 농장 문화회관 앞마당에 수확한 볏가마를 쌓아놓고 풍물가락이 울리는 가운데 잔치가 열린다. 1년 농사를 결산해 각자의 몫을 분배받는 날이다. 전체 농장원이 다 모인 가운데 농장원총회가 열리고, 올해 농장의 계획 수행은 몇 %였고, 현금 수입은 얼마라는 식의 결산 보고가 행해진다. 노력일에 따라 분배몫을 최종적으로 확정받아 현물을 분배받는다. 이를 기초로 농민들의 한해 살이가 이루어진다.

 

농장은 농사를 짓는 기본 단위이자 생활 단위기도 하다. 농장 단위로 살림집을 비롯해 학교, 유치원, 탁아소 등 교육시설과 편의봉사시설, 문화회관, 농업과학기술보급실 등이 만들어져 있다. 주거와 교육, 여가 등이 모두 농장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최근에는 지방별로 살림집 건설이 차례로 완료되면서 농장원의 새집들이소식이 잇달아 전해지고 있다. 2021년 당중앙위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새 시대 사회주의농촌건설강령을 선포해 농업 생산량 증대를 넘어 농촌 살림살이 개선에 나설 것을 천명한 이래 농촌 사회, 농민 생활의 변화를 현실에서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또한 각 농장마다 마련된 과학기술보급실에 대한 소식도 적지 않다. 특히 북이 과학농사를 강조하면서 농업과학기술보급실과 북의 도서관 격인 인민대학습당과 평양농업대학 등을 인트라넷으로 연결해 영농에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게 했다.

 

지난해 북은 보기 드문 풍작을 기록했다고 한다. 202411일 발표된 당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는 2023알곡 생산목표를 계획보다 103% 넘쳐 수행한 것을 지난해 가장 귀중하고 값비싼 성과이자 변혁 중의 변혁이라고 평가했다. 다수확농장, 다수확작업반, 다수확분조, 다수확농장원도 대거 늘어났다고 한다.2)

 

2)조선중앙통신 2023/12/31. 북은 2018년부터 다수확농장원을 집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2019년 지난해 대비 다수확농민이 1.6만명 늘어난 것으로 밝혔다. 조선중앙통신 2019/03/27. 전체 숫자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평안북도 내에서만 5,000여개 단위가 다수확 단위 칭호를 받았다고 전한다. 2019년 다수확 단위는 농장 390여개, 작업반 4,00여개, 분조 1만 5,500여개, 농장원은 10만 2,900여명이었으며 2021년 다수확 농장 160여개, 작업반 2,400여개, 분조 9,900여개, 농장원 6.8만여 명으로 발표했으며 2022년에는 발표가 없었다. 조선중앙통신 2020.01.18., 2021/12/29.

 

노동신문이 소개한 다수확농장원은 공통적으로 지난해 대비 높은 수확고를 올렸으며 농장 단위나 분조 단위에서 최고 분배를 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각 단위 및 개인 차원에서 경쟁을 벌여 높은 성과를 올린 사람을 치하하는 것이다.

 

북녘 농부들이 풍작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사진 : 통일뉴스 갈무리)

북한 작물 생산량(2001~2022)

연도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
생산량(천톤) 3,946 4,134 4,253 4,311 4,537 4,484 4,005 4,306 4,108 - - -
연도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2023
생산량(천톤) 4,676 4,806 4,802 4,512 4,823 4,701 4,558 4,640 4,398 4,692 4,505 4,820

출처: 통계청 북한통계, 농촌진흥청 추산

 

 

농촌진흥청은 2023년 북의 곡물 생산량을 482만톤으로 추정했다. 전년대비 31만톤 증가한 수치다. 특히 감자고구마(18.4%), 보리(22.2%)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2021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밀보리 중심의 영농 방향 전환을 선언한 이래 정책 전환이 현실적으로 성과를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나 평양, 신의주, 남포 등에서 밀가루 가공공장이 생산을 시작하고 군, 리마다 밀가루 가공기지를 갖추고 식당 설립을 시작하고 있어 북녘에서도 식생활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북에서는 퇴비와 비료를 통해 지력을 개선하는 일이 한창이다. 농장에서는 수급 가능한 유기질 거름과 비료를 내고, 한편으로 새땅찾기를 벌여 경지면적을 늘이고 있다. 도시에서는 유기질 거름과 가금 배설물 등을 농촌으로 운반해 지력 개선에 사용하도록 하며 2022년 군수공업부문에서 농기계를 제작해 농장에 보낸데 이어 2023년에는 중앙과 지방의 생산단위가 농기계 지원에 힘을 보탰다. 올해에도 북은 농촌 살림집 건설과 농업 생산 안정화를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향후 10년 동안 매년 20개 군에 지방공장을 건설하는 20x10 계획도 수립했다. 대북제재로 여전히 박막(비닐), 연유 등 농자재가 부족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서도 농민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지 주목해 볼 시점인 듯하다.

 

┃참고문헌┃

* 법제연구원. 2023. 『북한 법령 신구비교를 통한 북한정책 변화 연구』

* 오삼언. 2018. 김정은 시대 소설에 반영된 농업 및 과학기술 정책과 변화된 일상 - 「목화솜이불」, 「버드나무 설레이는 땅」 등을 중심으로. 북한연구학회보 제22권 제2호.

 

 

이경수┃2000년대 남북간 교류와 협력 실험이 활발하던 시기를 <민족21> 기자로 남북관계 현장에서 보냈다. 2010년대 이후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이제 기자가 아닌 연구자로 평양에 갈 수 있는 날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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