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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4_5 최관의_놀고 삐지고 놀고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5.

[시선 | 좌충우돌 교실이야기]


놀고 삐지고 놀고


최관의


남자 애들이 놀려요.”

그래? 뭐라고 그러디?”

바보래요. 자꾸만 그래요. 그러고는 도망가요.”

지원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요. 지원이를 아이들이 자주 놀리는 터라 이번에는 마음먹고 끼어들었지요.

지원이 울린 사람들 이리 와 보거라.”

순간 몇몇 남자 아이들 눈이 담임에게 확 쏠리는 게 보이네요. 저 녀석들이 이 일과 상관있겠지요. 머뭇거리면서 눈치를 보는가 하면 성큼성큼 다가오는 아이도 있고 슬그머니 자기 자리에 가 앉아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표정으로 시치미 뚝 떼고 수업 준비하는 녀석도 있네요. 아무리 1학년이라고는 하지만 성질이 확 올라와요. 눈에 힘을 주고 목소리가 커졌어요.

일단 이리 나오란 말이다! 지원이가 우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 다 나와! 얼른.”

여기저기 궁시렁댑니다.

난 그냥 옆에서 구경만 했어요.”

준석이가 하라고 해서 했는데.”

웃기만 했어요.”

몇 명이 일어서 나오는 동안 지원이를 힘들게 한 게 확실해 담임 앞에 나와 있던 준석이가 의기양양해서 큰 목소리를 내요.

선생님! 민재도 그래 놓고 안 나와요. 민재 너 나와라.”

자리에 앉아 힐끔힐끔 눈치 보던 민재가 소리를 지르네요.

내가 뭘? 난 안 했다고.”

눈치를 보니 불안해하는 게 보여요. ‘자식, 내가 선생 생활 몇 년인데 눈빛만 봐도 안다고.’하는 생각이 들면서 또 화가 나네요.

민재 너도 나와. 나와서 이야기하라고!”


지원이가 울면서 담임에게 하소연한 뒤로 즐겁던 교실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지원아! 다 나왔지? 이 아이들 맞아?”

그새 눈물 그친 지원이가 생기 도는 목소리로 말하네요.

성욱이는 아닌데요. 그냥 보기만 했고 아이들 보고 그러지 말라 했어요.”

나도 아무 말 안 했잖아?”

아냐. 너는 나 놀렸잖아?”

이제 지원이는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에서 아이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 목소리와 눈에 힘이 들어가고 자꾸 목소리가 높아져요.

이제 시작하자. 누가 먼저 이야기해볼까? 이야기하기 전에 몇 가지 원칙을 이야기하마. 아무리 내 생각이 달라도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끼어들지 않기, 할 말 있으면 이야기 다 듣고 말하기. 그리고 되도록 자기 처지에서 내가 잘 한 이야기만 하지 말고 상대방 생각도 하면서 이야기해보자. 지원이부터 이야기해볼까?”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게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이지요. 지금 상황은 한 명의 아이를 여럿이 힘들게 하는 경우인데요, 이럴 때는 담임이 안 끼어들 수가 없어요. 까닭이 어찌 되었든 한 쪽이 너무 약해 담임이 끼어들지 않으면 자칫 한 아이가 너무 힘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지만 대신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주면 대부분 풀려요. 잘못도 잘 인정하고 사과도 금방 받아주지요.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즐겁게 어울립니다. 그야말로 다투면서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공부를 하지요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 다툼에 교사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학부모님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집에서 지낼 때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부모나 어른들하고 지낼 때보면 문제행동이 보이질 않아요. 그런데 왜 학교에만 오면 아이가 거칠어지고 욕하고 싸우고 그럴까요?”


아이가 놓인 여러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아이가 어른과 함께 있을 때는 어른의 논리가 지배합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맞춰주지요. 부모는 아이가 옳지 못 한 행동을 하거나 자기 생각을 강요하더라도 기다리면서 아이의 처지를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하고 그럽니다. 그러나 또래끼리 어울릴 때는 상황이 달라져요. 또래는 어떤 한 아이에게 맞춰 놀아주지 않는데요, 이 말은 그 아이의 처지를 생각해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른들이 대해주는 방법과는 달리 또래들은 각자 자기 생각과 처지에 따라서 날것 그대로 반응을 보이고 행동해요. 물론 서로의 처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공부를 하지만 또래들끼리 어울릴 때는 부모나 어른의 논리와는 다른 아이들만의 논리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하던 방식으로 자기 욕구나 뜻을 이루려 하면 부닥치고 깨지기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자주 다투고 갈등을 일으키는 아이들은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를 아주 힘들고 어렵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스스로도 고달프지만 곁에서 보는 부모도 안쓰럽고 그렇지요. 여러 가지 까닭 때문에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깨닫는 속도가 늦은 아이에게서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지식 공부가 부족하면 난리를 펴지만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가 늦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들을 안 써요. 말로는 사회성, 사회성 하지만 실제로는 지식 공부에 들이는 노력에 견주면 비교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가 없을 정도지요. 그러다 심각한 폭력이나 따돌림이 일어나고 아이가 눈에 띄게 힘들어하면 그 제서야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사람과 어울려 사는 힘, 사회성을 키우는 건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이에 맞게 배워가지 않으면 나중에 억만금을 주고도 배울 길이 없어요. 부족한 지식 공부는 나이 먹어서도 할 수 있지만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만은 그 나이 그 공간에서 하지 못 하면 나중에 인공으로 만들어 할 수 있는 그런 공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바로 이렇게 중요한 공부를 하는 도중에 어른들이 끼어들어 어른의 논리를 강요하는 일이 교육현장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어요. 다툼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며 성장할 기회를 빼앗고 있단 말입니다.


저는 교실에서 다툼이 벌어지면 가능한 아이들 힘으로 풀어가도록 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이들 다툼에서 손을 떼지는 않아요. 과제를 줄 때 적절하게 난이도를 조절하듯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를 할 때도 아이의 능력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합니다. 다툼과 갈등을 아이들 스스로 풀어갈 만한 상황인지 관련된 아이들의 특성과 앞뒤 사정을 살피고 결정하는 데요, 바로 이 때 교사의 교육적 경험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상황처럼 한 쪽의 힘이 너무 강하거나 한 아이와 여럿 사이의 문제, 기가 약한 아이와 강한 아이, 어느 한 쪽이 주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거나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힘이 너무 부족할 때는 끼어들어 아이들 사이의 흐름에 변화를 줍니다. 흐름에 변화는 주지만 그렇게 끼어드는 가장 큰 까닭은 다툼을 풀어가는 과제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다툼을 멈추게 해서 학부모 민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다툼이라고 하는 골치 아픈 배움의 기회에서 깨달음을 얻도록 도와주는 게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공부는 사람과 어울려 사는 공부이기 때문이지요.

 

  

최관의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학교를 꿈꾸며 서울세명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과 살고 있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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