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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7_4 송태효_평화주의자에게 바친『어린 왕자』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6. 19.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평화주의자에게 바친『어린 왕자』


송태효



어린 왕자의 고향 뉴욕


생텍쥐페리의 소설들은 우편비행사 혹은 전투조종사로서의 비행일지의 산물이다. 특히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생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로서 전쟁에서 체험한 비인간적 참혹함 속에서도 인간의 진실에 기초한 연대감을 상기시키는 글을 쓰는 데 주력하였다.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1943년 당시 미국으로 이주한 그의 부인 콘수엘로 순신이 구입한 롱아일랜드의 저택에서 집필되어 1943년 뉴욕의 레이날 앤 히치콕(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로 동치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의 고향이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말이다. 프랑스에서 어린 왕자(Le Petit Prince)가 초판과 동일한 문장과 그림으로 출판되기까지는 거의 4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뱀과 코끼리


어린 왕자는 그림 동화다. 이야기는 작가가 여섯 살 시절 읽은 원시림 이야기책에 관한 단상으로 시작한다. 비행사는 씹지도 않고 삼킨 맹수를 소화하느라 여섯 달 동안 잠만 자는 보아뱀 이야기를 읽고 그 책에 그려진 그림을 모사해보았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 그림은 맹수를 삼키는 노랗고 독성 강한 뱀을 그린 그림이었다. 어린 왕자 삽화 가운데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크고 선명한 오브제는 아이들의 두려움의 대상인 뱀이다. 물론 이 뱀은 이집트 코브라와 케이프 코브라를 합성한 생텍쥐페리의 상상의 뱀이다.

▲ 뱀과 맹수의 먹고 먹히는 싸움이 인간의 현실임을 보여주는 그림 


이 그림을 토대로 뱀과 맹수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본 어린 아이는 무엇인가 남들과 다른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뱀에 관해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자신만의 첫 작품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그 걸작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며 무섭지 않은지 물었다. 그러나 모자가 뭐가 무서운데?”라는 비웃음과 야유만 들려올 뿐이었다.


▲ 어른들이 모자라고 우긴 뱀 그림. 오른쪽 끝에 눈이 달려 있다.
 

그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었다. 모자처럼 보이는 그림이지만 좌우가 비대칭이고 그림 오른쪽 끝에 눈이 달려 있다. 거대한 코끼리를 삼키고 소화하는 보아 뱀 그림이었다.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 뱀 속을 그렸다. 생텍쥐페리는 어른들은 설명 없으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푸념한다. 어른들에게는 언제나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 코끼리와 뱀에 관한 인식의 틀을 깨는 생텍쥐페리의 그림


일반적으로 코끼리는 선한 초식 동물이요 뱀은 사악한 맹수로 인식된다. 순한 코끼리와 위험한 뱀의 이미지가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모든 뱀 그림에 이러한 일반적 경험을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전시 중에 그려낸 생텍쥐페리의 뱀은 보편적 이미지로서의 뱀이 아니라 그만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코끼리 이미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거대한 코끼리들이 이룬 위험한 위태로운 별의 모습을 보라. 코끼리는 순한 이미지로 대변되지만 어린 왕자의 경우는 이와 다르게 거대한 위험을 상징하기도 한다.


▲ 덩치가 커서 거추장스런 코끼리를 보여주는 그림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수고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메모들을 남기며 글을 써갔다. 이 메모는 아무 생각 없이 이 글과 그림을 읽어갈 독자들을 위한 배려이자 출간인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2012년 파리의 아트큐리얼(Artcurial) 경매에 나왔던 어린 왕자 자필 원고에 적힌 메모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뱀이 평화를, 코끼리가 전쟁을 암시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결론적으로 코끼리는 거대한 나치의 폭력이요 뱀은 그 폭력을 무너뜨리는 작은 진실로서의 프랑스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레옹 베르트에게 헌정한 이유


이러한 뱀과 코끼리의 상징에 관한 논의는 어린 왕자저술의 동기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레옹 베르트에게 바쳤다. 이 어른이야말로 세상에서 그와 가장 친한 친구로서, 아동 도서를 이해하는 어른인데, 프랑스에서 굶주린 채 추위에 떨며 살고 있어 그 어른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 레옹 베르트(1914)와 생텍쥐페리(1920)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서문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소개한 유대인 레옹 베르트(1878~1955)는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 미술평론가, 무용가, 수영선수, 여행가, 기자, 반군국주의 평화주의자였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자 쥐라 지방으로 피신하여, 그러한 상황을 자초한 프랑스 정부를 매트리스 왕국(Royaume du Matelas)’으로 비유한 단편집 33을 썼다. 생텍쥐페리의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1친구에게 보내는 편지33의 서문으로 쓴 글이다. 드골 망명 정부의 노선과 대립하던 생텍쥐페리는 조국을 떠나기를 주저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주전파로서 미국의 참전을 호소하기 위해 망명길에 올랐다. 친구에게 죄송한 마음으로 미국에 머물던 생텍쥐페리는 조국에서 추위와 기아에 시달리며 평화를 고대하던 친구를 위안하려 붓과 펜을 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어린 왕자(훌륭한 예술작품이 대부분 그러하듯) 진실한 평화주의자의 우정의 산물이다.


레옹 베르트에게 어린 왕자를 헌정한 생텍쥐페리는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설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그들을 야만인 취급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평화주의를 간직하였다, 전쟁을 불사하는 이들에게 전쟁의 공포를 설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텍쥐페리는 그들을 야만인 취급해서는 안 되며, 그들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를 이해하고 노력하려 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살려내겠다고 우기는 그것을 전쟁 스스로가 파괴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분단의 현실에서 전쟁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서로 미워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의 땅에 발을 디딘, 같은 조상을 둔 민족으로서 서로 굳게 맺어진 사이 아닌가? 그리고 새로운 통합을 이루기 위하여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서로 대립하는 것이야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이데올로기가 서로를 잡아먹는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텍쥐페리의 말대로 전쟁의 두려움을 서로 인식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 보자. 어린 왕자속에 진정한 평화주의자의 형이상학적 성찰이 담겨 있다.



송태효 | 불문학 박사로 현재는 어린왕자인문학당대표와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 <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생텍쥐페리 <사람들의 땅> <어린 왕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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