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글로 끝까지 싸우기
이영근
국어시간, 모둠이 책상을 돌려서 이야기 나누도록 했다. 앞뒤로 앉은 남학생 희문이와 여학생 수민이가 옥신각신 말다툼하는 모습이 보인다.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스스로 풀길 바라며.
선생 자리에 있으면 아이들 모습이 한 눈에 보일 때가 많다. 둘이 말다툼할 때 그렇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 말다툼이 있기 전 모습으로 돌아가면, 앞자리에 앉은 희문이가 모둠 활동을 하기 위해 책상을 돌리려고 일어선다. 일어서는데 뒷자리 책상 위에 올려둔 수민이 물통을 건드려 넘어뜨렸다. 물통이 넘어졌으니 수민이는 화가 나서 한 마디 한다. 희문이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며 맞받아친다. 둘 모두 그럴 수 있는 상황이다. 희문이가 “미안해.” 하고 말하거나, 수민이가 그럴 수 있다며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그러길 바라며 보고 있었다.
그런데 쉽게 끝나지 않는다. ‘아이고야, 오래 가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희문이와 수민이, 둘 모두 자기 고집이 있는 아이들이다. 모둠으로 함께 활동해야 할 아이 둘도 난처한 표정으로 둘을 보고 있다.
"너희 둘은 둘이서 이야기 좀 나눌래.”
그리고는 둘에게 “희문이와 수민이는 글똥누기에 다투는 까닭을 글로 써 오세요.” 했다. 있었던 일을 자기 처지에서 썼다.
수민 희문이가 돌면서 제 물병을 치고 제가 화를 내어서 수업시간에 말다툼을 하였습니다.
희문 뒤돌아서 회의하려는데, 물병을 실수로 넘어뜨리니 화부터 내고 짜증내서 화가 나서 싸웠다.
“자, 둘이 바꿔서 보세요. 그리고 아래에 있었던 일과 다르거나, 다른 할 이야기가 있으면 또 쓰세요.”
희문 답글 실수로 쳤는데 다짜고짜 화부터 내잖아.
수민 답글 근데 왜 사과를 안 하냐. 니가 사과했으면 나도 사과 받아주는데.
답글을 써 왔다. [물통이 있었으니] [넘겼으니 사과해야]로 생각이 여전히 맞선다.
“또 보고 쓰세요.”
수민 화가 나는데 화를 안 내냐!
희문 어차피 사과해도 그럼 내가 자존심 상하잖아.
희문이와 수민이는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이제는 둘이 풀릴 때까지 서로 주고받으세요.
국어 시간 남았던 10분이 다 지났는데도 계속 서로 주고받더니 쉬는 시간에도 주고받는다. 다음 사회 시간이 되었는데도 둘은 역시나 글을 주고받고 있다.
“선생님, 이제 다 됐어요.”
“그래? 글똥누기 가져와볼래?”
[같이 동시에 미안하다고 말하자]로 결정이 났다. 알고 보니 둘은 유치원 때부터 올해 4학년까지 계속 같은 반(올해 4학년은 여섯 반)을 하고 있다고 한다. 둘이 참 많이 싸웠으면서도 친하다고 서로 말한다. 그래도 다음에 또 싸우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빨리 양보하면 좋겠다. 서로 잘 알고 있으니.
마침 사회 수업은 [도시의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짝과 함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벌써 짝을 지어 하고 있었으니 둘이 함께 해야 한다.
“자, 그럼 이 종이 가져가서 둘이 함께 해라.”
짝 활동을 같이 하게끔 종이를 줬다. 둘이 함께 앉더니, “우리 이거 할까?” 하면서 함께 한다. 언제 싸웠냐는 듯 머리를 맞대고서 함께 한다. 함께 하는 활동이 재밌는지 웃으면서도 한다. 그 웃는 모습에 보는 나도 웃고 만다.
웃는 아이들 모습에 1학년을 가르치던 때가 생각난다. 1학년 남학생과 여학생이 콧물까지 흘리며 울며 다툰다. 내 옆 바닥에 앉은 채 싸운 까닭을 쓰게 했다. 다 쓴 글을 둘에게 주며 읽고 밑에 글을 쓰라고 했다. 여학생이 남학생에게, “이 글자 뭐야?” 하고 물으니, 무슨 글자인지 말해준다. 이어지는 말, “고마워.” 한다. 그 말 듣고는 둘에게 들어가라고 했다. 물론 그날 둘은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른 우리 아이들이 한 곳에서 지내니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우리 반 아이들은 싸웠을 때 그 정도를 따져 이렇게 글로 쓸 때가 많다. 쓴 글을 서너 번 만 주고받으면 대부분 풀리곤 한다. 싸우며 흥분했던 마음이 글로 싸우며 풀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경험으로 봤을 때, 첫 번째는 시간이 흐르며 화났던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억울한 이야기를 글로 다 풀어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친구가 쓴 글을 보며, 친구 처지에서도 생각해 봤기 때문이다.
작은 다툼은 또 일어난다. 그럼 나는 또 “자, 둘은 왜 싸웠는지 써 보자.” 한다.
이영근 | ‘아이들이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경기도 군포양정초등학교 참사랑땀 반(4-6)에서 어린이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둘러쌓여 있지만 자연에서 놀고, 자기생각으로 당당하게 토론하며, 설렘으로 학교에 와서는 행복한 웃음으로 사는 교실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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