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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_5 최관의_싫어! 싫어! 미진이랑 앉기 싫다고!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4.

[시선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싫어! 싫어! 미진이랑 앉기 싫다고!


최관의


자리 언제 바꿔요?”

자리?”

3교시 수업을 시작하려는데 맨 앞에 앉은 달룡이가 짝 바꾸는 이야기를 하네요.

맞다. 오늘이 630. 자리 바꾸는 날 맞네요.”

자리 바꿔요.”

지금 자리 바꿔요.”

공부하기 싫은데 잘 됐다는 듯 소리소리 지르네요. 그 가운데 가장 목소리가 큰 환종이한테 말을 걸었어요.

환종아! 너 지금 짝이 싫구나. 정아가 그렇게 싫어?”

순간 녀석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보여요. 나랑 둘이 있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관샘! 이거 비밀인데요, 정아 좋아해요. 애들한테 말하면 안 돼요.”

당황해하는 녀석을 그냥 놔둘 제가 아니지요.

그런지 몰랐는데, 싫어하는 구나.”

아니에요. 좋아해요. 좋아하는데 그냥 자리 바꿀 때가 돼서.”

좋아해?”

. 좋아해요. 정말이라니까요!”

애들이 난리가 났어요. 비명소리가 나고. 그런 상황에서도 정아는 차분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기만하고 환종이 얼굴만 울상이네요. 장난이 너무 심했나 싶어요.

난 또 싫어한다고 하면 어쩌나 했다. 알았다. 자리 바꾸자. 이번 달은 남자가 여자 뽑는 거 맞지?”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새로 정해진 짝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새 짝 이름표를 뽑고 있을 때였어요. 환종이가 짝 이름표를 뽑아 들더니 얼굴색이 싹 굳어지면서 울상이 되는 겁니다. 그러고는 이름표를 확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겁니다.

싫어! 나 싫다고. 미진이랑 앉기 싫다고.”

별 부담 없이 웃으며 짝 뽑기를 진행하던 저는 순간 당황했어요. 6학년이라면 짝 바꾸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 시작했을 거지만 그 동안 자리 바꾸면서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거든요. 아이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놀란 표정으로 환종이를 쳐다보는 겁니다. 이럴 땐 환종이 마음을 알아줘야 했고 그게 맞지만 순간 거친 말이 나오고 말았어요.

환종아! 그만! 네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만 어떻게 앉냐. 그러고 그렇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막 해! 멈추라고.”

환종이는 담임 말이 귀에 안 들어오는지 뒤돌아서 발까지 구르네요.

안 앉아. 미진이랑 안 앉는다고. 이게 뭐야!”

발을 구르고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소리 지르더니 마침내 욕까지 섞네요. 그대로 더 놔두었다가는 환종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겠어요. 더구나 제 가슴에서 확 올라오는 불덩어리가 느껴져 이 자리를 피해야겠어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환종이 손을 잡았지요.

환종아! 네가 속상한 건 알겠는데 일단 복도로 나가자. 나가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어오자고.”

세상에! 꼼짝 안 해요. 화가 어찌나 났는지 얼굴까지 하얘져서 온 몸에 힘을 주고는 꼼짝 안 하는 겁니다. 환종이가 아이들과 지내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되면 화내고 강제로 빼앗고 밀치는 모습을 몇 번 봤지만 이렇게 온몸으로 화내고 소리소리 지르며 얼굴까지 하얗게 되는 건 처음입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화가 나요. 환종이와 미진이가 자주 다투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싫다고 하다니 이건 말이 안 되지요. 제 가슴 속에 올라오던 불덩어리가 머리끝까지 와서 터지기 직전이 되고 말았어요. 흔히들 하는 말로 뚜껑이 열리려는 순간입니다. 몸을 숙여 환종이와 눈을 마주치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힘줘 말했지요.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복도에서 바람 쐬고 있거라. 내가 데리러 나가마.”

말을 끝내고도 환종이 눈을 계속 바라봤어요. 담임 눈빛에 눌렸는지 아무 말 없이 복도로 나가더군요.


녀석을 내보내고는 얼른 미진이 눈치를 살폈지요. 그런데 걱정한 거와 달리 편안한 얼굴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겁니다. 울거나 하다못해 골이라도 났으려니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흔들림이 없네요. 하루에도 몇 번씩이 누가 놀린다고, 귀찮게 한다고, 같이 안 놀아준다고 이르고 울고 하는 녀석인데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라니!


흥분한 마음도 가라앉히고 반 분위기도 바꿀 겸 해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게 하고는 복도로 나가 보니 환종이가 구석에 앉아 있어요.

좀 기분이 나아졌니?”

고개를 끄덕이는데 풀죽은 모습이네요.

그만 들어가자.”

손잡고 교실로 들어가다 잠깐 서서 물어봤어요.

지금 와서 짝을 바꿀 수는 없어. 어떻게 할래? 들어가서도 미진이한테 계속 그럴 거야?”

아니요. 그냥 앉을래요.”

그래. 수업도 해야 하고 그만 들어가자.”

글씨 공부를 하려고 열 칸 공책을 꺼내고 있는데 환종이 얼굴이 어둡고 굳어 있네요. 저러다 활발하고 거침없는 미진이랑 한 판 붙지 싶어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 순간 미진이가 환종이를 툭툭 치면서 얼굴을 가까이 대며 다정한 표정으로 말을 거는 겁니다.

환종아! 기분 풀어. 내가 잘 해줄게.”

순간 제 귀를 의심했어요. 자기주장이 강해 툭하면 울고 골내고 삐지고 이르기를 밥 먹 듯해 하루에도 몇 번씩 담임을 귀찮게 하는 녀석이 저런 의젓한 말을 하다니. 환종이는 앞만 보고 아는 척도 안 하네요. 그런 환종이 등을 엄마들이 하듯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치면서 미진이가 또 말을 걸어요.

환종아! 기분 풀어.”

겸연쩍은지 대꾸는 안 하지만 환종이 표정이 풀리는 게 보여요.

미진이 너 대단하다. 자기 싫다고 저 난리치는 녀석을 품어주다니. 네가 나보다 낫다.’ 속 좁게 환종이에게 버럭 화낼 뻔한 위기를 겨우 넘긴 제 모습이 떠오르면서도 기분이 좋네요. 오늘 미진이는 큰일을 해냈습니다. 미진이에게 더 살갑게 대해야겠어요.

 

  

최관의 |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이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학교를 꿈꾸며 서울세명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과 살고 있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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