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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_6 강주원_한강하구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민낯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4.

[팩트체크 사진에 담긴 국경읽기]


한강하구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민낯


강주원


평화의 섬 교동도에서 철조망과 중립지역을 만나다

 

201510월 나는 12일 일정으로 ()어린이어깨동무가 매년 주최하는 DMZ 평화기행 평화야 함께 걷자에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답사 일정에 포함된 교동도에서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을 바라보다 지역 전문가인 김영애 우리누리평화운동 대표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가졌다.

 

"남쪽의 교동도와 북쪽의 연백평야 사이의 강이자 바다인 저 곳은 남·북의 중립지역입니다. 철조망이 생기기 전 교동도 주민들은 갯벌에 나가 조개를 채취했습니다. ·북 사이에 이런 공유지역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 몰라요.

북쪽 사람들은 요즘도 갯벌에 나와 어업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철조망에 갇혀 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우리는 못하고 있습니다."

 

교동도의 삶의 역사와 현재가 담긴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왜 이 섬을 감싸 도는 강이자 바다인 공간을 휴전선의 눈으로만 바라봤을까? 막연히 단절된 공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곳에 철조망이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을까?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 혹은 망각하고 있는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 교동도의 철조망을 바라보다가 이와 관련된 일들을 회상하면서 자책했다. 오래 전에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조감도에는 ·북 중립지역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이후에 방문했을 때에는 그 표시가 사라져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기만 하고 더 이상 찾아보지 않았다그 기억을 떠올리며 손에 들고 있던 평화의 섬 교동도 관광안내지도를 꼼꼼히 되살펴보게 되었다. 2015년에 제작된 지도에는 선명하게 교동도와 연백평야 사이로 군사분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중립지역과 군사분계선 그리고 현장의 목소리와 문화체육관광부 표준지침으로 만들어진 지도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될지 막막했다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정치가들이 간혹 대한민국 유일의 DMZ가 아닌 중립지역(한강하구 프리존)”을 언급하는 사례가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은 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다수를 이루는 기사는 휴전협정 이후 그곳에는 철조망이 있었고 군사분계선의 의미를 강조하는 내용과 지도가 많았다.

 

휴전협정의 당사자(미국, 중국, 북한)들은 한반도 서쪽 끝 한강어귀 교동도에서 동쪽 끝 고성 명호리 해변까지 248km에 이르는 구간에 철조망을 치고 군사분계선이라는 팻말 1,292개를 박았다

주간경향2015310일자 -

 

교동도와 관련된 블로그와 카페의 여행 후기를 살펴보아도 비슷하다. “철조망의 역사를 약 20년으로 인식하는 것보다는 약 60년 넘은 것으로, 연백평야와 교동도 사이의 공간을 공유지역혹은 중립지역이 아닌 군사분계선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더 강하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교동섬은 북한 연백군 바닷가와 불과 2~3km 떨어져 있지만 남·북 화해 무드가 일기 직전까지도 철책이 없었다. 하지만 1997년 해안선 37km 가운데 25.5km에 높이 3m가 넘는 견고한 군사용 철책이 쳐졌다. 섬 주민 황아무개(66)씨는 “6·25 전쟁 이후 50년 가까이 비교적 자유롭게 물에 나가 고기도 잡았는데 지금은 철책 탓에 엄두도 못 낸다.” 

-《한겨레신문2006219일자-

 

국내 국제법 전문가들은 정전협정 15항에 따라 한강하구는 남·북의 공유 하천이자 국경지역으로, 군사적 의미가 없는 민간의 출입이 가능한 지역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의 존재를 몰랐던 우리는 DMZ 영역으로 예단하며 분단의 철조망을 스스로 쳤던 셈이다

-《오마이뉴스2005711일자-

 

한강하구 중립지역은 정전협정 제 15에 규정되어 있고, 이 내용을 1953103일 비준한 추가합의서를 통해 보강하고 있다. 주요 내용 가운데, “2항 한강하구 수역과 각방 군사통제지역의 경계선은 만조시의 수륙 접촉선으로 한다.”10항 일반의 선박은 타방의 통제수역과 강안에 들어가지 못하며 한강하구 수역의 타방의 경계선으로부터 100m 이내로 접근하지 못한다.”가 있다. 한편 이 중립지역에서 가장 폭이 넓은 곳은 10km이고 가장 폭이 좁은 곳은 900m이다. 나는 만조시, 100m 그리고 900m”라는 단어와 숫자 앞에서 1997년 이전 철조망이 없던 시절의 다양한 장면들을 상상해본다.

 

 

한국 사회에서 2016년 한강하구는 어떤 지역으로 자리매김을

 

20166,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과 관련되어 한국 언론은 이 지역을 “63년 만에 재조명되는 한강하구 중립지역또는 초민감 지역이라는 시각에서 주목하고 국방저널7월호에서 설명한 육지의 비무장지대(DMZ)처럼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한강하구에 설정한 남북한의 완충지대로 규정하고 있다.  한강하구 중립지역에 대해서 공부가 부족한 나로서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한편으로 20166월 한국 언론의 표현대로, 이 지역이 “63년 만에 중립지역으로 재조명되는 사실이 반갑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앞에서 언급한 교동도 어민의 삶의 터전이자 대한민국 유일의 DMZ가 아닌 중립지역보다는 민간인 통제구역이자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육지의 DMZ”로만 설명되고 있는 기사 내용들에 답답하다. 이 지역의 특징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떠나, 한국 사회에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을 기억 혹은 망각하고 있는 것인가?”를 되묻게 된다.

 


강주원 |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부터 중·조 국경과 연을 맺고 있다. 주 연구대상은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 그리고 탈북자이며, 이들을 통해서 통일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하는 인류학자의 길을 걸어가는 꿈을 키우고 있다. 저서는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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