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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_4 김동진_어떻게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4.

[시선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어떻게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김동진


분쟁지역에서 맺어진 휴전 조약들이 유엔의 평화유지(Peacekeeping) 활동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휴지 조각으로 변해버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국제사회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보다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1992년 유엔사무총장이었던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평화를 위한 의제’(An Agenda for Peace)라는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의 평화유지 활동을 넘어 유엔이 좀 더 집중해야 할 활동으로 평화구축(Peacebuilding)을 제안했다. 부트로스 갈리가 제안한 평화구축은 국제사회가 개입해 싸움을 말리고, 더 이상 싸우지 못하도록 중간에서 지키는 것을 넘어, 갈등 당사자들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평화적 사회구조를 만드는 일에 초점을 둔다.


사실 부트로스 갈리의 제안은 이미 1970년대부터 평화학자들에 의해 주장되고 발전되어 온 평화구축 이론을 반영한 것이었다. 갈퉁을 비롯한 평화학자들에 따르면 집단 간의 갈등과 앙금을 해결하지 않은 채 중단된 전쟁은 재발 가능성이 높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휴전선은 군인들 사이의 무력 충돌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갈등 집단 사이의 교류를 막는 기능을 한다. 이 경우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은 외부의 안보 위협을 자신들의 내부 권력 유지에 활용한다. 문제는 서로 교류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 권력을 정당화하다 보면, 상대를 향한 적대감이 계속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이로 인해 전쟁이 재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휴전 조약이 곧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리는 이유이다. 때문에 평화학자들은 갈등 집단을 서로 떨어뜨려 놓아 전쟁을 방지하는 평화유지 방식이 아니라, 갈등 당사자들이 서로 자주 만나며 함께 평화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평화구축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 마디로 평화유지 활동이 군인들 사이에 담을 건설하는 것이라면, 평화구축 활동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는 활동이다.


한반도에서도 국제사회의 개입을 통해 휴전협정이 맺어졌다. 그러나 6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에도 군인들 사이의 담은 여전하다. 이 담은 남과 북 사이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남과 북의 일반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평화의 관계를 맺어가는 일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담장은 휴전선 철조망과 같이 눈에 보이는 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 갈등집단을 향한 사회적 장벽이 존재한다. 이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자기 집단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이런 장벽을 활용해 정치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단순히 평화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 정치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으로 비추어 지기도 한다.


▲ 이곳이 바로 Peace Wall, 또는 Peace line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벽은 1969년, 북아일랜드의 신교도와 구교도의 충돌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은 장벽이 있다 하더라도 자유롭게 서로의 지역을 왕래할 수 있지만, 이 벽이 양측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벽을 찾아와 평화의 메시지를 남긴다. info.hanatour.com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경우, 이제 이전과 같은 군사분계선은 사라진 상황이다. 그러나 상대를 향한 사회적 장벽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한 워크숍에서 남아일랜드 참가자들에게 북아일랜드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지 물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도 북아일랜드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필자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이십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남아일랜드인들에게 북아일랜드는 상당히 공포스러운 지역이다. 북아일랜드를 가로질러 가면 더 빠른 길도, 일부러 북아일랜드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더 느린 길로 돌아간다는 응답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북아일랜드 내부의 사회적 장벽이다. 영국 정체성을 가진 개신교 지역과 아일랜드 정체성을 가진 천주교 지역을 가르는 장벽은 평화협정 이후 오히려 더욱 높아졌다. 오렌지공 윌리엄의 전승을 기념하는 712일 새벽에는 북아일랜드 주요 도시에서 아일랜드 국기를 불태우는 의식이 거행된다.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영국 정체성을 가진 정당에만 투표하고, 대부분의 천주교인들은 아일랜드 정체성을 가진 정당에만 투표한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라는 이름으로 이런 사회적 장벽을 합리화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앙금과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트로스 갈리 및 평화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지속가능한 평화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담장과 장벽을 넘어, 서로 공감하고, 서로를 인간화하며, 함께 평화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들이 관계를 맺어 나가기 시작하면, 갈등 구조로 인해 이익을 얻고 있는 권력 집단들도 더 이상 분쟁 상황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어렵게 된다. 이는 단순히 국내 정치 차원의 권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갈등 당사자가 서로 화해하고 평화적 관계를 맺어 나갈 때, 비로소 이들의 갈등에서 군사적 경제적 이득을 얻는 주변 강대국들이 국제 정치경제적 차원의 개입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소지가 없어지게 된다.


한반도에서도 평화유지를 넘어선 평화구축의 시기가 있었다. 반세기가 넘게 막혀 있던 장벽을 넘어 인도적 협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사회문화경제 교류가 활성화되었고 남과 북의 주민들은 마치 통일이라도 된 것처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평화공존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남북 관계를 보면, 이런 일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다시 갈등과 폭력이 언론 보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남북은 다시금 전쟁 재발을 걱정해야 할 만큼 사이가 벌어졌고, 서로를 비난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왕래와 교류는 끊어져 버린 상황이다.


담을 지키는 군인들이 담을 넘으면 전쟁이 시작되지만, 일반 시민들이 담을 넘으면 평화가 이루어진다. 문제는 누가 먼저 담을 넘는가이다. 군인들이 담을 넘어 다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무너진 평화의 다리를 재건해야 한다. 물론 아일랜드의 사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다리를 세운다고 자동적으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린이어깨동무와 같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이용하도록 돕는 평화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의 다리를 건너 다시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평화구축이 하루 빨리 재개되길 바란다.

 

김동진 | 한신대에서 신학을, 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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