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8.02.19 14:29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영국에서 아리랑을 불러봅니다


원마루


안녕하세요, 어깨동무 식구 여러분,


이제 며칠 후면 설날을 맞을 준비를 하시겠군요.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살게 된 지 이제 10년이 되어 가는데 여전히 저는 음력 설을 지내야 새해가 온 것 같고, 김치 만두를 빚어 떡만두국을 끓여 이웃을 초대해 아이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세배도 하고 윷놀이를 노는 시간을 기대합니다. 저희 아이들에게 한국에서는 나이만큼 만두를 먹는다고 말해주었는데 올해는 만두를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어깨동무 가족 모두 풍성한 설날을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이렇게 명절이 오고 한국이 그리워질 때면 저는 아내, 아이들과 노래를 불러보는데 요즘 떠 오르는 노래는 개똥벌레와 아리랑입니다. 개똥벌레는 예전에 한 번 마을의 고등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공동체 축제 때 불렀는데 친숙한 곤충이 등장해서 그런지, 아니면 개똥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소재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입에 착착 붙는 노랫가락 때문인지 마을 사람 모두가 무척 좋아했습니다. 한 친구는 이 노래를 영어로 번역해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 말아라 아니면 돈 고워에이(Don't go away) 돈 고 워에이 돈 고워에라고 흥얼거리는 친구를 간혹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슬프면서도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울다 잠이 든다로 마무리합니다. 아무튼 한국의 사람들 노래(folk song)인 포크송 개똥벌레 덕에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두 번째 노래 아리랑은 이곳 영국 식구들이 가장 잘 아는 한국 민요(folk song)입니다. 한국 손님이 오셨을 때 청하면 곧잘 부르는 노래가 이 노래이고, 런던에서 한국문화 행사가 열리면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저희 마을의 음반 도서관에 가면 미국의 포크송 가수 피트 시거가 세계 여러 나라의 민요를 모아 부른 음반이 있는데 거기에는 한국의 아리랑도 담겨 있습니다. 피트 시거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노래를 부르기 전에 관객들에게 아리랑의 배경을 제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아리랑을 당시 고통당하던 사람들의 애환을 부른 노래인 동시에 남과 북의 사람들이 두루 아는 노래이기때문에 남북의 일치를 상징하는 노래라고 합니다.


피트 시거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네 사람들은 정든 터전을 떠나야 했던 여행길에 아리랑을 부르며 슬픔을 달랬고, 서로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방마다 특유의 가락과 노랫말의 아리랑이 불리고 있지요. 그리고 아리랑은 소련 때문에 강제로 고국을 등져야 했던 고려인들에게도 불렸습니다. 저는 예전에 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던 1917년 러시아군에 징집되어 독일과 전투를 치르다가 포로로 잡인 고려인들이 수용소에 부른 아리랑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프로이센 수용소에 갇혔던 김그리고리(김홍준)과 안 스테판(한국 이름 미상)이 불렀던 아리랑 노래가 100년이 지나서 공개된 겁니다.


두 사람이 부르는 애달픈 아리랑 곡조를 듣고 있자니 고향을 그리워하고, 어서 평화가 와서 정든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곳 영국에서 제가 찾던 형제애의 삶을 기쁘게 살고 있지만, 고국의사람들을 그리워하고 그곳의 상황을 염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어쩌다가 저도 모르게 아리랑을 콧노래로 부르게 되는데 그때는 한국 친구들의 얼굴을 그려보고, 동시에 한국의 평화를 기원하게 됩니다.


고려인 전쟁 포로가 부른 아리랑 듣기


마을 식구들이 저녁에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 부르는 모습. 사진: bruderhof.com/ko에서


곧 열릴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의 노래로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피트 시거의 말대로 이 노래는 남북 평화의 상징인 게 틀림없습니다. 자신이 속한 나라의 정치적 입장을 잊은 채 손을 맞잡고 노래를 함께 부르다 보면 모두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일 것 같습니다. 아직 북한과 미국의 오래된 적대 관계를 풀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고개가 많지만 아무쪼록 이번 기회를 통해 평화의 아리랑을 부르며 교류의 문을 열어나가길 기대합니다. 그래서 어깨동무가 다시 북녘의 어린이병원과 콩우유 공장, 학용품 공장을 찾아가 지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설에는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우리 가족, 마을 식구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민요는 모름지기 우리의 삶을 담고 마음을 담아 함께 만들어 부르는 노래라고 하니 저희 나름대로 노랫말을 붙여 부를 수 있겠지요. 그렇게 우리가 지어 부르는 노래는 영국 아리랑 또는 저희 마을 이름을 따서 너도밤나무 아리랑이 되겠군요. 벌써 입에서 노랫말이 흘러나와 한 번 적어봅니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1. 봄이 왔네 새봄이 왔어 평화의 봄을 열어나 보세

(후렴)


2. 총을 버리고 손 맞잡고서 화해의 세상을 만들어봐요

(후렴)


3. 잠긴 문을 열어젖히고 기쁨의 잔치를 열어나 보세

(후렴)


영국 학교에 다니는 저희 아이들에게 한국 노래 부르기는 한국말을 배우면서 우리네 문화를 배우고, 아픔과 희망을 나눌 기회입니다. 멀리서지만 어깨동무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하며 마음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소식 전할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2018년 2월 3일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  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등을 번역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