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7.08.01 15:56

[시선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나 그리고 친구


이영근


나 색연필이 필요한데.”

내 건 안 돼.”

둘이 주고받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내 건 안 돼.’ 하는 말이 아쉽다. 하루 종일 함께 앉은 짝에게 색연필 하나 안 빌려주려니.

일부러 크게 말했다.

○○, 색연필 필요하니?”

.”

여러분,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요?”

짝과 같이 쓰면 돼요.”

그래? 그럼 ○○, 그럴 수 있니?”

.” 하고 선뜻 빌려준다. 그러면 웃으며 함께 한다.

 

우리 참사랑땀 반에는 스물여덟의 아이들이 있다. 일곱 모둠이 있고, 모둠은 둘씩 짝을 지어 앉는다. 7주에 전체 모둠을 바꾸고 모둠 안에서 주마다 짝이 바뀐다. 모둠으로 함께 앉는 짝과는 3, 4주는 함께 앉는다나와 함께 앉는 친구와 관계를 맺게 해야겠다.’

 

도덕 시간을 한 시간 냈다. 칠판에 아이들 이름이 써 있는 자석을 이곳저곳에 붙인다. 아이들은 뭐 할 건데요?” 하며 궁금해 한다. 칠판에 이름이 다 붙었다. “여기 여러분 이름이 다 있어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한 명씩 뽑을게요. 그럼 뽑힌 학생은 나와서 나와 관계있는 친구에게 선을 긋도록 하세요. 그리고 선 옆에는 낱말로 선 그은 관계를 써요. 3학년 때 같은 반이었으면, ‘3학년하고 써요. 그리고는 자리로 돌아가서는 글똥누기 수첩에 그 친구와 어떤 관계인지 문장으로 써 보세요. 그럼 한 명씩 뽑을게요.”


그러며 서너 명을 차례대로 뽑는다. 한꺼번에 한다. 자석에 작은 글씨로 이름이 써 있는데도 자기 자석이 어느 것인지 안다. 그러며 친구가 자기 이름으로 선을 그어오면 씩 웃는다. 쓴 아이는 자리로 들어가서 글똥누기에 그 친구 이름을 쓰고, 쓴 까닭을 쓴다.


 

한 번씩 모두가 돌아가며 썼다.

, 한 번 더 할게요. 다른 친구를 찾아가세요.”

!”

아이들에게 이 활동은 벌써 놀이가 되었다. , 하는 대답이 그렇고, 친구 이름을 찾아가는 선이 그렇다. 바로 가서 만날 수 있는데도 아이들은 일부러 비뚤배뚤 돌아 돌아 친구 이름으로 간다. 두 번째 선도 모두 그었다. 세 번째까지 한다.

 

지호

소연 : 지우개 파기로 더욱 친해진 관계이다 .

시은 : 2학년 때 자주 같이 놀던 친구

예린 : 어제 예린이네 집에서 놀았다.

 

나연

시언 : 나랑 교회를 같이 다닌다 .

지호 :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주혁 :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현지

주아 : 3학년 때 나누리반에 데려다줬다.

소연 : 4학년 때 그림을 3번 같이 그렸다 .

지호 : 미술 지우개 판화를 같이 했다.

 

도형

서준 : 같이 야구를 한다 .

두언 :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윤우 : 술래잡기를 같이 했다.

 

희성

원준 : 3학년 때 같이 맨날 놀았다.

문현 : 게임하면서 같이 놀았다.

민준 : 축구를 같이 했다.

 

승재

태건 : 3학년 같은 반이었고 친하게 놀았다 .

시언 : 나와 같은 교회를 다닌다 .

나연 :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다.

 

칠판 가득 선으로 연결이 되었다.

, 복잡해. 저기 내 꺼 있다.”

더 신비로운 건 자기가 그은 선이 자기 눈에는 띄나보다.

그게 보이네.”

!” 모두 한 목소리다.

이렇게 나와 친구가 선으로 연결되었다.

그럼 우리 느낀 점 말해볼게요.”

모두가 느낀 점을 발표한다.

 

아이들의 느낌 중 일부

- 복잡하다.

- 친구와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 친구끼리 우정을 확인해서 좋았다.

- 칠판에 산과 강 모양 같아서 신기하였고

  친구랑 좋았던 점을 이야기해서 친구랑 사이가 더 좋 아진 것 같다. 또 재미있었다.

-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생각났다. 좋았다.

- 친구들과의 추억을 알 수 있어 좋았다.

- 재미있고 원준, 문현, 민준이와 더 많이 친해진 느낌이 들고 다음에 또 하면 좋겠다.

- 친구에게 선을 그으니 친구와 이어지는 것 같다.


둘이 서로 그은 아이도 확인한다. 서로 눈을 보며 좋아한다. 아이들 느낌에도 이런 말은 있다.

- 친구들이 나한테도 가니까 좋다.

- 친구와 노는 걸 해서 기분이 좋고, 친구들이 나를 많이 해주어서 좋았다.

 

나는 그었는데 친구가 나에게 안 그은 사람도 있죠?”

.” 하며 웃기도 하지만 이런 학생은 말이 없다.

너무 실망하지 마요.”


나는 그 친구를 생각하며 선을 그었는데, 친구가 나에게 오지 않으면 실망하기 나름이다.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도닥거리고 싶은 마음이다.

 

혹시 이런 말 또는 노래 들어봤나요?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거라는 말. 사랑은 받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해요.”

재미있었다는 느낌도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어때요?”

. 재밌어요.” “다음에 또 해요.” “. 또 해요.”

그럼 달에 한 번씩 할까요?”

.”

다음에 할 때는 오늘 그은 친구를 그대로 가는 게 좋을까요? 다른 친구와 선을 그을까요?”

다른 친구로 해요.”

그래요. 그럼 다음에도 하는데, 다른 친구 셋에게 가는 걸로.”

 

이 활동은 5월 중순에 했다. 6월에 했어야 하는데, 내가 놓쳤다. 곧 방학인데, 방학 전에 아이들과 꼭 해야겠다. 한 시간 친구 생각하며 관계를 연결하려 한다. 2학기 때도 달에 한 번씩은 할 테다. 그러면 4학년을 마칠 때면 스물이 넘는 친구들에게 선을 연결하게 되겠다.

난 혼자가 아니에요. 이렇게 함께 있어요. 우린.”

사실 이 말도 필요 없을 것 같다.




이영근 | ‘아이들이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경기도 군포양정초등학교 참사랑땀 반(4-6)에서 어린이들과 지내고 있습니다. 아파트에 둘러쌓여 있지만 자연에서 놀고, 자기생각으로 당당하게 토론하며, 설렘으로 학교에 와서는 행복한 웃음으로 사는 교실을 꿈꿉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8.01 15:38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잘 지내세요, 돌고래, 오솔길님?

 

원마루


잘 지내세요, 돌고래오솔길님

여름 햇볕이 따가운 영국 너도밤나무 숲에서 인사드립니다. 어깨동무 식구들 안녕하시고, 아이들도 잘 지내고 있지요? 작년 가을 우리 공동체에 오셔서 함께 며칠을 지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그 때 일러주신 동네 분들이 부른다는 별칭으로 불러도 괜찮지요? 왠지 편해서요. 어깨동무에서 펴내는 피스레터에 글을 쓰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평화편지에 쓰는 글이니 두 분께 편지를 쓰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생활에서 겪고 느끼는 작은 것들을 두서없이 적어 보려고 해요.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며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평화 얘기를 하자니 크리스토프 할아버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네요.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한국에는 왜 용서해야 하는가의 저자로 알려졌지요. 사실 어깨동무하고도 인연이 있는 분이세요. 2012년에 한국에서 할아버지의 책 아이들의 정원이 그리고 재작년에 용서 책이 나왔을 때 얻은 수익금으로 어깨동무의 활동을 응원 한 적이 있지요. 그때 할아버지는 당신의 책이 한국 독자를 만난다는 일에 가슴 설레하셨고, 책 수익금이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고 하니까 보람을 느끼셨어요.

 

그런 할아버지가 지난 415일 암과 싸우시다가 소천하셨어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열정을 지녔던 할아버지는 가족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마지막 숨을 내쉬셨습니다. 크리스토프 할아버지는 1940년 영국에서 태어나셨어요. (공동체 식구들은 이분은 오파라고 친근하게 불렀어요. 오파opa는 독일말로 할아버지라는 뜻이고요) 할아버지의 조부모가 1920년 독일에서 설립한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나치의 탄압을 받아 1936년 할아버지 가족과 공동체는 영국으로 이주했어요. 얼마 되지 않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적국인 독일 출신의 공동체 식구들은 남미의 파라과이로 옮겨가야 했습니다.

부모님이 히틀러와 전쟁을 피해 망명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란 할아버지의 마음에는 아마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향한 바람이 자라기 시작했겠죠? 할아버지 가족은 1955년 파라과이에서 미국 뉴욕주로 옮겨오게 되는데 표현의 자유 정신이 헌법에 녹아있는 사회에 살게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대요. 그리고 이어 흑인들의 시민권 보장을 요구하는 평화 운동이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을 때 20대 청년이었던 할아버지는 단번에 그 운동에 뛰어드셨습니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1997년 뉴욕 경찰청 소속의 스티븐 맥도널드 경위를 만난 일은 할아버지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맥도널드 경위는 1986년 센트럴 파크에서 근무를 하던 중에 십대가 쏜 총에 맞아 전신 마비의 중상을 입었어요. 갓 결혼한 신혼부부였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를 기다리던 때였지요

얼굴과 몸에 중경상을 입고서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평생 전신 마비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서도 자신을 쏜 15살의 소년을 용서한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이제 막 재활치료를 시작할 즈음에 태어난 아들을 보고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가 있고, 폭력이 아닌 평화와 화해를 위해 무언가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공개적으로 용서하고, 감옥에 갇힌 소년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이 사연을 들은 크리스토프 할아버지는 뉴욕시 롱 아일랜드에 위치한 맥도널드 경위 집에 찾아갔습니다. 용서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공감한 두 사람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충돌하는 북아일랜드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을 찾아가 용서의 중요성을 알리고, 1999년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진 뒤에는 중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비폭력갈등 해결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브레이킹더사이클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어깨동무에서도 학교 방문 순회 강연을 가시고, 저도 영국에서 열리는 브레이킹더사이클에 몇 번 참여해 봤지만 아이들에게 대화와 이해, 화해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은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하잖아요.

 

비폭력 갈등 해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 브레이킹더사이클이 뉴욕주 뉴폴츠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모임 직후 학생, 교사들과 함께 한 크리스토프 할아버지, 스티븐 맥도널드 경위, 그리고 전직 갱 하심 개럿.

 

그런데 제가 정말 도전을 받은 것은 할아버지의 다음 글을 읽고나서예요.

사람들은 모두 평화를 원하며, 아무도 평화에 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기꺼이 자신을 던져 평화가 구체적인 현실이 되도록 할 것인가. 평화의 길은 수동적이거나 체념적인 것이 아니다. 평화는 사랑의 행위를 요구한다.” -평화주의자 예수에서

 

할아버지는 제가 늘 큰 틀의 이야기를 하면,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내 마음 안에 평화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저는 그때마다 멋쩍어 했지요. 사실 저는 왜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번역하고 알리는 일을 했지만, 가족이나 동료같이 정작 제 곁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는 데는 얼마나 옹색한 지 몰라요. 제일 먼저 화를 내고는 정작 미안하다는 말을 제일 나중에 하니까요. 그 한마디 말에 마음의 벽이 쉽게 무너지는데도요. 그래도 매일, 매 순간 새로운 시작의 기회가 오니 다시 해보면 되겠죠?

 

돌고래님, 작년 가을 이곳에 오셨을 때 공동체 식구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모인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시면서 한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셨죠? 그 뒤로 계속 식구들은 한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한반도 주변에 긴장이 깊어질 때 더 생각하고,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BBC 뉴스에서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식구들이 제게 찾아와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에 계신 분들의 안부를 묻곤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반가워하고 있고요.

나라들 사이의 갈등이나 충돌은 한 사람, 한 어린이의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상황을 바꾸는 일에도 아무런 힘이 없다고 느끼고 실망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한 사람이 평화를 결심하고, 작은 실천을 하고, 이곳의 한 사람이 똑같은 마음으로 살면 평화는 꼭 이루어질 겁니다.

 

이번 편지는 이걸로 줄일게요. 마지막으로 지난주 토요일 공동체 식구들과 이웃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불렀던 피트 시거의 노랫말을 보내 드려요. 언제 같이 불렀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세요. 나중에 다시 한 번 바닷가에 가서 조개 줍자고요.

 

한 사람의 손으로는 감옥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두 사람의 손으로도 감옥의 벽을 허물지 못하지만

두 사람과 두 사람, 오십 명의 사람이 백만의 사람을

이루면 그 날이 오는 걸 우리는 보게 되리라

 

한 사람의 눈으로는 미래를 분명히 보지 못하고

두 사람의 눈으로도 미래를 분명히 보지 못하지만

두 사람과 두 사람, 오십 명의 사람이 백만의 사람을

이루면 그 날이 오는 걸 우리는 보게 되리라

 

2017710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 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등을 번역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TAG 어린이
피스레터(글)2017.08.01 15:14

[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낭만주의 평화와 반전의 기록자: 들라크루아 


김소울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이 그림은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 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의 한 장면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역사서에서 프랑스 혁명과 함께 자주 등장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림 한 가운데에 민중을 이끄는 여인이 프랑스 혁명의 상징인 삼색기를 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사용된 이후 사용을 금지 당했다가 1830년 다시 혁명을 위해 사용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1814년 왕정 복고로 루이 18세와 샤를르 10세가 차례로 왕위에 올랐고, 샤를르 10세는 입헌군주제를 반대하며 과거의 정치체제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1830727, 시민들은 또다시 봉기했고 29일만에 샤를르 10세는 영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그림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왼쪽에 정장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는 부르주아 남성, 오른쪽에는 하층 계급의 소년, 그리고 맨 왼쪽에 셔츠를 풀어헤친 젊은 노동자의 모습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 혁명이 전반적인 사회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빅토르 위고는 하층소년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 <레미제라블>에 이 소년을 구두닦이로 등장시켰다. 또한 들라크루아는 이들의 발 밑에 쓰러져 있는 시민군과 정부군의 시체들을 통해 혁명의 기간 동안 일어났던 희생에 대한 애도를 표하였다. 그림 속 모자와 총을 든 인물은 들라크루아 자신을 모델로 그린 인물인데, 그는 이를 통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에는 화가도 붓을 던지고 총을 잡는다는 의지를 표현하였다. 그가 형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나는 조국을 위해 싸우지 못했다. 하지만 난 조국을 위해 그림을 그릴 것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붓으로 나타낸 민주주의를 향한 혁명의 상징이었으며, 지금까지도 미술역사상 자유를 쟁취하고 해방을 꿈꾸는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외젠 들라크루아, 키오스 섬의 학살(1824)

 

다음 그림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보다 앞서 들라크루아가 제작한 <키오스 섬의 학살>이다. 이 작품은 1822년 그리스독립전쟁 도중 터키인들이 키오스섬의 무고한 주민들을 학살하였던 사건을 주제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2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7만명이 넘는 이들이 노예로 끌려가게 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키오스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살해당한 사람들의 모습은, 단지 키오스섬의 학살사건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역사 속에 있어왔던 무수히 많은 학살 사건들을 나타내는 그림이기도 하다. 섬의 주민들을 약탈하고 학살하며, 민가를 모두 불태웠던 끔찍했던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들라크루아는 키오스섬의 학살 사건에 대한 분노와 경계심을 담아 국제사회에 그리스의 구원을 호소하겠다는 신념으로 이 작업을 완성하게 되었다. 1830년 그리스가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키오스는 여전히 터키의 영토였으며 1912년 비로소 그리스에 귀속이 되었다. 무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끔찍한 비극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들라크루아의 염원이 이 그림과 함께 역사 속에서 오래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아이캣 미술치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8.01 14:21

[시선 | 세상과 만나는 인문학]


어린 왕자가 전하는 평화 연대의 메시지


송태효


경험상 우리는 사랑한다는 것이 우리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생텍쥐페리, 사람들의 땅

 

생텍쥐페리는 1935파리 수아르(Paris Soir)지 리포터로 모스크바를 취재하고, 에어프랑스 후원으로 구입한 자가용 비행기 시문(Simoun)을 타고 지중해 연안을 탐사하였다. 그해 1230일 파리-사이공 비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신의 시문을 타고 이집트로 향하던 생텍쥐페리는 현지 시각 445분 카이로에서 200지점,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하여 사경을 헤매다 닷새 만에 베두인족에게 구조되었다.

 

그 처절한 기아와 갈증의 고통, 고독과의 사투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이방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텍쥐페리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든 사람들의 땅(Terre des Hommes)(1935)*의 제7사막 한가운데에서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생텍쥐페리는 구조대를 기다리는 긴장되고 간절한 상황에서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의 자신인 어린 왕자를 만났던 것이다. 이후 독일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여 망명한 뉴욕에서 그는 이 어린 왕자를 동화로 창작하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어른들에게 실천적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인간의 대지로 번역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전편인 사람들의 땅은 인질협상가, 우편비행사, 항공노선 탐사가, 특파원, 전쟁리포터로서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기록한 자전적 소설로서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mie Française)의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해 바람, 모래 그리고 별(Wind, Sand and Stars)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되어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다. 같이 미국으로 망명한 위대한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아들 장 르누아르(Jean Renoir)는 전쟁의 공포를 각성시키고 평화적 연대감을 호소하기 위해 사람들의 땅을 영화로 완성하려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쉽게도 그 과정의 기록만 남아 있다.


생텍쥐페리,사람들의 땅(Terre des Hommes), Gallimard, 1939


생텍쥐페리,친애하는 장 르누아르 (Cher Jean Renoir), Gallimard, 1999

 

어린 왕자의 기원은 사람들의 땅마지막 부분인 제8사람들이다. 홀로 해변으로 향하는 야간 기차에 탑승한 생텍쥐페리는 새벽 1시경 열차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텅텅 빈 침대칸과 일등칸과는 달리 외국인으로 꽉 차 있는 삼등칸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프랑스에서 이주 노동자로 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폴란드 해고 노동자 수백 명이 잠들어 있었다. 경제적인 추세에 떠밀려 유럽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흔들거리며 끌려가고 있는 이방인들이었다.


우연히 어떤 부부 앞에 앉은 생텍쥐페리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끼어 그럭저럭 자리를 만들어 잠자는 어린애 하나를 발견하였다. 빛나는 이마에 삐죽 입술을 내밀고 있는 아이를 보자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떠올랐다. 그는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평화의 아름다운 약속을 발견한다. 그것은 성장하면 깨어져 사라질 동화 속 평화의 어린왕자 모습이었다. 보호해주고, 보살피고, 교육하면 아이들은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왕자는 전쟁의 공포를 무시하는 어른들 속에 잠들어 버린 평화로운 어린 시절의 나의 이미지이다. 예전에 우리 모두는 어린 왕자였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어린왕자가 우리 안에 살고 있었다. 이제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모차르트의 부활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생텍쥐페리는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프랑스 남부에 인질로 남아 있는 그 시대의 어린 왕자유대인 반군국주의 평화주의 시인레옹 베르트(1878~1955)에게 자신의 어린 왕자를 헌정하였다.

 

생텍쥐페리는 평화를 논리로 풀려하지 않는다. 나아가 논리로 설명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의 인생조차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정치가들이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거창한 말의 진정성과 논리성을 따지려 들지도 않는다. 그들의 말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말이 자신의 요구에 상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뿐이다. 평화를 위해 정작 필요한 것은 동료들과의 진정한 연대감이기 때문이다.

 

너는 관계의 매듭이고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야.

너는 너의 관계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너의 관계는 너에 의존하여 존재하지.

사원이 돌 하나하나로 존재하듯.

네가 돌 하나를 빼내면 사원은 붕괴하고 말지.

-생텍쥐페리, 성채(Citadelle) , Gallimard, 1948

 

연대를 이루는 나 자신이 사회 자체이며 하나의 국가라는 것이다. 사회와 국가가 나로 인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역할일지라도 그것을 존중하는 사회는 평화의 선물로서 보편적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평화롭게 살다 평화롭게 죽을 것이다. 평화는 논리적 설득의 산물이 아니라 차라리 논리를 단순명료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이데올로기의 효율성이 증명된다 해도 이데올로기들끼리는 여전히 서로 대립할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바오밥나무의 자양분인 위선과의 싸움 아닐까.


생텍쥐페리, 성채(Citadelle)Gallimard, 1948


조세희, 시간여행문학과 지성사, 1983

 

한국 전쟁으로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은 작가 조세희의 작품 가운데 어린 왕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작품이 세 편이나 된다. 시간 여행(문학과지성사, 1983)에 실린 사막에서, 나무 한 그루 서 있거라, 어린 왕자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어린 왕자에서 주인공인 작가는 이치에 안 닿는 일이라고 말하며 어린 왕자에게 감옥에 갇힌 자기 친구를 만나 위로해줄 것을 부탁하며 바오밥나무의 위험에 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비행사의 책은 이 세상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바오밥나무에 대해서는 누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오밥나무는 일종의 약속 언어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만 번 말해도 많은 것이 아니다.

 

평화는 바오밥나무들의 제거를 전제로 한다. 평화의 길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바오밥나무, 평화를 위장한 바오밥나무들이 진정한 연대감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무지와 탐욕의 바오밥나무 씨가 이룬 평화 협정을 지킬 필요도 없다. 270여 개 이상의 언어로 읽히는 어린 왕자는 종교와 민족, 계층과 세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의 바오밥나무들과 싸우는 평화지킴이들의 연결 고리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반전주의 문학으로서의 실천적 평화 메시지가 이 땅의 평화 운동을 위한 하나의 디딤돌로 작용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땅의 바오밥나무는 아닌지 자문하며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송태효 불문학 박사로 현재 '어린왕자인문학당' 대표와 '성남시지역발전자문위원회' 교육체육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는 예술인가, 어둠의 방-시와 영화 속 그림자 이야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생텍쥐베리 사람들의 땅, 어린 왕자등이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8.01 14:02

[시선 평화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남북관계사]


서울과 평양의 환호, 세계의 부러움: 2000년 정상회담


정영철


한 사람은 비행기 트랩 위에서, 또 한 사람은 트랩 아래에서 서로를 마주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곧 두 사람은 트랩 아래에서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서로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2000613일 오전 1037, 역사의 한 장면은 이런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벌써 1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이 되었지만, 바로 그날 2000613일은 한반도 분단사에 새로운 역사가 쓰인 날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진 날이었다. 그동안 전쟁과 적대, 갈등, 그리고 서로에 대한 소멸을 주장했던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평양의 하늘 아래에서 두 손을 맞잡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차던 희망이었다. 그것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바로 2000년 정상회담이었다.

 

우리처럼 오랜 세월 분단을 경험했던 동-서독도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하여 정상회담을 통해 동-서독의 화해와 협력을 이루었으며, 지금은 비록 불행의 땅으로 변했지만 예멘 역시 남북 예멘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쟁의 방지와 통일을 위한 숱한 회담을 전개했었다. 지금도 지중해의 조그만 섬나라인 분단된 키프로스에서 남북 키프로스의 정상회담을 통해 통일을 위한 여러 가지 중요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정상회담은 상호 필요에 의해 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변국들의 중재와 압력에 의해 열리기도 한다. 예멘의 경우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중재가 중요한 뒷받침이 되었으며, 키프로스는 그리스와 터키, 그리고 유럽의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00년 정상회담은 어찌 보면 1970년대부터 남다르게 한반도 문제를 고민해온 김대중의 필생의 역점 사업이었을 것이다. 1971년 대통령 선거전에 나선 김대중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예비군제 폐지와 대체, 4대국교차승인론 등 굵직한 한반도 관련 공약을 내세우며 박정희를 압박했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김대중은 정계를 은퇴하면서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의 통일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이런 그에게 정상회담은 아마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고, 최대의 목표였을 것이다.

 

1998년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그는 199811월부터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준비에 돌입하게 된다. 이로부터 약 17개월간에 걸친 막후접촉과 상호 밀사 및 특사 파견 등을 통해 마침내 2000410일 정상회담을 발표하게 된다. 이 당시 남북한의 막후 라인은 임동원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후일 국정원장)과 북한의 김용순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물론 이들만이 아니라 당시 국정원 고위 간부였던 김보현과 북의 전금진(우리에겐 전금철로 잘 알려져 있는 북의 아태부위원장) 라인도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었다.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도 다양한 시그널을 보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003월의 베를린 선언이었다. 베를린 선언은 경협의 확대’, ‘남북의 화해·협력’,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당국자 대화를 핵심 골자로 하는 대북 제안이었다. 이 베를린 선언이 나오기 이전, 북은 이미 우리에게 경협에 대한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북의 신호를 감지하고, 이를 공식화시킨 것이 베를린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 남북정상회담

본 저작물은 '국정홍보처'에서 '2000'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김대중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국가기록원, http://www.archives.go.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정상회담은 여러 가지 면에서 파격이었다. 남북의 정상이 최초로 만났다는 것도 그러하지만, 평양에서의 모습은 파격 그 이상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김정일위원장의 공항 영접, 북의 군인들이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던 모습, 두 정상이 같은 승용차를 타고 환호하던 평양 시민들을 만나면서 퍼레이드를 벌인 점 등등.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직접 나와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는 광경에서는 서울에서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까지 눈물을 보일 정도의 감격이었고, 모든 기자들이 박수를 치며 이에 환호하기도 하였다. 외신 기자들 역시 박수를 보내며 환호하였고, 이 순간만큼은 우리를 가장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것들이 변화하였다. 그간 북을 싸워 없애야 할 적으로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대화와 협상이 가능한 상대임을 인정하였고, 남북이 더 많은 만남과 교류를 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였다. 실제 정상회담 이후로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평양을 방문하는 것이 그다지 낯선 풍경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경유하여 멀리 에돌아 평양을 가야하는 현실을 비판하였고, 결국 서울과 평양 간에 직항로가 개설되기도 하였다. 개성공단 건설에 합의함으로써 남북의 군인들이 총을 들고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비무장 지대의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협력하기도 하였다. 또 일부이긴 하지만, 김정일위원장 팬클럽까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 모든 것이 정상회담이 가져다 준 남북 일상의 변화였다.

 

역시 가장 큰 변화는 국민들의 북에 대한 인식이었다. 적이 아니라 동포로, 협력을 통해 같이 공존하고 같이 발전해야 할 통일의 다른 한 주체로 북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평양에서 약 30만 명의 군중이 두 정상의 만남에 길거리 환영을 보여주었다면,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귀환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도 자발적으로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따뜻하게 환대하였다.

 

정상회담 이후,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주변국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2000년은 서울과 평양이 세계 주요 외교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미국의 국무장관이 급박하게 서울을 찾았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평양과 서울을 동시에 방문하기도 하였다. 일본은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두 번에 걸쳐 평양을 방문하여 북일 평양선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중국 역시 엄청난 관심을 보였고,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베이징을 찾아 중국지도자들과 만나기도 하였다.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라면 북과 미국이 상호 특사를 주고받으면서 수교 협상의 일보 직전까지 갔다는 점이다. 그해 10월 조명록 특사가 미국을 방문하여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고,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역시 방북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북과 미국은 -미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하여 수교까지 염두에 둔 합의를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200010월 미국을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는 조명록 특사 (출처:통일뉴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20001023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집단체조공연을 관람하던 중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출처:통일뉴스)

 

장 중요하게는 지금까지 남북이 서로를 향해 적대와 갈등의 패러다임으로 보던 것을 뒤집어서 화해와 협력의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만들어내었다는 점이다. ‘안보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가 아닌 공존과 평화화해와 협력이 더 인기 있는 구호가 되었고정치인들은 서로 앞다투어 남북의 화해와 협력에 대한 자신들의 정치 청사진을 발표하였다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 당국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남북의 교류와 협력에 나서게 되었다제주도에서는 감귤을 북에 보냈고경기도에서는 휴전선 인근의 방역 사업에 북을 지원하기도 하였다경상남도는 통일 딸기사업을 통해 지자체간의 새로운 협력모델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기업들은 개성공단을 넘어 북과의 더 넓은 경제 합작을 위한 진지한 모색을 하였고시민단체는 인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기찬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2000년 정상회담이 있은 후 1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그 사이에 남북은 그야말로 많은 일들을 벌렸고때로는 웃고때로는 울고때로는 싸우면서 서로를 이해하였다초기에는 참으로 많은 실랑이가 있었다호칭 때문에 얼굴을 붉혀야 했고남에 내려온 북의 응원단은 구겨진 김정일 위원장의 사진에 분노하였다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그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그렇게 서로를 배워 가는 시간이었다이런 점에서 보자면정상회담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움이 아닐까통일은 아주 거창하게 보자면막막한 미래의 일이지만우리의 주변에서부터 만남을 이어간다면 소소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고이해하고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일상의 평화와 일상의 통일을 꿈꾸게 해준 것이 바로 정상회담이었던 것이다.

 

-미 공동코뮤니케: 코뮤니케는 일명 공식발표 혹은 공동성명서로 해석된다. 2000 -미 공동코뮤니케는 역사적으로 북미관계의 일대전환을 의미하는 공식발표였다.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북은 조명록 당시 총정치국장을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였다. 조명록 특사는 당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북미관계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그 결과 양국은 2000 10 12 -미 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하게 된다.  -미 공동코뮤니케의 핵심 내용은 두 나라의 적대관계 청산과 정치, 경제, 군사 분야에서의 협력, 양국 관계의 정상화였다. 또한, 더욱 주목되는 것은 북이 클리턴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하고, 이를 위해 당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이를 준비하기 위해 방북하기로 한 점이다. 실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10 19일 북한을 방문하였다. ‘-미 공동코뮤니케는 북미관계의 근본적인 전환의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적인 합의로서 의미를 갖지만, 이후 미국의 정치정세가 급변하면서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 2000년 말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에게 패하면서 북미 관계는 이후 새로운 위기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정창현, 남북정상회담 600(서울: 김영사, 2000)

박철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1, 2(서울: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5)

임동원, 피스메이커(서울: 중앙북스, 2008)

임채완, 전형권, “6.15 남북정상회담이 남북한 및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한국동북아논총17(2000)

2000년 한·러 공동성명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

 

정영철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서울로 상경해 공학을 전공하다 진로를 바꿔 사회학을 공부하였다북한통일평화에 대한 연구가 관심사이며지금은 서강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한반도 평화가 곧 어린이의 미래라는 생각에 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 발을 들여놓고 일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8.01 13:49

[이슈]


2017년 여름 평화의 편지: 증오의 다리를 건너면 무엇을 만날까


이산(이이화) 연구공간 파랗게날 대표연구원 


8, 우리 현대사를 회고하는 것은 깊은 상심을 동반한다. 극악한 35년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났으나 잘못 낀 첫 단추는 대가가 처참하다. 반민족 과거 청산에 실패하고 단일 민족정부 수립에 실패한 과오는 두 세대가 흘렀어도 현존 문제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빼앗긴 나라에서 시달리던 민족혼이 되찾은 나라에서도 부대끼는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서 오는가? 하얼삔역의 총탄이자 아오내장터의 태극기이듯 그릇된 흐름에 맞서는 불굴의 혼마저 죽은 것은 아니어서 19604.19혁명, 1980서울의 봄’, 1987‘6월 항쟁으로 생명력은 분출했으나, 이내 5.16 군사정변, 5.18 광주학살, 민주세력의 분열로 억눌렸다. 이 땅에 두 세대가 지나갔어도 나와 다른 생각엔 여전히 증오의 화살을 주저하지 않는 광장에 서 있다. 우리는 그 증오의 다리 어디쯤 있는가?


이념에 휘둘린 해방’(역사가 바로 서고 상처를 보듬어 시나브로 어우러지는 해맑은 광복의 날을 고대한다)정국을 살아낸다는 것은 칼날 위 묘기여야 했다. 낮밤으로 뒤바뀌는 세상을 단지 살아남는 것이 목표였던 이 땅 구석구석 덮친 피비린내는 인간본성을 회의하게 한다. 제주, 여수순천, 문경, 보도연맹, 노근리, 함평, 산청함양, 거창……. 얼떨결에 맞이한 해방으로 쥐구멍을 찾던 친일세력의 야수성을 도구로 이승만 정권은 자신의 잠재적인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데 양민학살을 활용하였고, 여순사건을 제압하고 만들어낸 국가보안법은 뒤이은 아류 독재정권들에게도 요긴한 올가미였다. 시커멓게 탄 민의는 깊이 묻어야 하는 엄혹한 시대가 참 길었다.

 

2009년 귀향한 나를 찾아와 조용히 글이나 쓸까 하던 성유보 선생께 한 말씀 주십사 2012526, 동호서당에서 마련한 다섯 번째 강좌는 이후 고택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의 향방에 영감을 제시했다. 일생 정론직필의 언론인으로 살아온 선생은 관용을 주제로 삼으면서 우리 사회의 관용할 수 없는 것들을 분명히 짚었다. 남북분단으로 몰아간 김일성·이승만의 정치야욕, 반민특위 해체의 반민족 행위, 국가보안법의 폐해 등. 일생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 하던 지역 어른 몇몇의 입에서 곧 빨갱이란 증오의 말이 튀어나왔다. 나와 같지 않은 생각을 경청하지 않는 경직된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야겠다는 역사학도로서의 존재이유를 일깨운 자리였으니, 선생은 물론 그 어른들과의 해후가 얼마나 고마운지. 억지 죄목으로 갇혀 망가진 몸으로도 굳건하던 선생은 그 1년 뒤(2014. 10. 8.) 살아온 삶을 다 연재하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홀연 떠났다. ‘통일레일의 해맑은 포부를 말하던 그 모습 선한데, 다시 여쭤들을 수 없으니 가슴 아프다. 선생이 떠난 한 달 뒤 고등법원에서, 이듬해 봄 대법원에서, 선생을 옭아맸던 국가보안법 위반재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고고하고자 하던 심신을 망가뜨린 동시대인의 행위가 왜 살아서는 화해를 구하지 못했을까? 애초 무죄였던 선생은 마석모란공원 묘역에 누였으나 편히 잠들 수나 있을까? 선생의 원고에 이런 말이 있었다.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절대왕정과 공존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군국주의자를 관용할 수 있겠는가? ‘관용사회의 모델이라고 할 만한 프랑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 문제에 부닥쳤다. 나치 협력자 숙청 문제였다. 카뮈는 반 나치 저항신문 <콩바combat전투>지에, ‘누가 감히 용서를 말할 수 있는가? [···]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기억을 기초로 하는 정의이다.’라고 기고했다.”

 

현대사의 원혼을 달래는 길은 옥죄는 금기를 하나씩 풀어헤치는 것이다. 하나둘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나와 너를 가르는 경계선을 허물 때,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기약하는 유연한 묘안들이 나타날 것이다. 사방이 트인 공간, 고택 누마루에 앉아 술렁술렁 바람을 맞으며 절감한다. ‘대화라는 꼭지로 이질의 가치관들이 만나 어떻게 부대끼고 깎여지는지 지켜보는 일은 절절하다. 2015년 해방 70년의 과제를 생각하며 빨치산과 토벌대의 만남도 그 선상에 놓였다. 한국 현대사의 상처가 깊은 지리산 벽송사 선방에 이제 팔순 구순에 접어든 어르신 여러 분이 마주 앉았다. 혈기방장하던 청년일 때 서로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들. 우리 동지를 죽인 자들과 한 자리에 앉을 수 없다며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했고 덕담 한마디 오가지 못했으나, 헤어지면서는 그동안 참 애썼소. 건강하게 오래 사시오.”라고 말 건넸으니, 그 깊은 주름에 증오도 좀 묻히는 것인가. 그 자리를 알리는 말에 이렇게 적었다.

 

저 들에 나가 밭갈이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라.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과연 제대로 답할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지리산 싸움에서 죽은 수많은 군인과 경찰과 빨치산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쳤냐고 물어보라.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다고 말할 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 이 싸움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에 끼어 벌어진 부질없는 동족상잔이었다고.”

 

자유롭고자 하던 영혼들에게도 현대사의 칼바람은 비켜가지 않았다. “8·15해방은 그의 모순을 극단적인 비극의 형식으로 연출하였다. 그가 태어나고 사랑했던 도시 서울은 그가 들었던 민주주의 민족문학의 깃발에 불법의 낙인을 찍었고, 그가 선택했던 도시 평양은 그의 치열했던 삶을 반역의 죄명으로 모욕하지 않았던가. 날짜도 모르게 처형된 그의 쇠약한 심신은 반세기가 넘는 오늘까지 하늘 아래 어느 한 곳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기 힘든 안타까움을 선사한다. 그의 삶은 식민지시대의 위험한 지뢰밭을 횡단하고 있고, 그의 죽음은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의 가장 아픈 상처에 직결되어 있다.”라고 한 임화(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47_염무웅, <임화의 해방전후>, 2015. 11. 28.(), 둔산재)가 그랬고, 정치 문인으로 갈아타기 힘든 한결같은 문학주의자 백석(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 48_박태일, <백석, 어디 있는가?>, 2015. 12. 26.(), 영승서원)이 그랬다.

 

분단 한반도는 통일 독일을 자꾸 쳐다보게 된다. 연착륙 통독에 이르게 된 씨앗이 바로 신뢰에 기초한 소통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독의 동방정책Ostpolitik은 빌리 브란트라는 진보적 지도자가 대화로 평화공존을 강화하면서 화해를 통한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이런 기조는 이후 헬무트 콜 등 보수 정권으로 바뀌고도 그대로 유지되어 결국 억누를 수 없는 동독인의 통일 열망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5년마다 바뀌는 정권이 모든 것을 뒤집어엎어 증오로 원점 회귀하는 우리에겐 뼈아프다. 더욱이 지정학적 요지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을 녹록하게 할 국제관계의 역량을 고심하게 한다. 해방 70년의 과제를 짚은 일환으로 고택을 찾으신 노교수의 말씀 몇 대목은 지금도 되뇌고 있다.

 

해양세력을 겨누는 또는 대륙으로 침략해 들어가는 다리’.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그렇게 인식되었다. 한말 제국세력들은 동강난 다리나 부러진 로 만들어 한반도를 나눠 갖고자 하였으니, 일제의 독식이 마감하면서 결국 그리 되었다. 침략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피하고

자 한반도 중립지대 안이 개화파 지식인들에게서 나왔으나, 미력했다. 지난 세기의 제국주의와 냉전주의 잔존물을 극복하여 불행한 이며 다리가 되어버린 남북분단을 허물고 세계 평화로 나아갈 해양과 대륙을 잇는 진정한 평화가교는 어느 즈음인가?”(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 45_강만길, <분단시대의 역사를 위하여>, 2015. 9. 26.(), 침류정) 신념의 인간은 향기롭다. 좌에 섰건 우에 섰건, 적이었건 동지였건, ‘보다 우리를 앞세웠던 그 삶은 숙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방법은 달랐지만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공로는 한결같았습니다. 서럽고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정권을 한번 가져보고 싶었다. 만주벌판을 달리던 독립군의 말발굽처럼 민적을 찢고 스스로 목을 친 이주환의 자귀처럼 생명력 넘치는 불굴의 혼은 2017년으로 넘어오면서 광장의 촛불에서 그런 꿈을 꾸었었다.

 

8월의 상심은 전쟁 없는 평화를 간절히 꿈꾼다. 인간의 것이 아닌, 짐승의 것인 전쟁에 좋은 전쟁이 어디 있고 나쁜 전쟁이 어디 있는가. 그 본질은 증오이다. 이 증오의 다리를 건너 따뜻한 인간애를 만나고 싶다. 힘이 아닌 오로지 이해로 이루어지는 평화 아닌가.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새벽 4시에 맛보는 8월의 대기는 쌉싸름하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파랗게 날 돋는 바람이 흐른다.


 

* 시민후원으로 지속되는 고택에서듣는인문학강좌는 누구에게나 열린 시민강좌로, 참가비 없이 후원은 자유롭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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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7.08.0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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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여름 평화의 편지: 증오의 다리를 건너면 무엇을 만날까 |이산(이이화)

● 서울과 평양의 환호, 세계의 부러움: 2000년 정상회담|정영철 

● 어린 왕자가 전하는 평화 연대의 메시|송태효

● 낭만주의 평화와 반전의 기록자: 들라크루아|김소울

● 잘 지내세요, 돌고래, 오솔길님?|원마루

● 나 그리고 친구|이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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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PDF)2017.08.01 12:04


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피스레터> 합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2016년 7월 창간 시기부터 2017년 6월까지 발간한 통권1호~통권7호의 내용을 묶어 발간한 이번 합본호를 통해, 깊이 있는내용과 쉬운 글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글을 주제와 필자별로 보다 쉽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합본호의 용량이 커서 분할하여 업로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1.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2.pdf

합본호_전자책_단면_분할_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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