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7_6 최연진_씨앗, 하나의 풀에 여러 개의 꽃이 있고 - 첫 번째 이야기

by 어린이어깨동무 2024. 2. 19.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씨앗, 하나의 풀에 여러 개의 꽃이 있고 - 첫 번째 이야기

 

최연진

 

유치원 어린이 6명을 보태야 학생 수가 겨우 100명이 될까 말까고, 한 학년에 한 반씩, 6학급인 작은 학교. 학교 뒷산이 온통 숲이라 아이들은 언제나 숲에 가서 놀 수 있고 학교 운동장은 계곡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학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5학년 스무 명 아이들과 만났습니다.

 

저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교실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는 관계는 안전하지 못합니다.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말과 행동이 움츠러들고 생각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따뜻한 교실 문화가 자리 잡아야 온전한 배움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학기 초 우리 반 아이들 관계는 좀 독특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쉬지 않고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때로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합니다. 버럭 화를 내는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깁니다. 이걸 친하고 끈끈한 관계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지나치게 경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좀 무례해 보인다고 할까? 친구 몸을 툭툭 치는 장난, 뒤따르는 앙갚음, 놀이인지 싸움인지 모를 행동들이 수업 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오가다가 순식간에 아무렇지 않은 듯 없던 일이 됩니다.

 

따뜻하고 안전하고 평화롭지 않아 보이는데, 내가 예민한가? 그런데 학기 초에 반 아이가 쓴 시를 보니 괜찮은 상태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싸움

                                      지혜준

걸을 때마다 들리는 것
싸움하는 소리
싸움은 그저 평범한 일상일까?
아니면 A가 B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말려야 할까?
아니면 무시당할까 봐 그냥 있을까?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있네
우리 마을(교실)에 평화란 있을까?


                                  (2023.4.27.)

 

 

먼저 익숙해진 갈등과 다툼을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친해도 경계를 지켜야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과 행동은 오래된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또 온전히 수용 받는 경험을 바탕으로 신뢰하는 관계로 나아가길 바랐습니다. 반 아이들과 묵은 감정을 꺼내 놓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되도록 이름을 부르고 친구에게 마음을 전하기로 했는데 처음에는 주저하던 학생들도 점차 이름을 부르고 그 친구에게 솔직한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원 때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우는 친구도 있었는데 아이들은 친구의 말을 반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고, 사과하고 위로했습니다.

 

내 마음이 그대로 존중받을 때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묵은 감정이 해소되고 훨씬 건강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도 조금씩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친 말과 행동이 오갈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당연하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신호를 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도 익숙했던 행동을 조금은 낯설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에 화해가 어렵고, 교사가 개입해도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주로 전학 온 아이들이었습니다. 같이 입학해서 긴 시간을 같이 보내며 함께 자란 아이들의 끈끈한 관계를 단번에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짝을 정할 때면 미묘하게 거리를 두는 것이 느껴지고, 작은 실수에도 유난히 예민하거나 엄격한 분위기가 보였습니다.

 

지후도 전학 온 친구입니다. 화가 나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고, 때로는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여러 사람의 시선이나 관심이 아이에게 집중되면 자기를 공격한다고 느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면 폭력적인 모습도 나타나는데 이때 아이는 몹시 슬픈 표정으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공동체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지 못한 모습이 안타까운 아이였습니다.

 

지후가 친구들과 선생님을 믿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조용히 산책할까?” 하고 말을 건넬 때 순순히 따라나서는 걸 보고 우선 지후의 시간을 존중해 주기로 했습니다. 지시나 지도를 멈추고 자극을 최소한으로 줄였습니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같이 학교 둘레를 산책하면서 왜 화가 났는지 조용히 물어보기도 하고 잠깐 교실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후는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벗어나 시간을 가지다가 원할 때 교실로 돌아왔습니다.

 

반 아이들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지후와 위험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지후 부모님과 상의해서 반모임(달마다 모이는 학부모회)에서 지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후가 친구들과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다른 학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1학기를 마칠 때 즈음 지후는 우리 반 안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찾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6월 단옷날 잃어버린 장명루(건강하라는 의미로 만드는 팔찌)을 찾아준 친구들에게 지후가 먼저 다가가 고맙다고 인사했고, 반 친구들은 지후가 착하다며 칭찬했는데 그날 분위기가 참 묘했고 재밌어서 글로 남겨 두었습니다.

 

지후가 현승이 앞으로 한 발, 민경이 앞으로 한 발 어색하게 걸음을 옮겨가며 툭 내뱉었다. 아주 부드럽고, 다정하지만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우와, 지후가 착해.”
맞아, 지후 은근히 착해.”

단옷날 아이들 마음이 말랑말랑해진 걸까? 이렇게 먼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건 낯선 모습이다. 그 말을 듣고 아이들 마음에도 뭐가 와닿았나? ‘은근히 착해.’는 또 뭐냐? 아주 착하다거나 엄청 착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뭐라고 칭찬은 해야겠고, 그렇다고 착하다고 하기에는 그동안 봐 온 일들이 마음에 걸리는 묘한 기분. 아이들 마음을 짐작해 보자니 그 말이 참 귀엽다. 그리고 아이들은 인심이 참 후하다.

(2023. 6. 26. 처음 쓰고 8. 18. 고침)

 

*글은 다음 <피스레터>에 이어집니다.

 

 

최연진ㅣ평화롭고 따뜻한 교실을 꿈꾸며 어린이들과 만납니다. 어린이들과 같이 놀고 어린이들 이야기로 수다 떠는 시간이 제일 재밌습니다. 빈틈 많은 선생이지만 너그러운 어린이들 속에서 철없이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