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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7_5 김경민_잃어버린 서울의 봄을 찾습니다

by 어린이어깨동무 2024. 2. 19.

[문학으로 읽는 나의 평화감수성] 

잃어버린 서울의 봄을 찾습니다

 

김경민

 

원조 쿠데타

맥박수 챌린지라는 생소하고도 재미있는 유행이 생겨날 정도로 꽤 오랫동안 열풍을 일으켰던 <서울의 봄>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는 그 유명한 명언(?)이 탄생한 그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재현한 영화다. 어처구니없는 저 말을 전두환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반역이 혁명으로 둔갑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1212 군사 쿠데타의 훌륭한 롤 모델이자 참고문헌 역할을 했던 516 군사 쿠데타가 바로 그것이다. 한 무리의 군인들이 하룻밤에 대한민국 전체를 집어삼키는 영화 속 상황을 보며 그나마 덜 당황했던 이유는 (물론 실제 사건을 이미 알고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이렇게 야만적이고 비상식적인 사건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선 그 사건이 보여준 잔인무도함은 1212 쿠데타에 비할 바가 안 된다. 1212 쿠데타로 시작된 공포와 야만의 시간이 끝나기까지 8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면, 원조 쿠데타 516의 시간은 무려 2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역시, 원조를 능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사건이자 419 혁명의 뜨거운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더욱 당황스럽게 했던 516 군사 쿠데타는 평범한 일상을 장악한 폭력의 공포를 여실히 경험하게 해준 사건이기도 하다. 1965년에 발표된 이호철의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는 집집마다 라디오에서 반공을 국시의 제 1의 의()로 삼고로 시작되는 혁명공약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시절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교사인 주인공 강규호는 어느 날 퇴근하자마자 부인으로부터 군인들이 자신을 잡으러 왔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동 반사처럼 집 밖으로 몸을 피하면서도 그 상황이 그다지 놀랍지 않았던 것은 군인체포라는 단어가 그만큼 익숙해져 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지리 선생이 잡혀갔다. 여느 때는 무뚝뚝하지만, 술만 마시면 야금야금 마시다가 차츰 이놈도 죽일 놈, 저놈도 죽일 놈, 같이 술 마시는 사람이 아니면 죄다 죽일 놈이 되고, 험상궂은 얼굴로 연거푸 술잔을 들고, 드디어 취하면 접시를 두 손에 들고 쪼이나쪼이 쪼이나쪼이 곱사춤을 잘 추는 영감님이다. 빨갱이라면 온통 치를 떨면서도 정작 교원들의 권익 문제라도 나오면 세계 각국의 통계숫자까지 일일이 들어가며 항상 살기등등하던 영감님이다. 어제 직원실에서 출두 명령을 받고 나갈 때는 그 누구에게도 간다는 인사말 한마디 없이 입술만 지그시 물고 있었다. 아직 제 소신에 추호나마 요동이 없다는 낯색이었다. (…) 그저께 저녁에는 생물 선생과 고학년 수학을 맡은 권 선생이 잡혀갔다.
(이호철, 부시장 부임지로 안 가다 )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잡혀가는 것이 예삿일이 된 시대다 보니, 그런 황당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도, 놀랄 것도 없다. 그렇게 강규호는 일주일간 도망자 신세가 되고, 그런 강규호를 찾기 위해 엄청난 수의 군인과 경찰이 동원된다. 사실 군인들이 강규호를 찾아온 이유는 그에게 마산 부시장 자리를 맡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까닭을 알 리 없는 강규호는 군인이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일단 몸을 숨기기부터 한 것이다. 쿠데타였으나 성공한 덕분에 한동안 혁명으로 불렸던 그 혁명이라는 것이 바로 이웃집 한가운데를 누비고 지나가는시절을 살았던 이들이 일상에서 느꼈던 공포의 무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후 규호는 군인들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게 되지만 난 못 해. 내 양심으로는 못 하겠어. 며칠 저녁을 무슨 짓 하고 어떻게 돌아갔는지 아나? 자네는 아나?”는 말로 부시장 자리를 거절한다. 군인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자 신세로 지내는 동안 반공을 국시로 한다는 라디오 소리를 들을 때마다 두려움과 긴장이 몰려와 화장실을 찾아 헤매면서 총칼을 앞세운 권력의 공포를 누구보다 절실히 경험했기에, 그 군인들이 나눠주는 자리를 아무렇지 않게 덥석 받아 개인의 영달을 취하는 것은 염치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대뇌 기능 제거 수술을 받으시겠습니까?

이 짧은 소설 한 편이 보여주듯, ‘원조 쿠데타세력이 장악했던 1960~70년대는 두려움과 불안, 경계심과 긴장감 일상이 된 시대였다. 이러한 일상의 공포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더 나아가 무의식까지 잠식한 상황을 다룬 이청준의 마기의 죽음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제복을 입은 사내들에게 끌려가는 상황이 그려진다.

 

혁명군은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지상의 모든 권력을 통합하고 무시무시한 포고를 발한다. 일체 시민은 그 생활을 혁명군의 명령에 따르고 의지해야 한다. 아침 기상은 몇 시에, 보행은 어떻게, 식사는 어떤 종류로, 대화는 어떤 성질의 것만을……. 그리고 당국은 모든 명령을 일사불란하게 이행시켜 나갈 강력한 통제와 조직력을 행사한다. (…) 더욱 지배자는 언제나 독재의 욕망이 있는 것이고, 그의 독재는 자신의 한정된 취미를 대중의 법률로 삼고 싶어하는 경향이 많으니까. 그리하여 당국은 모든 시민의 사고를 억압한다. (…)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 것인가를 한정당한 인간의 사고는 방향키를 고정해 버린 배의 항해와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청준, 마기의 죽음 )

 

검은 제복을 입은 사내들의 정체는 혁명군으로, 권력을 사유화하고 독점하기 위해 그들이 고안해낸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그들은 생활을 규율하는 것은 시민들의 불필요한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며, 시민들은 규율을 준수하고 복종해 나감으로써만 안일과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라 설득하면서 사람들의 자유를, 양심을, 생각을 말살해간다. 심지어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의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잡혀가 오랜 심문을 당한 끝에 각하로 불리는 최고 권력자로부터 대뇌 기능 제거 수술 형을 선고받는다. “대뇌 활동은 불필요하게, 우리로서는 추호의 가치도 인정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가장 경계해 마지않는 어떤 음모나 반역의 가능성에 봉사하기에, “사고 기능의 일부가 제거되면 오히려 편안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배려의 말과 함께.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을 단속하고 억압하는 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마침내 완전히 퇴화와 소멸 상태에 이르러 자신들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영구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자유와 양심, 생각과 행동을 억압했던 공포의 시대는 총칼을 앞세워 권좌에 오른 독재자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끝날 줄 알았으나 따뜻한 봄날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Republic of Korea, 공화국이라는 국호가 무색할 정도로, “제 손으로 제 나라 대통령을 뽑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한동안 또 계속되었다. 공화국이면서도 제 손으로 제 나라 대통령을 뽑을 수 없었던 시대,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 대뇌 기능 제거 수술 형을 받는 것이 소설 속 상황만은 아닌 시대, 군복만 보면 무조건 도망부터 쳐야했던 시대, 이런 야만과 폭력의 시대는 어떻게 끝난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영화 <서울의 봄>의 결말이 말해주듯 이태신과 같은 몇몇 영웅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짱돌 대신 투표를

매 새벽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던 그 싸움을 찬란하게 빛냈던 것은 양아치, 구두닦이, 짜장면집 배달원, 날품팔이, 지게꾼, 청소부, 공돌이, 공순이, 상점 점원들이었다. 그들은 배운 게 없는 만큼 무식했다. 이마를 향해 수평으로 날아오는 최루탄을 피하지도 뒷걸음치지도 않았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 역시 어느샌가 짱돌을 주워들곤 했다. () 왜 그랬을까? 맘만 먹으면, 빤히 뚫려 있는 그림골목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민주주의, 그렇다! 그것은 온몸을 달뜨게한 짝사랑이었다. 아아, 그런 짝사랑 앞에서 누가 감히 등을 돌린단 말인가!
(김남일, 명동부루스 )

 

19876, 그 뜨겁던 광장에서 직접 싸웠던 경험을 떠올리며 쓴 소설에서 작가 김남일은 독재의 시대를 끝냈던 것은 민주주의를 짝사랑한 수많은 사람들, 하나하나는 그리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짱돌을 던지고 머리에 피를 흘리며 싸워서 되찾은 이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신경쓰고 돌보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빼앗길 수 있는 것이라 마냥 마음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를 위협해 권력을 사유화하고 독점하려는 이들이 바라는 것은, 앞선 독재자들이 그러했듯, 모든 사람들이 대뇌 기능 제거 수술을 받은 것처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 주체적인 시민이 아니라 순종적인 국민으로 사는 것이다. 이렇게 권력의 독점을 탐하는 이들로부터 우리의 자유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쉽고도 강력한 방법이 바로 투표다. 투표는, 영화 속 이태신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총칼 앞에 나서는 것보다, 광장으로 나가 짱돌을 던지는 것보다 쉽다. (선거권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위의 간편함과 달리, 그로 인한 결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따라서 한 번 도장을 찍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생각해야 한다. 아직은 제거되지 않은 나의 대뇌를 열심히 움직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 나의 양심과 자유 의지에 부합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나의 대뇌를, 나의 자유를, 나의 양심을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

 

 

김경민 | 국문학과 정치학 중 진로를 고민하다 문학으로는 사회의 모든 이야기를 살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국문학을 선택해, 지금까지 한 발은 문학에 다른 한 발은 문학 바깥의 세상에 두고 있다. 『한국 소설의 인권의식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계속 인권과 법, 국가폭력과 시민 등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경상국립대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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