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한반도 평화읽기]
2018년, 평화의 시대를 맞는 한반도의 오늘과 내일
장용훈
5월 26일 통일각에서 다시 만난 남북 정상 [공공누리에 따라 청와대의 공공저작물 이용]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첫 만남을 가지는 북미 정상 [사진제공-싱가포르 정보통신부]
#장면1. 문재인 정부 첫 정상회담 이후 한 달이 채 안된 5월 26일 오후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만나 두 번 째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정상회담 등에 대해 논의한다. 문 대통령은 회담 다음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은) 지난 4월의 역사적인 판문점회담 못지않게,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밝혔다.
#장면2. 6월 12일 오전 9시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 김정은 위원장과 처음으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대화가 있을 것이다. 북한과 매우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북미관계수립이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호상 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한반도에서 믿음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반도 불안정성의 근본 원인은 불신에서 비롯됐다. 6·25전쟁을 통해 서로가 상대방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남북한과 미국의 사이에서 신뢰가 만들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한반도에서 진행 중인 정세 변화는 신뢰와 믿음을 쌓아가는 작업으로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6·25 전쟁에서 서로가 총을 겨눴던 적대적 관계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만남이어서 눈길을 끈다. 더군다나 작년 북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드라마틱하다. 작년 11월까지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이어가며 미국령인 괌에 대한 직접적인 포위 사격을 하겠다고 공갈을 했고, 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거론하면서 강력 대응 의지를 밝혀 북미 대립이 절정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급반전이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은 적대관계에 있는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만나 상대방의 생각과 의중을 직접 들음으로써 신뢰의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최 자체에 적잖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공동성명을 통해 앞으로 양국관계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 만들기의 이정표를 세운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등 북한과 미국의 대결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명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대북 체제안전보장의 하나로 "조만간 실제로 종전선언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심지어 미군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따른 과도한 비용 문제를 거론하며 한미연합군사 훈련의 중단 가능성까지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와 이를 위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당장 시작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상회담 후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정말로 (북한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어떤 대통령도 이걸 하지 못했다. 나는 가서 그(김 위원장)에게 신뢰를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정은이 우리에게 많은 걸 줬다"며 "7개월간 미사일 실험과 발사가 없었고, 8개월 반 동안 핵실험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위대한 영웅들의 유해도 돌려줬다. 매우 많은 사람들, 아버지, 어머니, 딸과 아들들이 나에게 (유해송환을) 간청했었다. 아무도 그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신뢰가 쌓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27일 오전 9시 30분 군사분계선(MDL) 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악수는 찰나였지만 그 맞잡은 두 정상의 손은 한반도에 겹겹이 쌓인 분단과 대결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뗐다. 이날 판문점에서 이뤄진 모든 순간은 분단 이후 최초로 기록됐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MD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자체도, 국군 의장대 사열도 처음이었다.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관리할 남북한의 통일·외교업무 수장 뿐 아니라 국방장관과 야전군 사령관까지 총출동해 남북 양 정상을 수행함으로써 평화 구축 의지를 뒷받침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날 서로 오간 군사분계선은 무의미해졌고 판문점에는 대결 대신 대화가 자리 잡았다.
두 정상은 오전 10시 15분부터 각각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김여정 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통일전선부장만 배석시킨 채 100분간의 회담을 한데 이어 오후에는 친교를 위해 도보다리를 산책하면서 배석자 없는 사실상의 '단독 회담'을 30분간 가졌다. 허심탄회하고 솔직하게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눈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개 장 13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여기엔 남북관계와 군사적 충돌방지, 한반도 평화체제구축과 비핵화 등 불안정한 평화를 종식하고 항구적 평화를 싹 틔우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선언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며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고 명시된 것이 골자였다. 남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합의한 것은 1992년 1월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후 26년 만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당국회담 개최,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방안, 8·15 이산가족 상봉,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을 담았다.
사실 남북 간에 유의미한 내용을 담은 합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7·4남북공동성명, 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 다양한 합의가 있었지만 이행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는 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따라서 합의를 이행해 달라진 한반도를 만드는 것은 앞으로 남북간에 남겨진 과제가 됐다.
전망은 긍정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적인 이런 자리에서 기대하는 분도 많고 아무리 좋은 합의나 글이 나와도 발표돼도, 그게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런 만남을 갖고도 좋은 결과에 기대를 품었던 분들에게 더 낙심을 주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며, 회담 합의 이행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해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로 수시로 논의 하겠다"고 말해 앞으로 판문점 선언의 이행상황을 남북정상이 직접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반도 분단의 주요 당사국인 남한과 북한, 미국의 최고 지도자 사이에서 믿음과 신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작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갓 태어난 아기 다루듯 해야만 하는 이유다. 신뢰 만들기의 출발이기 때문에 아직도 서로는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판단이 남아 있고 이를 새로운 언어로 바꾸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첫 걸음을 떼었기에 다음 발걸음을 떼면서 한걸음씩 신뢰가 쌓이면 한반도에서는 대결보다 대화와 화해를 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걸음이 중요한 이유다.
장용훈ㅣ연합뉴스 통일외교부 기자로 2011년 제42회 한국기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한반도평화포럼 사무총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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