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 평화를 그리는 화가들]
신념을 위한 암살, 그리고 전쟁의 시작
김소울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의 식민지 욕심은 점점 높아져 갔다. 산업은 날로 발달하였고, 그들은 물건을 만들 원료, 그리고 물건을 팔 시장이 필요했다. 그들이 선택한 곳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였다. 원료도 풍부하고 물건을 팔 시장도 넓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두개의 대륙은 ‘제국주의’라는 이름하에 유럽의 군대에 지배당하게 되었고, 한순간에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가장 많은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뒤늦게 식민지 확보에 참여하려는 독일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 내에서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1914년 어느 날, 세계를 뒤흔든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사라예보 사건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의 한 청년에 의해 암살당했던 사건이다. 그리고 이 하나의 암살사건은 1,000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제 1차 세계대전의 시초가 된다.
아킬레벨트람,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의 암살』 (1914)
주요인물에 대한 암살사건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주요한 암살사건은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몰래 죽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암살은 의외로 어두운 밤에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암살 대상이 움직이고 접근하기 쉬운 백주대낮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아킬레벨트람의 그림 속에 그려진 암살 사건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한 낮에 사건이 발생했음을 한 눈에 보여준다. 그림 속의 청년은 황태자 부부의 바로 앞에서 총을 겨누고 있다. 이 청년뿐만 아니라 많은 암살자들은 자신이 암살 대상을 살해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을 뿐,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몰래 사람을 죽이는 것은 모두 암살에 포함될까? 사적인 감정에 휩싸여 바람난 남자친구를 죽이거나, 거액의 돈을 노리고 누군가를 청부살해 하는 것은 암살이 아니다. 영향력이 있는 인물을 대상으로 감행되는 기습적인 살인만이 암살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렇기때문에 암살의 대상은 주로 최고 권력자이고 동기는 주로 종교적 이유나 정치적 이유 즉, 신념을 포함한다.
세르비아 청년 역시 암살을 저지른 배경에는 신념이 깔려있었다. 세르비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1878년에 독립했던 국가이다. 발칸반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곳으로 1300년대부터 오스만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세르비아는 독립 이후 주변의 지역을 합치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1908년 어느 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 주변 지역인 헤르체고비나와 보스니아를 차지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세르비아 사람들은 분노한다.
1914년 사라예보 사건을 이유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 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럽의 모든 열강이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 독일과 함께 ‘삼국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이 동맹은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로부터 위협받을 때 군사를 보내 서로 돕자는 내용이었다. 과거 프랑스혁명 이후의 빈(Wien)체제, 그리고 지금의 한미동맹이 그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삼국동맹’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삼국협상’이다. ‘삼국협상’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동맹관계로, 이들은 독일이 힘을 키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선전포고와 함께 제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를 밟고 세계 최대 강국이 되려는 야심으로 프랑스를 공격하였지만, 예상과는 달리 프랑스와 러시아군의 저항은 강력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고,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전쟁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의 항복과 함께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의 일이다.
폴 내시, 『메닌거리』 (1919)
폴 내시는 군인의 꿈을 키우던 영국의 화가였다. 전쟁 발발 직후, 그는 망설임 없이 예술가부대에 입대하게 되었고, 수많은 그림으로 전쟁의 기록을 남기게 된다. <메닌거리>는 1918년 4월, 영국전쟁기념위원회로부터 전쟁의 기록에 대한 전시를 의뢰받아 그린 가로 182cm의 거대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그가 참전했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이프로 전투의 장면으로, 폐허가 된 거리의 단상을 뿌연 연기와 함께 묘사하고 있다.
<메닌거리>에서 묘사된 회색빛 연기로 뒤덮인 도시의 모습, 그리고 잎 하나 남지 않은 그루터기는 당시 전쟁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묘사하고 있다.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 1,000만 명, 그리고 부상자는 약 2,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전쟁은 목적을 잃고, 그 누구도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하였다. 다시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장면. 이 많은 희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김소울 |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의 심리상담학과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며, <아이마음을 보는 아이그림>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미술 작가이자 플로리다 마음연구소 대표로서, 치유적 활동과 미술창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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