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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3_2 이정필_북한에게 재생에너지는 무엇일까?

by 어린이어깨동무 2020. 8. 19.

[한반도 에너지공동체 상상하기] 

 

북한에게 재생에너지는 무엇일까?

 

이정필

 

북한 헌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쓴 붉은 띠로 쌓아 올려 감은 벼이삭의 타원형 테두리 안에 웅장한 수력발전소가 있고 그 위에 혁명의 성산 백두산과 찬연한 붉은 오각별이 있다”고 규정한다. 김일성 주석이 사회주의 건설에서 전기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나라의 미래 전망을 밝히도록 수력발전소를 국장에 포함 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압록강 하구 쪽 수풍발전소가 모델이 됐는데, 이 발전소는 1943년 완공될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

 

 

북한이 국가의 지향과 사명을 담은 시각적 상징물인 국장에 수력발전을 선택한 이유에 뭔가 특별한 게 있을까. 국제적으로 거대 수력발전이 재생에너지 범주에서 제외된 최근 상황에서 북한에게 재생에너지는 어떤 의미일까.

 

2차 산업혁명 이후 근대 국가들이 발전소를 사회기반시설로 중요하게 취급했을 것이라는 점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북한은 물론이고 남한도 마찬가지였다. 남한은 해방 이후 냉전과 분단 속에서 전쟁과 재건 과정을 거치면서 남한 자체적인 전력생산과 송배전 체제를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당시의 시 대적 상황 탓에 한반도 전력시스템의 분할을 낳아 남한의 독자적인 전력체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북한에 전력 의존도가 높았던 남한은 1948년 5월, 북한으로부터의 단전 사태를 경험했다. 이후 남한에서 지속되던 제한 송전은 1964년에서야 해제됐다. 그러나 1967년과 1968년에도 공급예비율이 2% 미만으로 내려가자 제한 송전이 다시 시행됐고, 1970년대에도 전력공급의 과잉과 과소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구 사회주의 진영에서도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 공급과 소비는 사회 진보의 기준이자 체제 경쟁의 우위를 나타내는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1919년, 레닌은 공산주의는 정치적으로 는 소비에트 권력을, 경제적으로는 전기 생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봤다. 각각 정치조직과 경제활동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 둘의 결합이 공산주의라는 명제를 남겼다. 이와 유사한 입장에서 북한 역시 매년 신년사나 공동 사설을 통해 광산, 석탄, 발전소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남한보다 우월한 에너지시스템을 갖춘 적도 있었지만, 1990년대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북한은 에너지난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전력공급을 위해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거나 기존의 오래된 석탄화력발전소를 개보수하는 등의 공급 위주 정책을 시행하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전력 수요 억제 정책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공급이 주요 기관이나 산업에 우선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에너지 빈곤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의 에너지 수급 개선 여부에 대해서 이견이 있지만, 현재까지 에너지 공급이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북한의 재생에너지 개발 및 활용은 이러한 절대적인 에너지 부족에서 출발한다.

 

 

북한은 1980년대 중후반부터 간헐적으로 선진국과 민간기구로부터 태양광과 풍력을 지원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그 이유는 수력과 화력 발전설비로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를 극복하고, 지방의 에너지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유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주체사상이라는 자력갱생의 이데올로기와 논리적으로 일치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북한 매체에서 ‘자력갱생의 모범사례’로 재생에너지 사업을 소개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에너지난 해소를 경제 회생에 중요한 선결과제로 간주하고 있다. 2013년에 ‘재생에네르기법’이 제정되고, 2014년 신년사에 처음으로 ‘자연에네르기’가 표현됐다. “풍력, 지열, 태양광을 비롯한 자연에네르기를 이용하여 전력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하고, “전 사회적으로 절약 투쟁을 강화하여 한 와트의 전기, 한 그램의 석탄, 한 방울의 물도 극력 아껴” 써야 한다고 강조됐다. 그리고 ‘자연에네르기 중장기 개발계획’에 따라 2044년까지 재생에너지발전 설비용량을 500만kW로 확대할 계획이다. 태양광발전의 경우 북한 내 약 10만 가구 이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제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거의 대부분을 중국 등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풍력발전 개발을 위한 다양한 계획들이 발표되고 있으나 아직 산업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이 재생에너지 계획 및 보급 정책을 지속한다고 하더라도, 태양광과 풍력발전기의 설계 및 제작 기술 부족 등 내부적인 역량의 한계로 큰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재생에너지협력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인도적 측면을 우선시하면,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에너지공동체 형성에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2019년 신년사는 에너지전환 관점에서 볼 때 큰 고민을 안긴다. 재생에너지를 핵발전과 동시에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서 나서는 가장 중요하고도 절박한 과업의 하나는 전력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이는 것”이라며 “나라의 전력문제를 풀기 위한 사업을 전국가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 어랑천발전소와 단천발전소를 비롯한 수력발전소건설을 다그치고 조수력과 풍력, 원자력발전 능력을 전망성있게 조성해나가며 도, 시, 군들에서 자기 지방의 다양한 에네르기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리용하여야 한다”고 전했다.

 

현재 남한의 에너지전환은 복잡한 양상을 보이지만, 한반도 에너지공동체의 구상과 실천은 더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따라서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정필 |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 정치외교학을 잠시 공부했다. 수업에 들어가기보단 학생회관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도서관에서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교외활동은 주로 거리와 술집에서 했다. 10년 넘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적색과 녹색의 가치를 연결시키는 ‘정의로운 전환’ 개념에 매달려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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