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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9_5 김지혜_우리가 한 마을을 이룬다면: 경제 수업 이야기

by 어린이어깨동무 2022. 2. 18.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1] 

우리가 한 마을을 이룬다면: 경제 수업 이야기

김지혜

 

아이가 놀이터에서 선포하는 ‘아름~다운~ 세상~’ 노래가 창을 넘어 들어옵니다. 익숙한 멜로디의 앞 뒤 구절은 모르는지 아이는 연신 아름다운 세상만 외쳐대는데, 지난 가을 우리반 아이들과 살았던 ‘평화·화목·친환경 노랑새싹마을’이 떠오릅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민주적 경제 마을을 만들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중심에 둔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빚고 배우는 것을 목표로, 교실을 마을로 꾸미어 생산과 소비를 체험하고 마을의 경제 문제를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활동식 경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평화·화목·친환경’하게 지내기였습니다.


‘오징어 게임’으로 회자되는 대한민국 사회는 자유로운 경쟁을 통하여 패자의 많은 것을 정당하게 박탈하는 승자독식을 경제의 근본으로 삼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담합과 야합으로 게임의 의자 수는 점점 줄어들고, 노동자·약자들의 연대는 노력없이 남의 것을 빼앗는 무뢰배의 언어라 비판받으며, ‘공정’은 약자를 포용하여 제 것을 나누는 의미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기준을 세우는 원칙이 되었습니다. 사회와 한 몸인 초등 교과서도 학생들에게 자본주의 시장에서 잘 살아남는 방법과 자유와 경쟁의 효율성을 가르칩니다. 돈과 이익을 최고 효율로 판단하는 경제를 배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세상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아파트 부실 공사·붕괴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교육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의 삶은 꿈이자 희망이고 교사는 그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짓고 간직하라 가르치려 애쓰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마을
신자유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출발한 노랑새싹마을(마을 이름)은 주민들(아이들)의 회의를 통하여 조금씩 ‘평화·화목·친환경’ 경제 마을로 변화합니다. 사실 아이들끼리의 회의는 시행착오를 거듭하였습니다. 교사는 주민들의 회의에 일체 간섭하지 않았지만, ‘밥 먹을 때 마스크를 안 쓰고 말하면 벌금 1억 씨앗을 낸다.’던가, ‘통장을 안 가져오면 900씨앗을 벌금으로 낸다.’는 실현 불가능한 법률이 새로이 제정될 때에는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눈을 감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내뱉는 언어 속 사회의 가치관에 섬뜩 놀랄 때도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이는 능력이 없어서 돈을 못 번다.”는 사회복지사의 발언을 듣곤, 돈을 벌 수 있는 재주만을 능력으로 인정하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 몇 날 끙끙대며 그림책을 찾고, 노동 인권 수업 자료를 뒤져 결국 반 친구들 모두의 능력을 찾아 책으로 엮는 수업을 하기도 하고, 벌어들이는 돈이 노동의 가치를 값 매기진 않는다는 노동인권 수업도 했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든, 돈이 곧 그 사람의 가치가 되진 않는다는 말과 함께요. 그 과정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리를 깨치기도 하고, 비정규직의 주급을 정규직보다 150% 더 주어야한다는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손댈 수 없는 언어도 있었습니다. 초기재산을 뽑을 때였습니다. 못된 교사는 실제 사회의 빈부격차를 감안하여 상위 7%의 주민이 하위 93%보다 많은 부를 가지고 삶을 시작하도록(200~10000 씨앗) 초기재산을 설계합니다. 역시나 학생들은 불평등한 초기 자산 격차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긴급 회의를 열어 ‘많은 초기재산을 뽑은 학생의 부를 나누자’, ‘초기재산 격차를 줄이고 다시 추첨하자’ 등의 의견을 냅니다. 이제껏 평등하게 살아왔던 교실에서 갑자기 빈부격차가 생겼기에 나오는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런데 반에서 가장 똑똑하고 예의바르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데 우리 마을 주민들만 불만이 많다’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주민들의 논의를 끊습니다. 초기재산은 스스로 뽑았기 때문에 공평하며, 실제 어른들은 초기재산에 불평하지 않는답니다. 원래 세상은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이 있는건데, 그게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는 건 불만만 많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 생각이 없는 거랍니다. 불평할 시간에 열심히 일하라며 ♡는 주민들을 엄하게 질책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이 똑똑한 아이가 남긴 글에서 어른들의 사고를 느끼며, 나도 어떤 상황에서든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를 특별히 예뻐하지 않았나, 그런 행동을 장려한 교사가 아니었나 반성합니다. 성실과 근로만 칭찬하고, 비판적 사고로 권리를 정당하게 찾으려 애쓴 아이의 언행은 눈여겨 칭찬하기는커녕 무시하고 탄압하지 않았던가, 얼굴이 화끈거려 내가 일조한 ♡의 생각에 아무 말도 덧붙일 수 없었습니다.


비정상적(?) 경제 활동 그리고 연대
때로는 교사가 상상치도 못한 비정상적(?) 경제 활동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교실에 다주택 소유가 허용되었기에 자연히 무주택자도 있었고, 한정된 공급 하에서 경매 방식의 부동산 판매를 하니 집값이 꽤나 높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이 없는 친구들에게 자기집을 공짜로 주거나 엄청나게 싼 값으로 팔겠다는 몇몇 아이들이 나타납니다. 부동산이라 하면 무조건 값을 더 쳐서 팔고 싶어 하는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에게는 친구라는 관계가 또 다른 화폐로 작용합니다. 처음에는 그러한 결정이 애들이 ‘경제를 몰라서’라고 여겼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이런 행동은 ‘친구가 어려울 때 도와주고, 혼자만 잘 살지 말고 힘든 일은 함께 해결하라’고 선생님께 배운 대로 실천하는 올곧고 선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최대 효율’이라는 경제 논리를 벗어난 그들의 선택에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도 이 아이들의 마음을 어리다 여긴 교사가 어리석다 깨닫습니다. 씨앗(돈)을 모으는 게 세상 전부가 아니라는 것. 씨앗을 어떻게 사용하든, 물건을 얼마에 팔든 자신이 뿌듯하였다면 이문이 남지 않았어도 그걸로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겪는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여 연대를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해고가 자유로워야 일자리가 많이 난다며 사장(교사)이 마음대로 해고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사장이 자기들 눈앞에서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을 해고하고, 친구가 축 처진 어깨로 책상에 엎드려 울자, 주민들이 하나 둘씩 미화원을 위로하러 다가옵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통하여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을 정규직으로 복직시킵니다. 환경미화원이 열심히 청소하지 않아 해고해야 한다는 교사의 거드름에 화가 난 ♡가 “사장님이 청소해 보세요. 청소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환경미화원은 기계가 아닙니다. 마을이 더러우면 환경미화원을 한 명 더 뽑아주세요!”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변신에 깜짝 놀랐습니다. 네 일이 나의 일로 여겨지는 역지사지와 연대는 평화의 기틀입니다. 주민들은 결국 고용보장 사회를 만들었답니다.

 


‘평화·화목·친환경’ 경제 마을
할 이야기가 많지만 짧은 지면에 모두 담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사회의 많은 제도를 바꾸었습니다. 공적 부동산, 기본 생활금, 장애인·예술 지원금, 노동자 경영 참여, 친환경 화폐까지. ‘평화·화목·친환경’ 경제 마을을 만드는 각자의 빛깔에는 완전한 선악도, 우열도 없습니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경제 가치와 나눔과 연대 사이에서 삐걱대면서도 특유의 순수성으로 공동체에 이로운 회의를 하고자 노력하고, 그 속에서 또 새로운 관계와 성찰과 성장이 일어납니다. 교실 공동체에서 물건을 거래하고, 삯을 주고 일을 하면서도 서로를 살피는 모습은 옛적 시골 마을에서 함께 살았던 삶이 재현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학교 교육에서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온 사회와 품앗이하는 노동자로서의 바람직한 정체성, 인권의식을 확장한 경제권으로서의 인간권까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디고 투닥대더라도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상은 ‘인간’을 바라볼 때 고운 사랑으로 모입니다.

 

김지혜 | '지혜네 노랑꽃집'(우리반 이름)의 한 구성원 '노랑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신념으로 오늘도 흔들리고 흔들리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것 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을 더 경계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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