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한반도 평화구축 : 한 국가, 두 국가, 그 사이를 넘어
김동진(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부소장)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는 오랜 시간 국가와 민족의 관점에서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남과 북의 평화 공존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회복이 핵심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해방 이후 외세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에서, 분단 문제는 종종 국가 이익이나 민족 정체성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물론 국가나 민족은 우리 삶에 중요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향을 가진 개념이다. 하지만 DMZ를 사이에 두고 서로 왕래가 끊긴 채 분단 80주년을 앞둔 한반도의 현실에서 국가나 민족을 기본 단위로 한 평화와 통일 논의는 때로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먼 어떤 상상의 개념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산가족의 아픈 과거 이야기를 접하거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감동적 사건들을 마주하면서, 남북관계가 가족, 즉 사람과 사람의 문제로 다가왔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최근 대한민국에서 북한 문제는 사람 사는 이야기보다는 주로 정치적 개념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제사회 '평화구축(Peacebuilding)' 개념의 변천사가 흥미롭다. 1970년대 중반,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한 평화조성(Peacemaking) 및 평화유지(Peacekeeping) 활동이 정전 체제를 통해 소극적 평화를 달성할 수는 있어도, 오히려 갈등을 고착화시켜 평화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적 성찰에서 출발해, 보다 적극적 평화를 위한 평화구축의 개념을 제안하였다. 스테판 라이언 등 장기적으로 지속된 분쟁지역을 연구하는 평화학자들은 평화유지 활동이 군인들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것이라면, 평화구축 활동은 서로 왕래가 끊긴 일반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군인들이 장벽을 넘으면 전쟁이 재발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장벽을 넘으면 평화가 지속된다는 이론적 접근이다.
1992년, 당시 유엔 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는 ‘평화를 위한 의제’라는 보고서에서 공식적으로 평화구축 개념을 국제사회 평화활동에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국제사회 평화활동이 정전체제를 넘어 전쟁재발을 원천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평화구축 활동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호소였다. 그러나 이 개념이 국제사회에 받아들여지면서, 평화구축이 서구형 국가 건설 활동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사람과 사람 간에 건설하는 다리를 강력한 국가 제도로 해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세계 분쟁 지역에서는 식민 경험 이후 민족, 종교, 이념과 같은 서로 다른 집단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국민 국가를 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하나의 국가 건설을 전제로 한 평화구축을 옹호하는 이들은 세계 분쟁 지역 갈등의 근본 원인을 국가의 취약성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이 지역에 서구형 국가를 건설하고 법제정비를 통해 사회를 재건하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속에서 자연스럽게 갈등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국가 단위의 평화구축 관점에서 한반도 평화구축은 한 국가, 두 국가, 혹은 그 사이에 있는 애매한 상황으로 이해되어 왔다. 국제사회의 입장에서 북한에서는 한 번도 평화구축이 시도된 적이 없다는 인식도 그 때문이다. 남북 관계를 두 국가 관계로 보면서, 취약국으로서의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평화구축은 북한이라는 하나의 유엔가입국을 서구형 국가로 재건하는 개념이 되기에 그러하다. 이와 달리 남북기본합의서의 관점에 따라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로 보는 경우에도, 한반도 평화구축은 아직 시작도 못해본 활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평화구축은 남과 북이 하나의 통일 국가를 구축하는 국가 단위의 과정에서만 가능하다는 이해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국가 중심의 평화구축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고 있다. 서구의 경험에 기반을 둔 국가 건설 활동이 전쟁 재발을 방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른 집단 정체성을 가진 갈등집단 사이의 양극화 현상을 증폭시키고 폭력사태가 재발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많은 평화학자들은 평화구축 개념의 근본 이해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서구형 국가인가 비서구형 국가인가라는 국가 성격 논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화구축은 국가 건설을 넘어서서 사람들 간의 관계 회복을 중시하는 것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극적 평화 유지를 위해 세워 둔 장벽이 오히려 사람과 사람을 서로의 집단 정체성에 가두어 비인간화하게 된다는 비판적 성찰은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국가 단위의 개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분쟁지역의 사람들이 서로를 사람으로 대할 수 있도록, 그 지역의 맥락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고민을 담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앞서 언급한 요한 갈퉁은 평화구축 개념을 제안하기 앞서, 한반도 분단과 통일 문제를 주요 사례로 삼아, 지속가능한 평화를 연구했다. 1972년 그의 논문 ‘Divided Nations as a Process: One State, Two States, and In-between’은 한반도에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한 국가론, 두 국가론의 사이에서, 어떠한 방식의 평화공존이 가능할 것인가를 탐구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갈퉁은 소극적 의미의 평화공존은 서로 상관하지 않고 따로 사는 것이지만, 적극적 의미에서의 평화공존은 국가 단위의 논의를 넘어, 남과 북의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서로 함께 변화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아일랜드에서 지난 10년간 거주한 경험으로 인해, 아일랜드에서 헌법의 영토 조항을 수정한 사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헌법의 영토조항으로 인해 1970년대 평화 합의가 무너져 내렸고, 북아일랜드에서 흡수통일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남아일랜드는 1990년대 평화 협상 과정에서 평화협정이 이루어지면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합의했다. 실제로 1998년 평화협정 이후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기존 전체 아일랜드섬에 대한 영토 주장을 주민 다수가 원할 시 통일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조항으로 대체하고 현 시점에서의 상호 주권을 인정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해 많은 견해들이 있는데, 평화에 대한 염원 때문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사실 서로 다른 국민 정체성을 가진 이들끼리 서로를 지긋지긋하게 느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문제는 서로가 싸우지 말자는 의미를 넘어 아예 따로 살자는 의미로 헌법을 개정하고 평화협정을 맺었다면, 사람들의 비인간화 현상은 여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부러운 점도 많지만, 아일랜드는 평화협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서로를 집단 정체성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고 화해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씨름하고 있다. 분명 아일랜드섬의 분단 상황은 한반도와는 다르다. 하지만 평화협정 이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아일랜드 정치인 존 흄의 주장, 아일랜드섬의 평화와 통일 문제는 국가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 문제다"라는 말은 우리의 상황에도 시사점이 있다.
결국 한반도의 분단 문제도 단순히 국가나 민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넘어, 실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회복을 중심으로 재조명해야 한다. 평화구축의 핵심을 국가 단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 구축으로 본다면, 평화구축은 한 국가, 두 국가, 혹은 그 사이 애매한 상황을 넘어서, 남과 북의 사람들이 집단 정체성 이전에 서로를 사람과 사람으로 대하게 되는 과정이다. 우리를 사람이 아닌 적대적 국가로 규정하려는 북한의 최근 시도를 무력화하는 길도, 국가나 민족이라는 개념 논쟁을 넘어, 한반도에서 사람과 사람이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 달려 있다. 국내외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국가 관계에 대한 인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적극적 평화공존을 위한 우리의 여정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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