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교육]
‘뉴라이트 역사 논쟁’을 교실 수업에서 다루기
채창수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불안한 한반도 상황과 정치적 혼란에 많은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는 가운데 ‘역사’나 ‘역사교육’에 관련된 사람들은 유달리 충격적이고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인물은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았는지 묻는 질문에 답을 회피하다가 마지못해 인정하였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을 만나 ‘6·25 전쟁 같은 전시하에서는 재판 등이 이뤄질 수 없으므로 적색분자와 빨갱이를 (재판 없이) 군인과 경찰이 죽일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독립기념관장과 진실과 화해를 부정하는 진실화해 위원장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만들고 합의해 온 ‘큰 틀의 역사’가 기둥뿌리부터 흔들리는 위험을 느낀다. 이와 비슷한 충격적인 사례들은 셀 수없이 많다. 이승만 기념관 논란, 일본 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 과정에서 보인 우리 정부의 저자세 외교, 육군 사관학교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 등에 더해 급기야 친일 편향 의심을 받는 한국사 교과서가 2022 개정교육과정 검정을 통과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뉴라이트의 ‘역사 전쟁’
기존에 한국 사회가 역사에 대해 가져왔던 상식적 이해를 뒤흔드는 이 모든 사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뉴라이트’다. 뉴라이트는 2000년대 중반 진보정권이 연달아 집권하고 친일과 독재에 대한 과거사 청산이 법적인 기반을 갖추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 기득권 세력들의 대응으로 시작됐다.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은 ‘식민지’ 시기의 ‘근대화’가 현재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고, 공산화의 위험을 막아낸 이승만(건국)과 경제 성장을 이룬 박정희(부국)의 업적이 지금 대한민국의 성취에 가장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로 정리할 수 있다. 이들은 기존의 진보를 수구 좌파 · 친북으로 낙인찍으려 시도하였고, 역사 교과서를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은 일본 극우의 역사관에서 빌려온 ‘자학사관’이라는 이름으로 ‘한국근현대사(금성출판사)’ 교과서를 공격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좌파 친북 정권의 교과서’라는 것이었다. 2013년에는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을 담은 한국사(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지만, 교학사 교과서 채택이 학교 2곳에 그치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시도하였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실패했다. 2019년에는 뉴라이트의 대표 논객 이영훈 등이 『반일종족주의』를 출간하여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을 ‘종북’과 ‘반일’로 규정했다.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은 점차 보수 세력 내부에 확산되었고,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정권의 성향과 맞물려 거리낌 없이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여름 광복절을 둘러싼 뜨거웠던 논쟁을 생각하면 가히 ‘역사 전쟁’이라 부를만한 상황이다.
역사교육과 정체성 만들기
“오웰(Orwell)은 소설 『1984』에서 현재를 통제하는 사람이 과거를 통제하고 과거를 통제하는 사람이 미래를 통제한다고 말하였다. 이 말은 허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사람들은 지금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삶의 방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상을 필요로 한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모든 계급이나 집단은 그들 자신의 집단 자서전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역사란 사람들이 부분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창조해 내는 방식이다. 따라서 어떤 내용이 어떻게 중·고등학교나 대학교의 커리큘럼에 들어가게 되는가의 문제는 이해 당파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키스 젠킨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pp. 71~73 -
뉴라이트와 보수 세력은 왜 ‘역사 전쟁’에 몰입할까? 윗글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체성이란 나와 우리가 누구인지에 관한 규정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우리(사회)가 걸어왔던 길에 대한 확인이고, 앞으로 걸어갈 방향에 대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국민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역사교육이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민족과 국가의 이야기는, 구성원 개개인들이(또는 그 선조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공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상상을 제공하고 이를 공유한 구성원들은 결속감을 갖게 된다. 그런데, 특정한 유형으로 정의된 국민 정체성은 정치 세력의 정당화 및 권력 창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광복절·건국절 논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한 신문에서는 이 논쟁을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이라 소개하고 이를 여운형과 이승만의 후예들이 벌여온 사실상의 ‘내전’이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타자(반국가세력)를 만들고 폭력적으로 배제하는 일이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이 발생해 왔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역사교육이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진행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또한 역사 연구와 교육에서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평화와 인권 등 기본적 가치를 교육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뉴라이트 역사 논쟁’을 역사 교실에서 어떻게 다룰까?
학교 역사 수업은 ‘역사 전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식민지 근대화론, 홍범도 장군, 4·3 사건과 6·25 전쟁의 민간인 학살,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에 대한 평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광복절과 건국절 논쟁 등 한국 근현대사 수업은 온통 ‘역사 전쟁’의 ‘지뢰밭’이다. 민감한 주제가 아니었던 부분들이 현 정부 수립 이후로 대거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에 이름을 올렸다. 그렇다면, 역사 수업에서는 이러한 주제들을 피해야 할까, 적극적으로 다뤄야 할까? 만약 수업에서 다룬다면 어떤 교수학습 방법을 활용해야 할까?
필자는 역사 수업 시간에는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를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이란 객관적 진리가 아니고 해석의 산물이다. 기존 해석은 새로운 해석과 끊임없이 충돌하기 때문에 역사의 성격 자체가 본질적으로 논쟁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성격을 교실 속으로 가져와 학생들이 수업에서 자료를 분석∙비판∙해석하면서 다양한 관점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민감하고 논쟁적인 주제가 전쟁범죄나 국가 폭력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부인 또는 정당화하는 ‘역사 부정’과 관련되어 있을 때 교사는 대단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뉴라이트가 의제화한 주제들 중에 이런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토론과 논쟁의 주제로 다룰 때, 기존 역사학계의 주장과 뉴라이트 계열의 주장을 동시에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논쟁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적절한 수업 방식일까?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려는 시도가 자칫 반인권적인 극단적 주장에 학문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하버드대 메이라 레빈슨 교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¹ 그녀는 논쟁적인 이슈를 ‘열린’(open) 질문과 ‘합의된’(settled) 질문으로 나누었다. ‘열린’ 질문이란 여러 개의 경쟁할 이유가 합당한 견해들을 의미하고 ‘합의된’ 질문은 과거에 ‘열린’ 질문이었으나, 더 이상 논쟁적이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여성의 참정권처럼 더 이상 논쟁거리가 아닌 ‘합의된’ 질문은 가르치고 넘어가면 된다. 그런데 ‘열린’ 질문에 대해 교사는 ‘피하기’와 ‘관여하기’ 중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고, ‘관여하는’ 경우 ① ‘부정’, ② ‘혜택’, ③ ‘균형’의 세 가지 방식에서 자신의 태도를 택할 수 있다. ① ‘부정’의 방식은 교사 스스로의 판단하에 그것이 논쟁적인 정치적 이슈가 아닌 것처럼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② ‘혜택’의 경우 교사는 특정 이슈가 논쟁거리가 있지만, 바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고, 특정한 한 개의 관점에 더 혜택을 줘서 학생들이 그런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 형식이다. ③ ‘균형’은 진정으로 논쟁거리가 되는 정치적인 이슈로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이상적인 해답에 노출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위에서 언급했던 뉴라이트의 주장과 관련된 논쟁거리들을 메이라 레빈슨의 견해를 활용해 어떻게 다룰지 생각해 보자.
1 메이라 레빈슨 교수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한 2020년 학교민주시민교육 온라인 국제포럼에서 ‘학교에서 사회적, 정치적 논쟁적인 이슈를 가르치는 것: 도전적이지만 필요한 과제’라는 주제로 기조 발제하였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대해 수업에서 어떤 입장으로 접근할 것인가? 최근에 필자는 ‘8·15를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광복절 vs 건국절’이라는 주제로 공개 수업을 진행했다. 이때 ② ‘혜택’의 입장을 선택해서 쟁점을 탐구하고 토의하는 형식을 택했다. 뉴라이트 성향 역사관에서 한국사를 이해하는 방식을 강의식으로 설명한 뒤, 뉴라이트 계열의 ‘건국절’ 주장을 분석하기 위한 읽기 자료와 이를 반박하는 역사학계의 성명서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의 인용 부분을 읽고 논쟁의 전개와 정치적 배경을 이해하도록 했다. ‘혜택’의 입장을 택한 이유는 ‘건국절’ 주장이 현재의 헌법(우리 사회가 합의한 우리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이런 논쟁이 우리 사회에 진행 중임을 안내했지만, 뉴라이트의 주장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한 수업 형태였다. 수업을 참관한 선생님 중에는 뉴라이트의 입장을 그렇게 자세히 설명해 줄 필요가 있었는지 질문하는 선생님도 있었고, 논쟁적 이슈를 다룰 때 기계적 중립에 대한 강박감 때문에 항상 고민이 많았는데 해결책을 찾았다고 얘기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역사 부정’과 관련된 특정 주제들은 ‘균형’의 방식이 위험한 선택인 것만은 분명하다.
뉴라이트가 권력의 곳곳에 포진하여 목소리를 내면서 역사 교실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역사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색깔과 모양들, 누가 보는지 어디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신기하고 흥미진진한 역사 속 이야기들을, 교실에서 함께 읽고 고민하고 같이 얘기 나눠야 할 소중한 시간에, 우리는 흑백으로 변해버린 역사에서 흑과 백의 특징이 무엇인지, 또는 왜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뉜 것처럼 보이는지 그 이유를 이해시키느라 급급한 상황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에서 읽었던 굴원의 『초사』의 유명한 구절을 곱씹으며 씁쓸한 마음을 달랠 따름이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면 되지”
|사진출처|
편향성 논란을 일으킨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
https://newstapa.org/article/EwSIJ
반쪽 광복절 경축식
https://www.yna.co.kr/view/GYH20240815000100044?section=search
|참고문헌|
방지원, 「기억의 정치와 역사부정, 역사교육은 어떻게 대처할까?」, 『역사와 세계』 58, 2020
임재성, ‘전시엔 재판없이 죽일수도...무지하고 자격없는 김광동 위원장’, 한겨레 신문, 2023. 11. 01.
김육훈, ‘기억과 기념, 그리고 미래 2024, 이 ‘기괴한’ 상황과 역사교육자의 몫’ (전국역사교사 모임 강의자료) 2024. 8
키스 젠킨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혜안, 1999
길윤형, ‘여운형의 후예, 이승만의 후예’, 한겨레 신문, 2024.08.13.
서울시교육청, 『2020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 자료집: 학교민주시민교육에서 논쟁성 재현은 왜 중요한가?』
채창수 | 전주 완산고등학교 수석교사. 교사와 연구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평화를 일구는 역사 수업을 실천하고 있다. 매년 ‘한반도 평화’라는 큰 틀에서 새로운 주제를 연구하고 개발해 전북 교사들에게 수업을 공개하면서 전북평화통일교육연구회에 가입하도록 갖은 방법으로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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