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모든 것에 얽힌 모든 것
- '글로벌 청년 평화 포럼' 후기 -
이서현
여순의 경관 속에서 찾아낸 가냘픈 단서
10여 년을 수도권에서 지낸 나에게 여수의 풍경은 다소 낯설게 다가왔다. 침식으로 인해 단차가 들쭉날쭉한 지형이 눈에 띄었고, 저지대와 고지대를 잇는 암벽은 물의 이동으로 인해 깎여 나간 곡면으로 채워져 있었다. 10.19 필드워크에서는 임재근 소장님의 안내에 따라 여순의 현장을 낱낱이 탐사했고, 그 결과 이 도시가 온통 절벽으로 빼곡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모양의 풍경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장소의 역사적 의미, 사건의 배경과 경과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 이어졌다. 소장님의 생경한 해설은 이 도시의 과거를 내 앞으로 불러들였다. 종내에는 단 하나의 질문이 나를 붙잡았다. 바로 이 학살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질문이었다.
무엇이 이 비극의 중심부에 있는가. 미국의 영향력? 일본의 침략과 주권 강탈? 친일 청산에 실패한 것? 군대의 상명하복 시스템? 임 소장님이 오롯이 전달해 주신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원인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나는 개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근원을 찾는 것에 골몰하며 무엇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이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지지 않을지 상상했다. 현장에서 해설을 듣고 버스에 올라타 그런 고민에 잠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마지막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바로 형제묘와 암벽에 둘러싸인 위령비였다.
여순의 수많은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형제묘는 산 위에 있었지만, 그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비는 그 산의 바로 아래, 수많은 굴곡을 품은 바위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쩐지 나는 그 지형적 특성에서 사건의 양상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위령비 주변의 이리저리 뒤엉킨 암벽의 층위들이 내게 결정적인 단서를 던졌다. 단 하나의 원인이라는 것은 없구나. 물에 닿아 갈라진 커다란 바위의 틈새가 가지를 뻗고, 다른 쪽에서 발생한 또 다른 틈새와 만나며 더 큰 골을 형성하는. 원인에 연루된 또 다른 원인들. 형제묘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닌 역사의 흐름 전체가 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해결책이라는 것은 아득하고도 막연해 보였지만, 이 일을 기억해달라는 소장님의 호소에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이 기억이 적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피스게임의 진정한 목적성을 고민하다
다음날 진행되었던 피스게임 또한 갈등의 ‘복잡성(complexity)’에 대해 절감하게 해준 활동이었다. 피스게임은 미국, 중국, 일본, 남한, 북한과 WPA(가상의 NGO)로 구성된 팀들이 각각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유엔안보리 결의안 실행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하는 시뮬레이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각국의 첨예한 정치적 다툼이 일어났으며, NGO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지속적인 소통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뿐이었다. 게임 전반을 주관한 AFSC(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의 활동가분은 우리의 해결책, 즉 ‘각국의 시민 회의 연례행사 주최’가 썩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이 ‘회의 연례행사’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막연한 해결책이다. 각국이 부여받은 게임 규칙(Role Sheets) 속 정치적 의도들과 그 의도가 다분히 섞여 들어간 언어들이 건설적인 담론으로 가는 일의 발목을 잡았다. 소통이 본질을 잃고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상들이 게임 중에도 종종 목격되었다. 암만 ‘회의’ 같은 것을 해봤자 남는 것은 부유하는 ‘말’들의 껍데기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될수록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는 것만큼 좋은 돌파구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회의가 진행될수록 각국의 이해관계가 윤곽을 띄고 드러났다. 특정한 국가가 꺼내 놓은 요구사항과 발언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아래에 있는 저의를 탐지하고자 노력한 결과였다. 결국 모든 공동체가 만족할 만한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이런 일련의 갈등을 겪어보는 것이 이 게임의 취지가 아닐까 싶다. 게임 내에서 평화구축이 쉬이 이루어졌다면, 외려 우리는 제대로 된 갈등의 심층부를 들여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속해 있던 WPA 조에는 다양한 국적의 구성원들이 있었는데 (한국과 사이프러스, 북아일랜드에서 온 사람들로 어쩌다 보니 구성원 모두가 분단국가 출신이었다) 그들과 대화하며 분단에 대해 보다 더 다채롭고 인상적인 관점을 나누었다. 누군가와 가까이 접촉해서 그들의 얼굴을 마주 본 채 담화를 나누는 일은,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구체적인 평화 구축의 방법론일지도 모르겠다. 군대에 복무한 시절 워게임(War Game, 피스게임은 군에서 실행하는 해당 작전의 안티테제로 만들어졌다)에 참여해 보았다는 한국 남학생의 이야기가 특히나 기억에 남는다. 나와 물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 나라에 살고있는 사람들 각각이 본인들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증언을 안고 살아간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대화의 장이 없었다면, 나는 그 목소리를 감지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용서는 어쩌면 가장 빠른 지름길
이번 워크샵에서 가장 크게 얻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perspective)이었다. 데스몬드&레아 투투 레거시 재단의 CEO 자넷 잡슨의 기조연설을 듣고 나서는 룸메이트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잡슨 CEO님의 연설 중 우리 사이에서 가장 큰 화두가 되었던 ‘용서’에 대해 우리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보려 애썼다. 그는 데스몬드 투투가 평화 구축을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언급했던 것은 투쟁도, 배려도, 어느 다른 가치도 아닌 ‘용서’라고 말씀하셨다. 용서는 모든 평화의 가장 기본적인 근간이 된다고 말이다.
이에 대해 많은 반론이 제기되었다. 용서란 너무 감상적인 접근이 아닌지, 이것이 어떻게 실질적인 갈등을 해소해 줄 수 있을지. 여러 고민들이 Q&A 세션 당시 제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나 여순에서의 참상을 필드워크를 통해 전해 들은 이후였기에 고민이 깊었다. 그런 참상의 책임자들, 도화선에 서 있었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나야 그렇다고 쳐도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은 또 어떤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기나긴 고민 끝에 나는 다시 필드워크의 현장에서 본 위령비의 풍경으로 되돌아갔다. 뒤엉킨 나무뿌리들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절벽의 틈바구니를 메우던 그 풍경으로 말이다. 만약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특정한 종류의 응징과 복수가 이루어진다면. 결국 또 하나의 침식 현상이 더해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소 색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용서’는 가장 좋은 그리고 꼭 필요한 수단이다. 그리고 또한 어떠한 의미에서는 의무이기도 하다. 용서는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에서 벗어나 폭력의 기저에서 꿈틀대는 구조적 병폐를 인식할 수 있게끔 한다. 단순한 응징이 아닌 시스템의 개선을 꿈꾸게 한다. 따라서 평화를 이룩하는 일이란, 수많은 층위와 그를 연결하는 지점의 존재 자체를 알아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깊이, 또 복잡하게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워크샵을 마치고 나는 순천에 하루 정도 더 머물렀다. 마지막 날에 마주한 순천만습지의 멋진풍경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뜻하지 않게도 워크샵에 참여했던 분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상당히 뜻깊은 경험으로 남아있다. 그분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갈등들의 끝에는 한국의 분단 문제가 연결되어있다고 말해주었다. 사이프러스에서 온 활동가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분단의 갈등이 세대를 타고 내려오며 새로운 갈등으로 변모한다는 것. 2박3일의 시간(나의 경우에는 3박4일이지만) 동안 많은 이들의 관점에 잠깐이지만 긴밀히 접근할 수 있었고, 이 경험은 나를 필히 성장시킬 것이다. 그들의 얼굴과 마주하고 대화할 기회를 제공해 준 어린이어깨동무에 깊은 감사를 전하고자 한다.
이서현 | 한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어린이어깨동무의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의 양태를 들여다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에 대한 허술하지만 따스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영화로 풀어보겠다는 꿈을 갖고 수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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