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이슈]
남과 북, 무엇부터 시작할까?
이우영(어린이어깨동무 이사)
파리 올림픽이 열리면서 다양한 운동 종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메달 수에 목을 맸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선수들의 노력 그리고 기쁨과 아쉬움을 같이 하면서 훨씬 여유롭게 올림픽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북 단일팀의 기억들과 공동입장, 공동응원의 추억들이 답답한 남북관계 현실에 겹쳐 지면서 착잡한 심정도 지울 수가 없다.
적대적 두 국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평화의 희망을 부풀게 했던 남북관계는 2019년 북한과 미국의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지속적으로 나빠져 왔다. 심지어 최근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총비서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였다. 이는 분단 이후 남북이 모두 통일을 최고의 목표를 삼아왔던 역사와 남북한 체제의 구성원들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남), ‘우리는 하나’(북)를 노래해 왔던 마음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 본다면 북한에서만 통일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2022년 7월 전국지표조사(NBS·National Barometer Survey)에 따르면,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41%, ‘통일이 되지 않고 현재 상태로 살아가도 된다’는 인식은 56%로 나타났다. 또 향후 남북 체제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2국가 체제’가 52%로 가장 높은 가운데, ‘통일된 단일국가’가 18%, ‘현재와 같은 2국가 체제’ 17%, ‘하나의 국가 내 2개의 체제’ 8% 순이었다. 공식적으로 남한에서는 통일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이자 국가적 목표이지만 사회공동체 수준에서 통일, 특히 단일국가 기반의 통일은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따라서 통일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 입장 변화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남한사회의 여론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통일에 대한 북한의 입장 변화와 남한사회의 통일에 대한 인식 변화는 북한 및 통일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 분단은 70년을 넘어 1세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수많은 인명의 살상을 겪은 한국전쟁을 포함하여 적대적 대결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남과 북은 그동안의 국가 수준에서나 사회구성원 차원에서나 급격한 체제변화를 경험해 왔다. 이는 분단구조는 여전하지만 이를 둘러싼 대내외적의 변화가 적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나뉜 것은 반드시 합쳐진다는 ‘분구필합(分久必合)’식의 관습적인 통일담론이 유지되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과 북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확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잊고 살지만 잊을 수 없는
그러나 통일을 차치하고라도 항상 ‘짜증’나는 북한과 관련된 일들을 그냥 덮어두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한국전쟁 이후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남과 북의 적대적 대결 관계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한반도는 핵무기를 포함하여 최고의 화력이 집중되어있는 국제적 ‘화약고’이다. 만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남과 북에 군사적 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엄청난 능력을 가진 무기들 덕분에(?) 접경지역이나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나 상관없이 바로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까지 그럭저럭 문제없이 살아왔다고 해서 현재의 삶이 행복하고 평안한 것은 아니다. 남과 북의 아이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준비하여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군대에 반드시 가야 한다. 남쪽에서는 소상공인을 포함해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북쪽의 어린이들은 여전히 건강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남이나 북이나 ‘언젠가’를 위해서 그리고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면 가장 바람직한 무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남한의 일상이 팍팍한 것도, 학교 성적에서 취업에 이르기까지 ‘전투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이들이 즐기는 컴퓨터 오락에서도 전략게임만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도, 정치에서 경제생활에 이르기까지 적과 나를 가르고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전쟁문화도 분단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마치 월급생활자가 매달 기계적으로 공제되는 각종 비용들을 잊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단에서 비롯된 정치·경제·문화·의식의 비용들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옥죄어 온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한 더 나은 삶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통일에 대한 관습적 이야기는 당연히 설득력이 없다.
무엇부터 시작할까?
출발점은 우리 일상의 삶과 분단 현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 개인과 나의 가족과 이웃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의 어린이들(남과 북 모두)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주위의 사람들과 이야기해야 한다. 생각을 ‘다시’하고 이를 주위와 나누는 것 자체가 중요한 실천의 첫걸음이다. 좀 더 나아간다면 나와 주위의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연습을 시작하는 것이 다음의 실천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이탈주민을 포함하여 다문화인들과 소수자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나 가능한 범위에서 이들을 도와주는 것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북한의 어려운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이나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도 또 다른 실천이다.
복잡하고 문제가 많아 보이는 남한 정치체제나 구조에 대한 개선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남과 북의 체제나 이념 통합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지내는 것을 고민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일들이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 통일이 아니라 ‘통이(通異)’ 즉, 다른 것끼리 서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해 왔고, 이는 지금부터 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더 나아가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사는 것이 나의 삶과 다음 세대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과정이라는 점을 생각하여야 한다.
경기장에서 서로 경쟁을 하더라도 끝난 후에는 서로 격려하고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상황도 또 다른 통일이고, 이 같은 실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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