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연극]
무말랭이 연극만들기
평범한 동네주민들의 연극 도전기 Ⅲ
남동훈
사과 말씀 올립니다
이 기고는 어린이어깨동무의 제안으로 지난 2020년 피스레터 봄호부터 약 10회 연재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연재 시작 불과 2회 만에 갑자기 지면에서 사라졌다. 물론 필자 본인의 게으름 때문일 것이라는 건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독자님들께 제대로 된 양해나 사과의 말도 없었으니,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은 떨치기 어려웠다. 부족하지만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본문에 앞서 다시 기고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결승전 자책골을 넣은 골키퍼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연재 중단의 자책감은 참으로 컸다. 대학로에 왔다가도 어깨동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이 갈 때면 여지없이 한숨이 나오곤 했다. 뭔가 계기가 필요해, 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느닷없이 길바닥에서 이성숙 팀장님을 만났다. 2024년 6월 5일 늦은 오후, 성균관대학교 입구 버스정류장 앞이었다. 난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근처 다이소를 들렀다가 나오는 길이었고, 팀장님은 맞은편에서 한쪽 발을 절룩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봇물 터지듯 서로 말들이 뛰쳐나왔고, 그날로 연재가 결정되었다. 그 우연한 만남을 위해 나는 역시나 빈손으로 나올 거면서 혹시나 다이소에 들렀고, 팀장님은 몇 주 전부터 발목에 부상을 입고, 회복 기간과 걸음 속도를 조절해가면서 그날, 그 시간의 타이밍을 맞추었던 것 아니었을까.
앞으로의 연재 방향에 대하여
2020년 기획 당시에는 약 10회에 걸쳐 무말랭이의 10년간의 실제 활동을 살피고. 이를 통해 공동체 연극활동의 의미 등을 읽어내고, 기록해서 공유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새롭게 연재를 시작하면서는 무말랭이에 대한 소개와 공유를 마치고, 이후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일반인 연극활동들도 소개하는 건 어떨까 싶다. 무말랭이가 활동을 시작했던 2008년 이후 약 15년 동안 일반인 연극활동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활동 목적과 계기, 지역 또는 공간, 주체와 주최의 성격 등에 따라 시민연극, 마을연극, 생활연극, 동호회 연극 등 지칭하는 언어들도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여 필자가 직접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일반인 연극활동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독자님들의 일반인 연극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활동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창단 공연 이후 무말랭이의 선택은
창단 공연의 성취감은 고스란히 다음 공연에 대한 기대와 압박이 되었다. 다음 공연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는 다음 공연은 어떻게 해야 창단 공연 만큼의, 나아가 창단 공연보다 더 큰 성취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대가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데뷔작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쉽고도 당연한 일이 아니다. 무얼 보고 발전이라 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새로움이다. 즉, 질문을 바꿔야 한다.
무말랭이는 어떤 작품을 할 것인가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질문을 쪼개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어떤 희곡을 공연할 것인가이고, 본질적으로는 무말랭이가 얘기하고 싶은 연극의 주제와 내용은 무엇인가이다. 첫 공연처럼 기성 극작가들의 기존 희곡들을 읽어보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주제와 내용을 담은 작품을 선택해서 공연을 한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희곡이 없다면, 있다 해도 구성원 모두를 담아낼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조건이 된다고 해도 작품이 요구하는 제작물이 무말랭이의 역량을 넘어선다면? 무엇보다 그런 방식으로 원하는 연극을 할 수 있을까.
마을극단이 창작극을 올린다고
이상의 질문들에 대해 우선, 무말랭이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담아내자, 참여를 원하는 참가자들을 모두 수용하는 작품을 하자, 무말랭이의 조건과 역량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제작방식을 찾자, 그래야 오래 할 수 있다 등으로 답들을 모아냈다. 무말랭이의 두 번째 작품이자 첫 창작극인 『어린 부부』는 그 대답들의 결과물이었다. 일개 마을극단이 창작극에 도전하는 순간이었다.
일상의 경험을 연극으로
글감을 찾기 위해 정기적인 창작모임을 가졌다. 거기서 나오는 무말랭이들의 이야기를 희곡으로 담기 위해 전문극작가를 섭외하고 모임에 함께 참여했다.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드는 디바이징 씨어터(Desiving Theatre) 개념으로 진행한 작업이었다. (디바이징 씨어터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일상의 경험 속에서 글감을 찾다 보니, 생활의 경험과 가장 크게 맞닿아있는 고민들로 글감들이 모아졌다. 결혼과 제사였다. 연극계의 경향과 사회적. 역사적 주제의식 등 거대담론에만 익숙했던 입장에서 신선했다. 두 글감 모두 한 그릇에 담기에는 큰 소재였고, 이야기들도 풍성했다.
결혼할 결심부터 혼인 생활의 기쁨과 슬픔까지
둘 중 ’결혼‘이라는 소재를 작품화하기로 했다. 보다 개인밀착적이고 현재진행형인 소재라는 판단이었다. 그러자 모임이 한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참가자 중 비중이 높은 여성들이 훨씬 적극적이었다. 결혼할 결심부터 혼인생활의 기쁨과 슬픔까지 버라이어티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이는 더 이상 기억하기 싫어서 비닐 랩으로 뚤뚤 말아 기억의 냉동실 구석에 처박아둔 얘기들을 꺼내는 심정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비밀의 방이라고 아십니까
이쯤 되니, 어떤 소문이라도 퍼졌을까. 여성 참여자들의 남편들이 무말랭이 창작모임에 부쩍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관심의 요체는 도대체 나의 아내는 나와의 결혼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어떻게 하고있는 걸까, 였다. 하지만 알 길이 있나. 연극연습실은 다른 별칭이 있다. 바로 비밀의 무덤. 연습실을 나오는 순간, 그 방은 곧 폭파되고 무덤이 되어, 서로의 이야기는 영원히 무덤 속에 묻힌다는 뜻이다. 그만큼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불문율이 있다는 말이다. 디바이징 씨어터의 창작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이다. 긴 모임과 논의를 거친 끝에 무말랭이들의 이야기들이 부추(극작가 조정일)의 손을 거쳐 희곡으로 나왔다. 제목은 『어린부부』.
주례를 찾아 나선 예비부부는 과연 성공했을까
『어린부부』는 결혼을 앞두고 주례를 구하려는 예비부부가 먼저 결혼한 사람들을 찾아 순례하는 구성으로, 작가 특유의 예쁘고 엉뚱한 발상이 돋보였다. 긴 여정 끝에 어린부부는 결혼하지 않고 공존하는 방법을 얘기하면서 밤을 지새우며 막을 내린다. 열린 결말은 말 그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모두가 현재진행형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작가 자신의 결혼관의 반영일 수도 있다. 여기서 잠깐 깨알 정보. 열린 결말을 제시했던 작가 부추가 작년에 결혼을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부추는 결혼하고 공존하는 법을 찾았을까. 확실한 건 주례는 찾았다. 부추 부부의 스승인 시인 황지우.
미니멀한 무대 미학의 경험
무대 또한 첫 공연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무대 제작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일관된 공연 스타일을 위한 미학적 판단이 필요했다. 그 결과 파스텔(무대디자이너 박은혜)의 미니멀한 스타일의 무대가 탄생했고, 공연에서 빛을 발했다. 현실적으로는 미니멀해야 오래 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첫 공연 때 무대제작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게 무말랭이는 두 번째 작품이자 최초의 창작극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말랭이들의 다음 작품은 어떤 연극이었을까. 제목만 미리 공개한다. 『산토끼』. 충분히 기대해도 좋으니, 기다리시라.
남동훈 | 연출가. 공연 창작과 더불어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 상임연출, 성미산동네연극축제 예술감독, 전국생활문화축제 총감독, 참여연대아카데미 시민연극워크숍 강사 및 연출 등 시민문화예술활동도 함께 해왔다. 지금은 창작집단 고릴라조합Go-LeeLa 대표로 활동 중이다.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공존의 시선으로 남북을 잇다>를 함께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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