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8_5 원마루_잘 지내세요, 돌고래, 오솔길님?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8. 1.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잘 지내세요, 돌고래, 오솔길님?

 

원마루


잘 지내세요, 돌고래오솔길님

여름 햇볕이 따가운 영국 너도밤나무 숲에서 인사드립니다. 어깨동무 식구들 안녕하시고, 아이들도 잘 지내고 있지요? 작년 가을 우리 공동체에 오셔서 함께 며칠을 지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그 때 일러주신 동네 분들이 부른다는 별칭으로 불러도 괜찮지요? 왠지 편해서요. 어깨동무에서 펴내는 피스레터에 글을 쓰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평화편지에 쓰는 글이니 두 분께 편지를 쓰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생활에서 겪고 느끼는 작은 것들을 두서없이 적어 보려고 해요.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며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평화 얘기를 하자니 크리스토프 할아버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네요.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한국에는 왜 용서해야 하는가의 저자로 알려졌지요. 사실 어깨동무하고도 인연이 있는 분이세요. 2012년에 한국에서 할아버지의 책 아이들의 정원이 그리고 재작년에 용서 책이 나왔을 때 얻은 수익금으로 어깨동무의 활동을 응원 한 적이 있지요. 그때 할아버지는 당신의 책이 한국 독자를 만난다는 일에 가슴 설레하셨고, 책 수익금이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고 하니까 보람을 느끼셨어요.

 

그런 할아버지가 지난 415일 암과 싸우시다가 소천하셨어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열정을 지녔던 할아버지는 가족에 둘러싸여 평화롭게 마지막 숨을 내쉬셨습니다. 크리스토프 할아버지는 1940년 영국에서 태어나셨어요. (공동체 식구들은 이분은 오파라고 친근하게 불렀어요. 오파opa는 독일말로 할아버지라는 뜻이고요) 할아버지의 조부모가 1920년 독일에서 설립한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나치의 탄압을 받아 1936년 할아버지 가족과 공동체는 영국으로 이주했어요. 얼마 되지 않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적국인 독일 출신의 공동체 식구들은 남미의 파라과이로 옮겨가야 했습니다.

부모님이 히틀러와 전쟁을 피해 망명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란 할아버지의 마음에는 아마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향한 바람이 자라기 시작했겠죠? 할아버지 가족은 1955년 파라과이에서 미국 뉴욕주로 옮겨오게 되는데 표현의 자유 정신이 헌법에 녹아있는 사회에 살게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대요. 그리고 이어 흑인들의 시민권 보장을 요구하는 평화 운동이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났을 때 20대 청년이었던 할아버지는 단번에 그 운동에 뛰어드셨습니다.

 

그러던 할아버지가 1997년 뉴욕 경찰청 소속의 스티븐 맥도널드 경위를 만난 일은 할아버지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맥도널드 경위는 1986년 센트럴 파크에서 근무를 하던 중에 십대가 쏜 총에 맞아 전신 마비의 중상을 입었어요. 갓 결혼한 신혼부부였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를 기다리던 때였지요

얼굴과 몸에 중경상을 입고서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평생 전신 마비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서도 자신을 쏜 15살의 소년을 용서한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이제 막 재활치료를 시작할 즈음에 태어난 아들을 보고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가 있고, 폭력이 아닌 평화와 화해를 위해 무언가 행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공개적으로 용서하고, 감옥에 갇힌 소년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이 사연을 들은 크리스토프 할아버지는 뉴욕시 롱 아일랜드에 위치한 맥도널드 경위 집에 찾아갔습니다. 용서의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공감한 두 사람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충돌하는 북아일랜드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지역을 찾아가 용서의 중요성을 알리고, 1999년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진 뒤에는 중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비폭력갈등 해결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브레이킹더사이클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어깨동무에서도 학교 방문 순회 강연을 가시고, 저도 영국에서 열리는 브레이킹더사이클에 몇 번 참여해 봤지만 아이들에게 대화와 이해, 화해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은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하잖아요.

 

비폭력 갈등 해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 브레이킹더사이클이 뉴욕주 뉴폴츠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모임 직후 학생, 교사들과 함께 한 크리스토프 할아버지, 스티븐 맥도널드 경위, 그리고 전직 갱 하심 개럿.

 

그런데 제가 정말 도전을 받은 것은 할아버지의 다음 글을 읽고나서예요.

사람들은 모두 평화를 원하며, 아무도 평화에 대항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기꺼이 자신을 던져 평화가 구체적인 현실이 되도록 할 것인가. 평화의 길은 수동적이거나 체념적인 것이 아니다. 평화는 사랑의 행위를 요구한다.” -평화주의자 예수에서

 

할아버지는 제가 늘 큰 틀의 이야기를 하면,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내 마음 안에 평화를 먼저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저는 그때마다 멋쩍어 했지요. 사실 저는 왜 용서해야 하는가라는 책을 번역하고 알리는 일을 했지만, 가족이나 동료같이 정작 제 곁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는 데는 얼마나 옹색한 지 몰라요. 제일 먼저 화를 내고는 정작 미안하다는 말을 제일 나중에 하니까요. 그 한마디 말에 마음의 벽이 쉽게 무너지는데도요. 그래도 매일, 매 순간 새로운 시작의 기회가 오니 다시 해보면 되겠죠?

 

돌고래님, 작년 가을 이곳에 오셨을 때 공동체 식구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모인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시면서 한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셨죠? 그 뒤로 계속 식구들은 한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한반도 주변에 긴장이 깊어질 때 더 생각하고, 평화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BBC 뉴스에서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식구들이 제게 찾아와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에 계신 분들의 안부를 묻곤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가 대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에 안심하고 반가워하고 있고요.

나라들 사이의 갈등이나 충돌은 한 사람, 한 어린이의 마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상황을 바꾸는 일에도 아무런 힘이 없다고 느끼고 실망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곳에서 한 사람이 평화를 결심하고, 작은 실천을 하고, 이곳의 한 사람이 똑같은 마음으로 살면 평화는 꼭 이루어질 겁니다.

 

이번 편지는 이걸로 줄일게요. 마지막으로 지난주 토요일 공동체 식구들과 이웃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불렀던 피트 시거의 노랫말을 보내 드려요. 언제 같이 불렀으면 좋겠네요. 아이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세요. 나중에 다시 한 번 바닷가에 가서 조개 줍자고요.

 

한 사람의 손으로는 감옥의 벽을 허물지 못하고

두 사람의 손으로도 감옥의 벽을 허물지 못하지만

두 사람과 두 사람, 오십 명의 사람이 백만의 사람을

이루면 그 날이 오는 걸 우리는 보게 되리라

 

한 사람의 눈으로는 미래를 분명히 보지 못하고

두 사람의 눈으로도 미래를 분명히 보지 못하지만

두 사람과 두 사람, 오십 명의 사람이 백만의 사람을

이루면 그 날이 오는 걸 우리는 보게 되리라

 

2017710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 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등을 번역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