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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1_3 정경화_플라톤이 말하는 전쟁의 기원

by 어린이어깨동무 2017. 4. 24.

[시선 평화를 이야기하는 철학자들]


염증상태의 나라에서는 끝나지 않을 전쟁 플라톤이 말하는 전쟁의 기원


정경화


우리에게는 매해 함께 떠올리는 역사적 사건들이 있다. 봄의 초입엔 3·1운동, 연두빛 찬란한 때엔 4·19혁명, 장미꽃이 만발하면 5·18광주민주화운동까지 일제와 독재에 목숨 걸고 저항했던 선현들에 대한 기억이 봄에 가장 생생하다. 가을에는 백성을 어여삐 여긴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가 109일 한글날로 지정되어 기억되기도 한다무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온 지금 우리를 기억하게 하는 사건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가 가장 잊고 싶어 하는 기억,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인 19506월 한국전쟁 발발일 것이다. 평화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무너뜨리는 전쟁의 경험, 그것도 남과 북으로 갈리어 우리 민족끼리 죽이고 죽임을 당했던 참극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은 헛된 일일까? 고대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아마도 인류가 지금과 같은 형태의 삶을 유지하는 한 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듯하다플라톤은 인류가 나라(폴리스)의 형태를 이루어 살게 된 기원을 설명하면서, 나라가 세 단계로 발달하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 나라는 최소한도의 나라로 네다섯 명의 사람이 분업을 통해 의식주를 함께 해결하는 생활공동체이다. 각각의 구성원이 농사짓기, 집짓기, 직물 짜기 등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노동 중 한 가지 종류만 맡음으로써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하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살아가는 형태이다.


두 번째 나라는 다양한 직종들이 더해진 보다 큰 규모의 나라이다. 각종 생산도구를 만드는 장인들, 농사나 운반에 필요한 가축을 돌보는 목부, 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필수품을 수입하는 무역상 등이 생겨나게 된다.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영위한다. 돗자리를 깔고 생활하고, 빵과 포도주를 만들어 먹으며, 과일과 콩 등의 후식을 즐기고, 여가생활을 누리는 등 구성원들이 모두 건강하게 장수하는 참된 나라’, ‘건강한 나라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나라의 규모가 유지되지 못하고 확장되면 호사스러운 나라’, ‘염증상태의 나라가 된다. 이 세 번째 나라에서는 각종 가구, 귀금속과 같은 사치품, 다양한 기호음식 등이 생산, 소비되면서 관련된 수많은 직업이 다시 추가된다. 육식을 많이 하는 등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 때문에 더 많은 수의 의사가 필요하기도 하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형태인 세 번째 나라에는 특히 매우 특수한 종류의 직업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군인(수호자)이다.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게 된 호사스러운 나라는 넓은 영토 또한 필요하게 된다. 결국 이웃나라와 영토분쟁이 불가피해지고, 무력으로 영토를 빼앗거나 지키기 위한 전쟁 수행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전쟁은 이와 같이 호사스러운 나라가 만들어내는 인간 탐욕의 결정체와 같은 것이다. 플라톤이 전쟁의 기원을 자원 확보를 위한 것으로 보고 있어서 종교, 이데올로기와 같은 신념의 대립에 의해 촉발된 전쟁에는 그 이야기가 잘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명분을 내세운 전쟁일지라도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모든 종류의 전쟁은 지구의 자원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착취하려는 욕망의 염증을 양분으로 하여 자라다가 터져 나오는 것일 것이다.


6월의 기억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우리가 한국전쟁과 관련해서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은 사실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휴전 중일 뿐 남과 북은 아직도 엄청난 규모의 군사력을 유지하며 전쟁의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다플라톤의 전쟁기원론을 비추어 생각해보면 현재 극단적으로 호사스러운삶을 누리고 있는 우리가 전쟁을 끝낸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현 정부가 주장하는 통일 대박론에 귀가 솔깃하기도 하지만, 탐욕을 품은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전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다 통일이 된다 한들 평화가 오기보다 대박을 좇는 소리 없는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준비는 현재의 염증상태의 나라를 최대한 건강한 나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크고 화려한 것만 좇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회를 우리가 손수 만들었을 때, 작은 공동체들이 생동하고 건강한 삶의 장면이 넘쳐나는 장수사회가 되었을 때, 그 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평화통일을 추진할 의지와 역량을 갖추었다고 자신할 수 있지 않을까?

 


정경화 | 대학에서 때때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세상에 정착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녹록하지 않아 늘 궁시렁대지만,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 만드는데 일조하고픈 소망은 꼭 쥐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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