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글)2017.12.20 11:17

[시선 | 브루더호프에서 날아온 평화 편지]


아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입니다

 

원마루


“와, 눈이 내린다!”


아침나절 어린이집에 간 아이들이 산책을 가면서 신나게 껑충껑충 뛰고 있습니다. 첫눈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사는 영국 남동부 도버 지방은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아 어떤 해에는 눈을 구경도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일찌감치 눈이 내리니 신이 날 수밖에요. 우리 집 아이들은 벌써 “성탄에 눈이 올까요?”라며 설레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과 함께 저희들은 한 달도 남지 않은 성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성탄절을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하시겠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이 성탄과 새해를 기다리고 축하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왠지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고, 추위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계절입니다.


이럴 때에 이곳 너도밤나무 숲에 사는 식구들은 그리스의 레스보스섬에 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난민들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희 마을 한 청년이 그곳에서 몇 달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고, 지난주에는 추가로 청년 다섯 명이 가서 전기와 배관 공사를 돕고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국내 언론 보도에 거의 나오지 않지만, 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터키에서 아주 가까운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는 여전히 전쟁 등을 피해 아슬아슬한 고무보트에 몸을 싣고 유럽연합국인 그리스에 망명 신청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2016년 4월, 유럽연합이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을 다시 터키로 보내기 시작하고, 해안 국경 경비를 강화했지만, 절박한 피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망명 신청 뒤 며칠만 있으면 유럽 나라 중 한 곳으로 갈 수 있었지만, 늘어나는 난민으로 심사 절차가 복잡해져서 1년 넘게 난민 수용소에 머무는 사람이 숱하다고 합니다. 난민은 늘어나지만 주거 공간은 물론이고 화장실이나 샤워 시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해 급하게 전기 기사와 배관공 도움이 필요해 저희 마을 청년들이 다녀오게 됐습니다. 


청년들이 전한 난민 수용소 상황은 참담했습니다. 가족들 숙소는 컨테이너에 간이 벽을 설치한 것이 전부이고, 대부분은 구호단체에서 마련한 2인용 텐트에서 지내고 있는데 땅바닥에 설치된 텐트는 비가 오면 속이 물에 흠뻑 젖는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아이들을 안고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그나마 어디에서 나무로 짠 사각형 틀인 팔레트를 가져다주면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다고 하고요. 텐트촌에는 전기가 들어가지 않아 사람들이 전구를 떼다가 사용하는 바람에 가뜩이나 열악한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람들은 불빛도 없이 사용해 왔답니다. 게다가 배수 시설이 막혀 오물이 난민촌 이곳저곳을 더럽혔다고 합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다 보니 난민촌에 어떤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폭동으로 번지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난민들의 처지와 제가 누리는 평온한 생활이 겹쳐져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고백하건데 제 가족이 그런 처지에 놓였다면 심정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일하다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는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마태오라는 청년은 언덕진 난민촌 낮은 지역에 배수로를 놓는 일을 했는데 일하는 내내 아이들이 다가와 장난을 걸고, 때로는 공구를 들고 장난치며 도망가는 바람에 아이들과 놀고, 때로는 아이들을 좇아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처음 저를 보고는 거리를 두고 좀처럼 다가오지 않다가 제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환한 얼굴로 와서 지켜봐요. 그러면 아이들 아빠 중에는 내가 들던 삽을 달라고 해서 땅을 파는 등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주려고 해요. 난민들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가도 그런 순간에는 참 기뻤어요.” 




레스보스 난민촌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유대의 한 격언이 떠올랐습니다.


“아이 한 명을 구하는 일이 곧 세상을 구하는 일이다.”


마태오의 말처럼 짧은 기간 난민촌에서 한 일과 수많은 난민이 겪는 일을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한 아이에게 웃음을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그 아이는 그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성탄절이 올 때마다 어린 시절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제 부모님은 서울의 한 동네에서 문방구를 운영하셨는데 성탄절이 오면 길로 향한 진열 창가에 성탄 전구를 장식하셨습니다. 겨울 밤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전구가 조용히 깜박이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모를 이유로 마음이 평화롭고, 성탄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했습니다. 


레스보스 난민촌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가족이 번역한 스웨덴 성탄 노래 하나 띄워 드립니다. 다음 주소에 가시면 좀 어설프지만 우리 가족이 부른 노래를 들으실 수 있어요. https://goo.gl/hgF64q 그리고 악보도 하나 보내 드립니다. 스웨덴 전통 곡조랍니다.


* 악보를 누르시면 원마루님 가족의 노래를 들으실 수 있어요^^



기쁜 성탄과 새해 맞으세요.


2017년 11월 30일

너도밤나무 숲에서, 마루와 아일린 드림.



원마루  아내와 함게 세 명의 개구쟁이 아이들(6, 2, 유치원)을 기르며 영국 도버 근처의 너도밤나무(Beech Grove) 브루더호프에서 살고 있다. 어린이가구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왜 용서해야 하는가,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등을 번역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