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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7_3 김지혜_평화를 만들어낸 이야기, 사람

by 어린이어깨동무 2024. 2. 19.

[한반도 평화교육] 

평화를 만들어낸 이야기, 사람

북아일랜드 평화교육연수 후기

 

김지혜

 

~~오오오~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지구 저 반대편에 북아일랜드가 있고, 그 곳에 '코리밀라'라는 평화 공동체가 있다는데, 거기가 그렇게 좋답니다. 뭐가 좋으냐 물어보면 박00선생님은 '기네스' 얘기만 하고, 00선생님은 바다 풍경이 끝내준다는 기가 막힌 정보만 알려줍니다. 바다 풍경이 끝내주는 곳에서 산책하고 맛난 기네스를 마시기 위해 17시간이 넘는 비행 티켓을 결제했습니다. '산책을 하려면 든든한 패딩과 목도리가 필수다, 코리밀라에 가면 정작 기네스를 마실 시간은 없다'라는 중요한 정보는 알지 못한 채 말이죠.

 

피부색도, 언어도, 상황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엇이 궁금하고 중요하여 우리는 그 먼 곳까지 가야 했던 것일까요. 사실 그곳에 정답이 적힌 비석이라던가, 답을 알려주는 절대자는 없습니다. 대신 '평화를 지향하는 공동체'와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난했던 과거와 아직도 현재진행중인 노력이 있었구요, 이전 세대가 희망했던 미래도 보였습니다.

 

북아일랜드가 이런 곳이라고?

 

아름다운 코리밀라로 가는 길에 전쟁을 만났습니다. 서쪽으로 가야 할 비행기가 일본으로 방향을 잡더니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날아갑니다. 지난 겨울에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해서 핀란드 비행기는 러시아 영공을 지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온 세상이 전쟁과 분쟁 중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동시에 우리 나라의 갈등들도 떠올라 마음이 참 심란합니다. 그렇기에 북아일랜드와 코리밀라에 가서 배우는 게 더 의미가 있겠지요?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 나가기 위해서요. 폭력을 밀어내는 건 더 강한 무기가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지이니 말입니다.

 

우리가 가는 벨파스트(북아일랜드)는 영국입니다. 아일랜드인데 영국이라니 이상합니다. 그 이유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독립할 때, 북아일랜드 지역은 독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합니다. 당연히 북아일랜드 땅에서는 시위가 발생했고, 영국군은 이들을 유혈 진압 하였습니다. 이는 북아일랜드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지역에 사는 가톨릭계 아일랜드인들과 개신교 영국인들은 서로를 죽이고 또 죽었습니다. 나중에는 출신과 종교가 같아도 협력하지 않아 죽이기도 합니다. 끔찍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평화 협정을 맺어 수면 위의 싸움을 멈추었지만, 사람들의 삶 속에는 아직 갈등과 불신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17일 일요일, 북아일랜드 분쟁과 통합의 흔적들을 찾아 벨파스트를 돌아다닙니다. 추위에 발을 돌돌 떨며 해 뜨기 전부터 부지런히(사실 북아일랜드 해가 굉장히 늦게 뜨지만) 스토먼트(stormont-북아일랜드 자치 의회), 벨파스트 성, 피스 월(peace wall)과 가톨릭 및 개신교 마을에서 기록한 참상의 흔적을 방문합니다.

 

 

평화로워보였던 벨파스트가 갑자기 분쟁의 현주소로 돌변합니다. 놀랍게도 아직도 밤에 피스 월의 문을 닫아서 각 종교 집단 간의 이동을 제한한다고 합니다. 갈등이 발생한 마을로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폭력의 증거들이 속속 눈에 들어옵니다. 추모 시설, 학살과 피해의 사진, 죄를 밝힌 글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였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북과 교류를 하게 된다면, 한국의 전쟁 전시물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선전물들도 서로에게 공유되겠지요. 몰랐던 가-피해와 증오를 마주할 때 집단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될 까요? 역사를 평화적으로 성찰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관점 자체가 분쟁이 되지 않으려면 어떤 협의를 해야할까요?

 

아직도 종교로 분리하여 교육을 한다고?

- 북아일랜드의 교육

 

18일 월요일, 북아일랜드 교육청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심은보 선생님께서 어깨동무를 소개해 주시고, 교육청도 북아일랜드의 교육 상황과 내용에 대해 공유해 주셨습니다. 북아일랜드는 가톨릭과 개신교 학교가 나뉘어져있고,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 커리큘럼이 다릅니다. 각 학교의 교사 양성 기관과 과정도 분리되어 있다고 해요. 예를 들면, 가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이 가톨릭 교원 양성 기관을 나와 가톨릭 학교의 교사가 됩니다. 그러니 서로의 역사와 관점을 몰라 한 지역에 살면서도 당연히 이해가 어렵고 갈등이 계속되지요. 그래서 '통합 교육''공유교육'을 하여 다른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에게 이전과 다른 내러티브를 제공하고, 서로에 대한 악감정을 끊어내어 현재의 관계를 공유 관계로 전환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분단이 된 것도 아닌데.. 같이 살면서 왜 종교로 분리 교육을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북아일랜드는 영국이니까 영국 입장을 교육할테고, 아일랜드 계통 사람들은 그것을 왜곡된 역사라 하여 거부할 것 같습니다. 갈등이 발생하겠지요. 만약 경상도가 일본땅이라면 그 곳에 사는 조선계 사람들이 일본 교육을 반대할 것처럼요.

 

그렇다면 남과 북의 학생들은 과연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요? 또는, 한국 교육은 여러가지 정체성 집단의 내러티브를 공유하는 교육을 하고 있나요? 일부러 교류하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신이 몸담은 정체성 집단의 내러티브만 경험하고, 사회적으로 굳은 편견을 자신의 생각이라 믿습니다. 때로는 매체가 특정 정체성의 부정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대상화하기도 하구요. 이는 사회 갈등과 분쟁의 양분이 됩니다. 같은 공간에서 섞여 산다고 해서 저절로 평화롭게 통합되진 않겠어요. 그러니 교육기관에서 갈등 집단 간의 내러티브를 공유하고 다루는 게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가를 생각합니다. 교실에서 수업으로, 교사들의 인식 변화로, 그렇게 자꾸자꾸 넓혀 가면 한국의 통합교육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그러한 실천이 우리 사회를 통합하고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데 기여하기를 꿈꾸어봅니다.

 

 

10일 수요일 오후엔 공유학교를 방문하고, 11일 오전에는 통합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공유학교는 두 분리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수업을 공유하여 들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고, 통합학교는 처음부터 가톨릭-개신교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습니다. 학교 소개를 듣고, 수업 하는 교실을 엿보고,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교사 모임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교육의 결과는 수치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반영됨을 알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데리/런던데리'의 통합학교는 도시 곳곳의 갈등과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이 놀라웠습니다. 학교는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학생들은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들이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관계에서 평화와 희망을 발견합니다. 요즘 한국의 교육부는 AI를 이용하고 태블릿으로 전자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을 미래교육이라며 추진합니다만,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는 평화와 공동체 통합이 아닐까요?

 

그래서 코리밀라에서 뭘 했냐고~

 

코리밀라에 가기 위해 북아일랜드에 온 거라면서, 왜 코리밀라 이야기를 안 했냐 하면은 제가 말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시작해봅니다.

 

19일 화요일, 드디어 코리밀라에서 워크숍을 합니다. 어젯밤에 알렉스(코리밀라 대표)는 코리밀라에 갓 입성한 우리를 맞이하며 '(Hom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할 때, 코리밀라 식구인 알렉스, , 티아고가 약속이라도 한 듯 의자에 몸을 뒤로 기대고 한 다리를 다른 다리의 무릎에 올린 매우 편안한 자세를 취해서 '손님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코리밀라 호스트들의 공식 포즈일까. 나도 따라할까..' 생각합니다. 알렉스의 말과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꾸어온 에너지로 코리밀라는 정말로 모두의 ''인 느낌입니다.

 

워크숍에 집중하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넓고 파란 바다가 눈앞에 아른거려 정신을 쉽사리 빼앗깁니다. 추운 날씨에도 꼬박꼬박 산책을 가게 만드는, 여기 있음에도 '있음'을 계속 실감하고픈 풍경이었습니다. 뒤쪽 언덕에선 양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어 먹고, 토끼가 은보 선생님을 마중나옵니다. 시린 겨울 바람이 가끔 선선한 기운을 머금을 때, 저는 겁도 없이 코트를 내던지고 코리밀라의 감촉을 온 몸에 감습니다. 추운바람도 가끔씩 포근하고, 차가운 사람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이곳은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 공동체인 '코리밀라'입니다.

 

첫날은 하루종일 Nurturing Hope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던컨 모로우 교수님의 개념 설명 후에 한국의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주예지 선생님은 교실 내의 갈등 상황과 희생양에 대한 성찰과 고민을 나누어주셨고, 최연진 선생님은 학생, 학부모, 교사 공동체가 모두 나서 한 아이를 품고 성장시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여러 게임을 통한 Nurturitg Hope 사례 발표를 하고, 최관의 선생님은 상호작용을 통한 관계에서의 희망 가꾸기, 문화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진이 시스템이론과 멘탈모델을 설명하며 알찬 하루를 끝내는 줄 알았지만 저녁을 먹고 또다시 모여 며칠간의 이야기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합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희망의 씨앗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에서 희망의 씨앗이 생긴다는 말이 참 좋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엔 김경묵 교수님께서 준비해 오신 키워드 질문으로 생각을 나눕니다. 밤에도 생각을 나누고, 밤 열시까지 소감을 나누고, 떠나기 전 날에도 생각을 나누고, 떠나는 날에도 생각을...

 

평화를 만들어 낸 이야기, 사람

 

11일 목요일 오후에는 북아일랜드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John HumePat Hume을 기념하는 재단(The John and Pat Hume Foundation)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정치권에만 분쟁 해결을 맡겨두지 않고 국제 사회의 협력, 또는 풀뿌리 활동가들을 발굴하여 다방면의 평화 운동을 지속합니다. 당장 실현이 되지 않더라도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꾸준히 계속 해야 한다고 합니다. 오전에 방문했던 공유학교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정치권에 기대를 갖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라고요. 코리밀라도, 공유-통합학교도 풀뿌리 공동체의 협력으로 만들었답니다.

 

112일 금요일 코리밀라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세미나실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일주일 동안의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누군가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옵니다. 이런, 데릭 교수님이셨습니다. 몸이 아프셔서 못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었는데, 한국에서 온 친구들을 맞이하러 찾아 오셨나 봅니다. 데릭 교수님께서는 환한 얼굴로 "종호! 은보! 성숙!" 친구들을 찾으시고, 선생님들은 환호로 화답하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세미나실의 공기가 한층 따뜻하고 무거워졌습니다. 한 사람의 존재 보다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진한 마음의 무게로요. 멀리서 온 한국 친구들에게 귀한 선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코리밀라와 작별한 다음날 오전, 호텔 로비에서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더랍니다. 우리와 일주일을 함께 보낸 폴이 작별 인사를 하며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냅니다. 편지입니다. 함께 했던 모두에게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편지입니다. 일과시간에는 통역을 하고, 함께 공부하고, 저녁엔 술도 한 잔 했는데 언제 모두에게 편지를 썼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 정성에 고맙고 감동합니다. 희망은 관계에서 피어난다는 말, 코리밀라를 떠나며 코리밀라가 삶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새삼 마음에 다가옵니다. 이 정도의 정성과 환대를 받은 만큼 나도 내 삶에서 평화의 싹들을 심어 가야겠지요.

 

평화를 가꾸어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글과 영상으로는 느끼지 못한 총체적인 감각을 북아일랜드에서 경험하고 왔습니다. 틈틈한 시간을 계속 쪼개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 어린이어깨동무에게 고맙습니다. 실은 평화 그림전, 희망가꾸기, R-CITY, 데리/런던데리 방문기 등 못 적은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냉장고 문짝에 폴의 편지를 소중히 붙여두었습니다. 저는 코리밀라를 떠났지만 그 느낌과 감동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여전합니다. 냉장고를 닫을 땐 어깨동무, 그리고 둘레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더불어. 평화 속에서 평화를 상상하고 희망을 가꾸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김지혜┃4학년 아이들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노랑꽃이라고 합니다. 길 가다 핀 작은 노랑꽃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듯이, 저희 반 어린이들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화려하고 크지 않아도 마음을 잔잔히 밝혀주는, 가끔씩 발견하면 반가운 노랑꽃으로 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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