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스레터(PDF)2017.08.01 12:04


평화를 보는 새로운 시선 <피스레터> 합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2016년 7월 창간 시기부터 2017년 6월까지 발간한 통권1호~통권7호의 내용을 묶어 발간한 이번 합본호를 통해, 깊이 있는내용과 쉬운 글로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은 글을 주제와 필자별로 보다 쉽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합본호의 용량이 커서 분할하여 업로드 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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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5.09 04:45

[시선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아일랜드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평화 1


김동진


평화학 과정 학생들이 제출하는 에세이 가운데 각국의 사례를 비교하는 글을 자주 읽게 된다. 세계 어느 분쟁 지역에서나 갈등의 원인과 진행 과정은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면에서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평화연구자들은 비교 연구가 현실에 대한 편견, 잘못된 인식과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각 분쟁 지역의 평화 프로세스가 마주하는 도전 과제들에서 분명 유사점이 발견된다. 이러한 도전 과제들을 각 지역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비교해본다면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도 있다.


평화 프로세스는 1970년대 이스라엘, 시리아, 그리고 이집트 간의 평화협상 및 이행 과정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후 1990년대 들어 평화 및 휴전협정의 수가 증가하면서 그 사용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흔히 평화 프로세스를 평화협정에 이르기 위한 협상과정만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경우에서처럼 협정 이후 이행과 발전과정도 평화 프로세스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각 지역 평화 프로세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어려운 과제는 평화 프로세스를 유지하는 일이다. 특히 1990년대 맺어진 협정들의 상당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리면서, 평화 프로세스의 지속가능성은 평화연구자들의 공통 관심사가 되었다.


평화 프로세스의 협상 및 이행 발전과정과 관련한 몇 가지 이론적, 실천적 논의가 있다. 그중 주요 국제기구와 정부가 폭넓게 수용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평화이론은 국가의 취약성과 평화 프로세스의 취약성을 동일시한다. 독재국가는 국가의 힘이 너무 강해서 자기 마음대로 평화 프로세스를 무너뜨릴 수 있고, 실패국가는 국가의 힘이 너무 약해서 평화 프로세스를 유지할 힘이 없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고의 방안은 이들 국가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강력한 비판을 받아왔다. 자유주의적 평화이론은 전지구적 위계질서와 서구 엘리트 국가의 이해를 반영하는 일방적이고 제도적인 처방일 뿐이며, 분쟁 지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많은 평화연구자들은 평화 프로세스가 결국 지역 주도의 실천에 기반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대 평화 프로세스들을 비교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자유주의적 평화론과 달리 보편적 만병통치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교를 통해 각각의 지역 상황에 유용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시도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는 남아프리카의 인종분리정책의 종식,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오슬로 프로세스 등 동시대 평화 프로세스들로 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1998년 성금요일 평화협정 이후에는 아일랜드의 경험을 다른 지역과 공유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주로 분단국 사례 연구, 특히 독일 통일 과정에 대한 비교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다. 이는 아마도 평화 프로세스보다는 통일 프로세스에 대한 시사점에 초점이 맞추어 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일랜드도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남북이 갈라진 분단국가이다. 그런데 통일 프로세스가 아니라 평화 프로세스를 강조한다. 남북 아일랜드 통일을 원하는 사람들과, 영국에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북아일랜드 분쟁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통일 문제는 갈등의 심화로 이어질 수 있으니, 일단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데 집중하자는 논리이다. 물론 독일의 경우도 통일을 강조하기보다 평화를 우선시하다보니 오히려 통일에 이르게 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은 독일의 동방정책 사례를 모델로 한 북방정책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일랜드와 한반도를 비교함에 있어 가장 큰 유용성은 이미 통일을 이룬 독일과 달리,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같은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프로세스라는 점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반도와 아일랜드를 비교하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백 년 전의 일이다. 1904년 미국인 선교사 릴리아스 호튼 언더우드는 한국인을 동양의 아일랜드인이라 비유했다. 이후에도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이 한반도를 아일랜드와 비교하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식민지로서의 경험, 분단, 전쟁 등 오랜 갈등과 분쟁의 역사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 한반도와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회의에 참가한 한 북아일랜드 학자는 필자에게, 분쟁의 역사 때문만이 아니라, 평화를 이루기 위한 과정 가운데 나타나는 도전과제의 유사성 면에서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먼저 두 평화 프로세스 모두 지정학적 상황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아일랜드의 경우 남북 관계, 신구교 관계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유럽 국가의 관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예들 들어 유럽연합의 등장은 남북통일 또는 북아일랜드의 영국 잔류라는 제로섬 게임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반도의 경우에도 유럽의 경험에 비추어 동아시아 안보경제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이 여러 차례 제안된 바 있다. 그러나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언하면서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받는 부정적 영향을 지켜볼 때, 지정학적 상황의 변화는 언제라도 평화 프로세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평화 프로세스는 반드시 지정학적 악조건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포함해야만 한다.


두 번째로 아일랜드와 한반도 모두 사회경제적 격차라는 쟁점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여론조사에서 남아일랜드 국민 약 70%가 통일을 원하지만, 조속한 통일을 원하는 이들은 20%대에 불과했다. 통일 후 북아일랜드에 들어갈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1990년대 이후 아일랜드 정부, 영국 정부, 유럽연합은 북아일랜드의 평화와 경제발전을 위한 지원을 계속해 왔다. 이를 통해 남과 북의 많은 시민단체들이 평화적 교류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평화적 교류협력은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에도 이전의 분쟁 상황으로 돌아가는 일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켜왔다. 한반도의 경우에 있어서도 남북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통일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이지만, 남북 경제협력 및 개발지원 사업은 통일의 장애물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접촉면을 증가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상호 신뢰구축과 화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한국과 북아일랜드의 평화교육을 주제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열린 국제회의 어린이어깨동무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일랜드와 한반도에서 가장 어려운 도전 과제는 전쟁 및 오랜 기간 지속된 갈등으로 인해 발생한 상호 불신이다. 그간 한반도와 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에서 평화공존, 권력공유, 협의주의, 연합, 통합, 연방 등 다양한 정치적 해결 방안이 구상 및 실행되었다. 그러나 상호불신은 합리적 해결 방안의 합의와 이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상대 갈등집단과 협력하여 평화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자기 집단에 대한 배신자로 오해받게 되는 경험도 여전하다. 정치인들은 이런 상호불신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지지 세력을 강화하려 한다.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는 한반도와 달리 현재 진행형이지만, 필자가 개별적으로 만난 아일랜드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대체적으로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현재 평화 프로세스의 부정적 측면을 지적하면서, 피로감과 좌절감을 감추지 못하곤 했다.


얼마 전 어린이어깨동무가 남북 아일랜드의 여러 시민단체를 방문하고, 남아일랜드의 수도인 더블린에서 이곳의 평화교육 학자, 전문가들과 국제회의를 개최했다. 단체 방문 및 국제회의에서 위에 언급한 도전 과제들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반도와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처한 도전 과제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험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언제나 마무리는 희망을 지켜나가자는 서로를 향한 격려로 끝맺음 되었다. 어깨동무의 방문을 통해 이곳의 평화단체들도 다시 한 번 힘을 얻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이 과정 속에서 필자는 동시대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비교가 서로의 상황에 대한 교훈을 얻는 것을 넘어, 함께 희망을 되살리고 연대의식을 발생시키는 실천적 평화활동일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 평화 프로세스를 형성, 유지, 발전시키는 힘은 역시 제도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온다. 평화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우리의 희망이 존재하는 한, 중단된 것처럼 보이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김동진 | 한신대에서 신학을, 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5.09 03:17

[시선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화해의 딜레마


김동진


최근 화제가 된 아메리카 퍼스트브렉시트라는 구호는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잘 보여 준다. 미국과 영국이 가진 국내 문제가 얼마나 국제 문제와 시공간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기보다, 단순하게 자국의 이익만 최대로 구하게 되면 미국과 영국의 위대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홍보가 성과를 거둔 것이다. 냉정한 국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기 국가, 그리고 자기 집단의 이익이라는 현실적 설득 논리, ‘자유 미국이슬람 근본주의’, ‘영국의 민주주권유럽연합의 독재적 통합이라는 과장된 선악 구호는 사람들의 이성과 감정을 자극했다. 만화영화 세일러 문에 나오는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는 대사에서처럼, 주인공과 우리 편을 위협하는 악역은 용서하거나 연민을 느낄 가치가 없다. 세계화 과정 속에 고통 받는 상대의 입장이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 그리고 식민정책과 같은 역사적 배경은 단순함 속에 묻혀 버린다.


1999년 봄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당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청소년들에게 무기가 아니라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가르칠 수 있도록 어른들이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감동적 연설을 남겼다. 그런데 같은 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유고슬라비아를 폭격했다. 코소보 인종청소에 대한 대응이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강력한 군사적 개입을 지지했다. 나토의 폭격은 인권을 위한 폭격이라 묘사되었다. 동일한 사람이 같은 시기에 발생한 국내 청소년 총기사건과 국제 분쟁에 대해 상반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나토의 공습으로 인해 어린이를 포함한 수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는 미국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도 선생님이 학생들의 싸움을 보면서, 폭력을 부추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과 집단,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갈등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단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기 원한다. 적국과의 대화보다는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모습의 지도자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구도 속에서 상대의 입장 및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이해하려는 화해의 시도는 자기 집단에 대한 배신이자 부정의한 일로 간주된다.


▲ 웃음꽃 형제(Chuckle Brothers)_이언 페이슬리(왼쪽)와 마틴 맥기네스(오른쪽). 

과거 협상 과정에서 서로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도 불편해 하던 두 사람은 

공동정권 수립 이후 '웃음꽃 형제'(Chuckle Brothers)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돈독한 관계를 자랑했다. www.irishcentral.com


최근 북아일랜드에서는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반(First Minister)인 민주연합당 아이린 포스터의 신재생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스캔들로 인해 민주연합당과 신페인당 공동정권이 붕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부수반(Deputy First Minister)이지만 사실상 동일권력을 가진 신페인당 마틴 맥기네스는 아이린 포스터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부수반직 사임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3월 중으로 조기 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과거에는 폭력 사태로 공동정권이 붕괴 되었다면, 이제는 정책 차원에서 서로 다른 입장으로 인해 공동정권이 깨졌다는 점에서, 어떤 북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래도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가 많이 진전된 것이 아닌가라는 긍정적 평가를 내어 놓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이번 사태가 브렉시트 투표 결과로 인해 불안정해진 북아일랜드 갈등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영국 정체성이 강한 민주연합당 사람들은 아일랜드 정체성이 강한 신페인당 사람들이 여전히 아일랜드 남북통일을 꿈꾸고 있다며, 이번 사태도 결국 민주연합당을 약화시켜 북아일랜드가 영국을 떠나 남아일랜드와 통일하도록 하기 위한 음모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신페인당 사람들은 아이린 포스터를 비롯해 오만한 민주연합당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이런 식으로 간다면 평화 프로세스에 위기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 가운데 마틴 맥기네스가 돌연 건강 문제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마틴 맥기네스는 아일랜드 민족해방군 IRA 출신 정치인으로 상당한 강경파였으나, 민주연합당의 당수이자 평화 프로세스를 반대하던 이언 페이슬리와 함께 공동정권을 수립하면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꽃을 피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서로를 적으로 여기던 두 강경파 갈등 지도자가 공동정권을 수립한 사건은 북아일랜드를 비롯해 전 세계에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과거 협상 과정에서 서로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도 불편해 하던 두 사람은 공동정권 수립 이후 웃음꽃 형제’(Chuckle Brothers)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돈독한 관계를 자랑했다. 이언 페이슬리의 정계 은퇴 이후 피터 로빈슨에 이어 새로 당수가 된 아이린 포스터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간 공동정권의 수반으로 활동해온 마틴 맥기네스의 은퇴는 많은 북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주연합당 소속 의원이자 이언 페이슬리의 아들인 이언 페이슬리 주니어 의원은 마틴 맥기네스의 건강을 염려하며,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평화 프로세스를 일구었던 마틴 맥기네스의 공헌을 높이 평가했다.


북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아일랜드 통일 문제는 여전히 갈등의 원인으로 남아 있다. 아일랜드 통일을 원하는 집단과 영국에 남기를 원하는 집단은 여전히 서로의 의도를 믿지 못하고 있다. IRA의 테러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와 영국의 지배로 차별을 겪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의 분노도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불안도 상당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 마틴 맥기네스의 은퇴로 인해 웃음꽃 형제의 웃음이 간간히 뉴스에 다시 보도되고 있다. 어떻게 두 사람이 좋은 관계를 가지게 될 수 있었을까? 주변사람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서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결국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말한다. 상대 집단에도 알고 보면 꽤 좋은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정의의 이름으로 누구에게 잘못을 물어야 하는가?


개인적 갈등뿐만 아니라 국제적 갈등에서도 무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 존재한다. 단지 정의의 대상에 조금 차이가 있다. 개인적 관계와 달리 집단이나 국가적 수준의 갈등에서 정의의 대상은 상대 집단의 개인이 아니라 집단 전체이다. 그 집단에 소속된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단순히 그 집단 가운데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단순 구도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폭력을 통한 정의는 복수의 악순환만을 가져오게 된다. 어떤 집단의 지도자는 갈등 현실을 빌미로 자신의 지배와 통제를 강화한다. 그런데 이런 구도에서 지배이익을 얻는 것은 상대집단의 누군가만이 아니다. 놀랍게도 우리집단에도 그런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있다. 따라서 정의는 상대 집단의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투쟁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대 집단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의 비폭력 화해를 통해 단순한 구도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갈등 구도의 단순화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집단 간의 갈등, 국가 간의 갈등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간의 화해는 때로 정의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관계는 아니지만, 고통 받는 서로를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는 화해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김동진 | 한신대에서 신학을, 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5 12:17

[시선 |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누가 평화를 만드는가?


김동진


매해 712일이 되면 북아일랜드에서는 오렌지 윌리엄 공의 제임스 2세에 대한 승전을 기념하는 가두행진이 열린다. 윌리엄이 개신교도, 제임스는 천주교도였던 탓에 712일 가두행진은 아일랜드 정체성을 가진 천주교인들에게는 매우 불쾌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영국 정체성을 가진 개신교인들은 이 가두행진을 자신들의 문화라 주장하며, 일부러 천주교도들이 사는 지역으로 행진을 하여 천주교인들을 자극하기도 한다. 12일 전날 밤에는 아파트 7-8층 높이의 나무 탑을 쌓아 놓고 아일랜드 국기와 함께 이를 불태우는 의식을 거행한다. 1998년 성금요일 평화 협정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 연례행사는 북아일랜드의 평화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분명 정치인들이 평화 협정에 합의했고, 이전에 비해 폭탄 테러와 같이 눈에 보이는 폭력 행위가 크게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의 장벽은 여전한 것이다.


▲매해 7월 12일이 되면 북아일랜드에서는 오렌지 윌리엄 공의 제임스 2세에 대한 승전을 기념하는 가두행진이 열린다

Ⓒen.wikipedia.org/wiki/Orage_walk#


정치인들 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아일랜드 사람들의 관계가 좀처럼 쉽게 회복되지 않는 이유로 많은 북아일랜드 학자들은 북아일랜드 정치의 권력공유 방식을 제시한다. 북아일랜드의 주요 정당들은 여전히 갈등집단을 가르는 강한 정체성을 배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를 얻기 위한 지지 세력 집결에 북아일랜드 갈등을 이용한다. 물리적 폭력을 제거하는데 합의하고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상대 집단에 대한 적개심 고취가 가져다주는 내부 정치적 이익은 아직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이 적극적 평화를 논하면서 진정한 평화는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 함께 제거된 상태를 말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요한 갈퉁이 말하는 구조적 폭력에는 불합리한 정치적 권력구조뿐 아니라, 가난, 배고픔, 사회적 소외, 경제적 독점 등 불공평한 사회구조로 인한 폭력이 모두 포함된다. 직접적 폭력의 경우에서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폭력적 관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심지어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는 관계인 경우도 있지만, 분명 이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과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그가 분명 이룰 수도 있었던 목표를 사회구조상 절대 이룰 수 없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사회구조로 인해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 국가 사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세계화 시대의 지구사회가 가진 폭력적 구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다른 국가에 종속되게도 만들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다른 나라 사람들을 억압하게도 만든다.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구조적 폭력이 만연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평화를 느끼지 못한다.


문제는 폭력적 구조로 인해 이익을 얻는 집단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자꾸만 외부로 돌리려 한다는 점이다. 구조적 폭력으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의 분노가 폭력의 원인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집단으로 향한다면 폭력적 구조를 유지하기에 매우 용이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정치적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의 대선 결과와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폭력에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외부로부터의 이주민과 난민이라는 적을 제시해 줌으로써, 기득권의 권력이 유지되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평화를 만들 수 있을까? 최근 유럽의 매일 아침 뉴스에는 세계 전역의 전쟁으로 인해 상처입고 죽어가는 어린이들에 대한 보도가 계속 등장한다. 뉴스를 시청하는 한 개인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이 들 때가 있다. 과연 평화는 정치인들과 외교관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 712일 가족과 함께 벨파스트에 올라가 가두행진을 지켜보았다. 열두 살인 필자의 아들은 다시는 벨파스트에 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평화를 공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아들에게 교훈을 준다는 마음으로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아침 뉴스에 나오는 전쟁 지역에 있는 아이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평화교육가인 한 친구와 이 이야기를 공유하다가 꾸중을 들었다. 필자의 친구는 전 세계 전쟁의 아픔, 경제부정의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일 뉴스에 등장함에도 사람들이 무감각해지고, 오히려 뉴스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상의 폭력과 부정의가 너무 크고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한 개인의 힘으로 이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하물며 열두 살 어린이에게 이런 현상을 자꾸 접하게 하면서, 이를 위해 지금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결국 성인이 되어 사회문제를 외면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충고였다. 아직 어리니까 어른이 되어 이 경험을 가지고 평화를 위해 일하라는 교훈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논의하며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해 보라는 제안도 곁들였다.


누가 평화를 만드는가? 정치인들과 외교관의 역할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더 힘이 센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의 역할만을 기대하거나, 눈과 귀를 닫고 살기에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너무 크다.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함께 평화의 희망을 공유할 수 있다면, 작은 힘이지만 지금 평화를 살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우리가 평화를 만들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아닐까?

 

 

김동진 | 한신대에서 신학을, 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4 17:34

[시선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어떻게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


김동진


분쟁지역에서 맺어진 휴전 조약들이 유엔의 평화유지(Peacekeeping) 활동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휴지 조각으로 변해버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국제사회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 보다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1992년 유엔사무총장이었던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는 평화를 위한 의제’(An Agenda for Peace)라는 보고서를 통해, 그동안의 평화유지 활동을 넘어 유엔이 좀 더 집중해야 할 활동으로 평화구축(Peacebuilding)을 제안했다. 부트로스 갈리가 제안한 평화구축은 국제사회가 개입해 싸움을 말리고, 더 이상 싸우지 못하도록 중간에서 지키는 것을 넘어, 갈등 당사자들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평화적 사회구조를 만드는 일에 초점을 둔다.


사실 부트로스 갈리의 제안은 이미 1970년대부터 평화학자들에 의해 주장되고 발전되어 온 평화구축 이론을 반영한 것이었다. 갈퉁을 비롯한 평화학자들에 따르면 집단 간의 갈등과 앙금을 해결하지 않은 채 중단된 전쟁은 재발 가능성이 높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휴전선은 군인들 사이의 무력 충돌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갈등 집단 사이의 교류를 막는 기능을 한다. 이 경우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들은 외부의 안보 위협을 자신들의 내부 권력 유지에 활용한다. 문제는 서로 교류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 권력을 정당화하다 보면, 상대를 향한 적대감이 계속 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이로 인해 전쟁이 재발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휴전 조약이 곧 휴지조각으로 변해버리는 이유이다. 때문에 평화학자들은 갈등 집단을 서로 떨어뜨려 놓아 전쟁을 방지하는 평화유지 방식이 아니라, 갈등 당사자들이 서로 자주 만나며 함께 평화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평화구축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 마디로 평화유지 활동이 군인들 사이에 담을 건설하는 것이라면, 평화구축 활동은 일반 시민들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는 활동이다.


한반도에서도 국제사회의 개입을 통해 휴전협정이 맺어졌다. 그러나 6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에도 군인들 사이의 담은 여전하다. 이 담은 남과 북 사이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남과 북의 일반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평화의 관계를 맺어가는 일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담장은 휴전선 철조망과 같이 눈에 보이는 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 갈등집단을 향한 사회적 장벽이 존재한다. 이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자기 집단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이런 장벽을 활용해 정치권력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단순히 평화를 이루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 정치권력에 저항하는 사람으로 비추어 지기도 한다.


▲ 이곳이 바로 Peace Wall, 또는 Peace line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 벽은 1969년, 북아일랜드의 신교도와 구교도의 충돌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금은 장벽이 있다 하더라도 자유롭게 서로의 지역을 왕래할 수 있지만, 이 벽이 양측의 갈등을 상징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벽을 찾아와 평화의 메시지를 남긴다. info.hanatour.com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경우, 이제 이전과 같은 군사분계선은 사라진 상황이다. 그러나 상대를 향한 사회적 장벽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한 워크숍에서 남아일랜드 참가자들에게 북아일랜드에 방문한 경험이 있는지 물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도 북아일랜드에 방문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필자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이십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남아일랜드인들에게 북아일랜드는 상당히 공포스러운 지역이다. 북아일랜드를 가로질러 가면 더 빠른 길도, 일부러 북아일랜드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더 느린 길로 돌아간다는 응답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북아일랜드 내부의 사회적 장벽이다. 영국 정체성을 가진 개신교 지역과 아일랜드 정체성을 가진 천주교 지역을 가르는 장벽은 평화협정 이후 오히려 더욱 높아졌다. 오렌지공 윌리엄의 전승을 기념하는 712일 새벽에는 북아일랜드 주요 도시에서 아일랜드 국기를 불태우는 의식이 거행된다.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영국 정체성을 가진 정당에만 투표하고, 대부분의 천주교인들은 아일랜드 정체성을 가진 정당에만 투표한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라는 이름으로 이런 사회적 장벽을 합리화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앙금과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트로스 갈리 및 평화학자들의 주장과 같이, 지속가능한 평화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담장과 장벽을 넘어, 서로 공감하고, 서로를 인간화하며, 함께 평화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들이 관계를 맺어 나가기 시작하면, 갈등 구조로 인해 이익을 얻고 있는 권력 집단들도 더 이상 분쟁 상황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어렵게 된다. 이는 단순히 국내 정치 차원의 권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갈등 당사자가 서로 화해하고 평화적 관계를 맺어 나갈 때, 비로소 이들의 갈등에서 군사적 경제적 이득을 얻는 주변 강대국들이 국제 정치경제적 차원의 개입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소지가 없어지게 된다.


한반도에서도 평화유지를 넘어선 평화구축의 시기가 있었다. 반세기가 넘게 막혀 있던 장벽을 넘어 인도적 협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사회문화경제 교류가 활성화되었고 남과 북의 주민들은 마치 통일이라도 된 것처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평화공존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남북 관계를 보면, 이런 일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다시 갈등과 폭력이 언론 보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남북은 다시금 전쟁 재발을 걱정해야 할 만큼 사이가 벌어졌고, 서로를 비난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왕래와 교류는 끊어져 버린 상황이다.


담을 지키는 군인들이 담을 넘으면 전쟁이 시작되지만, 일반 시민들이 담을 넘으면 평화가 이루어진다. 문제는 누가 먼저 담을 넘는가이다. 군인들이 담을 넘어 다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무너진 평화의 다리를 재건해야 한다. 물론 아일랜드의 사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다리를 세운다고 자동적으로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린이어깨동무와 같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이용하도록 돕는 평화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의 다리를 건너 다시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평화구축이 하루 빨리 재개되길 바란다.

 

김동진 | 한신대에서 신학을, 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4 16:23

[시선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평화는 무엇일까?


김동진


평화는 무엇일까? 어떤 단어이든 쓰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시대 전략가에게 평화는 전쟁, 혹은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유사시 방어의 목적이라고 하지만 언제나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평화일까? 무기와 물자를 쌓아 놓고 군사훈련을 해야만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일까어떤 한편이 잘못한 것이 명백한 불의한 상황, 혹은 사회 부정의의 경우는 어떠한가? 때로 평화주의자들은 불의를 보고도 행동하지 않는 용기 없는 사람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세일러문의 외침처럼 결연히 일어나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데, 불의를 보면서도 참는다면 이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에 대해 평화학자들은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혹은 불의를 보면서도 참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화학자들에게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 갈등과 불의를 평화적 행동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 간디를 들 수 있다간디는 유약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적인 전략가였다. 간디는 영국의 불의를 드러내는 평화적 대응이야말로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소금을 택했다. 소금 사티아그라하는 인도 해변에서 나는 소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영국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드러내기 위한 간디의 전략적 구상이었다. 그는 인도의 해변을 평화의 극장으로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여 도달한 해변에서 소금을 집어 드는 행동을 통해, 간디는 인도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로 하여금 영국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인도에서 나는 소금이 왜 영국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 것이다. 당시 외신들은 영국이 소금으로 인해 인도를 잃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간디는 이런 평화적 행동이 폭력적 행동보다 훨씬 더 강인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무기에 의존하는 사람은 사실 속으로는 비겁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러나 평화적 행동은 감옥에 갇히거나 때로 자신의 몸을 희생할 만큼의 용기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대표적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말하는 평화는 간디의 사례에서 드러나듯, 절대 폭력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평화적 수단으로만 가능하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갈등의 원인을 전쟁준비와 무력과시로 눌러 놓는 것도 한계가 있다. 곪은 갈등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이다. 사회 부정의를 참게만 한다면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일 뿐만 아니라, 폭력적 저항 또는 분쟁의 원인이 된다. 갈퉁은 이를 소극적 평화라 부른다. 소극적 평화는 곧 깨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갈퉁은 용기 있는 평화적 행동으로 사회 정의를 달성하고,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적극적 평화야 말로 평화를 유지시키는 가장 효과적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일랜드의 이웃 나라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투표 결과 후폭풍이 거세다.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의 주민 대다수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국경 검문소의 부활이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영국 국민 상당수가 바라는 것은 난민과 이주민의 통제이다. 남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국경은 단순히 아일랜드와 영국의 국경이 아니라 이제 유럽연합 국가와 비유럽연합 국가사이의 국경이 되게 생겼다. 따라서 유럽연합의 정신을 바탕으로 영국과 아일랜드가 합의한 검문소 철폐는 무효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국은 아일랜드에서 북아일랜드로 넘어 오는 사람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하며, 유럽연합은 유럽연합대로 자신들을 배신하고 떠난 영국과의 국경선을 확실히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북아일랜드 내부에 미치는 영향이다. 1960년대 북아일랜드에서 억압과 차별을 받던 이들의 평화적 인권운동을 영국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자, 곧 아일랜드 민족해방군의 이름으로 폭력적 테러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런 폭력적 테러에 대한 반발하는 이들은 얼스터 의용군의 이름으로 상대 집단에 대한 폭력적 보복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대 이렇게 반복된 폭력에 지친 이들이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1998년 성금요일 합의와 같은 평화 프로세스의 성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평화 프로세스는 절대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평화적 대화와 합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이들, 끝까지 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들에 맞서 평화적 수단을 선택한 용기 있는 정치인들과 일반 시민들이 평화적 합의를 가능하게 했다. 합의 이후의 상황도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폭력을 경험한 이들의 아픔은 아직 가시지 않았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앙금도 여전하다. 물리적 폭력의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주요 정당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여전히 북아일랜드의 갈등 상황을 활용하고 있다이런 상황 속에서 만일 국경 검문소가 부활한다면, 혹시 다시 악몽과 같은 폭력 사태가 재발하는 것은 아닐지 주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한 번 평화적 대화의 성과를 경험한 아일랜드 사회에서, 아무리 남과 북 사이에 검문소가 부활한다고 해도 다시 전면적 폭력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일랜드를 둘러 싼 유럽의 지정학적 변화가 아일랜드 사람들의 평화적 교류를 막는 장벽이 되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던 사람들이 다시 전쟁을 걱정해야만 하는 미래는 상상만 해도 안타깝다. 하지만 평화 프로세스가 멈춰 선 한반도의 경험에서 아일랜드를 바라볼 때,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용기 있게 평화를 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일랜드와 한반도에서 평화를 선택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준비하고 평화를 살아가는 오늘과 내일을 계속 그려본다.

 

 

김동진 | 한신대에서 신학을, 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
피스레터(글)2017.04.24 12:17

[시선 아일랜드에서 쓰는 평화학 이야기]


평화학 공부와 실천


김동진


평화학을 공부하다보면, 학문과 실천의 경계에서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실 평화학이라는 말 자체가 참 부담스런 단어다. 평화를 공부하는 사람답게, 공부만이 아니라 삶에서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매일 다짐해보지만 얼마나 평화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부끄러움뿐이다.


다른 학문에 비해 유독 평화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계속 돌아보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평화학이 지향하는 가치 때문일 것이다. 평화학은 연구에 담긴 평화적 가치를 굳이 숨기려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평화학은 학문으로서의 자격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무정부상태의 세계에서 국가는 상대적 이익을 추구하며 늘 경쟁하기 때문에 서로 평화적 협력이 어렵다는 저 유명한 현실주의 이론과 같이, 국제관계 이론은 어떤 가치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가정을 세우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결과만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연구자는 자신이 가진 가치를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제시해야 하며, 그 결과가 어떻게 활용되는가는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정책과 실천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정말로 가치가 배제된 연구가 가능한가? 연구자는 연구결과의 활용에 있어 자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늘도 전 세계 주요 대학에서 이런 방식의 연구에 기반을 둔 이론을 배운 수많은 졸업생들이 주요 국가의 외교정책을 수립한다. 국가가 언제나 상대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현실주의 이론에 동의하는 이들은 절대로 다른 국가를 신뢰할 수 없다. 이들에게 평화는 곧 힘이다. 힘으로 다른 국가를 압도하거나, 적어도 힘의 균형을 이루지 않는 한 평화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이 수립하는 정책은 정말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학문적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자신의 물리학 이론이 원자폭탄 개발에 사용된 아인슈타인의 탄식에서처럼 어떤 분야의 연구자도 자신이 내놓은 연구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실증주의적 연구는 가치와 사실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상의 가치와 권력관계를 사실로 정당화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자체가 이미 현실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문적 경향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평화학은 연구자가 연구하는 대상에 대한 가치와 책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는 당연히 실천과 분리될 수 없다. 많은 평화학자들이 평화학과 의학을 비교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의학이 과학적 학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의학은 언제나 사람에 대한 가치와 책임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낫게 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이다. 의학 연구가 오히려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한다면 이는 의학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평화학은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에서 폭력이 아니라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한다. 학문적 연구로서의 평화학은 의학도가 질병과 인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분쟁 지역과 갈등 집단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심도 있는 이해를 추구한다. 그러나 의학도가 사람을 단순히 연구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건강을 궁극적 목적으로 삼듯 평화 연구자에게 갈등 맥락 속의 연구대상은 학문적으로 연구해야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함께 평화를 이루어가야 할 실천 대상이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아일랜드와 한반도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공유하는 경험이 참 많다. 식민지로서의 아픔, 분단, 전쟁, 냉전 이후 희망찬 평화 프로세스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도 서로 겹치는 순간이 많다. 물론 많은 차이점도 있다. 특히 부러운 점이 있다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일 것이다. 며칠 전 북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의 경계선을 방문했을 때, 지역 주민께서 불과 이십년 전만해도 이 경계선은 군인들로 가득했고,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역이었다고 알려 주셨다. 지금은 핸드폰이 로밍으로 바뀌는 순간 외에는 거의 경계선을 확인할 길이 없다. 차를 멈추고 보면 길가에 돌표지판이 보이긴 한다. 옛 군사지역은 지역 사람들이 즐기는 펍으로 바뀌어 있다. 같이 동행했던 한국 연구자 한 분께서 부러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표현하는 탄식 소리를 내셨다. 우리도 언젠가 외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곳이 예전에는 남과 북을 가르던 DMZ였다고 과거형으로 이야기할 날이 올 수 있을까?


한반도 연구자로서 아일랜드를 공부하는 기회에 감사하며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배운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은 한반도에 가 있다. 더블린에서 벨파스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탈 때면 어린이어깨동무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기억이 늘 떠오른다. 아일랜드 분들과의 대화 속에 항상 어떻게 하면 남과 북이 어깨를 마주하며 평화를 이룰 수 있을까를 꿈꾼다. 성급한 일반화와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고 매번 스스로를 다잡지만 아일랜드를 공부하면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꿈과 가치를 서랍 속에 넣어두고 객관적 연구를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필자에겐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평화학이 지향하는 평화적 가치 때문에 오늘도 학문과 실천의 경계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아일랜드의 하루를 보낸다. 내일은 좀 더 삶에서 평화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한반도의 평화가 한 걸음 더 앞당겨지길 소망하며.

 

 

김동진 | 한신대에서 신학을, 시드니대학에서 평화학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의 국제평화학 겸임교수로 평화학을 강의하면서,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Posted by 어린이어깨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