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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7_1 정영철_위기의 평화, 희망의 평화

by 어린이어깨동무 2024. 2. 19.

[한반도 이슈] 

위기의 평화, 희망의 평화

정영철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소장)

 

신년 벽두부터 한반도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말 북은 제8기 제9차 전원회의를 통해 남북관계를 기존의 동족관계로부터 청산하고, 교전국 관계로 선언하였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남북의 민족에 토대를 둔 관계가 정리되고,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변화되고 있다. 이어 115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는 남북 교류의 모든 흔적들까지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임을 선언하였다. 지난 80년간의 남북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대남정책으로의 변화를 공식화한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단지 남북관계의 변화만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유사시 남을 완전히 평정하고, 자신들의 영역에 편입하는 방도까지 법적으로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붙어있지만, ‘전쟁의 가능성이 언급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한반도의 평화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 현실이며, 두 개의 국가가 특수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북의 이번 주장이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또한, 두 국가가 교전 중이라는 사실 역시 한국전쟁이 종전-평화체제로 전환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지난 1991년 남북이 합의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라는 합의가 무력화되었다는 점에서, 나아가 1972년 합의했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이 부정되었다는 점에서, 지난 기간 합의했던 모든 남북의 합의된 가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본다면, 1991년 이전으로도, 1972년 이전으로의 후퇴보다도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이 스스로 규정한 것처럼, 지난 80년간의 남북관계가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관계로 재편되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북이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남북의 관계를 교류와 협력이 아닌 군사적 힘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언급 중 우리 국가의 남쪽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령토, 령공, 령해를 .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서해가 다시 전쟁의 바다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단지 서해의 전쟁만이 아니라 더 큰 전쟁으로의 가능성까지 안고 있다 하겠다. 지금껏 어렵게 지켜온 한반도의 평화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것이다.

 

화해(Reconciliation) : 남녀가 서로 껴안는 모습을 표현한 영국의 조각가 호세피나 데 바스콘첼로스의 작품. 이 조형물은 199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화해를 촉구하는 의미로 세워졌다. 비문에는 '파괴적인 힘에 맞서 인간 존엄과 사랑의 승리' 그리고 '민족들을 평화와 존중으로 한데 모으는' 의미를 담았다고 새겨져 있다. 이 작품은 전쟁의 참화가 있었던 영국 코벤트리 대성당의 폐허와 함께 베를린,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등에도 설치되어 있다.

 

세계를 둘러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두 개의 전쟁이 한창이며, 인류의 최악의 범죄라 할 수 있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힘은 무력한 것이 사실이다. 당장 우리 주변을 보아도 대만의 선거 결과에 따라 양안 관계가 더욱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고, 러시아의 라브로프 장관은 올해 가장 전쟁의 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한반도를 꼽기도 하였다. 우리의 내부가 그러하듯이 국제사회도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고 있고, 불확실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과거의 기준이었던 진보와 보수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고, 정의와 공정과 상식이 혼란과 복잡함 속에 뒤엉켜있다. 이제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내고, 새롭게 미래의 희망을 가꾸어야 할 시대인 것이다.

 

그럼에도, 변치 않은 원칙이 있으니 바로 희망을 가꾸는 것이며, 평화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없이는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며, 평화를 포기하는 순간 모든 희망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더욱이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지금, 평화는 우리에게는 생명, 생존, 희망의 뿌리라 할 수 있다. 남북이 다 같이 전쟁’, ‘파괴를 언급하고 있는 지금 평화만큼 소중한 가치는 없다. 이제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것에 대해 비판해야 하고, 행동으로 평화의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남이든, 북이든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비판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되어야 하고, 한반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미래의 희망을 가꾸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당장의 대북사업은 잠시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 남북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지금 당장은 평화를 지켜내고, 공존의 한반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래야 미래의 한층 더 발전된 교류와 협력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무엇이었느냐의 문제를 두고 많은 학자들이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답은 바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힘이라고 한다. 지금 당장은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땅에 평화를 가능케 하고, 공존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시기 정권 교체 앞에서 평화의 여정을 위한 신들메를 조여매어야 한다고 했다면, 지금은 더욱 바짝 신들메를 조여매고 뛰어야 할 때이다. 희망의 평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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