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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43_6 남동훈_‘산토끼’를 향하여 3

by 어린이어깨동무 2025. 8. 19.

[ 사람 사는 이야기, 연극

무말랭이 연극만들기 - 평범한 동네주민들의 연극 도전기 Ⅵ
‘산토끼’를 향하여 3

남동훈

 

‘산토끼’ 초연 당시의 상황

 

연극 산토끼초연을 제작할 무렵, 무말랭이의 일정은 전문극단 뺨칠 정도였다. 공연을 불과 한 달 앞둔 201012월 말에 안톤 체홉의 갈매기로 연기 워크숍 및 장면발표를 마쳤다. 그리고 불과 한 달 뒤인 20111월 정기공연으로 신작 산토끼를 올리는 일정이었다. 이어서 2월에 열리는 성미산동네연극축제에도 참여하는 강행군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뿐이랴. 5월 중에는 광진구 정보도서관 초청공연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도 막은 오른다

 

창작과정을 제외한 실제 연습 기간은 불과 한 달 남짓이었다. 낭독공연이라도 최소 약 3개월 15회로 잡는 일정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실제 공연이 아닌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첫째 주와 둘째 주는 주당 2회씩, 셋째 주는 3, 공연 주는 무대 리허설을 포함해서 약 4회 가량 연습일정을 짰다. 연습시간은 당연히 부족했고, 5시간 넘게 연습한 날들도 많았다. 마침내 20111, 무말랭이의 세 번째 연극 산토끼의 막이 올랐다. 음력 설날을 일주일 앞둔 28()부터 30()까지 33회 공연이었다.

 

후손들이 제사를 없앤다는 소식을 듣고 한 자리에 모인 조상님들

 

제사를 없앤다고?

 

연극 산토끼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신의 제사를 받으러 집에 갔다가 그동안 4대 봉사하며 지내왔던 기제사는 물론 명절 제사까지 싹 없애고 신정 때 딱 한 번으로 줄이겠다, 선산도 팔아치우겠다는 자식들의 계획을 알고 난 후부터 시작한다. 장사 밑천 마련한다고, 자식들 미국 유학 보낸다고 자신들이 묻혀있는 선산마저 팔아치우겠다는 후손들의 이 불효막심한 결정을 조상님들께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지 난감할 따름이다. 그런데 웬걸? 불호령을 내릴 줄 알았던 조상님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이 대목에서 극 중 조상님들의 말씀을 들어보자.

 

세상이 변하면 우리도 변해야지

할머니
제사 한 번 치르면 신경이 얼마나 쓰이냐. 다 겪어봐서 알잖아. 아버지가 옛날부터 얘기 많이 했다. 이런 날이 오면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된다고. (중략)

할아버지
영원한 것이 세상에 어딨냐? 내 많이 들었다. 저 이웃에 박씨들, 장씨들, 이씨들, 그 양반이라고 떵떵거리던 집안도 진작에 제사 줄이고, 제사를 지내도 옛날 같지 않고 그런 얘기 들었다. 풍습도 많이 변한 거 안다. 이번 설에 장씨 집안은 제주도 갈 모양이더라. 차례도 지내고 여행도 하고. 자손들이 콘도 잡아놨다더라.

할머니
이씨도 추석 때 갔다 왔는데, 제주도는 한번 가볼만 하다고 그러대.

할아버지
옛날 같으면 남들이 흉보지만. 세상이 변했지. (중략) 세상이 변하면 우리도 변해야지. 세상이 바뀌는 데 힘 있나.

 

설날 아침, 후손들을 보려고 곱게 단장하고 길을 나선 조상님들

 

이번 추석에는 꼭 내려가야겠어요

 

이때부터 객석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죽어서까지 자식들, 후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조상님들의 모습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진정한 카리스마Charisma를 느낀 것이다. 카리스마가 원래 그런 뜻이었냐고? 카리스마는 본래 신학神學 용어로 신이 인간에게 주는 무한한 사랑을 뜻하는데,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신의 영역에서 존재하던 말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충분히 납득 할 수 있겠다. 한없는 베푸는 사랑의 힘 앞에 어찌 자발적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이미 어머니의,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였을까. 공연을 본 성미산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이번 추석에는 꼭 고향에 내려가야겠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는 후문들도 들을 수 있었다..

 

작가의 힘을 느끼다

 

전작 어린 부부에 이어 두 번째 창작극. 관객들의 기대와 관심은 여전히 컸고 반응은 감동과 호평 일색이었다. 세상이 변하면 우리도 변해야지 라며 자식들의 결정이라면 그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조상님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관객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 감동의 배경에는 무엇보다 작가의 힘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전작에 비해 소재 이외에는 배우들의 에피소드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추는 대신, 작가의 창작 반경과 역량에 큰 힘을 두었기 때문이다. 특히, 제사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웃음과 동시에 애잔함마저 불러일으키는 작가(부추 조정일)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우화적인 스타일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다.

 

몰입의 비밀이 궁금하다

 

그렇게 1월 정기공연을 마치고 2, 5월의 공연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애초의 목표가 지속적인 공연과 그 피드백을 통해 대본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는 계획과 일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그 모든 계획과 일정들이 그냥 자연스러웠다. 부담 같은 건 채 말하지도 아니, 느끼지도 못할 만큼 무말랭이들 모두 극단 활동에 집중했다. 과연 어떤 힘이 있었길래 그렇게 집단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던 걸까. 그 몰입의 반작용을 포함해서 결과론적인 추론은 가능하겠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무엇이 무말랭이들을 그렇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

 

왼쪽: 작은할아버지(짱가)와 작은할머니(무지개) 오른쪽: 분노한 큰할아버지(윙)

 

Magic If의 힘

 

보통 연극을 한다는 건 연기를 한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일반인들에게는 둘 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리고 연기를 한다는 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는 걸 의미한다. 이때 만약에 내가 OO라면이라는 가상의 전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마법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Magic If 라고 한다. 그리고 이 전제에 대한 믿음이 강력할수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⑵ 

 

⑴ 물론 Magic If는 단지 인물에 국한되는 개념만은 아니다. 상황도 포함한다.

⑵ 연기는 믿음 Acting is Believing이라는 개념이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무말랭이들이 연극을 하는 이유는 무얼까.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아니면 그 다른 사람이 바로 자 신의 내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은 아닐까. 다시 찾고 싶은, 혹은 표현하지 않았던, 또는 간절히 바라고 희망하는, 그런 내 안의 나말이다. 그래서 만약이라는 Magic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만약의 진실이라는 놀이

 

이에 대해 연출가 피터 브룩은

일상에서 ‘만약’은 하나의 허구지만, 연극에서 ‘만약’은 실험이다.
일상에서 ‘만약’은 회피지만, 연극에서는 ‘만약’이 진실이다.
이 진실이 나의 이야기라고 설득될 때, 연극과 삶은 하나가 된다.
이것은 높고도 먼 목표다. 엄청난 노동처럼 느껴진다.
연극은 고된 노동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노동을 놀이로 받아들일 때, 더는 노동이 아니다.
연극은 놀이다. (A play is play)

 

⑶ 피터 브룩, 『빈 공간』, pp. 277~278, 걷는 책, 2019 서울.

  

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말 속에 연극에 대한 무말랭이들의 밑도 끝도 없는 몰입, 그 힘의 비밀이 숨어 있지 않을까.




남동훈 | 연출가. 공연 창작과 더불어 성미산마을극단 무말랭이 상임연출, 성미산동네연극축제 예술감독, 전국생활문화축제 총감독, 참여연대아카데미 시민연극 워크숍 강사 및 연출 등 시민문화예술활동도 함께 해왔다. 지금은 창작집단 고릴라조합 Go-LeeLa 대표로 활동 중이다.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공존의 시선으로 남북을 잇다>를 함께 펴냈다. 지금은 어린이어깨동무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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