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아니고 지금]
우리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최은혜
2024년 12월 3일, 한밤중에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줄 알았던 비상계엄이 다시 등장한 것이었다. 윤석열의 비상식적인 비상계엄은 선포 약 3시간 만에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우리에게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시민의 힘은 위대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그 밤에도,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매일같이 이어지던 촛불집회에도 시민들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여의도의 매서운 강바람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추웠던 날씨와는 달리 광장의 온도는 뜨거웠다. 결국 2025년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되면서 우리는 완연한 봄을 맞이했다. 눈꽃과 함께 시작한 투쟁이 봄꽃과 함께 막을 내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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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3일,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을 촉구하는 여의도 촛불집회에 참석한 필자 (사진 : 최은혜) |
2025년 4월 3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철야농성에 참석한 필자 (사진 : 최은혜) |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때, 나는 자고 있었다. 내가 단잠에 빠져있던 그 순간,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시민들은 국회로 달려갔으며 국회에서는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나니 나라가 망한 것이었다. '노동조합 활동가'라는 직업을 가진 나는 뒤늦게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를 보면서 공포로 차갑게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에 '파업, 태업, 집회 등 금지'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단체행동권을 무력화하는 것을 보면서 '뉴노멀'을 말하는 2024년에, 국가가 시민의 기본권을 이렇게까지 침해하는 상황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광장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동지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몸 담고 있는 조직은 다르지만, 인간답게 노동할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 그들이 혹여 고초를 겪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국회에서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인 2024년 12월 16일과 18일, <매일노동뉴스>에는 '내란 블랙홀, 지워진 노동자들'이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가 게재됐다. 기사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모든 이슈가 블랙홀처럼 내란사태로 빨려 들어가면서 노동 현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관련 입법은 기약 없는 상태가 됐다"고 서술했다. 특히나 2024년 1월 8일, 불탄 공장 옥상에서 농성을 시작한 한국옵티칼 여성노동자 두 명은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으로 파업, 태업, 집회 등 노동조합 활동이 금지되면서 무장병력이 농성장을 침탈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극심하게 탄압받았던 활동가는 위험하니 집에 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했다. 나중에 ‘수거명단’이 떴을 때, 그 명단에 노동계 동료들이 포함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웃으면서 명단에 없으니 열심히 활동하지 않은 것이냐고 말했지만, 명단에 포함된 그들의 공포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부채감이 들었다.
언제나 내 활동의 원동력은 부채감이었다. 지금은 활동가로서 일하고 있지만, 잠깐 노동언론에서 기자생활을 한 적이 있다. 기자를 꿈꾸게 된 계기는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가 나기 몇 해 전, 나 역시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세월호 참사가 나던 순간에는 대학에서 시험을 보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살아남았다는 부채감이 사회문제에 관심 갖게 했다. 노동조합 활동가가 된 그해에는 우리 조직이 주관한 집회를 용산에서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이태원을 지났다. 그리고 그날,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나는 우리 조직의 집회로 경찰 병력이 대통령 집무실 앞에 과하게 모인 게 아닌가 하는 부채감으로 조금 더 열심히 활동가로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윤석열의 비상계엄. 그 순간 단잠을 자고 있었다는 죄의식, 동료들이 수거명단에 올라갈 때 그 공포심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는 그 부채감은 내가 2025년 1월, 촛불집회 무대에 오르는 동기가 됐다.
2025년 1월 4일, 범시민대행진 무대에 올라 시민 발언하는 필자(사진 출처 :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유튜브 캡쳐)
2025년 1월 4일, 광화문에서 열린 범시민대행진에 시민 발언자로 무대에 올랐다. 전날은 내 30번째 생일이었고 윤석열의 체포가 불발된 날이었다.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다른 의제가 아닌, 윤석열의 체포와 탄핵에 집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하던 시기였다. 윤석열의 체포가 불발되기 전 이미 시민 발언을 신청했고, 노동조합 활동가로서 사회대개혁의 의제에 노동문제가 꼭 포함돼야 한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지만, 온라인 여론을 보는 순간 흔들렸다. 그렇지만, 사회대개혁과 노동문제를 꼭 얘기하고 싶어 계획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마침, 내 앞 순서에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무대에 올랐다. 당시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막 1년이 다 되어가던 한국옵티칼의 두 노동자를 위한 희망버스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앞에서 누군가 탄핵 너머의 세계에 대한 포문을 열어줘서 마음이 든든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무대에 올라 “저의 동지들은 기술이 발달한다고, 기후위기라고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죽거나 다치기도 합니다. 저는 노동현장에서 있었던 이 생존의 싸움 위에서, 해고는 살인이라고, 일하다 죽을 순 없다고 외쳤던 선배들 덕분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동지들에게, 선배들에게 목숨을 빚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며 “탄핵 이후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일하다 죽지 않게’를 처절하게 외쳐야 하는 사회가 아니었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내가 일하는 조직에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발전사,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와 자회사 노동자가 모두 우리 조합원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관련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상태에서 우리 조직에 들어온 나는 현재 관련 사업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무대에 오르기 전, 그들이 눈에 밟혔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이미 진작에 결정됐는데, 정부는 어영부영 시간만 보냈다. 결국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코앞인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지옥과 같은 실업으로 내몰리는 동지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었다.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동지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윤석열 정부는 이해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발족한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단 한 명만이 참여하던 노동계 인사를 위원에서 제외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및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의 논의를 산업통상자원부의 요청에 따라 중단하기도 했다. 2025년 1분기까지 발전사와 관련 논의를 하겠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언하면서 정부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당장 올 연말, 태안에서 석탄화력발전소 2개 호기가 폐쇄되는데 현장에서는 아무런 준비가 없어 불안해하고 있을 뿐이다.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은 올해 길거리로 나설 예정이다.
윤석열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광장을 다채롭게 물들였던 불빛들은 저마다의 이상을 말했다. 그 이상이 실현될 때, 우리는 사회대개혁을 완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23일 만에 맞이한 우리의 봄. 그러나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길거리로, 하늘 위로 올라가야만 하는 사회를, 우리는 봄이 왔다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최은혜 |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공공노련) 정책홍보부장. 누구보다 정의로운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대신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길 택했다. 지금은 한국노총 공공노련에서 정책 일부와 교육, 선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노동계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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