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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5_3 와타나베 나츠메_사랑의 불시착, 시선의 변화 그리고 남은 것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3. 12.

[평화의 눈으로 읽는 북녘] 

사랑의 불시착, 시선의 변화 그리고 남은 것

와타나베 나츠메


사랑의 불시착 그리고 북한
코로나19 로 우리 생활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다. 미증유의 감염 위기에 휩쓸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집콕'을 했던 2020년, 집에서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 많은 일본인들이 한 드라마에 열중하게 되었다. 

한국 tvN에서 방송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다. 한국 드라마는 이제까지도 일본에서 특정 층에 인기가 있는 콘텐츠이지만 '사랑의 불시착'은 한국 드라마를 평소에 보지 않는 남녀노소가 일제히 빠져들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인기가 치솟고 사회적 이슈까지 된 것일까. 내 주변에서는 북한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흥미가 생겼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북한 사람들의 연애나 우정, 생활이 그려져 있다. 지금까지 일본인 납치 문제나 핵문제 등 단편적인 이미지 밖에 접할 수 없었던 일본 사람들에게 인간미 있는 북한의 등장인물은 신선하게 비쳤을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 북한에도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공감을 낳았을 것이다. 이런 당연한 일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일본이니만큼 관심과 인기가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드라마 인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드라마를 계기로 많은 일본 사람들이 색안경을 벗고 북한의 진짜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은 내가 취재했던 일본과 북한의 대학생 교류의 의미와 상통한다. 나는 2012년부터 6차례에 걸쳐 평양을 방문해 북일 대학생 교류의 취재를 계속해 왔다. 그 취재를 통해 본 북일 학생들의 만남과 그에 따른 인식 변화에 대해 소개하고 싶다.

북한에 가기전 우리는...
북한-일본 대학생 교류란 한국, 북한, 일본 등의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한자리에 전시하는 "남북어린이와 일본어린이 그림마당"을 주최하는 일본 NGO가 2012년에 시작한 교류 프로그램이다. 일본에서는 북한 학생들과의 계속적인 교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아주 드문 일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일본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참가해 왔는데 북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기보다 국제교류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동안 이 교류에 북한과 일본에서 총 100여 명이 참가했다.

2019년 북한 방문 전, 일본 학생들에게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했다. 

"군사 퍼레이드 인상이 강하다"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나라" 
"미사일이나 납치 문제 등 위험한 이미지" 

반면 북한 주민들의 이미지에 대해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 
"프로파간다를 너무 믿는다는 이미지가 앞서고 개개의 인격이나 성격 등 인간미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 제대로 자신의 의견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상처럼 북한이라는 ‘국가’에 대해서는 위험이나 공포 이미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주민’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현실이 눈에 띄었다. 이런 응답들은 2012년 이후로 바뀌지 않았고, 나 또한 처음에 떠올렸던 이미지는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연애이야기에 공감하는 우리
그렇다면 실제 학생들이 현지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교류 일정은 3일 동안 진행된다. 첫날은 교류 대상인 평양외국어대학교를 방문해 일본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만나 자기소개를 한다. 사흘 동안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둘째 날에는 평양시내관광으로 만경대나 교육시설, 동물원 등을 구경하고 옥류관에 평양냉면을 먹으러 간다. 2019년에는 함께 배구 등 스포츠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교외에서 등산을 하면서 북일 관계나 동아시아 평화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잘 알게 된 것은 있는 그대로의 평양 젊은이들 모습이었다. 예를 들면 방과 후엔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가거나 스티커 사진을 찍거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동아리 활동을 한다고 했다. 어떤 여학생은 밴드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학창 생활 모습이나 유행을 알 수도 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특히 서로 쉽게 공감한 화제는 연애이야기였던 것 같다. 평양 학생들이 애인과의 관계를 고민하거나 이상적인 결혼 상대에 대해 생각하는 모습은 일본 학생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10년 동안 스마트폰 기능이 눈부시게 발달해서 카메라나 문자, 게임 등 다양한 앱이 생겼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학생들이 친해지는 데 가장 도움이 된 수단이었다. 또 여성 복장과 머리모양이 화려해졌고 최근에는 염색이나 미용성형 수술도 드물지 않다고 했다. 남성도 분명히 세련되어졌다. 김정은 정권 이후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면서 북일 대학생의 옷차림이 별로 다르지 않고 세련되어진 것은 서로 친근감을 느끼게 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벽을 느끼지만 나이에 걸맞은 관심사는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이는 실제 교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었던 경험일 것이다.

 

평화로워지면 여권없이...
교류의 핵심 프로그램인 마지막 날 토론회에서는 열기가 고조되었다. 사실 2016년까지의 토론에서는 논의가 깊어지기 어려웠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평양 학생들로부터 공식 견해 이외의 말이 별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 북미 정상 회담이 성사된 2018년 이후 분명히 평양의 학생들의 자세가 달라졌고, 대화 의지를 보였다. 예를 들어 2019년에 평양 학생 쪽에서 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평화로운 미래는 외국과 우호 관계를 구축한 끝에 찾아온다." 그 학생은 "평화로워지면 여권 없이 동북아를 자유롭게 오가고 싶다"고 했고, 통일이 된다면 이웃 나라와 우호 관계를 구축해서 동북아에도 EU 같은 공동체 조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해외를 자유롭게 오가는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는 미래지향적인 북한 청년을 처음 만났다. 그동안 여러 번 화제가 됐던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북일 양측의 연구자가 합동으로 조사하면 좋겠다"라는 제안을 하고 양국이 무조건 대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학생들은 서로 입장 차이와 선입견이 있는 것을 인정하며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계속 교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교류에 참가한 후 일본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소감을 말했다. 

"북미회담 이후 세계 정세가 크게 변화하려는 지금, 평양 학생들이 북일 관계도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전해져 왔다"(2018) 

"실제로 방문해 보니 버스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웃어주거나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학교에서 돌아가는 등 어느 나라나 있을 것 같은 풍경이 있었다."(2018) 

"북한을 국가로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에 편견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류를 통해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2019) 

"방문 이전에는 독재국가 북한이라는 박제된 이미지였는데, 이제는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가까운 나라라는 인식으로 생각이 크게 변화했다"(2019)

만남은 평화구축의 기반
이러한 시민 교류는 상호 간의 이해를 돕고 마음의 벽을 허무는 귀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으로 인해 북한에 대한 시선이 다양해진 것으로 보인다. 즉 일본에서 북한 사람들을 알고, 진짜 모습을 접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 같다. 이 같은 일은 그동안 엄두도 못 냈던 일이다. 이런 관심이 새로운 북일 관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과의 만남은 대화의 강한 동기부여가 되고 평화 구축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대학생 교류 같은 시민 교류가 늘고, 실제로 만날 기회가 더 생겨나면 좋겠다.

 

와타나베 나츠메 | 교도통신 외신부 기자. 2020년 6월부터 연세대 어학당에서 유학중. 2012년부터 북일 대학생 교류를 취재하고 있다. 일본의 전쟁 책임과 재일동포의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헤이트 스피치나 조선학교 문제 등을 취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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