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6_5 강경구_4월은 가장 잔인한 달!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5. 13.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1]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강경구

좌충우돌 교실이야기 첫 번째 원고를 쓴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갑니다. 글을 쓴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두 달이라니……. 그러나 그 두 달 사이에 학교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으니 ‘벌써’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학년별로 모습들이 다 달라서, 그 학년을 짐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1학년은 고등학교라는 뭔가에 눌려있어 주눅 든 모습이나, 학교 구석구석 모든 것에 호기심이 가득합니다. 2학년은 생동감 그 자체입니다. 이제 1년을 고등학교에 적응해서 무서울 것이 없고, 거기다가 1년 전의 자신들의 모습을 한 후배들이 들어와서 선배로서의 의젓함도 뽐내고 싶어합니다. 3학년들은 최고 학년이라는 여유로움보다는 그래도 마지막 남은 일 년, 정확히는 수시에 3학년 1학기까지의 성적이 반영되므로 남은 한 학기에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결의와, 1학년과 2학년 때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후회스러움이 뒤섞여 오로지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하여 어른스러움과 자신들의 처신에 철이 들었다는 느낌이 절로 배어납니다.

제가 맡은 1학년 학생들은 아직 고등학교에 적응할 의지가 없는(?) 학생들도 적지 않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중2병의 흔적인지, 아니면 고등학교에서도 중학교처럼 제멋대로 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꺾지 않는 의연함인지 모를 당당함이 간혹 보입니다. 이런 학생을 대할 때면 나는 그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막막함과 어떤 설득에도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연함(?) 앞에 답답함이 앞섭니다. 교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학생이 아직 자신이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대하는 동안 3월이 지나고 4월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대시인인 T.S.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오해를 지나 해프닝으로 말할 때 ‘죽을 사(死)’자가 들어가서 그렇다고 하기도 합니다만, 잉글랜드의 대시인이 한국이나 동양의 문화까지 반영해서 그런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 시구는, 요즘 우리 주변의 4월의 경치는 어디나 아름다움 그 자체이고, 어디서나 생명이 피어나지 않는 곳이 없는데, 이러한 4월의 자연이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생명력에 대한 찬사로 황무지조차도 생명력으로 가득한 4월의 생동감을 “가장 잔인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올 4월은 잔인합니다. 역설적인 의미로 잔인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잔인합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의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셔서 춘천으로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5인 이상 집합금지라는 조건을 지키며 내 차로 50대 교사 네 명이서 같이 갔습니다. 교사들은 모이면 기, 승, 전, 학교 이야기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교사들의 대화 주제가 이런 것은 직업병 수준을 지나 거의 산업재해 수준입니다. 웬만해서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돌아가신 분과, 그 며느님인 우리 학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각자의 가정사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춘천을 갔다가 문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처음부터 학교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야기의 초점이 흔히들 하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교장이나 교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현재 진행되는 수업 형태나 효과에 대해 확신이 없고, 우리가 나아가는 길이 제대로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거였습니다. 네 사람 모두 표현 정도가 달랐고, 이야기의 화제도 달랐고, 느낌의 강도가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우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자기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두가 그렇다는 데서 공감을 하면서도 이런 상황이 힘들고 우울하다는 점은 여전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사들이 이 정도라면 학생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 학교 1학년들이 우리 학교에 배정받고 입학할 때는 265명으로 출발했습니다. 학급당 26.5명이었는데, 1주일이 가기 전에 5명이 전학을 와서 모든 학급이 27명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되기 전에 도로 265명이 되었습니다. 이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자기가 원하는 학교로 가기 위해 전학을 간 경우였고, 나머지는 학교를 스스로 떠나간 경우입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으면 4명은 자퇴하지 않았으리라고 봅니다.

이 네 명 중 제가 수업을 들어가는 반의 영빈(가명)이의 경우를 소개합니다. 제 옆자리 선생님 반 학생인 영빈이는 첫날부터 담임선생님의 눈에 띄었습니다. 뭔가 하면 안 될 일을 지적받았는데, 그에 대해 자신은 당당하다거나 그게 무슨 대수냐는 투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경우라고 보는데,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처럼 나 몰라라 하는 태도였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조곤조곤 그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였지만, 흔히 하는 말로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 수업 시간에도 교과서를 꺼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수업 중에 엎드려 잠을 자기도 하고, 잠자는 것을 지적하면 눈만 감고 있었다는 둥 뭔가 자연스러운 대화가 되지않았고, 심지어는 왜 자기에게 간섭이 심하냐고 대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식당에서 식사 중에 전화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자 전화기를 던지면서 불쾌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냈고, 그러한 행동이 문제 행동이고, 그러지 말라고 지적하자 ‘선생님 맘대로 징계하세요.’라면서 막무가내였습니다. 다른 수업 시간에도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복도에서 나를 보자 공손하게 꾸벅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내가 인사를 잘한다고 칭찬을 하자 살짝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영빈이와 말을 이어가고 싶고, 학교생활에 정을 붙이도록 하고 싶어서 영빈이가 원하는 저녁 식사를 사 주겠다고 했더니, 시간이 없다고 거부하였습니다. 온라인 수업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고, 과제를 부여했지만 제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화를 했을 때 전화를 공손하게 받는 것을 보고는 조금 더 관계를 형성하고 지도하면 나아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 온라인 수업 주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영빈이가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영빈이의 가정 형편은 매우 어려웠고, 온라인 수업 기간에 다른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고, 자퇴를 해서 아르바아트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영빈이 어머니는 영빈이를 설득하다 지쳤는지 영빈이의 뜻대로 한다고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영빈이는 자퇴를 하였습니다. 영빈이에게 학업중단 숙려제에 대한 안내를 했지만 거부하고 바로 자퇴하였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학생들의 자퇴가 일어나는 상황이 허망하게 느껴졌고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핑계를 구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황의 큰 이유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아니 확신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영빈이 같은 학생들은 늘 있었고, 이렇게 저렇게 교사와 부딪히면서도 서로 타협하고(?) 관계를 변화시키면서 학교생활을 해 나가고, 졸업하고, 학생 나름의 길을 찾아가고 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에서는 학생들은 말을 줄였고, 학생과 교사의 거리는 멀어졌고, 만남의 기회도 줄어들었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에는 시간도, 기회도 많지 않아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관계 형성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만약에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라는 말로 이 상황을 변명하거나 책임을 피하고 싶지는 않지만 교사인 저 자신도 이러한 상황에 걸 맞는 해결책은 아직 마련하지 못하여 답답하기만 합니다.

다른 경우는 2학년의 경우입니다. 작년에 수업을 했던 학생인데,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자퇴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학생은 나름 차분하고 자기 관리도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학생인데 무슨 일인지 궁금했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학교생활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고, 만화를 그리겠다는 자신의 진로와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서 자퇴를 결심했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기만 하고, 다른 말은 못하고 마음 굳게 먹고 열심히 하라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래도 학교에 있는 게 더 나아. 그러니 조금 힘들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진로에 대해 고민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학생의 경우도 코로나와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 들어 이래저래 잔인한 4월을 원망하였습니다.


강경구 |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자신의 목소리와 글로 자신 있고 당당하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꿈꾸는 오금고등학교 국어교사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