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28_3 박지연_제12회 부산평화영화제, “가까이 멀리 이어가다”

by 어린이어깨동무 2021. 11. 19.

[평화를 담은 영화] 

제12회 부산평화영화제 “가까이 멀리 이어가다”

개막작<미안마의 봄, 파둑혁명>과 꿈꾸는 평화상(대상) 이란희 감독의 <휴가>

 

박지연

 

지난 1028일부터 31일까지 부산평화영화제의 축제가 열렸다. 사단법인 부산어린이어깨동무에서 주최하는 영화제이다. 12번의 장을 펼치면서 늘 인권, 평등, 반폭력, 반차별, 생태를 염려하고 길을 모색하고 찾아가는 실천의 영화제가 되고자 노력했다. 기획전과 공모전으로 구성된 영화제는 매해 그 시간을 설명하고 정의하는 슬로건을 정했다. 많은 고민 끝에 광장이나 우리가 키워드가 된 적도 있었는데, 올해는 주저 없이 슬로건이 만들어졌다. “가까이 멀리 이어가다.” 우리는 평화축제를 준비하는데, 지구 곳곳에서 분쟁과 내전의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 이른 봄부터 심상찮게 들려오는 미얀마의 소식들에는 우리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급박함이 실려 있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투쟁의 목소리를 작은 영화제에서 모두 담아내기엔 벅차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손이라도 내밀기 위해 기획전을 준비했다.

 

홍콩 민주화 투쟁을 현장감 있게 다룬 <붉은 벽돌 안에서>,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연결을 통해 전 지구적 상처와 연대를 보여준 <좋은 빛, 좋은 공기>, 보스니아 내전 당시 유엔캠프의 실화를 통해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탈출 지옥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전쟁범죄에 노출된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기다림>을 통해 동시대의 고민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개막작으로 미얀마의 이야기 <미얀마의 봄, 파둑 혁명>를 선택했다.

 

진 할러시, 라레스 마이클 길레잔 감독의 <미얀마의 봄, 파둑혁명>은 올 초 봄기운이 충만한 미얀마의 거리와 사람을 담았다. 한 여인은 자신이 거리에서 만난 3명의 활동가를 이야기한다. ‘드럼 레볼류션의 대표이다. 거리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축제로 만들어간다. 젊은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예술인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다. ‘마웅은 버마인이지만 소수민족을 위한 단체를 만들고 싸운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서도 소수민족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한 명의 여인, ‘니엔은 멀리 소수민족 출신의 인권, 여성운동가이다. 목숨 건 투쟁의 장을 축제로 만들어버리는 이들의 힘을 보여준다. 이렇게 지난 과거의 여성과 소수민족에 대한 반성과 공평한 인권을 고민하며 이제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를 쓰려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네톡에는 미얀마 유학생 대표가 함께 해주었다. 미얀마 민주화가 촉매가 되었던 군부 쿠데타의 정치적 배경, 2018년 로힝야 소수민족 학살 사건에서의 정부의 무능함, 영화에서 끊긴 봄 이후의 지금 미얀마 상황, 그리고 현장에 있지 못하는 유학생들의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대해서도 피력하였다. 관객석에 자리 잡은 많은 미얀마 분들도 각자의 발언을 아끼지 않았는데, 지금의 민주화 투쟁이 이렇게 어렵고 희생이 따라도 언젠가 이 지구에 커다란 희망이 될 것이라는 말씀은 듣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달궈주었다.

미얀마 유학생 대표 칸진님과 시네톡

공모전에는 천편이 넘는 작품이 응모되었지만, 여전히 열악한 독립상영관과 우리 영화제의 규모가 아쉬울 뿐이다. 이중에서 본선 경쟁작으로 오른 작품들은 재일조선인 문제, 노동현장에서의 산업재해, 제주 강정 등을 다룬 영화들이었고, 부산평화영화제 대상인 꿈꾸는 평화상을 받은 작품은 <휴가>이다. 이란희 감독의 첫 장편 작임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단아하고 절제된 화면과 감정은 서사가 진행될수록 강한 힘이 되어 울린다. 이는 영화 속 재복이 지닌 건강함, 올곧음이 주는 힘의 전달일 게다.

<휴가>포스터

재복은 해고 5년차로 농성 1882일째인 천막을 지키며 식사 담당을 하고 있다. 노조가 정리해고무효소송에서 최종 패소하자 열흘 간 집으로 휴가를 떠나온다. 엄마 없이 두 딸이 지키고 있는 집에서는 이제 대학 입시를 앞둔 큰딸이 가장 노릇을 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고 서럽다. 휴가를 받았지만, 집에서 재충전하며 바캉스를 즐길 여유는 없다. 밀린 집안일에 딸아이 대학 등록 예치금도 마련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한다. 간만에 만난 친구들은 자신을 뜯는 사람 취급하고, 잠시 목공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젊은 노동자 친구는 자신이 생각하는 노동하고 투쟁하는 계급을 인식하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리고 휴가가 끝나가는 시점에 딸들은 아빠가 집에 남길 바라고, 해고 동료가 아닌 자신들을 돌봐주길 원한다.

 

이란희 감독은 <파마>(2009), <결혼전야>(2014), <천막>(2016)등의 단편 영화를 만들어 왔다. 어느 날 콜트기타 파업 문화제에 갔다가, 해고 노동자들이 너무 즐겁게 기타치고 노래하는 모습이 의아해서 궁금증이 생겼고, 그중 한 분이 농성장의 밥 담당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집에서도 아내 없이 오롯이 가사 노동을 했던 그 노동자는 여기서도 밥에 진심을 담고,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리서치 해서 <천막>이라는 단편을 만들었고, 그 모티브가 장편 <휴가>가 되었다. 여기서 휴가는 vacation이 아니라 잠시 현장을 떠나 있는 것,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특별사유 휴가 leave이다. 힘든 일상으로 다시 복귀해야 하는데, 자신을 붙잡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휴가를 떠난 동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무수한 경우를 봤지만, 재복의 결심은 거창하지 않다. 그냥 묵묵하고, 평소와 같고, 들었던 밥주걱을 또 들 것이다.

 

이란희 감독은 수상 소감을 전해왔다. “부산평화영화제의 포스터에는 평화로운 세계, 그곳으로 손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이 있는데, <휴가>는 그 걸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스로의 삶을 존중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그분들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말이다. 이란희 감독의 오랜 취재와 연대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인권노동영화 <휴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따뜻한 밥 내음이고, 삶의 밥줄을 지켜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응원이다.

<휴가>의 이란희 감독

부산평화영화제를 꽉 채웠던 영화들, 관객들, 스텝들로 인해 밥과 반찬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자, 연대하는 마음을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부산평화영화제가 12번째 다시 자랑스러웠던 축제가 되었다.

박지연 | 영화평론가, 부산어린이어깨동무 운영위원이며 부산평화영화제 프로그래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