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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8

피스레터 No37_6 최연진_씨앗, 하나의 풀에 여러 개의 꽃이 있고 - 첫 번째 이야기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씨앗, 하나의 풀에 여러 개의 꽃이 있고 - 첫 번째 이야기 최연진 유치원 어린이 6명을 보태야 학생 수가 겨우 100명이 될까 말까고, 한 학년에 한 반씩, 6학급인 작은 학교. 학교 뒷산이 온통 숲이라 아이들은 언제나 숲에 가서 놀 수 있고 학교 운동장은 계곡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학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5학년 스무 명 아이들과 만났습니다. 저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교실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믿음이 없는 관계는 안전하지 못합니다.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서는 말과 행동이 움츠러들고 생각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따뜻한 교실 문화가 자리 잡아야 온전한 배움이 일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학기 초 우리 반 아이들 관계는 .. 2024. 2. 19.
피스레터 No35_5 심은보・최관의_서이초 박선생님을 추모하며 [한반도 평화교육 1] 서이초 박선생님을 추모하며 심은보(자란초등학교 교사) 서이초 한 교사가 학교에서 죽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우리는 그녀가 죽은 까닭도 모른다. 나는 그저 그녀가 교사라는 사실을 알 뿐이다. 우리는 그녀가 학교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죽어 버린, 이름 모를 그녀는 어쩌면 ‘나’인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까닭조차 드러내지 못한 채 죽어간 이름 모를 그녀는 어쩌면 ‘우리’인지 모른다. 돌아보니 ‘그녀’는 ‘나’였고, ‘그녀’는 ‘우리’였다. ‘나’였을지 모를 그녀의 이름 없는 죽음 앞에 안타깝고 안타까워 우울과 슬픔의 빛깔로 2023년 나는 여름 대부분을 채워 나가고 있다. ‘우리’였을지 모르는 그녀의 맥없는 죽음 앞에 분노스럽고 분노스러워 검고 검은 빛깔 옷을 입고 .. 2023. 8. 17.
피스레터 No32_5 최관의_원반 놀이 모둠 짜는 건 너무 어려워!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1] 원반 놀이 모둠 짜는 건 너무 어려워! 최관의 3학년 달 반 아이들과 원반 럭비 경기할 모둠을 짜는데 너무 힘들었다. 함께하고 싶은 애가 자기 모둠 안 된다고 골내고 누구랑은 하기 싫다 등등 20분이나 걸렸다. 운동장 두 바퀴 뛰는 준비운동을 안 하고 대신 모둠 짜는 데 더 집중해야 했다. 두 바퀴 뛰고 숨차고 지친 상태에서 모둠 짜려니 아이들 사이에 어두운 기운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시간인 별 반 수업에서는 준비운동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별 반은 달 반처럼 운동장에 세워놓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현관 안쪽 넓고 조용한 데 앉혀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얘들아. 수업하는데 고민거리가 있어. 모둠 짜는 게 너무 어려워. 잘하는 사람이 어느 모둠으로 몰리면 다른 .. 2022. 11. 18.
피스레터 No32_7 김지혜_마음껏 슬퍼하고 울어도 된다 [살아가는 이야기] 마음껏 슬퍼하고 울어도 된다 김지혜 얼마 전, 우리 반 모두가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겪었다. 교실 한 가운데가 커다란 흙구덩이로 뭉텅 꺼져 버린 느낌이었다. 눈앞이 깜깜한지, 머리통이 깜깜해진 건지, 세상이 어둠으로 덮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3시까지 교실에 남아 나와 같이 시를 썼던 한 아이가 갑작스레 하늘의 별이 되었다. 빨간 패딩에 새하얀 얼굴을 드러내고 배시시 웃던 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선생님’ 부르고 슬쩍 내 눈치를 보던 조그마한 아이의 책상에는 한동안 국화꽃과 편지와 생전에 좋아했던 간식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다.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이었고, 우리는 추모를 해야 했다. 이 일을 숨겨 아이들에게 돌아갈 충격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어른들이 속인다고 해서 아이들.. 2022. 11. 18.
피스레터 No31_5 김지혜_만나고 돌아보고 부끄럽게 다시 만나고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1] 만나고 돌아보고 부끄럽게 다시 만나고 김지혜 때려놓고는 사랑한다는 주말 내내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난 그 자리에서 무어라고 말했으면 좋았을까? 지난 금요일, 우리 반 아이들은 ‘외국인에게 우리글이 왜 필요한지 알려주는 연극’을 했다. 며칠 전에 ‘초정리 편지’라는 책을 함께 읽으며 한글이 없던 시대의 불편한 삶을 배웠기 때문에, 아이들이 한글의 필요성을 간단한 연극으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책 ‘초정리 편지’는 한글을 반포하기 전에 세종대왕이 평민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준다는 판타지 역사 소설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우리 반 어린이들은 이번에도 삼삼오오 꼬물거리며 연극 준비에 정성을 쏟는다. 그런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교사는 ‘국어(나) 9단원에 한.. 2022. 8. 18.
피스레터 No30_2 심은보_삶을 위한 교육이 되길 바라며 [한반도 평화교육] 삶을 위한 교육이 되길 바라며 심은보 5월 첫 주부터 밖에선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5월 첫 출근날, 한 시간 남짓 마스크를 벗고 걸어서 학교에 갔다. 오랜만에 콧속을 파고드는 아침 내음이 참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쩐지 어색하고 불안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코로나-19에 갇혀 사는 동안 우리 삶에 아로새겨진 무늬들이 참 오래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도 분주하게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수업 과정에 모둠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현장학습도 떠나는 학교들이 늘었다. 또, 5월의 앞자락에 운동회를 하는 학교의 모습들도 곳곳에서 보인다. 모처럼 학교에 활기가 돌고 있다.. 2022. 5. 18.
피스레터 No28_5 김지혜_ 서로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된다면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1] 서로에게 말을 거는 존재가 된다면 김지혜 “선생님!! 드디어 내일! 악 어떡해!!! 너무 기대되요오오오~~~~” 어린이들이 최고로 기대하는 날, 어린이날 전날이 아니다. 오늘은 부계초 4학년 학생들을 만나기 전날이다. 부계초는 경북 군위에 있는 시골 초등학교다. 광명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대중교통으로 일곱 시간 정도 걸리는 곳, 한 학년의 학생이 7명인 곳, 가장 가까운 다이소에 가기 위해 대중교통을 4시간 타야 하는 곳, 그곳 학교 선생님과 내가 우연히 연결되어서 쌍방향 수업 플랫폼을 활용하여 교실 교류를 하게 되었다. 부계초 학생들을 만나기 전부터 들떠있는 우리반 아이들. 한 아이의 표현으로는 ‘심장아 나대지마’란다. 그렇게 기분 좋은 떨림과 낯선 설렘을 가득 안고, 아이들은.. 2021. 11. 19.
피스레터 No27_5 김지혜_ 갑작스런 온라인 쌍방향 수업에서 교사의 방황 : 질풍노도 교사 일기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1] 갑작스런 온라인 쌍방향 수업에서 교사의 방황 : 질풍노도 교사 일기 김지혜 온라인 쌍방향 수업이 2주 연속 지속되자 학생들에게 무엇을 하게끔 '시킨다'라는 교사의 행위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수업을 '한다'는 교사 홀로 앎을 전달하는 행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움직임과 분위기를 통해서 서로의 무언가를 '나눈다'와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온라인 쌍방향 수업에서는 사람이 만나서 영향을 주고 받지 못하는 제약 때문에 서로의 생각과 삶과 배움을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점차 줄어든다. 자연히 아이들이 받는 성장의 자극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선생님과 대면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하니, 아이들의 수업 태도가 온-오프라인 병행 수업을 할 때에 비해 많이 달라.. 2021.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