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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레터(글)

피스레터 No32_5 최관의_원반 놀이 모둠 짜는 건 너무 어려워!

by 어린이어깨동무 2022. 11. 18.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1] 

원반 놀이 모둠 짜는 건 너무 어려워!

최관의

 

 

3학년 달 반 아이들과 원반 럭비 경기할 모둠을 짜는데 너무 힘들었다. 함께하고 싶은 애가 자기 모둠 안 된다고 골내고 누구랑은 하기 싫다 등등 20분이나 걸렸다. 운동장 두 바퀴 뛰는 준비운동을 안 하고 대신 모둠 짜는 데 더 집중해야 했다. 두 바퀴 뛰고 숨차고 지친 상태에서 모둠 짜려니 아이들 사이에 어두운 기운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시간인 별 반 수업에서는 준비운동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별 반은 달 반처럼 운동장에 세워놓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현관 안쪽 넓고 조용한 데 앉혀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얘들아. 수업하는데 고민거리가 있어. 모둠 짜는 게 너무 어려워. 잘하는 사람이 어느 모둠으로 몰리면 다른 쪽 모둠은 실력 차가 나니까 재미도 없고 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 거야. 결국 잘하는 아이들이 몰린 모둠도 재미가 없어지고 기분이 안 좋아져. 모둠 짜는 게 너무 어려워. 내가 짤까 너희들이 힘들어도 스스로 짜볼래?”
“선생님이 짜요.”
“우리가 짤게요.”
“그래. 다 좋아. 두 가지 의견 모두 충분한 까닭이 있지. 그 이야기를 지금 다 나눌 순 없고. 좀 힘들더라도 너희가 하면 좋겠다. 너무 어렵기는 하지만. 대신 준비운동 안 하면 어떨까? 운동장 네 바퀴 도는 거.”
아이들 눈이 커진다.
“내가 오죽하면 그러겠니? 오래 걸리고 속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해볼래? 힘들지만 해보면 좋겠다. 모둠 짜다가 속상해서 우는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좋아요. 우리가 할게요.”
“내가 지난주 내내 3학년, 5학년 수업하면서 고민해서 정한 원칙이야. 이 원칙을 생각하면서 모둠을 짜는 거야. 첫째, 남녀를 섞는다. 둘째, 친하거나 잘하는 사람만 몰리지 않도록 한다. 셋째, 이기고 점수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서로 즐겁게 운동하고 노는 게 목적이다. 이것만 생각하고 해보자.”


늘 운동장에서 설명 짧게 하고 준비운동 한 뒤 수업을 했는데 건물 안쪽에서 모여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집중이 잘 된다. 모둠을 정하기 시작했다. 회의를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움직이면서 누구와 할지 만나고 헤어지고 하면서 순발력을 발휘한다. 오 분쯤 지났을까 세 명씩 모둠을 정한 뒤 내게 오기 시작했다. 모둠을 짤 때마다 겪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세 명씩 짜고 남는 아이들이 있을 거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남녀 섞어서 세 명으로 하고 나는 좀 몸도 안 좋고 왠지 깍두기를 하면 좋겠다는 사람은 나중에 다른 모둠에 들어가는 걸로 하면 좋겠다.”
“그 사람이 모둠을 골라요?”


날카로운 질문이다. 정말 대단한 질문이다. 모둠을 교사가 혼자 일방적으로 정한다면 이 좋은 공부를 아이들이 할 기회가 사라졌을 텐데. 오늘 수업 흐름이 마음에 든다. 아이들도 장난을 치거나 흩어지는 모습이 안 보인다. 진지하고 눈이 빛난다.

 

“그러면 문제가 있다는 뜻이지? 깍두기는 선택권이 없는 거로 할까?”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합의했다. 3교시 수업할 때보다 시간이 덜 걸리고 차분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모둠이 정해졌다. 다리 근육이 아프다는 아이, 왠지 자신감이 없는 아이, 함께하고 싶은 아이들이 있지만 그걸 드러내길 싫어서 깍두기를 지원한 아이 해서 네 명이 깍두기다. 한 명씩 내 손을 잡고 앞에 섰다.

“민희는 어느 모둠으로 갈까?”
“우리 모둠요.”

“그래. 가서 즐겁게 해보자.”
“승구는 어느 모둠에서 함께할래?”
나도 모르게 ‘데려갈래?’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안에서 걸러냈다.
“가고 싶은 데가 있는데…….”
승구는 머리 회전이 빠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못하게 되면 골내고 화내거나 과제나 활동에서 빠져버리는 걸로 자기를 표현하고 그렇게 원하는 걸 얻어내는 아이다. 지금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순간 안에서 화가 올라오는 걸 내리누르고 다시 물어봤다.
“승구야, 혹시 가고 싶은 데가 있는 거니? 그런데 깍두기에 선택권을 주지 않기로 했어.”
내 말에 단호함과 화난 감정이 묻어난다.
“승구랑 우리 모둠이 할래요.”
승구가 정해지자 금방 모둠이 짜졌다.


“조끼는 선생님이 정할게. 가서 입고 오면 바로 하자. 덥기도 하고 입은 뒤 개려면 힘들겠지만. 개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게 말해. 나랑 같이하거나 내가 갤게.”
좀 떨어진 곳에 놓아둔 조끼 바구니에 가더니 금방 골라 입고 온다. 지난주와 달리 짜증을 내거나 입기 싫다고 내게 하소연하는 아이도 없다. 조끼를 입고 오는 표정이 밝다.
“얘들아. 너무 멋있다. 이 어려운 모둠 짜기를 이렇게 부드럽게 해내다니.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때로는 함께하기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을 텐데 표시 내지 않고 모둠을 짜는 너희들 보니 기분 좋다. 우리 한판 신나게 놀아보자.”
아이들 표정이 참 좋다. 두리번거리거나 흩어진 모습도 없다. 예쁜 아이들을 보다가 문득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오른다. 이 기회에 이름을 바꾸자. 원반 럭비 경기, 원반 럭비 게임 이런 말 말고 원반 놀이. 상황에 맞게 원반 갖고 놀이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이 좋은 이름이 이제야 떠오르다니.


“얘들아! 우리 이 놀이 이름을 이렇게 정하자. 원반 놀이! 어때?”
“좋아요.”
“좋다. 원반 놀이. 그런데 원반 놀이하기 전에 할 게 있어. 내가 앞말 하면 뒷말을 받아봐. 어울리는 말, 알맞은 말이 뭘까? 시작한다.”
아이들이 내 입에 집중한다.
“사이”
“좋게”
“와! 눈치 빠른데. 다음 말이 궁금하지. 시작할게.”
너무 쉽고 빤하다는 눈치다.
“미안해!”
“괜찮아”
“그래. 우리 사이좋게, 그리고 ‘미안해’와 ‘괜찮아’를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놀아보자. 시작!”
이리저리 머리 굴리던 승구도, 다리 아프다며 한 발 뒤로 물러서던 민희와 연희도, 마음이 아파 보조 선생님이 도와주는 관우도 밝은 표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원반을 주고받는다.

 

최관의 ㅣ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서울이수초등학교에서 (3, 5학년 체육교과) 교사로 살고 있다. 마음껏 어린 시절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담은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 『열일곱, 내 길을 간다』, 『열아홉, 이제 시작이야』(보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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